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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꼼수는 가라, 껍데기니까

[김민웅의 인문정신] '박근혜 퇴진'은 협상 대상이 아니다

박근혜의 술수에 넘어가려는가

꼬이기 시작할 판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3차 담화가 담고 있는 '야권 분열과 비박 잡기'가 효력을 발생하는 모양새다. 담화 현장에서 박 대통령의 엷은 미소는 결국 회심의 미소였던가? '이 카드면 너희들 분열하고 결국 단축된 임기보장과 탄핵 소멸로 간다'는 자신감을 드러낸 셈인가 보다. 민심은 담화 발표 직후, 곧바로 꼼수를 알아차리고 넘어가지 않았다. 야3당도 탄핵 대오를 견고하게 정비하는 모습을 보였다. 상황은 이로써 본래의 궤도로 갈 기세였다.

그러나 국민의당이 오는 2일로 예정된 탄핵 발의에 발을 빼면서 사태는 변하기 시작했다. 내세우는 논리는 비박세력 동참을 위해 시간이 필요하고, 그 사이 협상이 완료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9일로 연기하자는 것이다. 비박세력은 이미 9일로 탄핵발의 요청을 했고, 그와 동시에 새누리당은 발 빠르게 '박 대통령의 4월 퇴진, 6월 조기대선'을 당론으로 정했다.

이 와중에 비박세력의 수장 김무성은 더불어민주당 대표 추미애와 만나 4월 퇴진으로 인한 임기 단축 보장과 탄핵 불필요론을 주장했으나, 거부당했다. 민주당은 탄핵 발의를 예정대로 추진하고, '박근혜 퇴진'은 늦어도 내년 1월 말을 넘기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국민의당은 추미애-김무성 만남에 발끈했다. 돌출 행동이라는 것이다. 국민의당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빠진 제1야당 대표와 비박계 수장의 긴급 회동이 불편했을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해야 할 바는 그 내용이다. 비박계는 탄핵에서 빠지고 임기 단축을 협상하자는 건데, 민주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탄핵 추진 의지를 밝혔다. 단 하나, 1월 말 시한 거론은 즉각 퇴진 민심과 다르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그것 역시도 협상하지 않기로 해놓고 결과적으로 협상을 한 셈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국민의당이 해야 할 바는 양자 단독 긴급회동에 대한 나름의 유감을 표하는 동시에, 비박계를 강력하게 성토하고 탄핵 발의에 동참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 비박계 압박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오는 9일 탄핵 발의 연기론이 물 건너간 것은 아닌가? 게다가 탄핵 발의를 미루면서 저들의 수습책 마련 시간이 생긴 것은 아닌가?

ⓒ프레시안(최형락)

'개헌 꼼수파'를 공격하라

자, 상황을 전체적으로 보자.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목표는 분명하다. △ 탄핵을 막는다, △ 재집권 구도를 짜는 시간을 번다, △ 개헌 정국으로 이동한다. 그런데 여기서 비박계는 오는 9일 연기 작전의 틀로 탄핵과 개헌을 협상조건으로 걸고 있었고, 이를 받을 가능성이 가장 높았던 것은 개헌론을 지속적으로 주장했던 박지원을 대표로 하는 국민의당이었다. 탄핵 발의 연기에 대해 국민의당이 압박하기보다는 정치적 관대함을 보인 까닭은 다름 아닌 '개헌'이라는 고리였다는 것은 세상에 다 알려진 일이다. 내년 4월 퇴진론에 대해서도 입장 유보와 협상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그러기에 탄핵 발의 2일 추진에 대해 국민의당은 미적거렸고, 결국 연기 발표를 했으며 비박계에 협상의 공간을 준 것이었다. 따라서 추미애-김무성 긴급회동에서 이러한 협상 공간이 소멸하는 것에 대해 발끈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본질로 보자면,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박지원은 더불어민주당 대표 추미애에 대해 '돌출' 운운할 일이 아니었다.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었는가? 국민적 압박 아래 놓여서 조건부 퇴진까지 발언한 박 대통령이 퇴진 문제를 국민의 요구와 명령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협상 대상으로 삼은 것을 덥석 물어버린 데 있다. 결국 '박근혜 퇴진' 문제는 협상 대상이 아닌 게 되었다. 비박 역시 협상 대상이 아니고, 탄핵 동참의 역할을 맡지 않을 수 없는 청산 대상이라는 이중적 위치에 있다. 따라서 야권은 이들에게 탄핵 문제에 대해 협상을 제기할 권리가 없음을 명백히 하고, 퇴진은 결정된 국민의 명령임을 확실히 해야 했다.

'악마의 손'이라도 잡아야 한다는 식의 논리로 비박계의 정치적 입지를 부각시켰던 국민의당 박지원은 정작 잡아야 할 손이 국민의 손이라는 점을 망각했고, '박근혜 퇴진' 문제를 정치적 거래 대상으로 삼아 버렸다. 그 정치적 죄과가 막중하다. 2일 발의는 이미 예정되어 있었고, 그대로 밀고 나가면 박 대통령의 직무 정지가 이루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박 대통령과 새누리에게는 정치적 수습의 시간이 박탈되는 상황이 펼쳐지는 것이었다.

'박근혜 퇴진'은 협상 대상이 아니라 국민의 명령이다

잠시라도 주춤거리면 상대는 살아날 온갖 방법을 강구하기 마련이며, 그러는 사이에 이쪽의 동력도 불안정해지면 사태는 어긋나게 되어 있다. 박 대통령의 3차 담화는 부분적으로 시민혁명의 성과이기도 했는데, 그 안에 담긴 기만을 제대로 처리 못 하면 그 성과는 도로 빼앗기고 말게 되는 것이다.

결국, 탄핵 정국에서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마련해보려는 '개헌 꼼수'를 서로 공유한 세력이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는 국민의 명령을 이렇게 만들어가고 있다. 개헌 논의를 배제하고, 탄핵을 주도하고, 퇴진을 압박하는 세력을 고립시키고, 자신들의 판으로 만드는 정치적 농간이 주도권을 잡게 될 형국인 것이다.

다시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탄핵은 '박근혜 퇴진 운동'의 부차적 장치에 불과했다. 어차피 시간이 걸리고 그 정치적 의미가 중요했을 따름이다. 지금의 정세에서 가장 중요한 동력은 시민혁명의 힘만이 있을 뿐이다. 애당초 정치권의 당리당략에 대한 시민혁명의 불신은 깊었고 사태는 이렇게 되어가고 있기에 그 불신은 분노로 바뀌어 갈 것이다.

시민혁명의 타격 목표는 이제 확장되고 있다. '박근혜', '새누리당' 그리고 '개헌 꼼수파'가 모두 이에 해당한다. 2일 발의가 그대로 추진되는 것은 이제 실제적 효력은 사라지는 상황이다. 그러나 국민의 당이 말했듯이 발의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탄핵이 목적이라는 것도 역시 실제적 효력을 상실했다.

따라서 2일 발의에 국민의 당은 동참해야 한다. 그래서 탄핵 발의의 의미를 명백하게 하는 한편, 비박계를 비롯해서 새누리당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자세를 확실하게 전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의당 역시도 개헌 꼼수파로 낙인찍히고, 시민혁명 교란세력으로 규정될 것이다. 더욱 거센 퇴진 압박만이 답이다.

사생결단이다, 여의도를 포위하자

어떻게 할 것인가? 야권은 시민혁명의 동력과 더욱 강력하게 결합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모든 것이 무산된다. 처절하게 싸워야 한다. 저들은 죽고 사는 문제로 이를 대하고 있다. 이쪽은 아닌가? 생사가 달린 사태다. 사생결단이다.

시민혁명은 이제 지난한 역정을 예상해야 할 것이다. 지치는 쪽이 패배한다. 오늘의 상황은 시민 권력의 창출이 얼마나 중차대한 문제인가를 절박하게 느끼도록 하고 있다. 이제 청와대 진격만이 아니라, 여의도 포위가 새로운 과제가 되었다. 국회를 점령하지 않으면, '박근혜 퇴진' 운동은 막대한 장애물에 직면한다.

야권은 국회를 개방하라. 누차 말했다. 거기서 시민사회와 격론을 벌이고 힘을 합할 공간을 마련하라. 국민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지 입증할 것이다. 혁명은 때로 교착상태가 있기 마련이다. 그것은 후퇴가 결코 아니다. 새로운 전략이 요구되는 때이다. 그렇게 혁명은 진화하고 성숙해간다. 다시 힘을 모으자. 여의도를 쑥대밭으로 만들어야 한다. 정신 차릴 수 없는 지경으로 밀어붙여야 한다. 박 대통령과 그 부역세력을 청산하지 못하면 우리가 죽는다.

모든 꼼수는 가라, 껍데기니까. 이제 확실하게 갈아엎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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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웅

미국 진보사학의 메카인 유니온신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동화독법>, <잡설>, <보이지 않는 식민지> 등 다수의 책을 쓰고 번역 했다. 프레시안 창간 때부터 국제·사회 이슈에 대한 연재를 꾸준히 진행해 온 프레시안 대표 필자 중 하나다.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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