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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혁명'이 탯줄 된 강력한 정당 정치 만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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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혁명'이 탯줄 된 강력한 정당 정치 만들어야

[김민웅의 인문정신] 촛불 시민혁명, 정치의 몸을 만들다

정치적 단두대로 올라가는 층계

폭풍우를 가둘 수 있다고 믿었던 자들은 감옥의 열쇠를 쥐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확신은 너무도 강해 심판의 날이 자신들의 목덜미 가까이 오고 있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다. 이들이 몰랐던 것은 그 밖에도 허다하다.지금까지 열심히 남을 짓밟고 올라가던 계단이 정치적 단두대로 가는 길목이었다는 것을 몰랐고, 옥문을 자기 마음대로 열고 잠그던 과거가 그들의 지울 수 없는 죄목이 될 줄도 몰랐다.

몽테 크리스토 백작으로 변신한 에드몽 당테스의 유명한 대사, "너를 찌르는 것은 이 검이 아니라, 너의 과거다"가 그대로 이뤄지고 있는 역사 앞에서 영원한 거인 타이탄으로 살아갈 줄 알았던 자들은 난쟁이들의 반란에 점차 속수무책이 되고 있다. 마녀는 일곱 난쟁이가 있는 곳을 찾아내 일망타진할 줄 알았지, 이들의 손에 들린 촛불이 자신을 태울 불길로 번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몸과 머리가 분리된 시각은 이들의 숨이 멎고, 민중들이 비로소 숨을 쉴 수 있게 된 사건의 시작이었다. 저들이 호흡하는 날은 민중들이 질식해온 세월이었다. 혁명은 이처럼 악귀의 숨통을 단숨에 끊고 이들로 말미암아 죽어가고 있던 이들의 목숨을 되살리는 경건한 의술이자, 제의이며, 역사적 선고이다. 그래서 윤리적이며 종교적이자 근거가 분명한 과학인데다 법의 정신이기도 하다.

역사의 반동을 꿈꾸는가

역사의 반동을 갈망하는 자들이 반격을 기도하겠지만, 근대의 복장을 착용한 봉건왕조의 수명은 종료되고 있다. 파시스트의 후예들이 장악해온 권력은 '비상계엄'을 요구하고 "군대여, 일어나라"고 외치고 있으나, 그야말로 이미 사멸한 껍데기 앞에서 얼이 빠진 자들이 중얼거리는 효력이 떨어진 주술일 뿐이다. 이 음산하기 짝이 없는 주술정치는 막을 내렸다. 애초의 의도와는 다르게 마침내 차르의 목을 비틀고야 만 괴승 라스푸틴의 저주는 이 땅에서도 반복되었고, 둘 다 묘비명도 없는 먼지로 사라진 것처럼 여기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아직 마음을 놓기는 이르다. 귀족들이 자신들의 특권을 지키기 위해 왕을 공격했다가 자신들의 특권을 지켜내고 있었던 왕정체제를 위기에 빠뜨렸던 것처럼, 지배세력 내부의 정치적 내전은 이들의 예상과는 달리 촛불 시민혁명의 길을 내었다.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왕의 몰락은 귀족들의 몰락과 같은 단어임을 알게 되자, '이만하면 된 거 아니냐'고 윽박지르기도 하고 설득하기도 하고 새로운 거짓말을 지어내고 있기도 하다.

이들의 목적은 단 하나, '시민혁명의 한계를 정하라'다. 혁명이되, 혁명이 아니게 하는 방법을 고안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 말은 촛불 시민혁명이라고 추켜세우면서 의회의 문을 시민에게 열지는 않고 봉쇄해버린 제도권 정치에도 이들 귀족 패거리들과 한통속인 자들이 적지 않다. 근대국가의 간판 아래 유지된 봉건왕조의 하수 세력인 검찰관들과 비밀경찰인 국정원의 혁파를 입에 올리지 않으면서 개헌을 주장하고 있는 자들도 자기들의 권세를 이 기회에 크게 길러 나갈 요량에만 골몰하고 있다.

촛불 시민혁명은 자칫, 왕은 고꾸라지고 귀족들의 지배는 도리어 강화되는 현실과 맞닥뜨릴 수 있다. 시민들이 법의 주체가 되고 혁명의 중심에 서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자들은 이제 촛불을 내려놓고 시민들은 귀가하고 정치는 자기들에게 맡기라고 훈계하려들 것이다. 촛불집회의 장기화는 경제를 위기에 빠뜨리고 제도적 안정의 길을 막을 뿐만 아니라, 선동가의 대중적 유혹에 정치가 넘어갈 수 있게 한다고 경고하려 들 것이다. '혁명'이라는 말은 '위험'과 동일시되고 '일상으로의 복귀'가 답이라고 여기저기서 구식군대의 행진곡처럼 군가를 틀듯 떠들어 댈 것이다.

게다가 난데없이 나타나 자기가 구세주라고 내세우는 자들도 출몰해, 시민혁명의 기세에 눌려 목숨을 구걸하던 자들을 이리저리 모아 정치는 난잡하게 만들고 시민들의 힘을 갈라치기 하려 들 것이다. 사람들은 또다시 절망하고 지쳐갈 것이며 대권의 깃발을 든 자들을 중심으로 흩어진 채 지금까지의 연대를 지난 시절의 희미한 옛 사랑으로 여기고, 매일 짜증 나는 난투극에 몰입할지도 모른다. 몰락을 두려워하고 있는 귀족들이 노리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 2016년 12월 31일 '박근혜 퇴진 10차 촛불집회'까지 총 1000만 명의 시민이 광장에 모여 촛불을 들었다. ⓒ프레시안(최형락)

삼위일체의 정치신학


어떻게 할 것인가? 적어도 세 가지를 삼위일체로 만드는 정치신학의 발견과 확립이 필요하다.

촛불 시민 광장에는 지도부가 없다. 그러나 그 판을 깔아 모두가 주인공이 되게 한 이들이 있다. 이들을 우리의 뇌리에서 삭제해서는 결코 아니 된다. 이들은 바로 시민혁명의 역량이 태어나게 한 우리 모두의 힘이다. 폭풍우를 가두려 했던 자들과 맞서 행진로를 설계하고, 경찰과 법의 잣대가 봉쇄망이 되지 않게 하며 한 사람의 목소리에 천만의 무게가 실리도록 한 이들의 노고는 거듭거듭 각인되고 찬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이들의 조력이 있기에 우리는 광장의 한복판에 역사의 새로운 무대를 세우는 것과 함께 감옥의 열쇠를 우리 손에 되찾아오는 함성을 지를 수 있었다. 모든 깃발이 존중되고, 모든 구호가 연대의 힘을 만들어냈다.

결국, 혁명의 단계가 진화하면 밑에서부터 올라오는 힘과 시민혁명의 운동역량을 광장에 담아낸 힘이 하나가 되는 지점을 확보해야 한다. '전국 도처에 시민혁명의 거점마련과 함께 새로운 지도중심을 만드는 시민혁명 역량의 조직화'는 시민 권력의 주권적 지배를 위해 반드시 이루어내야 할 과제이다. 적폐청산과 개혁입법 그리고 정권교체에 이르는, 아직 누구도 작성해보지 못했던 이른바 해도(海圖)없는 항로를 뚫어내기 위해 요청되는 우리 모두의 역사적 의무가 여기에 있다.

책을 읽는 시민혁명과 새로운 정당정치

두 번째로 우리는 시민혁명의 사상적 회로를 꾸려야 나가야 할 것이다. 이제 어찌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탄식으로 변모해서는 아니 될 것은 물론이다. 그래서 지난 역사의 창고에서 우리가 쓸 수 있는 고서들을 골라내고 미래의 나침반으로 사용할 수 있는 치열한 성찰과 논쟁이 시민혁명의 정치교육으로 자리 잡도록 해야 할 것이다. 책을 읽지 않는 혁명은 혁명의 깊이를 만들어 낼 수 없고 허튼수작과의 댓 거리로 시간을 허비하는 어리석음을 정치적 격변의 임무처럼 여기도록 우리를 오도할 수 있다.

함께 알아가야 할 바가 얼마나 많은가? 세계 도처의 혁명의 경험, 법의 정신, 제헌의회의 경험, 경제와 외교의 역사 속에서 찾아내야 할 지혜, 문학과 예술의 힘에 대한 깨우침, 사상과 의식으로서 일상화된 혁명을 위해 함께 읽고 토론하고 나누어야 할 집단적 의지는 무한한 진화를 기다리고 있다. 그것은 한낮에도 꾸는 꿈이며, 칠흑 같은 밤에도 선명하게 보이는 산길이며 우리 손에 쥐어진 삭지 않는 도낏자루다.

그래서 이 모든 힘은 최종적으로, 강력하게 민주적이며 진보적인 정당을 혁명의 주된 동력으로 만들어가는 토대가 되도록 해야 한다. 직접민주주의의 요람인 시민 권력과 그대로 탯줄이 이어진 정당이 아니고서는 촛불 시민혁명의 역사를 감당할 수 없다. 권력은 언제나 배신의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기만의 습관을 버리지 못한다. 이 오랜 질병을 퇴치하기 위해 저질러야 할 사건은 귀족정치의 허위를 끊임없이 폭로하고 누가 진정한 민중의 벗인지를 밝혀내는 일이다.

허위에 대한 적나라한 질문과 공세 없이 진실의 정치는 불가능하다. 왕당파들은 평민의 복장으로 갈아입고 위장하고 있거나 파르티잔들이 지나는 숲길에 매복 중이며, 공화파 속에는 왕당파들의 스파이가 들끓고 있기도 하다. 상대의 정체를 묻는 일은 따라서 이 시기, 매우 중요하다. 그렇다고 출신이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의 역할과 진정성이 우선이다. 전향한 왕당파는 자신의 귀족신분을 내세우면서 허세를 부리지 않는다면 말만 공화파인 자들보다 나을 수 있다.

폭군의 목, 그리고 우리의 자유

1894년 동학으로부터 100년을 넘는 역사가 촛불 시민혁명에 담겨 있다. 민중의 삶과 민족의 미래를 지켜내려는 역사의 의지가 세계사의 파도와 합류하고자 한다. 격류가 틀림없다. 폭풍이 불 것이다. 그러나 두렵지 않다. 우리 자신이 곧 그 맹렬한 바람이기에.

난폭한 정치는 무너지고 야만의 세월은 조종(弔鐘)을 울릴 것이다. 2017년은 앞으로 100년의 시간을 좌우하는 결정적 순간이 된다. 먼저 폭군의 목이 잘리는 것을 보고 싶다. 포악한 왕을 베지 않고 완성되는 혁명은 없다. 그 머리가 땅에 떨어지는 소리는 지금까지 그가 매단 목숨이 끊어졌던 것보다 더 큰 소리로 세상에 지진을 일으킬 것이다. 그것은 그 머리의 힘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자른 힘 때문이다.

자유는 그로부터 일상의 현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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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

미국 진보사학의 메카인 유니온신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동화독법>, <잡설>, <보이지 않는 식민지> 등 다수의 책을 쓰고 번역 했다. 프레시안 창간 때부터 국제·사회 이슈에 대한 연재를 꾸준히 진행해 온 프레시안 대표 필자 중 하나다.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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