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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바뀌었으니 법원도 변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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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정권 바뀌었으니 법원도 변해야 하나?

[법치의 표리(表裏)]<1> "법원, 너 마저…"

정의의 여신 디케와 해태는 동서양에서 법의 상징이다. 눈을 가리고 양손에 칼과 저울을 나눠들고 있는 디케의 모습은 익숙하다. 그리고 외뿔 달린 짐승 해태는 사람들이 싸우는 것을 보면 바르지 못한 자를 들이받고, 사람들이 서로 따지는 것을 들으면 옳지 못한 자를 물기 때문에 법의 또 다른 상징이다.

하지만 법이 디케나 해태 노릇에 충실했는지는 의문이다. '법이 뉘 편이더냐'는 한탄은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고 터져나왔다. 특히 한국 민중들에게는 '유전무죄', '법은 만 명 앞에서만 평등하다' 등의 '법언' 아닌 '법언'이 낯설지 않다.

법과 법치를 둘러싼 논란이 최근에 더 뜨겁다. 이명박 정부가 가장 강조하는 단어 중의 하나가 '법치'인 탓이다. 전 세계 어디에 '법치'를 강조하지 않는 정권이 있을까만, 이 정권의 '법치' 사랑은 남다르다. 마치 5공화국 전두환 정권이 '정의사회구현'을 간판으로 삼았듯이.

법과 법치에 대한 해석투쟁이 더 뜨거워지는 현 시점에서 <프레시안>은 그 겉과 속을 따져보기 위한 기획연재를 준비했다. 전문적 성취와 사회적 발언 양면에서 주목할 만한 활동을 펼쳐온 법률가 7인은 앞으로 매주 금요일 <프레시안>독자들을 찾게 된다.


다음은 27일 부터 연재되는 '법치의 표리' 필진 명단이다.

기초법과 한일관계 전문가인 김창록 경북대 법대 교수, 헌법학자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임지봉 서강대 법대교수, 중앙지검 검사 신분으로 '현직검사가 말하는 수사 제대로 받는 법'을 일간지에 기고하다가 옷을 벗고 만 금태섭 법무법인 지평지성 변호사, 헌법재판소 헌법연구원을 지낸 바 있는 김종철 연세대 법대 교수, 헌법과 기독윤리를 천착하고 있는 이국운 한동대 법대 교수, 민변사무차장으로 이명박 정부 하의 '시국변호사' 반열에 오르고 있는 송호창 법무법인 정평 변호사,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을 지냈던 한상희 건국대 법대 교수. <편집자>




▲ 2009년 2월 현재, 법원은 '무사'한가?

사법부는 인권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

'인권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 사법부의 별칭이다. 자칫 독단으로 흐르기 쉬운 행정부와 자칫 형식적 다수결로 내달리기 쉬운 입법부로부터 국민을 보호해줄 마지막 피난처가 필요하다는 인류의 경험이 만들어낸 지혜와 희망의 산물이다.

사법부의 독립은 그래서 정당화된다. 특별한 지위를 보장받는 개개의 법관이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라고 대한민국 헌법이 선언하고 있는 것은 바로 사법부가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이다.

법관은 일체의 권력으로부터 독립하여야 하며, 그 권력 속에는 당연히 법원 내부의 권력도 포함된다. 지난 23일 이후 법원에 대한 각종 의혹들이 제기되고 있는 것은 그래서 매우 심각한 일이다.

몰아주기 배당?

첫째는, 작년 촛불집회 참가자들에 관련된 다수의 사건들이 서울중앙지법의 특정재판부에 집중 배당된 데에 정치적 의도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6월 19일부터 7월 11일까지 접수된 11개의 사건 중 8개가 '보수 성향'으로 알려진 특정재판부에 배당되었고, 이에 대해 13명의 평판사들이 반발했고, 그들과 법원장이 면담한 후 자동배정 방식으로 전환되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법원측은 '관행'과 '배당예규'에 따른 것이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정치적 의도를 의심받을 수 있는 관행이라면 폐기해야 마땅한 것이다. 따라서 잘못된 관행에 기댄 해명은 애당초 해명이 되지 못한다. 게다가 전문적인 사건을 제외한 일반 형사사건은 컴퓨터 프로그램에 따라 무작위로 배당하는 것이 관행이었다고 한다. 법원 내부에서조차 '집회 사건을 몰아줬던 전례가 있었는지 의심스럽다'는 지적이 나오는 지경이다. 이 쯤 되면 '관행'을 들먹이기 전에 최소한 그러한 '관행'이 있었다는 것부터 입증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그 입증은 없다.

배당예규에는 자동배정을 원칙으로 하지만, "관련사건, 쟁점이 동일한 사건, 사안의 내용이 복잡하거나 심판이 다수의 이해관계인 또는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중대한 사건"의 경우 "적절하게 배정할 수 있다"라고 되어 있다. 문제의 사건들은 '촛불집회'에 관한 사건이라는 점에서는 관련성이 있지만, 쟁점도 제각각이고 선고된 형량도 다르다. 특별히 사안이 복잡하다거나 중대한 사건이라는 입증도 없다. 결국 법원의 해명은 '촛불집회 관련 사건들을 특정재판부에 집중 배정했다'라고 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왜 그랬느냐?'라고 물은 데 대해 '그랬다'라고 하는 것은 대답이 되지 못한다.

백번 양보하여 관행과 예규에 따른 것이었다고 해도, 그렇다면 왜 평판사들과 법원장이 면담한 후에는 자동배정 방식이라는 원칙으로 돌아갔는가라는 문제가 남는다. 동일한 사안에 대해 예외와 원칙 모두가 타당할 수는 없다. 원칙으로 돌아갔다는 것은 예외가 잘못이었다고 인정한 것이다. 따라서 그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구속영장 심사와 형량에 개입?

둘째는, 서울중앙지법 형사 수석부장판사가 촛불집회 관련 사건에서 구속영장 심사와 형량에 개입했다는 의혹이다. 촛불집회와 관련하여 구속영장 신청과 즉결심판 회부가 증가하던 작년 6-7월, 영장을 기각할 때 '증거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없다' 보다 '혐의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라는 사유를 제시하라고 요구했고, 즉심에 회부된 피고인들에게 벌금형 보다 무거운 구류형을 선고하라고 요구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몰아주기 배당' 보다 더 직접적인 개입이므로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이에 대해 법원행정처는 26일의 국회 보고를 통해 개입의 사실을 부인하면서, "다만, 촛불집회 발생 훨씬 전인 2008년 3월 경 즉결심판 운영 문제와 관련 구류형도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일반적인 언급을 한 적은 있"고, "촛불집회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영장 발부나 기각 사유에 대해 설득력있는 사유를 제시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언급은 한 바 있다"라고 해명했다.

이야기가 서로 다르니 보다 정확한 사실 확인이 필요하다. 그 사실 확인에는, 후자의 해명과 관련하여 "촛불집회 사건이 발생하기 전"이 구체적으로 언제인지, "원론적인 언급"이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지도 밝혀야 한다. 하지만 법원측의 해명 자체만으로도 이미 문제는 심각하다. 통상 법원장으로부터 근무평정권과 사건배당권을 위임받아 행사하는 수석부장판사가 구속영장의 심사나 형량에 대해 평판사들에게 일정한 방향을 시사하는 것은 '촛불집회 사건이 발생하기 전'이라 해도 부당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게다가 2008년 3월이면 대운하, 비정규직, 삼성특검, 화물연대, 대학 등록금 등과 관련하여 현 정부에 비판적인 집회와 시위가 빈번하던 시점이고, 여당이 '마스크 단속'을 공언하던 시점이기도 하다.

삼성 봐주기?

셋째는, 대법원의 소부 개편이 삼성 봐주기를 위한 것이 아닌가라는 의혹이다. 한겨레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발행 사건을 맡았던 대법원 2부가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기로 결정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한 달 후인 지난 2월 18일 대법원이 합의부를 개편하면서 사건을 1부에 재배당했다고 한다. 또 동일한 쟁점을 가지고 있는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사건은 1부에서 2부로 재배당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 두 사건을 "처음부터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에 관해서는 의견이 다른 대법관을 배제하기 위한 수순이 아니냐거나, 공개변론이 불가피한 전원합의체를 피하려는 것 아니냐거나, 심지어 전원합의체로 넘길 경우 에버랜드 사건의 변호를 맡았던 대법원장이 심리에서 배제되어야 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 아니냐는 등의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법원측의 해명은 명확하지 않다. 소부의 개편은 신임 대법관 임명에 따른 관행적 절차라거나, 원래의 2부의 결정에 관해 "해석의 차이"가 있었을 수 있다라는 것이 전부이다. 하지만, 법원행정처장이 지난 23일 국회 업무보고에서 밝힌 것처럼, "전원합의체로 사건을 넘길지는 따로 결정하는 게 아니라 소부에서 최종적으로 합의가 안 되면 자동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정황상 2부에서 합의가 안 되었다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원합의체로 사건을 넘기지 않고, 게다가 소부 개편이라는 형식적인 이유를 내세워 이미 2년 가까이 심리한 사건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는 것은, 오히려 의혹들에 설득력을 더해 줄 뿐이다. 적어도 2부 대법관의 재판권을 대법원 스스로 무력화시켰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사법부 스스로 독립을 지켜야

오이밭에서는 신을 고쳐 신지 말고 배나무 밑에서는 갓을 고쳐 쓰지 말라고 했거늘, 하물며 공정성과 독립성을 생명으로 삼아야 할 법원이 이런 온갖 의혹의 표적이 되어서야 되겠는가? 그 사실 자체만으로 이미 법원의 권위와 사법부의 독립이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권위와 독립은 지키기는 어렵지만 훼손하기는 쉽다. 지난 권위주의 시절, 검찰이 청구하는 시국사건 관련 영장을 예외 없이 발부해주고, 검찰의 구형에 맞추어 '정액제 판결'을 쏫아낸 탓에 뒤집어써야 했던 '사법부(死法部)'라는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했는가? 그 노력 끝에 작년 9월 26일 '대한민국 사법 60주년' 기념식에서 비로소, 대법원장이 "과거 우리 사법부가 헌법상 책무를 충실히 완수하지 못함으로써 국민에게 실망과 고통을 드린 데 대해 죄송하다"며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국민의 자유와 권리가 침해되는 일이 없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다짐할 수 있었던 것 아닌가?

그 기념식사의 잉크가 아직 채 마르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토록 심각한 의혹들이 제기되고 있다. 심지어, '몰아주기 배당'의 배당권자였던 서울중앙지법원장을 거쳐 지난 2월 18일 대법관에 임명된 신영철 대법관이, 법원측 해명자료에서도 평판사들과의 면담을 통해 문제를 인지하고 있었고 그 면담 후 배당 방식이 바뀌었다고 되어 있음에도, 국회의 인사청문회에서는 "컴퓨터 프로그램에 의해 기계적으로 배당이 됐겠거니 이렇게 생각한다"라고 답변하여 위증 논란에 휩싸여 있는 상황이다.

대통령이 바뀌고 난 후 행정부가 이상해졌다. 이 나라에도 직업공무원제도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헌법을 뒤적여야 할 형편이다. 특히 검찰은 대통령에게도 대들 수 있는 준사법기관이 아니라, 대통령의 뜻을 한 발 앞서 미루어 헤아리는 행정부의 한 부서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한나라당이 국회 다수당이 되고 난 후 국회도 이상해졌다. 민의를 수렴하는 전당이 아니라, '입법전쟁'과 '속도전'으로 날이 새고 날이 지는 전쟁터가 되어 버렸다. 그런 상황에서 민초들을 바람막이 하나 없는 황야에 세워두려는가? "법원, 너마저"라고 외치며 절망의 구렁텅이로 쓰러지게 하려는가?

대법원장이 직접 나서서 진상을 명확하게 밝히고, 사과할 것은 사과하고, 책임질 것은 책임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서둘러야 한다. 해명되지 않은 의혹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커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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