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 본부가 여군과 함께 저녁 회식을 할 경우 장관급(준장 이상) 부대장에 보고를 한 이후에 시행하라는 지침을 내려 논란이 되고 있다. 성희롱, 성폭행 등 이른바 '성 군기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내놓은 대책인데, 피해자인 여군들을 문제가 될만한 공간에서 아예 배제하는 방식이 적절한지를 두고 군 내부에서도 불만이 나오고 있다.
지난 11월 23일 해군본부는 '여군 포함 식사는 중식(점심 식사)을 권장함. 저녁 불가피 시 장관급 부대장 보고 후 시행'이라는 지침을 담은 지침 공문을 예하부대에 시달한 것으로 29일 확인했다.
이로 인해 실제 해군의 일선 부대에서는 저녁 회식 자리에 여군을 제외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군과 함께 회식을 하려면 준장 이상 부대장에 보고를 해야 하는데, 업무도 아닌 회식을 하기 위해 굳이 이러한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하느냐는 부담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남군의 비율이 월등히 높은 상황에서 소수의 여군이 회식에 빠지는 것이 상급자에게 보고를 하는 것보다 더 편리하다는 인식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해당 공문을 받아든 해군 소속 여군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성희롱이나 성폭행 등을 일으키는 것은 대부분 남군인데, 왜 여군이 회식 자리에서 빠져야 하는 것이냐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해군 소속 한 여군은 "지난주에 부서 내에서 이동하는 인원이 있어서 회식을 했는데 내가 참석하는 것을 두고 사령관에게 보고를 넣었다"며 "오늘 옆 부서에서 회식을 한다는데 거기서는 아예 여군은 모두 빠지라고 했다고 한다. 회식 자리에서 빼줬으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이러한 지침을 내려보내게 된 배경에 대해 해군본부 관계자는 "연말에 회식이 잦아지면 음주 관련한 사고들이 자주 일어난다. 성추행 사고들도 일어나다 보니까 사전에 예방 차원에서 마련한 것"이라고 밝혔다.
성희롱‧성폭행 가해자들을 제대로 교육시킬 생각보다는 피해자들을 아예 자리에서 제외시키는 방식을 쓰는 것이 예방 차원에서도 효과적인 조치가 아니라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는 지적에 이 관계자는 "여군들이 불편하게 생각하지는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불미스러운 사고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강조 지시를 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그런데 공문을 시달한 이후 여군에 대한 과도한 규제로 이해되거나 불편을 초래할 수 있어 내부 검토를 거쳐 '여군 포함 식사는 중식(점심 식사)을 권장함. 저녁 불가피 시 장관급 부대장 보고 후 시행'이라는 부분을 공문에서 삭제해 다시 내려보냈다"고 밝혔다.
그는 "해군에서는 '1110운동'(1가지 종류의 술로 1차에서 10시까지만)을 비롯해 연말을 맞아 사고가 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면서 공문은 사고 예방의 차원이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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