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사무총장 반기문의 공과(功過)' 시리즈로 이어집니다. (☞시리즈 목록 보기)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지난 10년 업적을 평가하는 데 있어 '아랍의 봄' 사태는 양면적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억하는 '아랍의 봄'은 사실 '아랍의 봄의 전반부'라고 해야 할 것이다. 가난한 청년 과일 행상 무함마드 부아지지의 육신을 태운 불꽃이 거대한 들불로 타올라 튀니지의 벤 알리 정권을 무너뜨렸고, 이어 이집트의 무바라크, 리비아의 카다피 정권까지 잇달아 쓰러진 '아랍 민중의 승리' 말이다.
그러나 이 승리의 기억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후반부'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민주화 시위는 미국의 동맹국 바레인에서는 철저히 진압됐다는 것, 알제리의 부테플리카 정권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멘과 시리아에서는 이후에도 5년가량 내전이 계속됐다는 것을 말이다. 이 두 나라에서 정확히 몇 명이 죽었는지는 사실 아무도 알지 못한다. 지금도 죽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29일, 시리아에서는 러시아와 터키의 중재로 휴전 협정이 발효됐다. 하지만 시리아에 평화가 찾아올지에 대해서는 조심스런 기대와 비관적 회의론이 엇갈린다. 12일(현지 시각) 현재도 시리아 정부군은 다마스쿠스 일대에서 군사 활동을 벌이고 있다. 유엔의 시리아 특사인 스테판 데 미스투라 전 이탈리아 외교차관은 휴전 협상이 "'대체로' 유지되고 있다"고 했다. 예멘 내전 역시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반 전 총장은 2011년 아랍의 봄 사태 초기에는 적극적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민중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한 무바라크와 카다피를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특히 유엔 사무총장으로서는 드물게, 유엔 회원국의 정부 수반을 향해 '물러나라'라고 분명히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2011년 '아랍의 봄'이 여름을 맞았을 때, 민주화 시위와 그에 대한 정권의 탄압이 계속되고 있던 바레인을 향해서는 이집트나 리비아에 대해서처럼 "즉각적 권력 이양"을 요구하지 않았다. 대신 정부가 체포한 시위대에 대해 너무 높은 수위의 처벌을 하지 말 것을 촉구하는 정도에 그쳤다. 반 전 총장이 직접 언급한 것도 아니고, 대변인을 통해 "바레인은 국제적 인권 보호 의무를 엄격히 준수해야 한다", "민주화 시위 지도자들은 공정한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등의 입장을 6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전한 게 거의 전부였다. 무바라크와 카다피에 대해 매일매일 비판적 언급을 공개적으로 내놓은 것과는 온도차가 확연했다.
시리아에서는 민주화 시위로 촉발된 내전이 격화되면서 현재까지 31만 명이 사망했다. 이 수치에는 전 세계인의 가슴을 찢어 놓은 3세 소년 아일란 쿠르디의 죽음은 포함되지 않는다. 난민은 660만 명이 발생했다. 내전으로 인해 시리아 내에서 죽은 게 아니라, 피난 중에 질병이나 굶주림, 혹은 쿠르디처럼 선박 사고 등으로 인해 사망한 경우는 집계조차 정확하지 않다. 국제이주기구(IOM) 등에 따르면, 지중해를 건너다 죽은 시리아 난민의 수는 2016년 한 해 동안 4913명으로 추산됐다. 2015년에는 3771명, 2014년에는 3279명이었다. 2015년의 사망 추산자 3771명 가운데 한 명이 쿠르디였다.
구분해야 할 것은, 시리아 난민에 대한 구호와, 시리아 사태 해법은 서로 연결돼 있지만 독립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 전 총장 지휘 하의 유엔은, 난민 구호는 부족함이 많은 대로 그럭저럭 해나갔다. 하지만 난민을 발생시킨 근원이 된 시리아 사태를 어떤 해법으로 풀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낙제점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유엔이 시리아에 대해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높아진 2013년 9월, 미국 <뉴욕타임스>에는 '반기문, 당신 어디 있소?(Where are you, Ban Ki-moon?)'라는 다소 무례한 제목의 칼럼이 실렸다. 칼럼 내용은 "전쟁과 평화의 문제에서 보면 반기문은 단지 허수아비 총장일 뿐이었다"는 2016년 12월 <포린폴리시>의 혹평과 궤를 같이한다.
다만 이 칼럼 역시 "반기문은 많은 문제에 대해 실패했지만, 만약 다른 누군가(가 사무총장)였다면 더 잘할 수 있었을까, 특히 시리아에 대해서는 이렇게 물을 가치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문제에서 종종 반 전 총장은 그의 전임자인 코피 아난과 비교되는데, 비판자들이라 해도 '코피 아난이라면 시리아 문제에 더 잘 대처했을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코피 아난은 반 전 총장이 임명한 유엔의 시리아 문제 특별대사였기 때문이다. 물론 "특사를 임명하기까지 1년이나 걸렸다"는 점은 비판 대상이 됐다. 이 문제에 대한 <포린 폴리시>의 평은 이랬다.
반기문은 케냐에서부터 시리아 등 평화 노력이 필요할 때면 대부분 전임 사무총장 코피 아난 등 일련의 특사들에게 협상을 하도급 식으로 맡겨 버렸다. 한 선임 고문은 이에 대해 "그가 위임을 한 것이 천만 다행이다. 당신이 보다시피, 그는 스스로 생각하는 데 매우 약하다"고 말했다.
반 전 총장은 <포린폴리시> 인터뷰에서, 내전 초기에는 자신도 바사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을 설득해 권력 이양 혹은 반군과의 권력 분점을 촉구하는 협상을 추진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반 전 총장으로부터 '촉구'를 받은 알아사드는 반 전 총장이 꼽은 '최악의 거짓말쟁이'로 꼽혔다. 반 전 총장은 알아사드에 대해, 자국민 시위대를 진압하는데 전투기를 동원했던 리비아 독재자 카다피만도 못하다는 평가를 내렸다. 미국 언론인 톰 플레이트와의 인터뷰에서였다.
"세계 5대 거짓말쟁이를 꼽는다면 시리아의 바사르 알아사드를 빠뜨릴 수 없겠죠?"
"제 생각에는 지금까지는 그가…"
"1등입니까?"
"네 1등입니다."
나는 최악의 거짓말쟁이들은 다 똑같으냐고 물었다. 그가 고개를 젓는다.
"카다피는 다릅니다. 카다피는 자기가 뭔가를 하겠다고 약속하면 그 일을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중략) 그는 가끔씩 약속을 지켰습니다." - 플레이트, <반기문과의 대화>
반 전 총장은 알아사드와의 대화에 대해 "의미가 없었다"며 "내전 초기 알아사드와 다섯 차례 대화를 나눴지만 매번 거짓말만 했다"고 일축했다. 게다가 시리아 문제를 진정으로 꼬이게 한 원인은 시리아 지도자의 거짓말 따위가 아니었다.
반 전 총장은 지난해 12월 16일 고별 기자회견에서 "나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세 명의 외교관을 (시리아 문제 특사로) 지명했다. 나의 전임자 코피 아난과 라흐다르 브라히미 전 알제리 외교장관, 스테판 드 미스투라 전 이탈리아 외교차관이 그들"이라며 "시리아 문제는 협상가의 문제나 협력자들의 (능력)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연대의 결여, 동정의 결여의 문제이고, 사람들이 매우 협소한 개인적 또는 국가적 이해관계에 얽매여 있다는 것이 문제다. 그것이 수십만 명을 죽게 했다. 어떻게 이 문제가 이렇게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을 수 있었단 말이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어 이렇게 말했다.
"무엇보다, 시리아 국민들은 단결해야 한다. 불행히도 그들은 지금 완전히 분열돼 있다. 지역 강대국들도 정부와 반군 측을 지지하는 쪽으로 갈라져 있다. 유엔 안보리도 역시 분열돼 있다."
한 외신은 반기문에 대해 "임기 종료가 가까워지니 비로소 말을 거침없이 한다(outspoken)"고 평하기도 했는데, 시리아 문제가 바로 그랬다. 시리아 내전이 장기화된 것은, 반기문이 시사한 대로 "유엔 안보리"의 일부가 "(알아사드) 정부를 지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안보리 상임이사국 가운데 러시아와 중국은 알아사드 정권을 지원해 왔고, 반면 미국은 반군을 응원했다. "지역 강대국"들 가운데도 터키는 반군을, 이란은 알아사드를 도왔다.
코피 아난은 지난 2015년 8월 <파이낸셜타임스> 기고와 10월 제네바 강연 등에서 "미국과 러시아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미국과 러시아가 서로 효과적으로 공조하는 방법을 찾아야 (시리아)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촉구했다.
그래서 사실 시리아 사태에 대해 반 전 총장을 비난한다면, 그로서는 억울하다고 항변할 소지도 적지 않다. 반 전 총장이 이끌었던 유엔은 스리랑카 내전 마지막의 치명적 몇 개월 동안의 민간인 학살을 방관했고, 미군의 페르시아만 함대 주둔지인 바레인에 대해서는 입장을 내는 것 자체를 꺼려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시리아와 예멘에 대해서는 나름 '열심히' 하기는 했다.
그래서 이 두 나라에 대해서는 반 전 총장과 유엔의 '의도'나 '성실성'이 아니라, '문제 해결 능력'이 주로 도마에 오른다. 반 전 총장과 유엔의 '최선'은 충분히 '선'하지 않았다. 반 전 총장 스스로부터가 지난 2013년부터 시리아에 대해 "총체적(또는 집합적. collective) 실패"라고 자평했다.
"(앞으로 취해야 할 조치들을 열거한 후) 이런 조치들은 모두 민간인 보호 책임(R2P)의 일부입니다. 그러나 이런 조치들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지난 2년 반 동안 시리아에서 저질러진 잔혹한 범죄 행위를 방지하는 데 총체적으로 실패한 것은 유엔과 그 회원국들에게 여전히 무거운 부담으로 남을 것입니다." -2013.9.11. R2P에 대한 유엔총회 비공식 상호대화 연설
반 전 총장은 사무총장으로서 한 마지막 기자회견에서도, 주요 의제 가운데 첫머리에 시리아 문제를 올려놨다.
"질문에 최대한 시간을 허용하기 위해 간략히 말하겠습니다. 세 가지 주제만 제시하죠. 첫째, 시리아에서의 대학살은 세계의 양심에 큰 구멍을 남기고 있습니다. 알레포는 지금 지옥과 동의어입니다. 우리는 시리아 국민들을 구하는 데 총체적으로 실패했습니다. 평화란, 동정, 정의, 그리고 우리가 목도한 가공할 범죄에 대한 책임이 있을 때만 꽃필 수 있습니다." -2016.12.16. 기자회견에서
미국과 러시아, 중국이 대립하고, 반기문과 유엔은 이들의 눈치를 보며 무력감을 느끼는 사이, 시리아에서는 전쟁이 계속됐다. 그 결과로 나타난 것이 홍콩 전체 인구와 맞먹는 규모의 사망자와 난민 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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