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들은 매년 정부 부처와 국회의원 앞으로 예산안 증액·삭감 제안 리포트를 보냅니다. 올해는 특히 나라 살림 400조 시대에 진입하는 만큼, 그 어느 때보다도 꼼꼼하게 살폈는데요.
지난 3일 새벽 국회 본회의 통과 전까지 '쪽지 예산'이 몰리면서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은 정부안보다 4000억 원 늘어난 22조1000억 원이 통과됐습니다.
다음은 환경연합이 살핀 내용입니다. 참고로, 예산안 통과 전에 쓴 글입니다. 편집자.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쯤 환경연합 활동가들의 책상에는 책이 산더미처럼 쌓였습니다. 10월부터 끌어안고 있는 저 책에는 2017년 정부가 집행할 예산이 빼곡합니다. '천억 원 맞나? 아! 우리 세금이 여기 이렇게나 많이 쓰이다니! 백만, 천만, 억, 십억, 백억, 천억!' 저 큰 숫자들은 수백 번을 봐도 도무지 눈에 익지가 않습니다. 일상에서 쓰는 단위와 너무나 다른 이 큰돈을 보고, 또 봅니다.
환경연합은 참여연대, 나라살림연구소 등의 단체와 해마다 나라 예산을 꼼꼼히 분석하고 이를 국회 예산심의과정에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예산을 통해서 사업을 집행하기 때문에 예산서를 보면 다음 한 해 동안 정부가 벌일 일들에 대해서 파악해볼 수 있습니다. 또한 각종 연구예산을 체크하다보면, 정부가 어떤 방향으로 정책을 만들어가고 있는지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올해 환경연합의 예산 증액·삭감 제안 리포트에는 국토교통부, 환경부, 미래창조과학부, 농림축산식품부, 산림청 등의 기관에 대해서 총 18개 사업에 관한 내용이 담겼습니다. 이 중 16개 사업에 대한 의견이 각 상임위원회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심사에 반영되었습니다. 환경연합이 제안한 감액의견은 총 4조2901억 원 수준으로, 2017년 정부예산의 약 1퍼센트에 해당하는 규모입니다.
국토교통부 예산 3조2738억 삭감 제안
환경연합은 2017년 국토교통위원회가 심의하는 예산 중 8개 사업을 문제 사업으로 지적하고, 총 3조2738억 원의 예산을 삭감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이는 2017년 국토부 총 예산 41조 원의 8퍼센트, 2017년 정부예산 총 400조7000억 원의 0.8퍼센트에 해당하는 규모입니다. 굵직한 토목사업이 많은 국토교통부의 성격상 개별사업의 예산규모도 크고, 추후 수천억 원 이상이 될 대규모 토목사업이 신규로 상정되어 있어 2017년 예산을 삭감할 경우 그로 인한 총사업비 예산 절감 효과는 13조8061억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4대강사업으로 완공된 시설물에 대한 관리비용 등은 시설 안전 등의 이유로 예산 삭감을 제안하지 않았습니다.
수자원분야 중 가장 문제 사업으로 꼽힌 것은 '수자원공사 지원(3400억 원)'입니다. 그간 야당 내에서도 '수자원공사가 무슨 죄냐. 시키는 일을 한 거 아니냐'는 동정 여론이 파다했지만, 환경연합은 "국비로 부채 및 이자 지원을 하고 있고, 지자체는 정수 처리 비용 등이 증가하고, 시민들은 용수 요금 인상으로 비용을 분담하고 있는데, 4대강사업의 실질적 행동대장 역할을 해온 수자원공사를 비호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이유로 전액 삭감을 제안했습니다.
환경연합이 확인한 바에 의하면, 수공은 △ 최근 5년 수력, 시화 조력, 4대강 소수력 등의 발전사업에서 연평균 1799억 원의 순이익 △송산그린시티의 분양이 완료되면 2030년까지 1조2000억 원의 순수익 △ 수도사업 분야 광역요금에서 634억 원, 수자원사업 분야 댐 요금에서 998억 원 등 총 1632억 원의 당기순이익이 발생했습니다. 이를 20년 치로 계산하면 8조620억 원이 됩니다. 이는 수자원공사 부채 8조 원을 상회하는 금액입니다. 여기에 비해 꾸준히 확대하고 있는 광역상수도와 댐용수 요금 인상 4.8퍼센트 등을 고려하면 이자상환도 가능한 수준입니다.
국토생태분야 중 가장 문제 사업으로 꼽힌 것은 '서울-세종 고속도로 중 안성-구리 구간(1000억 원)'입니다. 이 구간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남한산성을 관통하는 구간으로 총 8.3킬로미터(㎞) 왕복 6차선의 최장 터널입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남한산성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반딧불이, 하늘다람쥐, 검독수리, 붉은배새미, 뜸부기 등 천연기념물 15종을 포함해 122종의 희귀 동식물이 서식하는 공원자연보존지구로 생태적 가치가 높은 곳입니다.
또한 정부가 도로공사 설계비와 공사비 전액을 부담하고 추후에 민자 사업으로 전환하는 사업 수행 방식이라, 민자사업 전환이 어려울 경우 공사비 전액을 고스란히 도로공사가 부담해야 합니다. 2016년 6월 기준 도로공사 부채가 26.8조 원인 것을 감안하면, 4대강사업으로 부채에 허덕이는 수자원공사 꼴이 날 수도 있겠지요.
해당 지역은 공원자연보존지구로 절대보전이 우선이고 해당 도로가 군사 통신시설 항로 표지시설, 수자원보호시설, 산불방지시설 등 해당 지역이 아니면 설치할 수 없는 최소한의 시설에 포함되는지에 대한 해석에 따라 자연공원법 위반의 소지가 있습니다. 또한 기존의 중부선과 상당 부분 중복될 수밖에 없는 '서울~세종 고속도로'를 건설하여, 공기업의 재무구조 건전성을 악화시켜 국민의 세금으로 부채를 갚는 악순환을 되풀이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그 외에도 국토위 예산 심사 대상 사업 중 △타당성이 부족한 대덕댐 사업은 예산 31억 원 삭감, △환경부 생태하천복원사업과 중복되는 부분의 지방하천정비 5700억 원 예산 대폭 삭감, △수도권 과밀과 집중을 방지하고 도시민의 건강한 생활환경보호를 위해 개발제한구역 유지를 위해 뉴스테이 사업에 책정된 총 2조2398억 원 삭감, △경제성 없고 철새 생태계를 파괴하는 흑산도 소형공항 건설 예산 200억 원 삭감을 요구했습니다.
환경부 예산 3301억 삭감 일부 사업 증액 요구
환경을 지켜야 할 환경부 예산 중에도 삭감 대상 사업이 있습니다. 바로 전기자동차 보급사업입니다. 전기자동차는 연료 시추부터 운행 전 과정에서 내연차보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적을 뿐만 아니라, 주행 시 오염물질을 배출하지 않아 차세대 친환경차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또한 세계적으로 태양광 보급이 활성화되고 이에 따라 전기차가 함께 활성화되는 추세이기 때문에 전기차도가진 장점은 점차 커질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예산 지원만이 능사는 아닙니다. 현재 소비자가 전기자동차를 구매할 경우 한 대당 지원규모가 적게는 1400만 원에서 많게는 2100만 원에 이르고 있지만, 이 지원금 집행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국내 자동차 업체들이 전기차 기술 개발에 적극적이지 않은 탓에 지원금을 받더라도 비싼 가격에 성능이 좋지 못한 차를 사야 하나 소비자들이 망설이는 것이죠.
급박한 미세먼지 대책으로도 적절하지 않습니다. 국회 예산정책처 보고서 '미세먼지 관리 특별대책의 현황과 개선과제'에 따르면, 친환경차 150만 대 목표를 달성해도, 15년 현재 전체 자동차 등록대수 약 2100만 대의 7.1퍼센트 수준에 불과하고, 수송 분야의 미세먼지는 주로 경유차 특히 화물특수차(70퍼센트)에서 배출되므로 당장 친환경차 보급 사업으로 대기질 개선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오히려 노후경유차 조기폐차 및 PM/NOx 동시저감장치 부착 등 수송부문 대책에 적극적 재정 지원을 할 경우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지요.
삭감예산을 하나 더 꼽자면, 바로 대표적인 박근혜 대통령의 고향이자 국회의원 시절 지역구인 대구에 추진되고 있는 '물 산업 클러스터' 예산 659억 원입니다. 해당 사업의 집행률은 2014년 60퍼센트, 2015년 9.9퍼센트, 2016년(6월 말 기준) 39.6퍼센트로 해마다 예산이 이월, 불용된 사업입니다. 현재 입주한 13개의 기업은 물탱크, 밸브, 펌프 등을 제조하는 업체에 국한해 사업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안될 일을 하려니 사업 자체가 부대낄 뿐 아니라, 성공한다 하더라도 대규모 산업단지가 하류에 미칠 수질 영향이 우려되고 있습니다.
반면, 환경부 예산 중에 증액을 요구한 예산도 있습니다. 바로 가습기살균제 피해 관련 예산입니다. 인과관계 기준 확대와 피해자 찾기를 통해 발굴되는 피해자 증가에 따른 지원금, 피해자에게 필요한 의료비 등의 예산, 가습기피해 신고자 전수조사 예산, 3-4단계나 또는 피해 신청 후 등급 평가를 기다리다가 사망하는 사례를 예방하기 위한 모니터링 및 치료비 지원을 긴급 지원하는 예산입니다. 그 외에도 4대강사업의 대안으로서 하천의 종적연결성을 지수화하여 건강성을 평가하기 위한 예산과 전국에 있는 보/저수지 기능과 용도를 파악하기 위한 연구예산도 증액을 제안했습니다.
환경연합은 앞선 언급한 국토교통부와 환경부 예산 외에도 미래창조과학부, 농림축산식품부, 문화체육관광부 등의 부서에서 진행되고 있는 원자력 관련 1059억 원, 4대강사업 후속으로 진행되는 도수로 공사 579억 원, 경인운하를 연장하고 '람사르 습지(Ramsar wetlands)'인 밤섬을 파괴하는 한강관광자원화 356억 원 등 많은 사업을 모니터링하고 있습니다.
예산을 둘러싼 치열한 전쟁
환경연합은 두꺼운 예산서를 구석구석 살피고, 지역의 현황을 파악해서 보고서를 만들고 상임위원회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속 의원실을 설득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피땀 흘려 번 돈으로 낸 세금이 오히려 환경을 파괴하거나 특정 집단만의 이익으로 새지 않도록 하는 일입니다.
본회의장에서 2017년 예산이 통과되는 그 순간까지(12월 3일 통과) 수많은 이해집단들의 로비가 계속될 것입니다. 연말에 예산 삭감 제안서를 들고 의원회관을 돌다 보면, 나라 예산을 따내기 위한 전쟁의 치열함을 몸으로 느끼게 됩니다. 여느 로비스트들과는 달리 사업 예산을 삭감하거나 증액해야 할 근거와 명분만으로 설득하는 시민단체들의 제안이 의원실 입장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모르겠습니다. 국회의장이 의사봉을 두드리며 예산을 통과시키는 그날까지 환경연합이 두 눈을 부릅뜨고 지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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