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식판으로 뒤통수를 찍어라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식판으로 뒤통수를 찍어라

[작은책] 국과 김치뿐인 밥상, 그래도 힘이 난다

구사대가 출근투쟁을 하고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하고, 노동자는 공장을 지키는 특이한 곳이 있다. 보통 출근투쟁은 부당하게 해고된 노동자들이 하는데,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충남 아산에 있는 갑을오토텍은 자동차용 에어컨과 열교환기를 생산해 현대, 기아자동차에 납품하는 자동차공조 전문기업이다. 1993년 '만도기계'가 아산 공장을 가동한 이후 자본이 바뀌면서 '모딘코리아'로 회사 이름이 바뀌었다. 그리고 2009년 모기업인 '갑을상사그룹'이 인수해 지금의 '갑을오토텍'이 되었다.

"아침 7시 반이면 사무직원과 관리자들 170명이 출근하겠다고 옵니다. 그러면 저희와 대치를 하죠."

금속노조 갑을오토텍지회(노조) 전선배 씨(45세)가 말했다. 사무직원들은 노조를 깨기 위해 회사가 올해 초 신규 채용한 위장 입사자들이다.

"노조를 깨서 회사 말 잘 듣는 어용노조를 새로 만드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임금, 복지 축소하고 생산 부문을 외주화하면 해마다 127억 원의 이윤이 생기니까요."

▲ '갑을오토텍' 전경. ⓒ작은책(정인열)

그렇다면 회사는 그 돈이 필요할 정도로 심각한 적자일까? 그렇지 않다. 매년 흑자를 기록한 튼튼한 중견기업이다.

단, 2014년과 2015년에는 계열사 부실로 인해 충당 비용이 발생했다. 그리고 주요 임원의 임금을 두 배로 올리고 70억 원의 주주 배당까지 했다. 인건비 부문에선 '정기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법원 판결에 따라 노동자들에게 미지급 임금을 지급했다. 그래서 노동자들의 연봉이 잠시 높아졌다. 그런데 언론에서는 앞뒤 다 자르고 연봉 8400만 원 귀족 노조라고 보도했다.

갑을오토텍에는 비정규직이 없다. 대부분 조합원이 전 씨와 같이 근속연수가 20년이 넘었고 기능직이고 숙련공들이다. 식당노동자 7명과 버스 운전기사 3명은 별정직 정규직원이다. 경비까지 정규직이었으나 회사가 노조를 깨기 위해 노사합의를 어기고 올 1월에 일방적으로 외주화했다.

▲ 22년단 '갑을오토텍'에서 차량 에어컨 만드는 일을 한 전선배 씨. ⓒ작은책(정인열)

노동자들의 임금과 복지는 동종업계에서 최고 수준이다. 회사가 인심이 좋아서 노동자들에게 좋은 환경을 마련해 줬을까? 아니다. 지금의 노동 조건을 얻어내기 위해 노조는 1993년부터 투쟁을 했다. 특히 1998년 2500여 명의 정리해고에 맞서 공장 점거투쟁을 하다 최루탄까지 쏘는 공권력에 의해 진압되기도 했다. 갑을상사그룹이 인수한 후에도 해마다 노조의 투쟁은 계속됐다. 그 결과 단순히 임금과 복지만이 아닌 그 이상을 쟁취했다. 2013년 임단협에서는 별정직(식당) 사원이 퇴사하면 결원 인원만큼 정규직원을 신규 채용하는 안을 체결했고, 2015년부터는 심야노동을 없앴다.

"전에는 24시간 공장을 가동했어요. 그런데 자정 이후에는 작업을 없애기로 하고 주간 연속 2교대제에 합의했죠."

노동시간 단축은 노동자에게는 건강권을, 회사에는 이윤을 안겨 주었다. 잔업, 특근이 사라져 인건비가 줄었지만 생산량은 그대로 유지했기 때문이다. 투쟁을 통해 노동환경을 스스로 쟁취하고 차별 없는 일터를 경험한 노동자들은 서로 단단하게 뭉쳤다.

박효상 전 대표는 이런 노조를 없애고 싶었다. 2014년 박 전 대표는 노조파괴 전문가인 창조컨설팅 출신 노무사에게 자문을 받아 'Q-P시나리오'를 계획하고 실행했다.

"전직 경찰, 특전사 출신 용역깡패들을 기능직으로 60명을 채용했어요. 저희야 그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몰랐죠. 분위기가 험악해도 우리랑 같이 일하는 동료라고 생각해서 밥 사 주고 술 사 주고, 현장에 적응하도록 도와줬는데 ."

회사는 용역 깡패에게 노조가 박 대표를 위협하니, 신변보호 차원에서 일하라고 지시했다. 뿐만이 아니라 핵심 조합원 10명을 지명해 특별 임무도 주었다.

"밥 먹을 때 식판으로 (핵심자를) 찍어라, 죽지 않을 만큼만 패라. 그 뒤 책임은 회사에서 지겠다고 했대요. 야구방망이, 3단봉 등 사측이 계획한 자료가 다 있습니다."

▲ 23년 동안 '갑을오토텍' 노동자들에게 밥을 해 준 신영애 씨. ⓒ작은책(정인열)

그리고 곧 용역 깡패들은 현장에서 험악하게 분위기를 잡으며 조합원들을 폭행했다. 정년 퇴임을 앞둔 노동자를 안전화로 발길질해 댔고 플라스틱 상자도 마구 집어던졌다. 현장에는 살기가 돌았다. 구내식당에서도 이들의 행패는 계속됐다.

"반찬이 모자라서 다른 반찬으로 대체해 줬는데도 그놈들이 반찬 모자란다고 '씨팔, 저팔' 하고 '야!' 소리를 지르는 거야, 건방지게 싸가지 없이. 우리 조합원들은 지금까지 그런 적이 없었어. 그래서 내가 가서 '아까 소리 지른 사람 누구야? 말해 봐. 어디 한 번 더 질러보지?' 하고 싸웠어. 우리 조합원들이 말렸지."

식당노동자 김순이 씨(55세)가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노조는 이들의 정체를 알고 2015년 4월 30일 연대 단체와 선전전을 하려다 용역 깡패들에게 대규모 폭행을 당했다. 식당노동자 신영애 씨(60세)가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머리 터지고 눈 함몰되고, 뇌사자까지 발생했을 때 너무 참담했죠. 우린 그전까지는 노조가 알아서 하겠지 하고 노조 일에 신경 안 썼어요. 그 일 이후로 우리도 노조에 같이 참여했죠. 직장 폐쇄된 후부터는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아침밥 400인분을 준비해요."

이후에도 폭력 사태는 계속되어 노조는 2015년 6월 23일 7일간 전면 파업과 정문 앞 노숙농성을 했다. 회사는 곧 용역깡패들을 퇴사 조치하는 데 합의했다. 노조의 완벽한 승리였다. 하지만 회사는 합의를 해 놓고도 이행하지 않거나 파기했다. 2015년 8월 9일 또다시 파업에 돌입, 이튿날 다시 용역깡패를 퇴사시키고 사원아파트에서 철수시키는 것을 합의했다. 하지만 두 달 뒤인 2015년 10월 회사는 노조와 합의해서 시행 중이던 주간 연속 2교대 근무를 파기했다. 그리고 교섭도 거부하고 12월부터는 사무직 불법대체 인력을 채용하고 불법대체 생산을 시작했다. 파업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부당노동행위다. 올 1월에는 경비를 노조와 협의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외주화했다. 2008년 노사 합의사항을 어긴 것이다. 그러면서 회사는 교섭을 통한 대화에 전혀 응하고 있지 않다. 모두 노조를 깨기 위해 일으킨 짓이다. 박효상 전 대표는 2014년에 저지른 부당노동행위로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7월 15일 법정 구속되었다.

노조는 올해 7월 8일부터 불법대체생산 중단 및 성실교섭을 촉구하며 전(全) 조합원 철야농성을 하고 있다. 거꾸로 사무직 신규 채용자들과 관리자들은 매일 공장 진입 시도를 하고 있다. 일종의 출근 투쟁인 셈이다. 이를 저지하다 보니 공장은 노동자들의 것이 되었다. 비정규직이 난무하는 요즘은 보기 드문 광경이다.

사무직 신규 채용자들은 대부분 20대 젊은이들이다. 아침에 공장 진입 시도를 하고 나면 (어쩐 일인지 정말 공장 안으로 들어오지는 않는다.) 확성기로 노조를 회유하는 발언을 오후 4시까지 한다. 안정적인 일자리에 목말라하는 점을 이용해서 회사가 시킨 것이다.

"쟤들도 필리버스터를 해요. 그런데 듣고 있으면 정말 화가 나요. 노조가 양보를 안 해서 회사가 어렵다는 둥,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 때문에 돌아가신 게 아니라 빨간 우의가 열사를 만들려고 죽인 거라는 둥 입에 담지 못할 말을 해요."

ⓒ작은책(정인열)

ⓒ작은책(정인열)

오후 12시 30분이 되자 사측 방송이 조용해졌다. 점심시간이다. 조합원들이 주방 천막으로 밥을 타러 모여들었다. 오늘 반찬은 콩나물국에 무생채, 양념장이다. 신영애 씨가 말했다.

"음식을 잘 못해 주죠. 개수대처럼 조리할 장비가 있어야 하는데. 그래서 김치하고 국만 줘요. 오늘은 누가 무를 줘서 무생채가 있는 거고. 모든 재료가 없어요. 쌀도 하루 120킬로그램(kg) 써."

하루 종일 몸으로 대치하고 정신적 피로도가 높은 일상이다. 조합원들이 국과 김치만으로도 버티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연대 오시는 분들 보면 저절로 힘이 나요. 쌀, 부식, 약품, 의료지원 해 주실 때 정말 감사하고요. 한마음 한뜻으로 서로 믿고 투쟁해서 또 감사하고요."

신영애 씨와 김순이 씨가 입을 모아 말했다. 전 씨는 가족의 응원이 큰 힘이 됐다.

"용역 앞에서도 겁먹지 않고 싸우는 절 보고 아내가 처음으로 그런 말을 했어요. '당신이 너무 자랑스럽다.' 파업이 길어져서 지금은 죽겠다고 하지만요. 하하하하."

전 씨는 계속 말을 이었다.

"노동자라고 해서 왜 7000만 원 받으면 흉이고, 또 1억 원이 넘게 받으면 안 돼요? 생산직이라고 우릴 무시하는 건가요? 노동자라고 왜 2000만 원, 3000만 원 받아야 하나요. 법 앞에서 노동자들도 평등해야 해요. 우리처럼 투쟁하는 노동자들이 있어야 정치인들도 그나마 올바르게 정치하는 거지요. 저기 사무직 젊은이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우리를 비방해요."

노사분쟁은 모두 회사로부터 시작됐다. 목적은 노조를 깨고 하청 비정규직을 사용해 더 많은 이윤을 내기 위해서다. 언론에 속지 말자. 이들이 더 힘내서 싸우고 가족 품에 돌아갈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하다. 특히 고기반찬이.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작은책

월간 <작은책>은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부터 시사, 정치, 경제 문제까지 우리말로 쉽게 풀어쓴 월간지입니다. 일하면서 깨달은 지혜를 함께 나누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찾아 나가는 잡지입니다. <작은책>을 읽으면 올바른 역사의식과 세상을 보는 지혜가 생깁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