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의식주 가운데 무엇이 가장 중헌디?" 하고 물었더니, "식(食)"이 가장 중요하단다. "고래? 그다음은 무엇이 중헌디?" 물었더니, "의(衣)"란다. 캬! 세상 뜻대로 안 된다. 목구멍까지 "모범 답안 몰라?" 하고 묻고 싶었지만, 꾹 참을 수밖에…. 아빠의 체통을 지켜야지. "식이 중요한 이유는?" 하고 물으니, "밥을 못 먹으면 죽잖아요?"라고 한다. "그럼 옷은?", "옷을 못 걸치면 밖에도 못 나가잖아요?"라고 한다. 다 맞는 말이다.
다른 사람에게 딸과 나눈 얘기를 했더니, "의식주 가운데 무엇이 내 삶에 가장 큰 영향력을 주나?" 이렇게 질문을 바꾸란다. 그러면 "집(주, 住)"이라고 '직방'으로 이야기할 거라나?
주거권은 '머물 권리'로 정의한다. 자신·가족·함께 사는 사람들이 머물고 싶은 곳에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권리, 이게 주거권이다. 산속에 사는 새는 임대료 내고 둥지 틀지 않는다. 임대료 내지 않고 사는 사회가 자연에 부합한다. 새는 알맞은 곳에 둥지 자리를 정하고 부부가 협력해서 둥지를 짓고 사랑을 나누고 알 낳고 품는다. 태어나고 나면 먹여 살리고 ‘자식들’이 스스로 날 수 있을 때 둥지를 함께 떠난다. 이게 새의 '주거생태계'다. 알을 품은 지 며칠밖에 안 되었을 때 힘센 새가 나타나서 임대료를 요구하는 만큼 안 올려준다고 내쫓는 경우를 보았는가. 자연 속의 새도 자신이 머물고 싶을 때까지 머물고 떠난다. 인간은 어떤가.
독일, 스위스, 스웨덴, 프랑스, 스페인 같은 나라의 세입자는 자신이 원할 때까지 한곳에 산다. 한 번 계약하면 원할 때까지 살 수 있다. 이들 나라에선 세입자는 집을 구한 다음 아름답게 꾸민다. 원할 때까지 살 수 있으니까. 임대료는 물가나 소득 증가율에 맞추어 내면 된다. 룰이 있어 마음대로 인상할 수 없다. 만약 룰을 어기면 제소가 되어 조사받아야 하고 인상분만큼 토해 내야 한다.
독일을 예로 들어 보자. 맨 처음엔 자유계약을 하는데, 계약이 끝날 때 아주 특별한 경우를 빼고는 임대인이 계약연장을 거부할 수 없다. 세입자가 아무 말 안 해도 계약은 자동 연장된다. 2년으로 계약한 세입자는 계약기간이 끝나고 그냥 그대로 살면 된다. 자동 연장되니까. 자동 연장될 때는 무기한으로 연장된다. 세입자가 나가고 싶을 땐 3개월 전에 말하면 된다. 임대인이 계약 연장을 거절할 수 있는 특별한 경우란 임대료를 안 낼 때, 소란을 피워서 주변 사람을 괴롭힐 때, 주택이 낡아서 재건축이 필요할 때, 가족과 친척이 들어올 때다. 가족이 들어올 때도 꼭 그 집으로 들어와야만 하는 구체적인 이유와 근거를 대야 한다. 〈경향신문〉의 기자가 독일을 취재하러 갔을 때 이야기다. 기자가 한국에는 "2년만 살고 이사 가야 되는 경우가 있다"고 하니까 한 독일인은 "그건 반(反)사회적인 범죄"라고 말했다.
우리는 2년제 비정규직제가 문제가 많다고 느낀다. 그래서 제도를 바꾸는 운동을 한다. 그런데 2년 만에 임대인이 거절할 수 있는 규정을 두고 있는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2년 임시직이나 2년 임시거주제나 성격은 같다. 주거는 한 사람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고 가족 모두와 이웃사촌 모두에게 영향을 주고 학생들의 경우 학교 친구까지 바꿀 정도로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데 말이다. 임대차보호법의 2년 규정 때문에 한국의 2400만 세입자와 1700만 예비 세입자는 큰 고통을 당하고 있다. 주거권이 보장되는 독일의 세입자는 평균 13년 사는데, 한국 세입자는 3년 남짓 살 뿐이다.
이 대목에서 인권에 대해서 생각 좀 해 보자. 인권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권리'다. 세계 인권사의 흐름은 '자유권' 보장에서 '사회권‘ 보장으로 확대되어 왔다. 자유권이 '국가의 간섭이나 구속으로부터 보호'에 초점을 맞춘 소극적 권리라고 한다면, 사회권은 국가에게 보장을 요구하는 적극적인 권리다. 반독재민주화투쟁의 역사를 경험한 국민들은 자유권에는 익숙해 있지만 사회권은 낯설어한다. 사회권은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받을 권리'다. 주거권, 노동권, 복지권, 건강권, 환경권, 모성보호권, 아동권, 교육권이 여기에 속한다. 사회권을 인권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이 사회 모든 구성원에게 형성되어야 어느 한 사람도 소외된 사람이 없는 사회, 모두가 인간다운 생활을 누리는 사회, 더불어 사는 공동체가 만들어진다. 초중고에서 사회권은 거의 다루어지지 않는다. 사회권에 대한 인식이 약한 결정적인 이유다. 주거권은 사회권의 핵심이다. 주거권이 흔들리면 사회의 모든 권리가 불안해진다. 주거권 역시 공교육에서 다루어지지 않는다. 대학에서도 사회에서도 주거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다. 그 결과 주거권 인식이 형성되지 못하는 것이다.
누군가 나서서 외치지 않으면 문제는 고쳐지지 않는다. 문제의 당사자만이 아니라 그 문제를 사회가 해결해야 할 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함께 나설 때 비로소 문제가 해결된다. 집을 소유함으로써 집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다른 사람이 주거 문제로 고달파하는 것은 참을 수 없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당신이 아프면 나도 아프다', '당신이 행복할 때 나도 행복하다' 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아프리카 반투족 말에 '우분트'라는 말이 있다. '네가 있기에 내가 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경쟁논리에 찌들고 강자가 지배하는 사회에 살다 보니 '우분트'와 같은 공동체 의식을 갖지 못한 사회가 되어 버린 듯하다. 그렇다고 체념하고 말 수는 없는 일.
우리 사회가 주거권 의식이 약한 이유를 좀 더 생각해 보자. 우선, 집권세력과 정치권, 정부조직, 언론, 기업이 모두 주거권을 인정하지 않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모두 부동산 경기 활성화 논리에 빠져 있다. 집을 삶의 터전으로 보지 않고 사고팔고 돈 되는 부동산으로 본다. 상당수의 국민들도 똑같이 생각한다. 또 '부동산 불패신화'를 뒷받침하고 주거권을 약화시키는 법률과 제도가 만들어져 있다. 또 하나는 끊임없이 부동산 중심의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많은 대학에 '부동산학과'가 있다. 반면에 '주거학과'는 거의 없다. 있다고 하더라도 '소비자주거학'과 같은 이름의 학과가 있을 뿐이다. 부동산학과에서 집을 부동산으로 보도록 교육을 시키고 부동산학과를 나온 학생들이 교수의 역할을 이어받아 부동산 중심의 철학과 가치관을 끊임없이 재생산해 낸다.
주거 당사자들이 뭉치지 못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함께 모여 교육도 하고 토론도 하고 '으샤으샤'도 해야 바뀐다. 인구 8000만 명의 독일의 세입자협회 회원은 100만 명이나 되는데, 한국 세입자는 뭉치지 못하고 있다. 노동자들이 단결해야 살듯이 세입자와 주거 당사자들도 뭉쳐야 산다. 지역별로 압력을 행사할 수 있는 주거 관련 지역조직이 있다면 도시지역의 국회의원들은 엄청난 압력을 느낄 것이다. 지역 주민의 힘은 이번 탄핵 정국에서도 확인되었다. 주거 당사자로부터 압력이 없는데도 이미 만들어져 있는 법률과 제도를 손대고 임대인들에게 욕먹게 될 '주거권 보장 법률'을 만들며, 많은 예산이 드는 공공임대주택을 확대할 국회의원은 없을 것이다.
지자체에 단 한 사람이라도 주거단체의 회원으로 참여해서 지역 국회의원, 국회의원을 꿈꾸는 사람, 지자체장, 지자체 주거 관련 공무원에게 질의서와 의견서를 보내고 면담 요청도 하고 논평이나 성명도 써서 보내고 구체적인 입법 제안요청서도 보내고 전화도 하는 활동을 해야 한다. 그런데 현재까지 지역 국회의원들은 주거 당사자의 저항과 간섭을 받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움직여 왔다. 앞으로 주거권을 위해 나서는 사람이 많아지기를 꿈꾸어 본다.
실천 없이 변화 없다. 두 사람만 모이면 지역 주거모임을 만들자. 사람을 만날 때마다 주거권과 주거복지를 주제로 수다를 떨자. 주거교육을 하자. 주거권이 보장될 때 우리 모두가 행복해진다. '주거행복시대'가 열릴 때까지 함께 달려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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