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출산 장려 공익광고 속 문구다. 일면 그럴 듯해 보인다. 거칠게 해석하자면 신사임당처럼 양육비 생각하지 않고 아이를 낳아 키우면 이이와 같은 '행운 복권'에 당첨될 수 있으니 일단 아이를 낳으라는 것이다. 공익광고로 두말할 필요 없이 낙제다. 신사임당이 얼마나 부유한 환경에서 살았는지, 실제로 양육비(?) 부담이 없었는지 등의 '팩트 체크'는 논외로 하더라도 문제가 많다. 여성은 사회의 자궁이 아니며, 양육은 여성 개인의 책임이 아니다. 종합 예술인이자 최고의 지성인을 누군가의 어머니로 환원시키는 방식은 진부하기까지 하다.
'주최' 측에 항의가 빗발쳤다.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공익광고협의회는 자신은 '주최 측일 뿐'이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행정자치부의 '대한민국 출산 지도' 제작에서도 비슷한 인식이 엿보인다. 행자부에서 지자체 출산율 제고 방안으로 20~44세 여성의 지역별 합계 출산율과 출생아 수, 가임기 여성 인구수 등을 명시한 것이다. 공개 직후 항의가 잇따랐다. "더 좋은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출산지도 홈페이지는 서비스를 중단한 상태다.
최근 들어 광고, 캠페인의 여성혐오 문제 지적이 가시화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과거보다 여성혐오 광고가 많아졌다기보다 공중의제로 전환시키는 동력이 커졌다고 보는 게 상식적일 것이다.
이런 움직임은 공익을 목적으로 하는 정부를 넘어 기업에 대해서도 발 빠르게 적용되고 있다. 한 화장품 쇼핑몰은 여성의 유두를 "남성이 좋아하는 핑크색"으로 만든다며 화이트닝 제품을 광고했다. 제품이 나오자마자, 비난 여론이 거세졌고 광고는 삭제됐다. 또 다른 화장품 브랜드는 여성비하 발언을 한 적 있는 남성 개그맨을 광고모델로 기용해 질타를 받고, 해당 광고 게재를 중단했다.
기업 광고는 성 역할을 공고화하는 문화를 교묘하고 은밀하게 종용해왔다. 물론 승자는 기업이다. 여자 아이는 분홍색, 남자아이는 파란색을 선호하는 것처럼 속여 같은 제품을 다르게 판매하는 마케팅 방법은 유명한 사례이다. 여전히 갈 길은 멀지만 조금씩 바뀌고 있다. 소비자의 움직임이 반(反)페미니즘 상품 불매에서 페미니즘 상품에 대한 적극적 구매로 확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불황이라는 출판 시장에서 페미니즘 도서들은 호황을 누리고 있으며 올해는 가장 많은 수의 페미니즘 서적이 출판되었다. 기업 입장에서도 반페미니즘 가치를 유희하며 사회에 유통시키는 것보다 대놓고 페미니즘 가치를 내보이는 것이 더 충성도 높은 소비자를 확보할 수 있다는 공감대가 생기고 있다.
페미니즘 인식의 확산과 정보의 투명성 향상은 선순환 구조로 작동한다. 사람들이 소비자로서, 시민으로서 상품의 최종적인 품질뿐만 아니라 상품이 생산·유통·홍보되는 전 과정을 꼼꼼하게 살펴볼 수 있는 제반 여건이 마련되고 있다. 정부 기업 등 각 주체의 사회적 책임을 보다 넓고 대중적인 수준에서 확인하고 검증할 수 있게 되었다.
페미니즘이 사회적 책임과 결합하는 과정에서 주의해야 할 부분이 있다. 결국 선택권은 기업·정부의 관료제적 의사결정자에게 주어진다. 하기에 따라 이들은 독립적이고 주체적이면서도 보수적 시선에 크게 위배되지 않는 여성상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 수 있다. 반면 이들이 더 교묘한 조작에 눈을 돌릴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 현실적으로 후자의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의사결정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을 넘어 어떤 부분에 어떻게 책임을 물을지에 관한 세밀한 관심이 필요한 이유이다.
의사결정 기구 내부의 각성이 필요하다. 여성을 '위한' 이벤트가 아닌,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변화가 의사결정 과정에서 반영되어야 한다. 의사결정자의 성비에 균형을 꾀하는 양적 제한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누가 어떤 가치를 대변하여 결정하는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
결국 사회가 먼저 움직여야 한다. 페미니즘 가치 반영을 위한 사회적인 압력이 상시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낙태죄' 폐지 운동을 위해 자발적 광고를 제작하는 것, 올해 최악의 광고를 꼽아 조직적으로 불매운동을 전개하는 것 등은 구체적으로 사회적 압력을 형성한 좋은 예다. 이를 위해 여성만의 의제가 아닌 공론장의 의제로 끌어내기 위한 다양한 토론과 합의가 전제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깊숙이 파고든 또 하나의 구태를 버리고 우리가 직접 새로운 것을 창안하는 새해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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