박근혜 정부와 여당뿐만 아니라 야당에서도 사드 배치는 되돌릴 수 없는 것 아니냐는 회의론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들이 사드 철회 주장이나 재협상론과 선을 긋고 있다.
이에 대해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야권의 대선 주자들이 "'국방' 개념만 있지 '안보' 개념이 없는 것 같다"고 일갈했다. 그는 "국방이 곧 안보라는 식의, 아주 단순한 도식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정 전 장관은 "국방은 안보의 한 축이다. 그 자체가 안보와 같은 것은 아니다"라며 "국방뿐만 아니라 외교를 통해 주변 국가들과 관계를 원만하게 만들어서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지 않게 만드는 것 역시 안보의 중요한 축"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중 관계만 하더라도 경제 관계를 더 심화시켜서 중국이 우리와 관계에서 챙길 수 있는 이득 때문에라도 군사적으로 우리에게 해코지를 못하게 해야 한다"며 "이렇게 안보를 챙기는 것이 사드와 같은 무기를 들여오는 것보다 훨씬 차원이 높은 안보"라고 설명했다.
그런데도 야권의 대선 주자들이 사드 배치에 대해 말을 바꾸고 우물쭈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 전 장관은 "사드에 대해 잘못 말하면 이른바 '종북 프레임'에 걸려들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만 급급한 것 같다"며 "그런데 이게 무섭다고 사드 배치에 대해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은 프라이팬이 뜨겁다고 날뛰다가 불 속에 빠지는 격"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드 배치는 우리를 미중 간 군비 경쟁에 휘말리게 할 뿐만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 관계도 위태롭게 할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기댈 곳이 미국 밖에 없어지는데, 그러면 주한미군 주둔 방위비 분담금을 더 많이 내야 하고 한미 FTA도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사드라는 무기 하나 때문에 한반도 문제에 많은 영향력을 가진 국가와 대립하고, 미국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상황이 만들어진다는 전망이다.
정 전 장관은 "정권을 교체하겠다는 사람들이라면 전 정권과 차별화 차원에서라도 박근혜 정부와 다른 이야기를 해야 한다"며 "박근혜 정부가 사드 문제에 대해 국방의 차원에서만 접근하고 있다면, 야권 대선 주자들은 이와 다르다는 점을 확실히 해야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대선 주자들이 "박근혜 정부가 사드 배치를 무작정 밀어붙인 측면이 있으니, 국민들도 사드 배치의 장단점이나 득실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공론화 작업을 거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이야기해야 한다"며 "미국과 한국의 새로운 정부가 시간을 가지고 사드 협상을 다시 하겠다고 밝혀야 한다"고 당부했다.
인터뷰는 지난 23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프레시안 :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 이후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첫 대외 행보는 군부대 방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북한의 위협을 강조하면서 신속한 사드 배치를 강조했습니다.
물론 대통령 탄핵이라는 비상 시국에서 국가 안보를 챙기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의 위협이 한국 안보의 전부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황 권한대행은 북한을 한국 안보에 가장 큰 위협으로 규정하고 신년 기자회견에서도 사드 문제를 강조했습니다.
정세현 : 군사정권 시절 때부터 있었던 전형적인 행태입니다. 한국이 워낙 오랫동안 군사 문화 속에서 살다 보니까 남한에 조금만 일이 생기면 '북한이 사고칠 지 모른다, 따라서 대통령과 정권을 중심으로 철통같이 뭉쳐야 한다'는 것이 마치 DNA처럼 몸에 박혀 있는 겁니다.
일례로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을 때 한국 정부는 바로 전군 비상령을 발동했습니다. 보수 정치인들은 습관적으로 남한에 무슨 일만 생기면 북한이 밀고 내려온다는 '북한 공포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1960년대라면 이게 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닙니다. 지금 북한이 섣불리 움직이면 자칫 나라가 망할 수도 있습니다. 북한이 바보가 아닌 이상 남한으로 쳐들어오겠다는 생각을 실행에 옮기기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야당의 대선 주자들이 이런 부분을 지적해야 합니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그런 말을 하냐, 북한이 쳐들어온다고 해도 대한민국 군대가 막을 수 있는 것 아니냐, 지금까지 매년 수십 조원 씩 국방비를 쓰고 뭐했냐, 한미 동맹은 날로 강화됐다고 하고 물샐 틈이 없는 공조를 하고 있다면서 겨우 북한에 바들바들 떨고 있는 거냐고 따져 물어야 합니다.
프레시안 : 북핵 위협을 남한에 대한 군사적 침략과 동일시하는 것도 문제인 것 같습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 남한에 떨어질 것이라는 공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정세현 : 이 부분에서 중요한 전제가 있습니다. 핵은 실제 사용할 수 있는 무기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인류 역사상 핵무기는 딱 두 번 사용됐습니다.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을 투하했죠. 그 뒤에 미국과 소련은 경쟁적으로 핵 무기를 개발했습니다.
그런데 1960년대 핵무기가 너무 많이 만들어지면서 핵무기 개발이 의미가 없어졌습니다. 상대한 대한 억지력을 키우기 위해 핵무기를 만드는 건데 상대방도 계속 만드니까 각자가 서로에 대해 우위를 보일 수 있는 억지력이 '제로(0)'로 수렴하는 겁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은 대남 공격용이 아닙니다. 미국을 대상으로 한 것입니다. 그것도 무기로서의 사용보다는 협상이나 자위의 수단입니다. 한미 합동 군사 훈련 때 핵무기를 탑재한 전투기들이 한반도를 돌아다닙니다. 우리가 볼 때는 그게 연습이지만 북한 입장에서는 엄청난 공포입니다. 그래서 북한 입장에서는 '미국이 먼저 공격하면 그나마 핵을 가지고 있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해서 저러고 있는 겁니다. 딱 거기까지입니다.
만약 미국이 실수든 의도했든 북한의 어느 지역을 공격하면, 북한이 실제 핵 미사일을 미국에 쏠 수 있을까요? 불가능합니다. 만약에 미국으로 북한의 미사일이 한 방만 날아가면 그야말로 북한은 불바다가 되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북한만 불바다가 되는 걸까요? 미국의 공격을 받은 북한은 남한에 장사정포를 쏴댈 겁니다. 북한이 핵을 쓰면 미국이 대대적인 보복을 가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남한도 무사할 수 없습니다.
북한이 핵을 쓰지 못하도록 막아야 하는 이유는 북한이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핵을 쓰는 것 때문이라기 보다는, 핵이 사용되는 상황이 되면 남북이 공멸하기 때문입니다. 이건 한국이 당사자인 문제입니다. 미국이나 러시아, 중국보고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요청한 채로 팔짱만 끼고 있을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프레시안 : 하지만 여전히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되도록 빨리 사드 배치를 완료하겠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습니다. 상반기 중에 매듭을 짓겠다는 이야기로 들리는데 가능할까요?
정세현 : 2월에 롯데가 사드 배치 부지 맞교환을 결정하고 주한미군에서 사드 포대를 배치해버리면 기정 사실화될 수 있는 측면이 있지만, 실제 기술적으로 가능할지는 의문입니다. 2월에 부지 문제를 매듭짓고 3개월 만에 밀어붙인다는 것이 생각대로 될지는 미지수입니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가 미사일 방어체제(MD)를 강화하겠다는 이야기를 듣고 잘됐다 싶은 생각은 들 겁니다. 게다가 새 정부의 마이클 플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게 첫 통화를 요청했다고 하니, 박근혜 정부 입장에서는 사드를 반대하는 세력에게 "미국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오고 있으니 가만히 있으라"는 엄포를 할 수도 있는 상황이 됐습니다.
미국 쪽에서는 우리가 무기 시장에서 중요한 고객이기 때문에 전화도 하고 한미 동맹 강화하겠다는 이야기도 하는 것이고, 박근혜 정부 입장에서는 미국의 태도를 사드를 밀어붙일 수 있는 일종의 명분으로 삼고 있는 겁니다. 트럼프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한미 간 대화가 사드의 신속 배치만 이야기한 것은 아닐텐데도, 대외적으로는 이러한 메시지만 부각하는 겁니다.
국방과 안보는 다르다
프레시안 : 문제는 야권의 대선 주자들이 박근혜 정부와 별다를 것 없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황 권한대행은 북한의 위협을 앞세워 사드 배치를 가급적 빠른 시일내에 완료하겠다고 밝혔는데, 이재명 성남시장을 제외하고는 야권의 대선 주자들도 사드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사실 사드는 배치되는 것 자체보다는, 일단 자리 잡게 되면 한국이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의 한복판으로 빨려 들어간다는 데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북핵 위협을 막기 위해 사드를 배치하는 것과 사드로 인해 한반도가 미중 갈등의 소용돌이로 빠지는 것 중에 어느 것이 중요한 것이냐에 대해 토론이 있어야 하는데, 한국 사회에서는 후자 부분에 대한 논의가 없습니다. 유력 정치인이라는 대선 주자들이 국제정치 속에서의 사드 문제를 도외시하고 있는 것 아닌가요?
정세현 : '국방' 개념만 있지 '안보' 개념이 없는 것 같습니다. 야권의 유력한 대선 주자들도 국방이 곧 안보라는 식의, 아주 단순한 도식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사드 배치로 인해 한중 관계가 경제적으로 불편해지고 동북아의 군비 경쟁을 촉발시키게 되면 한국의 안보가 위협받는 상황이 올 수 있는데, 이런 점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드를 도입해 방위력을 강화한다고는 하지만, 넓은 개념의 안보로 보자면 오히려 안보가 위협받을 수 있습니다.
국방은 안보의 한 축입니다. 그 자체가 안보와 같은 것은 아닙니다. 국방뿐만 아니라 외교를 통해 주변 국가들과 관계를 원만하게 만들어서 군사적 긴장이 높아지지 않게 만드는 것 역시 안보의 중요한 축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타국과 경제‧사회‧문화적으로 밀접한 연관성이 생기도록, 그래서 높아진 상호 밀접성 때문에라도 다른 국가가 우리에게 군사적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렇게 안보는 '총체적' 개념입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공격을 막는 것이 안보의 전부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한중 관계만 하더라도 양국 간 경제 관계를 더 심화시켜서 중국이 우리에게 해코지 못하게 할 수 있습니다. 중국이 우리와 관계에서 챙길 수 있는 이득이 많아지면 함부로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무기를 들여오는 것보다 훨씬 차원이 높은 안보입니다.
국방과 안보가 같은 개념이라면 국방부가 있는데 뭐하러 청와대에 국가안보실을 따로 두겠습니까? 외교와 국방, 통일 문제를 전부 아울러서 그것이 상호 연계하는 과정 속에 국가가 당면한 과제들, 즉 당장 국가 안위부터 넓게는 국제적 번영까지 보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국가안보실을 따로 두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보수‧진보를 떠나 대선 주자들이 국방과 안보 개념을 혼동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특히 야권 주자들은 사드에 대해 잘못 말하면 이른바 '종북 프레임'에 걸려들 수 있다는 이유 때문에 여기서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만 급급한 것 같습니다.
사드를 배치하면 북한은 핵과 미사일 능력을 강화할 겁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걸 막기 위해서 또 다른 무기를 들여오거나 사드를 증강해야 합니다. 게다가 트럼프는 중국 압박 차원에서 MD 개발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했습니다. 사드 배치가 우리를 군비 경쟁의 함정에 빠지게 하고, 안보 상황은 더 악화시킬 것입니다.
또 사드 배치는 한국과 중국, 한국과 러시아 관계를 불편하게 만들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의 안보가 위험해집니다. 게다가 지금 한국은 러시아와 썩 좋은 관계도 아닙니다.
러시아는 우리가 극동 지역 개발에 참여할 가능성이 보일 때 외교적인 측면에서 원만하게 협조를 해줬습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러시아에서 기대를 걸고 있던 나진-하산 프로젝트를 걷어 치우고 대신 사드 배치를 결정했습니다.
러시아 쪽 관계자를 얼마 전에 만나서 이야기해 보니 러시아는 일단 지금은 사태를 좀 지켜보고 차기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지켜보기로 했다고 합니다. 러시아가 극동 러시아 쪽 개발에 관심이 많은데, 중국이나 일본보다는 한국을 선호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래도 영토나 기타 외교적인 문제에 있어서 우리와 마찰을 일으킬 요인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러시아가 중국에 비해 사드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많이 내보이지 않는 이유 중 하나도 여기에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만약 한국과 경제협력이 어그러지고 정말로 사드가 배치되면 러시아도 가만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국 사드를 배치하게 되면 우리는 국방도 제대로 못하고 안보는 포기해야 하고 경제도 망치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야권 주자들이 안보와 국방이라는 개념을 명확히 잡아야 합니다. 국방을 넘어 안보를 생각해야 합니다.
프레시안 :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일본으로 초청해서 쿠릴열도 4개 섬(일본명 북방영토) 문제를 논의하려고 할 때만 해도 일본과 러시아 관계가 잘 풀릴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서로 입장 차이만 확인하고 끝났는데요. 이게 우리한테는 또 다른 기회가 될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사드 문제만 잘 매듭짓는다면 한러 관계도 발전시킬 수 있는 여지가 있을 텐데요.
정세현 : 러시아 입장에서 외교적으로 크게 불편하지 않은 국가가 한국입니다. 사실 일본과 벌이고 있는 쿠릴열도 분쟁은 근본적으로 해결되기 어렵습니다. 일본과 러시아 양국 모두 국내 정치적인 상황이 있기 때문에 포기하기가 어려운 상황입니다.
중러관계 역시 겉으로는 악수를 하지만 예전부터 원만한 사이는 아니었습니다. 중국이 예전 청나라 시절 제정 러시아에게 빼앗겼던 땅에 들어와서 여러 활동들을 벌이는데 러시아는 이게 뭔가 수상하다면서 중국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드 배치를 기정사실로 하면 러시아는 이러한 협력보다는 보복을 시작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드 하나 갖다 놓았다가 러시아‧중국과 원수가 될 수 있는 겁니다. 이게 한국의 안보를 위한 길인가요? 러시아는 군사적으로 유럽 쪽에 있는 미사일 요격 장비를 극동으로 옮길 수도 있습니다. 이건 '국방'의 차원에서 보더라도 좋지 않은 상황입니다.
이렇게 되면 한국에게 기댈 곳은 오직 미국밖에 없게 됩니다. 그러면 주한미군 주둔 방위비 분담금을 더 많이 내야 하고 한미 FTA도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드 하나 때문에 한반도 문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국가와 대립해야 하고, 미국에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지는 겁니다.
프레시안 : 국민들은 이번 국정 농단과 촛불 시위를 통해 1987년 이후 지금까지 쌓여온 한국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전면적인 대전환을 생각하고 있는데, 대선 주자들은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하다가 중간만 가면 된다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세현 : 정권교체를 하겠다는 사람들이라면 차별화 차원에서라도 박근혜 정부와 다른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박근혜 정부가 사드 문제에 대해 국방의 차원에서만 접근하고 있다면, 야권 대선 주자들은 이와 다르다는 점을 확실히 해야 합니다.
국방이라는 작은 개념이 아니라, 안보라는 차원에서 생각한다면 사드가 가져올 외교‧안보적 불이익에 대해 국민들에게 설명해야 합니다. 또 박근혜 정부가 사드 배치를 그냥 밀어붙이기식으로 진행한 측면이 있으니, 국민들도 사드 배치의 장단점이나 득실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공론화 작업을 거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미국과 한국의 새로운 정부가 시간을 가지고 사드 협상을 다시 해보겠다고 말할 수 있는 겁니다. 혹여 불가피하게 사드가 배치된다고 해도 우리의 불이익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시간을 확보하겠다는 전망 정도는 제시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야당 대선 주자들이 사드 도입은 이제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이른바 '종북' 프레임에 갇힌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종북 프레임이 무섭다고 사드 배치에 대해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않고 그저 인정하는 것은 프라이팬이 뜨겁다고 날뛰다가 불 속에 빠지는 격입니다.
프레시안 : 최선희 북한 외무성 미국 국장은 트럼프의 대북 정책이 파악되기 전까지 군사적 행보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미국에서 대북정책을 담당할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임명되고 정책 윤곽이 잡히려면 아직 2~3개월 정도는 더 시간이 남아 있고요. 그런 측면에서 대선 주자들이 최소한 5월까지는 유보하자는 의견을 낼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정세현 : 수권 후보가 되고 싶다면 그 정도의 목소리는 낼 수 있어야 합니다. 미국도 시기적으로 정책 방향이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말은 요란하게 나올 수 있지만 실제 행동하기는 어렵습니다. 우리는 우리대로 선거 국면에 들어서고 정권이 바뀌는 상황이 됩니다.
이럴 때는 다음 정권에서 하자고 자신 있게 이야기해야 합니다. 지금 해봐야 어차피 공허한 약속이 될 가능성이 높으니 현 상태에서 일단 멈추자고 제안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 한국에 기회?
프레시안 : 트럼프가 대통령 후보였을 당시, 한국에서는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 한반도에 기회인지 위기인지를 두고 논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트럼프가 취임하고 나서 내놓은 6대 국정 기조를 보면 국방비 예산을 늘리겠다고 하고 MD를 개발하겠다고 합니다. 미국의 국익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는데요.
이렇게 되고 보니 트럼프 대통령이 동북아 문제나 남북관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애초의 기대가 잘못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옵니다.
정세현 :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우리에게 득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트럼프가 이전에 사업을 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북한 핵 문제를 비롯해 동북아에 산적해 있는 갈등을 비즈니스적 관점으로 쉽게 해결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었습니다.
그런데 트럼프가 취임 이후 내놓은 입장을 보니, 통 크게 해결하기는커녕, 전혀 그렇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너무 낙관적으로 생각한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그나마 트럼프의 '우격다짐 식' 대외 정책이 그대로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인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우선 공화당 내에서 트럼프의 이러한 행보를 적극적으로 지지해주겠느냐의 문제가 있습니다. 공화당이 내부에서 딴지를 걸고 외부에서도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면 정책 추진의 동력이 떨어질 수도 있죠.
미국이 대외 문제에 개입하거나 군사적인 공세를 하려면 의회에서 이를 지지해야 합니다. 일례로 1994년 빌 클린턴 대통령은 당시 제네바 합의를 만들면서 북한 핵 문제를 해결 수순으로 가져가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2주 뒤에 있던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의회를 장악하면서 사사건건 발목이 잡혔습니다.
일단 트럼프의 정책을 민주당에서 적극적으로 지지하지 않을 것이고, 공화당 내부에서도 반란이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우리가 이걸 기다리고만 있을 일은 아닙니다. 트럼프가 최악의 상황을 만들더라도 이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프레시안 : 박근혜 정부는 여전히 한미동맹이 강화됐다는 것만 선전하고 있습니다. 사실 여기에는 우리에게 혜택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를 위해 치러야 하는 비용도 있죠.
일본과 우리가 미국과 맺고 있는 동맹의 양태도 다릅니다. 일본은 1979년 미일 동맹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했는데, 당시 이것이 과연 적절한지를 두고 논란이 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일본은 자발적으로 미국과 동맹 관계를 가져갔다면, 우리는 끌려 들어간 측면이 있는데요.
정세현 : 한미 동맹의 좋은 쪽만 강조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이 우리에게 '확장 억제', 즉 자국 본토와 같은 수준의 핵 억제력을 제공해주기로 했다면서 한창 홍보하고 다녔는데 이걸 보장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미국 무기가 한국에 많이 들어와야 합니다. 이걸 위해 지불해야 하는 돈이 적지 않습니다. 한국의 무기 수입은 지난 10년 동안 36조 원 이었습니다. 매년 전체 국방 예산의 10분의 1이 여기에 들어가는 겁니다.
그리고 또 재밌는 건, 북한 핵을 이야기할 때 막강한 한미동맹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립니다. 한미동맹의 막강한 군사력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북한의 핵에 대응하기 위해 한미동맹을 공고히해야 한다는 이야기만 하고 있습니다. 이건 결국 무기를 더 구입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동맹의 이런 측면을 직시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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