끓는 민심, 청와대는 '역주행'
청와대가 3일 임채진 검찰총장의 사의 표명을 만류하며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의 정당성을 옹호한 대목은 악화된 여론환경과 정면으로 맞서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전직 대통령의 서거가 비극임에는 틀림없지만, 우리가 사과할 일은 아니지 않느냐"는 게 청와대의 주된 논리다.
대국민 사과보다 수위가 낮은 이 대통령의 '담화'가 논의됐지만, 현재로선 이조차 불투명하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사태 첫날부터 거듭 유족들에 대한 위로와 함께 '국민 통합'의 메시지를 밝혀 왔는데, 별도의 대국민 담화가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 사태 첫날인 지난 달 23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외교 일정'을 기다리면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 ⓒ연합뉴스 |
이날 발표된 서울대 교수 124명의 시국선언에 대해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서울대 교수가 전부 몇 분인 줄 아느냐. 1700명 쯤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좌고우면 없는 '마이웨이'가 여전한 방침이라는 얘기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의 성과는 언젠가 인정받을 것으로 본다"면서 "뚜벅뚜벅 앞으로 가겠다"고 했다.
이렇게 한나라당까지 강타하고 있는 위기의식은 청와대 내부로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 보인다. 일부 지표에서 경제가 회복세에 돌아선 것으로 나타났고, 북한 핵실험으로 안보 이슈가 부각되면서 '경제와 북한'을 고리로 서거 정국의 후폭풍을 차단하겠다는 계산이 엿보인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국민의 가장 큰 관심은 역시 경제, 일자리 살리기"라면서 "최근 한반도 안보 상황도 있는 만큼 이럴 때일수록 국민을 바라보고 더 열심히 일하는 것이 공직자의 자세"라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이런 때일수록 정부가 중심을 잡고 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고 청와대 핵심 관계자가 전했다.
"사태의 심각성 모르는 듯…한심해"
이같은 기류에는 지난해 촛불정국 와중에 이 대통령이 두 차례나 고개를 숙이기는 했지만, 결국 성공적으로 이를 진압했다는 여권의 자체 판단이 투사된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 밖에서도 이명박 정부에게 쇄신은 기대 난망이라는 비관적 관측이 공통적이다.
보수 성향의 중앙대 이상돈 교수는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정권이 쇄도하고 있는 쇄신 요구를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면서 "한심하다"라고 일침을 놨다. 이 교수는 '국정기조의 변화'를 핵심으로 거론하며 이같이 말했다.
이 교수는 "정권의 반성은 4대강 사업, 미디어법 등 쟁점 정책에 대한 밀어붙이기를 중단하라는 것으로 귀결돼야 할 텐데, 과연 청와대가 이를 수용하겠느냐"라고 회의적인 전망을 내놨다.
연세대 김호기 교수는 "이미 민심은 임계점을 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청와대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번 사태를 지난해 촛불집회와 올해 용산참사 등으로 확인된 정권의 '독단성'과 같은 맥락에 놓고 본다면 무엇보다 '권위주의적 법치'라는 정권의 기조를 바꿔야만 한다"고 조언하면서도 "청와대가 이런 요구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고 내다봤다.
김 교수는 이어 "정권의 정당성이 이렇게까지 훼손된 상황에서 과연 정상적인 국정운영이 가능하겠느냐"면서 "현재의 실정이 더 큰 실정으로 귀결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 대통령과 청와대는 국정운영의 기조를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여당의 쇄신요구마저 거부한 마당에 청와대가 주도하는 국정운영 드라이브가 탄력을 받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며 "결국 과거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처럼 여권 내의 새로운 긴장관계가 형성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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