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로 미뤄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안 표결 가부의 최대 변수로 내주 초쯤으로 예정된 박근혜 대통령의 기자회견과 이르면 주말부터 시작될 박 대통령-새누리당 비주류 면담이 떠오르고 있다.
"국민의 이름으로 탄핵"을 외치던 김무성 전 대표 등 새누리당 비주류는, 박 대통령이 기자 회견이나 면담 등을 통해 '4월 퇴진'을 못 박을 경우 탄핵 투표 불참 또는 반대표 행사로 가닥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즉각 퇴진'이라는 국민적 열기에 힘입어 야3당과 김무성 전 대표 등 새누리 일각이 공세적으로 밀어붙이던 탄핵 정국이, 정작 투표 '기일'을 정하는 국면에 이르러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입'만 바라보는 수세적 상황으로 역전된 셈이다.
박 대통령에게나 야3당에나 주어진 시간은 앞으로 7일이다. 청와대와 친박계는 이 기간 '박 대통령이 모든 것을 내려놓을 테니 탄핵은 피하자'는 여론전을 비박계와 보수층을 상대로 치밀하게 펼쳐나갈 것으로 보인다.
후퇴 거듭하더니 결국…朴 '입'만 바라보는 非朴
새누리당 비주류 모임인 비상시국회의는 2일 오전 회의를 한 후 박 대통령에게 "오는 7일 오후 6시까지 명확한 퇴진 시점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대변인 격인 황영철 의원은 "퇴임 일정을 국회에 떠넘기기보다 스스로 명확하게 발표해주는 것이 문제를 풀어가는 한 방안"이라고 했다.
황 의원은 이어 "대통령이 이를 거부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그걸 거부한 대통령은 탄핵하면 된다"고 했지만, 이는 대통령이 입장을 밝힐 경우 탄핵 투표에 불참할 가능성을 열어놓겠다는 말로도 해석된다.
이는 엄청난 후퇴다. 불과 이주 초에만 해도 비상시국회의는 "국민의 이름으로 탄핵(김무성 전 대표)" 등을 거론하며 찬성표 집계를 위해 연판장을 돌리는 등 당내 탄핵 열기를 가열시켜왔다. 이런 움직임에는 지난 26일 벌어진 '190만 촛불' 집회 열기가 반영된 듯했다.
그러나 역대 최대 규모의 촛불 집회로부터 불과 사흘 후였던 지난달 29일, 박 대통령이 '국회에서 거취를 정해달라'는 3차 담화를 하자 이들은 "거국 내각 구성과 개헌 등을 둘러싼 여야 협상을 8일까지 진행하고 불발될 경우 9일 탄핵한다"고 입장을 수정했다.
당시 이들은 '대통령이 스스로 퇴진을 거론한 상황인 만큼 일단 협상을 해보자'는 것을 입장 선회의 이유로 내세웠다. 여야 4개 당이 거국 내각 구성과 개헌이라는 굵직굵직한 안건에 대해 고작 열흘 안에 모종의 합의점을 도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임에도 벌어진 일이었다.
이제는 협상이 아니라 박 대통령의 '입'만 우선 바라보고 있다. '비박'이라는 명칭이 무색하게 할 정도다. 김무성 전 대표는 전날 "4월 30일 퇴임이란 새누리당 의총 의결에 대해 박 대통령의 답을 듣고 그것이 안 되면 9일에 참여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답이 있으면 투표에 불참할 가능성을 열어놓은 발언이다.
청와대는 이날 비주류의 4월 퇴진 약속 요구에 "여야가 합의해 정하면 따르겠다"는 답을 반복했다. 정연국 대변인은 "여야가 조속히 논의해주길 바란다"고도 했다. 새누리당의 요구만으로는 부족하며 여야가 합의해 시점을 제시해주길 바란다는 뜻으로 읽힌다.
번개에 콩 볶듯 개헌·내각 협상하자?…"애초 시간 끌기가 목적"
청와대가 이처럼 일단 '여야가 합의한 퇴진 로드맵'을 요구하는 이유는 명분 때문일 것으로 해석된다. 당연히 지지율이 10%대로 추락한 새누리당만의 요구보다 여야가 공동으로 퇴진 로드맵을 제시하고 청와대가 이를 받아들이는 모습이 더 보기 좋은 그림이다.
그러나 '여야 협상'을 거듭 강조하는 배경에는 애초 청와대와 친박이 제시한 협상 '안건' 자체가 이른 시일 내에 합의점을 도출할 수 없는 안건이라는 자신감이 박 대통령 의중에 깔려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협상 테이블이 구성되는 순간 도마 위에 오를 것은 두 종류다. 임기 단축을 위한 법과 일정. 전자는 개헌을 뜻하고 후자는 시점과 거국 내각 구성을 뜻한다.
황영철 의원은 지난달 30일 "국민은 임기 단축을 위한 개헌 절차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했다. 즉, 협상 테이블이 구성되는 순간 새누리당은 임기 단축만을 위한 개헌이 아니라 권력 체제 개편을 포함한 개헌을 논의하자고 할 가능성이 크다. "최순실 게이트라는 비선 실세 문제를 해결하려면 근본적으로는 개헌을 해야 한다"고 한 여야 정치인들의 그간 주장은 이때 아주 좋은 명분으로 쓰일 수 있다.
박 대통령은 이처럼 개헌·내각 구성이라는 안건으로 협상이 일단 시작되기만 한다면 이른 시일 내에 협상이 마무리되는 것은 애초 어렵다는 점에 기대는 것으로 보인다. 일단은 '시간 끌기'다.
朴, 면담 통해 '탄핵 불참' 심리적 명분 채워줄 듯
물론 야 3당은 이날에도 임기 단축 협상은 없다면서 "박 대통령의 퇴진 선언이 있더라도 9일 탄핵을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손에는 탄핵 투표가 강행될 경우 새누리당 비주류를 본회의장에서 빼돌릴 두 가지의 방법이 이미 쥐어져 있다.
첫 번째는 새누리당 비주류가 친히 쥐여준 카드다. 박 대통령은 비주류의 요구대로 7일께 자신의 퇴진 시점을 못 박아 발표할 수 있다. 여야 협상을 거쳐 나온 로드맵이 아닌 만큼 리스크는 있지만, 최소한 새누리당 비주류에 야당을 상대로 "이제 진짜 협상을 시작하자"고 말할 명분은 줄 수 있다.
7일 입장이 나올 경우 탄핵 투표일까지는 고작 이틀이다. 무려 '개헌'을 주제로 충분한 협상을 하기에는 애초에 터무니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그럼에도 비박계 일부가 '투표일을 며칠 늦춰서라도 일단 협상을 해보자'고 제안하고 여기에 야권 일각이 '박 대통령이 날짜를 박았으니 그래도 한 번 협상은 해보자'고 호응하는 일이 벌어지면 탄핵 정국은 다시 흔들린다.
야3당이 새누리당의 충분한 협상 요구를 거부하고 표결을 강행한다고 해도 상황이 녹록하지만은 않다. 야당의 투표 강행을 보며 새누리당 비주류는 이를 '투표 불참'을 위한 심리적 명분으로 삼을 것이 자명하다. 이 경우 투표 부결이다.
유승민 의원은 이날 여야 협상이 되지 않으면 "탄핵 일정을 그대로 추진하겠다"며 김무성 전 대표 등과는 거리두기를 하면서도 "야당이 협상 없이, 협상을 거부하고 탄핵을 강행하면 저희가 그건 참여할지는 논의해봐야 되겠다"고 했다.
두번째는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 의원들과의 면담이다. 여야 협상이 끝내 진행되지 않는다면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 의원들과 면담을 순차적으로 진행해 조기 퇴진 의사를 개별적으로 전하는 우회 경로를 택할 수 있다.
이로써 박 대통령은 비주류 의원들에게 탄핵 투표에 불참할 명분을 주고 동시에 '4월 퇴진'을 공식화하지 않는 이점도 누리게 된다.
이와 관련, 정진석 원내대표는 이날 "만일 국회에서 4월 퇴진을 결정했는데 대통령이 지키지 않는다면 새누리당 전원이 사퇴를 각오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 발언 자체가 박 대통령이 어떤 정치적 선언을 하건 그것은 새누리당 의원들에게만 의미가 있을 뿐 이미 국민적 신뢰는 받을 수 없는 상태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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