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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수라>, 386세대 실패를 말하고 싶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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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수라>, 386세대 실패를 말하고 싶었나

[김경욱의 데자뷔] "결국에는 이렇게 될 줄 알았다"…주인공 내레이션 의미는?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수라>(2016년)를 보았다. 이 영화의 등장에 주목했던 이유는 조폭영화 장르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조폭영화는 <친구>(2001년)의 대대적인 성공 이후, 2000년대 한국 대중영화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장르이다. 몇 년 동안 흥행 장르로서 박스 오피스를 점령했던 조폭영화는 흥행의 효력이 거의 사라진 것 같았을 때 장르의 변형을 통해서 거듭 부활했다. 예를 들면, <범죄와의 전쟁>(2011년), <신세계>(2012년) 그리고 최근의 경우로는 <내부자들>(2015년)이 있다.

조폭영화는 장르의 특성상 범죄자와 그의 어두운 활동 무대를 다룰 수밖에 없는데, 그럼에도 관객들이 주인공의 범법 행위를 저항감 없이 볼 수 있게 하려면 적절한 장치를 만들어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다른 어떤 장르보다 더 한국사회의 민낯과 증후를 잘 투영해내게 된다.

▲ 영화 <내부자들> 포스터(왼쪽)와 <아수라> 포스터(오른쪽). ⓒ프레시안

<내부자들>을 예로 들면, 주인공 안상구는 온갖 나쁜 일을 자행해온 정치깡패지만, 관객은 그를 혐오하지 않는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온갖 범법과 탈법을 저지르는 조국일보 논설주간, 재벌회장, 유력 정치인이 훨씬 더 위험하고 나쁜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설정이 한국사회의 현실에 부합하고 있기에 관객들은 그들과 맞서는 안상구 편에 서게 된다. 이 대결에서 관객들이 그들을 더욱 혐오하게 하는 장치의 하나는 그들의 매매춘 장면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는 것이다. 그들의 역겨운 추태에 비해 안상구는 배우를 꿈꾸는 이지혜와 모호한 감정을 나누면서 순정파의 면모를 보인다. 이러한 설정은 조폭영화에서 주인공을 나쁜 놈이 아닌 것처럼 포장할 때 자주 볼 수 있다. 한국사회는 여전히 유교의 영향 아래 (겉으로는) 성적으로 매우 보수적이기 때문이다.

<내부자들>은 한국 사회 상층부의 부패와 타락을 전시하면서 깡패와 검사가 한편이 되는 기이한 설정을 한다. 그들의 결탁을 통해 논설주간, 재벌회장, 유력 정치인의 악행이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 결국 악당들은 폭삭 망하고 주인공들은 무탈한,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다.

이 영화의 판타지와는 달리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대에 전성기를 구가했던 조폭영화에서는 주인공이 죽거나(<비열한 거리>(2006년)), 조폭이 자신보다 더 나쁜 사회조직과 대결하면서 끝난다(<두사부일체>(2001년)에서, 조폭은 부패 사학재단과 싸운다). 부패와 비리의 주범들이 끝장나거나 법적인 처벌을 받는 장면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주인공이 죽어갈 때 CEO 같은 중후한 모습의 조폭 두목은 건재를 과시하고, 부패한 사회 조직의 운명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악의 축의 정점에 있는 최종 보스는 제거되지 않고, 사회질서가 회복되지도 않는, 냉소적이고 비관적인 결말이다. 좀 더 면밀하게 살펴보아야 하겠지만, 이것은 민주사회의 열망에 기반한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개혁을 시도했으나 굳건한 수구세력 앞에서 무력화된 현실에 대한 냉소적인 은유였던 것일까?

지난 9월 22일 자에서 <터널>의 결말을 설명하며, <내부자들>을 포함한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흥행작에서 나타나고 있는 해피엔딩과 판타지 전성시대의 의미를 설명했다. 그러나 감독 김성수는 이러한 경향에서 벗어나 <아수라>를 비극으로 끌고 나간다.

이 영화의 안남시장 박성배는 시의 개발에 관련한 각종 이권에 혈안이 되어 불법을 밥 먹듯이 저지르는 악한이다. 강력계 형사 한도경은 박성배의 비리를 뒤처리해주며 돈을 챙긴다. 중앙지검의 검사 김차인은 박성배를 잡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쫓기는 박성배와 쫓는 김차인이 각축전을 벌이면서, 한도경을 서로 이용하려고 한다. 악덕 형사와 악덕 시장과 악덕 검사가 얽히고 설키면서 지옥도 '아수라'가 펼쳐지게 된다.

▲ 영화 <아수라>(김성수 감독)의 한 장면. ⓒ(주)사나이픽처스

세 명의 주요 인물 가운데 조폭은 없지만, 이 영화는 조폭영화의 자장 아래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박성배, 한도경, 김차인은 조폭영화의 주요 구성원과 유사하다. 그들은 각각 건설업을 중심으로 세력을 확장하면서 CEO처럼 행세하는 조폭 두목, 그 밑에서 더러운 일을 담당하는 해결사, 조폭 두목을 어떤 식으로든 귀찮게 하는 인물에 대입할 수 있다. 이들이 법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혈투를 벌이는 설정은 경쟁하는 두 조폭 집단이 대결하는 양상과 비슷하다. 한도경의 경찰 후배였던 선모가 박성배 밑으로 들어간 다음에 배신하는 과정은 조폭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설정이다.

박성배와 김차인은 조폭영화에 근거한 인물답게 물불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 주인공 한도경의 경우, 아내의 중병을 치료하는데 필요한 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타락한 형사로 전락한 인물이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그가 황 반장을 우발적으로 죽게 만들기 때문에 곤경에서 벗어나야 하는 동기가 마련된다. 그는 전자 때문에 박성배의 심복이 되고, 후자 때문에 김차인의 협박에 시달린다. 그러나 한도경은 절박한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악전고투하기보다는 이상할 정도로 모호한 태도로 일관한다. "결국에는 이렇게 될 줄 알았다. 알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는 마지막 내레이션은 그가 애초에 자포자기 상태였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필름느와르 장르에서는 흔히 탐정인 주인공의 염세적인 어조의 내레이션이 깔리는데, 이 영화의 시작과 끝에는 한도경의 내레이션이 삽입되어 있다. 따라서 그는 조폭영화가 아니라 필름느와르의 주인공에 더 가까워 보인다. 비유하자면, 잔은 맥주잔인데 맥주가 아니라 포도주를 넣은 격이 되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이 영화의 많은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되기보다는 제각각 따로 겉돌면서 불협화음을 자아낸다.

같은 맥락에서 가장 이상한 대목은 영화의 절정 부분이다. 박성배와 김차인 사이에서 시달리는 한도경은 관객들이 그가 어떤 기발한 아이디어를 갖고 위기에서 벗어날지 잔뜩 기대하게 만든다. 그러나 어이없게도 그는 그냥 그 두 악한을 대면하게 만든다. 감독이 기대를 충족할만한 아이디어를 찾지 못했거나, 그들의 대결을 통해 '아수라'의 지옥도로 치닫는 결말 부분을 찍는데 관심을 집중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한도경의 자폭에 가까운 결정을 통해 주요 인물들은 다 지옥으로 간다. 김성수는 왜 그들이 다 죽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일까? 한도경의 자포자기한 태도와 김성수의 인터뷰를 참고로 해석해보면, 그는 인물들의 전멸을 통해 자신이 속한 386세대의 실패를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한도경을 필름느와르의 주인공처럼 연출하면서, 어떤 성찰의 순간을 통해 386세대에 대한 실망과 환멸을 담아내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데 <아수라>와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영화 중 최승호의 다큐멘터리 <자백>(2016년)이 있다. 두 영화의 등장인물들 가운데, 누가 가장 나쁜 놈일까? 즐비하게 누워있는 시체의 피로 범벅된 장면과 공권력에 의한 고문피해자들이 증언하는 장면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잔인하고 무시무시한가?

사족. <아수라>에서 가장 불편한 대목은 박성배가 범죄에 연루된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외국인 노동자들을 동원하는 장면이다. 공포영화에서 튀어나온 살인마들 같은 그들은 치외법권의 존재처럼 검사 앞에서도 기세등등하다. 이러한 묘사는 우리가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 갖고 있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활용한 것이지만, 그들에 대한 편견을 강화시킬 위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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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

연세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동국대와 중앙대에서 영화이론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영화사에서 기획과 시나리오 컨설팅을 했고, 영화제에서 프로그래머로 활동했다. 영화평론가로 글을 쓰면서 대학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는 <블록버스터의 환상, 한국영화의 나르시시즘>(2002), <YU HYUN-MOK>(2008), <나쁜 세상의 영화사회학>(2012), <한국영화는 무엇을 보는가>(201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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