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황석영식 실용주의'에 대한 실용적 단평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황석영식 실용주의'에 대한 실용적 단평

[김종배의 it]<245>"나는 된다"는 도저한 자신감의 근원은 뭘까?

벽은 이미 깨졌다. 철의 장막과 죽의 장막이 걷힌 지 이미 오래고, '적과의 동침'이 경영전략이 된 지 이미 오래다. 실용의 관점에서, 이익을 극대화하는 차원에서 오월동주를 마다하지 않는 게 세계적 조류다.

그런 점에서 '전향' '변절' 따위의 경직된 언어는 배척하는 게 마땅하다. 그런 언어엔 변화를 거부하는 절대주의, 교류를 배척하는 폐쇄주의가 진하게 스며있다.

마찬가지다. 황석영 씨를 보는 시각 또한 유연해야 한다. 그가 지난 대선 때 이명박 후보의 맞은편에 섰다고 해서, 그가 이른바 '진보작가'를 자처한다고 해서, 그랬던 그가 이명박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순방에 동행하고 이명박 대통령에 협조하기로 했다고 해서 '전향'이니 '변절'이니 하는 험한 언사를 늘어놓아서는 안 된다. 그 스스로 말한 것처럼 그의 '협조'가 중도실용노선을 취하고 싶어 하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라면 오히려 격려하는 게 타당하다. 그의 '협조'가 정말 중도실용노선을 꽃피워 민생문제와 민족문제에 훈풍을 불어넣을 수만 있다면 박수치는 게 온당하다. 이게 '실용주의자' 황석영 씨를 바라보는 실용적 관점이다.

하나만 덧붙이면 된다. 이렇게 실용적 관점을 굳건히 세우고 그에 부합하는 현실적 평가틀을 세우면 된다. 이 걸 잣대 삼아 황석영 씨의 실용주의가 현실에 부합하는지를 재면 된다. 그가 현실을 현실적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만 따지면 된다. 그가 씨 뿌리려는 곳이 돌밭인지 옥토인지를 가리면 되고, 그가 수확할 수 있는 게 알곡일지 쭉정이일지를 재면 된다.

▲ 사마르칸드에서 이 대통령과 나란히 서있는 소설가 황석영ⓒ청와대

자칭 '실용주의자'의 환상적 현실인식


어떨까? 그가 쟁기질을 하려는 그곳은 어떤 상태일까? 그는 그곳의 현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 전혀 실용주의자 답지 않다. 현실을 현실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보고 싶은 것만 본다. 그는 실용주의자가 아니다. 좋게 표현하면 낭만주의자이고 나쁘게 표현하면 환상주의자다.

황석영 씨는 확신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중도실용주의자'라고 믿는다. 근거는 딱 하나다. 이명박 대통령의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보수세력이 오히려 화끈하게 남북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했다"며 "최고경영자 출신으로서 실용주의를 표방한다고 생각한다"는 그의 말에서 확인할 수 있다. 황석영 씨가 부여잡고 있는 건 이명박 대통령이 그에게 '개인적으로' 한 말, 이 것뿐이다. 아니, 부여잡고 싶은 것이다.

어이없다. 실용주의자라면 응당 주시했어야 할 현실을 거론하지 않은 그의 태도가 어이없다.

황석영 씨는 외면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그에게 했던 '개인적인' 말보다 더 공신력 있고 구속력 있는 게 대선 공약이란 사실, 그 공약에 '비핵개방 3000'이란 비현실적 계획이 담겨있다는 사실을 외면한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후 대북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현실, 이런 역행현상을 낳은 이유 가운데 하나가 이명박 정부의 무전략·무원칙이라는 현실을 외면한다.

주장할지 모르겠다. 자신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협조'하려는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라고 강조할지 모르겠다. 이명박 대통령의 '비핵개방 3000'을 수정하고, 이명박 정부의 원칙과 전략을 세우기 위해서 '협조'하는 것이라고 주장할지 모르겠다.

그럼 이건 어떨까? 정치인의 약속과 희망은 신기루 같은 것이라는 상식, 정치인의 약속과 희망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게 지지층의 압박이고, 정치인의 약속과 희망은 정치적 현실에 따라 카멜레온 변신을 거듭한다는 상식은 어떨까? 지금은 전제군주시대가 아니라는 사실, 전제군주의 마음을 얻은 책사 한 명이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시대는 지났다는 사실은 또 어떨까?

황석영 씨는 망상에 빠져있다. 자신의 위치가 당정청 시스템 위에 있고, 자신의 남북교류 염원이 보수층의 대북 적대감을 누를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는 근거없는 환상과 끝모를 낭만에 빠져있다.

이렇게 보니 허탈하다. 황석영 씨가 누군가? 남북화해가 열리기 전에 방북했다가 옥고를 치른 사람이다. 철의 장막과 죽의 장막이 걷힌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휴전선은 거칠게 버티고 서 있다는 사실을 족적으로 확인시켜준 사람이다. 휴전선 철망 밖으로 삐져나온 가시보다 사람들 가슴속에 박혀있는 가시가 더 사납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드러내준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낭만적 환상에 빠져 이명박 대통령의 '중도실용노선'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그래서 둘러본다. 혹시 이런 것인가 하고 되짚어 본다.

늘 그랬다. 북미관계와 남북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다가 극적 반전을 연출하곤 했다. 이번에도 그럴지 모른다. 북한의 로켓 발사와 폐연료봉 재처리가 몰고 온 파국적 상황이 또 한 번 극적 반전을 끌어낼지 모른다. 어느 정도 뜸을 들인 뒤 북미간에 통 큰 거래가 이뤄지고, 이명박 정부는 이 대세에 순응할지 모른다.

혹시 황석영 씨는 이 같은 점을 내다본 것일까? 대세를 읽고 그 흐름에 몸을 맡기려는 것일까?

그래도 평가는 달라지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그럴수록 황석영 씨의 이른바 '실용주의'는 빛을 잃는다. 정말 그렇다면 황석영 씨의 '협조'가 창출할 '생산성'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그의 '협조'는 '개척'을 위한 몸부림이 아니라 '편승'을 위한 웅크리기가 된다. 그의 거창한 프로젝트인 '알타이 문화연합'을 하루라도 빨리 앞당기기 위해, 그리고 정부 지원을 조금이라도 더 끌어내기 위해 '거래'를 하는 것이 된다.

덧붙일 게 있다. 그의 사회발전전략과 역사인식이다.

▶황석영 씨가 그랬다. 유럽 좌파들도 많이 달라졌다며 장황하게 말했다.

"옛날에는 위에서 파이를 키워서 부스러기를 나눠줘서 하부구조를 이렇게 하겠다는 게 보수였다면, 진보는 분배와 평등을 강조했다. 지금은 전 세계가 비정규직, 청년실업 문제에 직면해 있어 고전적 이론 틀로는 안 된다. 아래에서부터 파이를 키우자는 식으로 바뀌고 있다."

'변화'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한 말이다. 비정규직 문제나 외국인 노동자 문제까지 못 나가고 그저 노동조합 정도에서 멈춰 있는 한국의 진보정당 민노당을 개탄하면서 한 말이다.

이것도 바꾸겠다고 한다. 자신이 이명박 대통령에 '협조'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이것이고, 자신이 이명박 정부에 '협조'해 이끌고 싶은 변화 항목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말할 필요가 없다. 불감청고소원이다. 이명박 정부가 '아래에서부터 파이를 키우는' 정책을 편다면, 비정규직과 외국인 노동자를 적극 보호하는 정책을 편다면, 황석영 씨가 그렇게 정책 변화를 끌어낸다면 쌍수를 들어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먼저 살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왜 이명박 정부가 비정규직법을 개악하려고 하는지, 황석영 '개인'이 아니라 국가인권위와 같은 '기관'이 외국인 노동자 차별과 착취에 대해 수없이 시정권고를 하는데도 안 고쳐지는지, 그 '현실'부터 살피면서 객관적 조건을 살필 필요가 있다. 그게 '실용주의자'의 면모다.

▶황석영 씨가 또 말했다. "용산 철거민 참사는 현 정부의 실책"이라면서도 "큰 틀에서" 봐야 한다고 했다.

"(광주민주화운동) 같은 사건이 우리에게만 있는 줄 알았으나 70년대 영국 대처정부는 시위군중에 발포해서 30-40명의 광부가 죽었고 프랑스도 마찬가지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사회가 가는 것이다."

말문이 막힌다. 읽고 또 읽어도 발언의 행간을 호의적으로 살필 여지가 없다. 그래서 어쩌자는 말이냐는 말 밖에 달리 토해낼 게 없다.

두 눈 질끈 감을 수 있다. 광주민주화운동은 물론이고 용산참사까지 다 지나간 일이라고 치부하고 앞으로 잘 하면 된다고 되뇌일 수 있다. "큰 틀에서" 보면서, 다시 말해 역사발전에 대한 믿음에 의지하면서 앞으로 잘 될 것이라고 낙관할 수 있다.

국민 사이에 낙관주의를 유포하려면 먼저 내놔야 한다. 역사 발전은 나선형으로 이뤄진다는 사실, 궁극적으로 발전하지만 과정에서 퇴행적 현상이 빈번하게 나타난다는 사실, 그 퇴행의 시기에 동시대인들은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에 대한 해결책을 먼저 내놔야 한다. 5공식으로 시위를 폭력진압하고, 5공식으로 국민 입에 재갈을 물리는 이명박 정부의 조치도 '실책'에 불과한 것인지, 그럼 '개전'의 여지는 얼마나 있는 것인지, 자신이 '협조'해 '개전'의 속도와 폭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인지 먼저 제시해야 한다.

이게 없다면 황석영 씨의 말은 안대 씌우기에 불과하다. 진보와 보수가 함께 가야 한다면서도 진보와 보수의 공존을 담보하는 기초조건인 '민주'를 외면한다면 황석영 씨의 희망은 심각한 현실 호도에 불과하다.


* 이 글은 뉴스블로그 '미디어토씨(www.mediatossi.com)'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