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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쇄신'으로 포장한 '권력싸움'…'파멸의 악순환' 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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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쇄신'으로 포장한 '권력싸움'…'파멸의 악순환' 서막

[분석] 번지수 어긋난 與 쇄신론…청와대 안 바뀌면 도루묵

4.29 재보선 참패를 계기로 점화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폭발한 한나라당의 쇄신바람이 계파 갈등이라는 구조적 고질병과 청와대의 무반응이라는 두 장벽에 가로막혀 좌초할 조짐이다. 한나라당은 4일 의원단 연찬회를 통해 쇄신 방안을 확정지을 계획이지만, 쇄신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평가가 많다.

'청와대 독선 → 민심 이반 → 계파갈등·권력다툼 → 민심 악화'로 이어지는 파멸의 악순환이 가시화됐다는 것이다.

권력다툼 슬로건으로 전락한 '쇄신'

여권의 계파 갈등은 친이-친박 대립을 기본 구도로 친이계 내부의 이상득계와 이재오계가 갈등하는 3각 대립 구조다. 이 가운데 어느 한쪽도 확실한 장악력을 갖추지 못해 국면에 따라 역관계가 수시로 달라진다. 이재오 전 최고위원이 지난해 미국행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과 3일 이상득 의원이 끝내 2선 후퇴를 선언하기에 이른 까닭은 그래서 상통한다.

이처럼 청와대가 국정운영을 독주할 수 있는 것은 한나라당의 불안정한 권력구조를 역이용 할 수 있는 공간이 넓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아직은 '대통령 파워'가 살아있는 임기 초반이기도 하거니와 당의 현실은 청와대에 대한 제어력을 발휘하기 힘든 구조에 처해있다는 것이다. '여당 내 야당'이라는 박근혜 전 대표도 계파의 이해관계가 걸리지 않은 문제에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여권이 스스로 제어하지 못한 청와대의 독선은 민심의 급속한 이반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촛불 정국과 올해 용산 사태 등이 명징한 경고 시그널을 보낸 대표적인 사건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체감 효과는 집권 2년차에 실시된 4.29 재보선에서 5대0이라는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들고서야 나타나기 시작했다.

여권에서 쇄신 논의가 본격화된 것도 4.29 재보선 직후다. 소장파 모임인 '민본 21'이 깃발을 들고, 쇄신특위가 출범할 때만 해도 당 안팎의 기대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계파안배형 인적구성으로 시동을 걸면서 쇄신특위는 근본적 쇄신의 주체보다는 계파간 갈등의 장으로 변질되어 왔다. 쇄신이 '목표'가 아닌 '권력 다툼의 슬로건'으로 수단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명박계에 지각변동이 발생했다. 원내대표 경선에서 '김무성 추대론'을 둘러싼 박근혜계의 내분, 이상득 의원의 영향력 퇴조 현상이 드러났고, 이 빈 공간을 이재오계가 순식간에 장악했다. 안상수 원내대표, 장광근 사무총장, 진수희 여의도연구소장 등을 포진시켜 정책결정권, 돈, 전략을 틀어쥐었다. 급기야 이상득 의원의 2선 후퇴 선언으로 사실상 내부권력은 이재오계로 이미 이동했다는 분석이 일치한다.

▲ 한나라당 쇄신위는 '지도부 용퇴'에 대해선 명확한 입장을 정하지 못했다 뉴시스
MB악법 '돌격대'가 이제와 '쇄신'?

쇄신의 깃발도 이재오계가 선점해가고 있다. 수도권 지역구 출신이 대부분인 이재오계로선 위기감이 한층 크게 다가오는 측면이 있다. 서울의 한 초선 의원은 "계파 뭐고 할 것도 없다. 이대로 가면 다 죽는다"고 토로했다. 이재오계 및 정두언 의원 등 친이 소장파 진영 7인이 낸 성명에는 이같은 위기감이 담겨있다. 이들은 국무총리 교체를 포함한 조각 수준의 개각, 청와대의 전면 인적 쇄신, 국정기조 전환 등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들의 선상반란에 대한 의구심이 적지 않다. 무엇하나 이 대통령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라는 점에서 파격적이기는 하지만, 어차피 '불발'의 책임은 쇄신특위에 쏠릴 게 뻔한 만큼, 뒤늦게 '쇄신' 목소리를 높이는 데에는 '권력다툼'이라는 본질을 가리려는 의도가 깔려있다는 것이다.

7인 중 일부 의원의 면면은 이런 의구심에 힘을 싣는다. 이들 중 일부는 지난 '입법전쟁' 국면에서 "야당에 끌려다닌다"고 당 지도부를 강하게 비판하며 이른바 'MB악법 돌격대'노릇을 했던 인사들이다. 이들이 이제 와서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총구를 돌리고 나선 것은 모순이라는 지적이다.

또한 이재오계 모임인 '함께 내일로'가 3일 "'4.29 재보선 참패와 민심이반에 대한 지도부의 책임을 재확인하고, 변화를 위한 현 지도부의 책임 있는 자세와 용단'을 촉구"한 데 대해서도 곱지 않은 시각이 있다. 계파갈등을 격화시킬 수 있는 '박희태 퇴진-조기 전대' 요구를 직접적으로 제기한 정치적 배경이 의심을 사기 때문이다. 이는 10월 재보선 이전 조기 전당대회 요구가 이재오 전 의원의 복귀를 위한 판 만들기 아니냐는 의심으로 이어진다.

여권이 수세에 몰린 지금 같은 상황에선 이 전 의원도 재보선을 통한 복귀를 장담키 어렵고, 만약 옛 지역구(서울 은평을)에서 두번 내리 패한다면 회복불능의 상처를 입게 된다. 따라서 이 전 의원이 보다 안전한 수순인 조기 전당대회를 통한 당권 장악 쪽으로 방향을 전환했다는 것.

이에 대해 김용태 의원은 "'이재오 옹립'이야기가 있는데 전혀 아니다. 위기가 왔고 이대로 가면 친이 친박 다 죽는다"면서 "전당대회 등을 통해 당내 탕평 인사가 이뤄져야 한다. 우리가 전당대회 이후에 어떤 당직 등을 바라는 게 아니다"고 부인했다.

용두사미로 끝날 듯

이같은 부인에도 불구하고 친박계는 "못 믿겠다"는 반응이다. 쇄신위에 참여하고 있는 한 친박계 의원은 "사무총장, 여의도연구소장 등 당직도 자기들이 다 차지해 놓고, 자기들이 사태를 이지경으로 만들어 놓고 이제 와서 책임을 나눠지자는 것은 초등학생이 들어도 웃을 일이다"고 냉소적 반응을 보였다.

박근혜 전 대표의 '입'으로 통하는 이정현 의원은 "지금 국민들의 관심사는 한나라당 7월 전당대회가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대통령의 국정운영"이라면서 "지금 지엽적이고 임시방편적 문제를 제기해 논의의 초점을 흐리면 국정 쇄신의 기회를 잃게 되고 국정쇄신을 해야 할 대통령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현 상황의 모든 책임이 정말 박희태 대표에게 있느냐"고 조기 전당대회론을 반박하기도 했다.

결국 '이재오 옹립'을 위한 게 아니라는 항변에도 불구하고 △당청 관계를 재정립 할만한 힘 있는 인물 △민심이반의 진앙인 수도권을 대표할만한 인물 △청와대의 동의를 얻을 수 있을 만한 인물 등의 조건을 대입시키면 조기 전당대회가 열릴 경우 차기 당권이 누구에게 돌아갈지 자명하다는 게 반대론의 골자다.

이 대목에선 청와대와 친박계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다. 쇄신의 도미노 현상을 우려하고 있는 청와대는 "박희태 대표 체제를 바꿔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냐. 대안이 없다"는 반응이다. 조문 정국과 당의 요구에 떠밀려 인적 쇄신이나 국정 쇄신을 단행할 경우 향후 국정운영 동력 확보가 어려워진다고 판단하는 청와대로서는 당분간은 당이 박희태 체제를 중심으로 수습해 나가길 기대하는 눈치다.

한편 이런 논란이 거듭되면서 정작 쇄신의 주체로 띄운 쇄신특위의 영향력은 사실상 소멸단계로 접어들었다. 4.29 재보선 직후에는 박근혜 전 대표가 쇄신특위에 힘을 싣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왔으나 현재는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어졌다.

친박계의 핵심인 이성헌 의원은 이날 "지금까지 '쇄신위원회'라는 이름으로, 또 그 기구의 대표인 쇄신위원장의 이름으로 공표된 얘기들을 보노라면, 도대체 쇄신위원회란 기구가 산으로 가고 있는 것인지, 바다로 가고 있는 것인지, 참으로 어이가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기껏해야 원내대표 경선 시기를 조절하자느니, 전당대회를 어찌 어찌 하자느니, 누구 누구를 몰아내야 한다느니 하는, 이런 천박한 논의가 '쇄신 논의'라면 '쇄신'이란 말이 너무 부끄러울 뿐"이라며 "차라리 쇄신이란 말은 걷어치우고, 이 틈에 본격적으로 권력싸움이나 하겠다고 나서는 것이 그나마 솔직하다는 소리라도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쏘아붙이기도 했다.

결국 거창하게 시작한 한나라당의 쇄신 논의는 계파간 이해관계에 휘말리고 권력다툼의 본색을 드러내는 수순을 밟으면서 이명박 정부의 위기를 증폭시키는 촉매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맥 빠진 쇄신 요구가 청와대의 국정 기조 변화를 추동하기 힘들어진 이상, 청와대는 여의도와 더욱 거리를 두고 독선적 국정운영을 해나가는 악순환의 연속이 불가피해졌다는 얘기다.

윤여준 "청와대가 바뀌겠나"

정통한 전략가이자 보수진영의 합리적 인사로 인정받는 윤여준 전 의원은 <프레시안>과 통화에서 당정청 쇄신에 대한 부정적 전망을 밝혔다.

윤 전 의원은 "청와대가 바뀌겠냐"고 했다. 그는 "민본21이나 쇄신특위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민심을 반영한다면 그게 받아들여져야 하는데 청와대가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 전 의원은 "박희태 대표가 물러나느냐 마느냐가 무슨 의미가 있냐"면서 "결국 인적쇄신은 이른바 국정기조 전환의 한 부분에 불과한 것인데, 그 국정기조가 바뀔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윤 전 의원은 "노무현 정부도 재보궐 선거에서 수십 번을 져도 바뀌지 않았다"며 이같이 말했다. 민심과 집권당의 요구를 쉽게 수용하지 않으려는 '권력의 속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윤 전 의원은 "아무래도 지역구에 기반한 여당이 청와대보다는 (민심을 듣는데) 더 낫다"면서도 "그래도 예전 청와대 행정관, 비서관들은 냉정한 판단을 했는데 지금 청와대는 잘 모르겠다. 보고서나 받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고 쏘아붙이기도 했다.

청와대는 경제 살리기가 성과를 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있으나 이에 대해서도 윤 전 의원은 "경제결정론, 그게 제일 위험한 것"이라면서 "경제지표는 노무현 정부가 현 정부보다 훨씬 나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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