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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물 박태환'의 복수극, 역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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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물 박태환'의 복수극, 역겹다

[정희준의 어퍼컷] 박태환이 회복할 명예는 없다

스포츠계에서 퇴출되어야 할 것으로 손꼽히는 두 가지가 바로 승부 조작과 금지 약물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중 무엇이 더 저질일까. 나는 주저하지 않고 금지 약물 복용(또는 투약)를 꼽을 것이다.

승부 조작엔 여러 가지가 있다. 사전에 양 팀 또는 선수 간 승패를 짜고 하는 승부 조작도 있고 어차피 지거나 이길 경기에서 점수 차이를 맞춰주는 점수 조작도 있다. 또 고3 선수들의 대학 진학이 이미 결정된 경우 아직 선수들 대학 진학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대 팀 감독이 부탁하면 져주기도 한다. (어처구니없지만 그들에겐 '선의의 승부 조작'이다.)

어떤 형태의 승부 조작이든 외국의 경우 한 번 걸리는 것으로도 매장되거나 아예 퇴출되기도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횡행한다. 승부 조작은 대한민국 스포츠에서 기필코 제거해야 할 종양이다.

그런데 이런 승부 조작보다 더 나쁜, 저질의 행위가 있으니 바로 금지 약물 복용이다. 그나마 승부 조작은 어떤 이득을 위해 경기에 맞서는 상대와 합의한 후에 실행에 나서는데 반해 금지 약물 복용은 정직하고 공정해야 할 스포츠 정신을 짓밟으면서 스포츠 조직과 팬과 상대 선수 모두를 속이는 사기 행위이기 때문이다. 상대를 속이고 불이익을 주면서 매우 비겁하고 부당한 방식으로 자기 혼자 이득을 얻으려는 행위이다.

그래서 지난 리우 올림픽에서 약물 복용 선수들의 출전이 뜨거운 이슈였다. 특히 금지 약물로 자격 정지를 받은 선수들이 많았던 수영이 그랬다. 미국의 금메달리스트 릴리 킹은 "약물 사기꾼(drug cheat)들이 경기에 출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고 호주(오스트레일리아)의 금메달리스트 맥 호튼은 은메달을 딴 쑨양을 가리켜 "약물로 속임수를 쓴 선수와는 인사할 시간이 없다"며 시상대에서조차 악수를 거부했다. 기자들이 쑨양과의 대결에 대해 묻자 그는 "도핑에 걸린 선수와 내가 라이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변을 거부하며 쑨양을 완벽하게 무시했다.

통산 21개째 금메달을 획득한 미국의 마이클 펠프스 역시 쑨양에 대해 "도핑 테스트에 걸린 선수가 또 헤엄칠 기회를 얻었다는 건 슬픈 일"이라며 "도핑 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온 선수와 함께 경기하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특히 프랑스의 카미유 라코르는 쑨양의 금메달 수상에 대해 심지어 "역겹다"고 표현하면서 "쑨양의 소변은 보라색"이라며 "수영이 이렇게 변질되는 것이 슬프다"고 한탄했다.

금지 약물 논란은 육상으로 튀었다. 릴리 킹은 저스틴 게틀린과 타이슨 가이가 이번 대회에 출전한 것에 대해 "IOC의 결정을 존중하지만 그들의 올림픽 출전이 허용돼서는 안 된다"면서 미국 선수단 팀 동료에까지 일격을 날렸다.

논란 확대 피한 김연아, 논란 키우며 복수극에 나선 박태환

지난 19일 SBS는 이미 구속된 김종 전 문체부 차관이 박태환을 리우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 하도록 협박했다는 특종 보도를 했다. 김종은 박태환에게 스폰서를 구해주겠다고 했고 또 박태환이 나중에 교수되는 것을 도와주겠다고도 했다. 그런데 이를 거부하고 고집스럽게 올림픽에 출전하면 나중에 좋을 것 없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회유와 협박이다. 또 그가 고위 공직자인 점을 감안하면 직권 남용에 해당할 가능성이 크다.

박태환은 올림픽 출전 문제로 괴롭힘을 당한 김종과의 대화를 녹음했다가 이를 SBS에게 넘겨준 듯하다. 통쾌한 복수극이다. 그러나 그 의도가 좀 지저분해 보인다. 그가 결국 원했던 올림픽 출전도 한 마당에, 지난 5월경 녹음한 것으로 보이는 녹음 파일을 지니고 있다가 김종이 구속된 후 공개한 것 말이다.

이는 진실을 밝히겠다는 의지로 보이기보다는 망신을 주고 더 나아가 검찰 수사에 영향을 주겠다는 의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실제 24일 검찰은 박태환 측 관계자를 참고인으로 불러 이 사건을 조사했다. 진실을 밝히고자 했다면 녹음 직후 공개했어야 했고, 후대에 기록으로 남기고자 했다면 김종에 대한 조사가 마무리된 후에 하는 게 좀 더 신사답고 스포츠맨답지 않았을까. 조폭이나 정치인들의 복수극이 아니라면 말이다.

이번 박태환의 복수극에 대한 인상 비평을 넘어 내가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두 가지이다.

첫째 박태환은 금지 약물을 복용해 중징계를 받았던 선수이다. 이후 그는 올림픽에 나가겠다고 아이처럼 떼를 쓰고 절까지 했지만 진정으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 기억은 나에게 없다. 그런데 지금 박태환 측은 김종이 구속되니 언론 플레이에 나섰다. SBS 특종 보도에 연이어 박태환은 일본에서 기자들을 만났고 검찰 조사에도 협조하는 등 수영 아닌 일에 열심이다.

특히 늘품체조 시연회 불참으로 인한 불이익 논란이 커지고 있는 김연아가 논란의 확대를 피하려는 모습과 대조적으로 박태환은 논란을 계속 키우고 있다. 무엇보다 녹취록 공개를 기회로 자신이 마치 권력의 희생인인 양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모습은 정말 불편하다.

박태환은 스포츠의 근간인 '공정 경쟁'을 스스로 짓밟은 선수다. 체육인의 명예와 양심을 저버린 인물이다. 만약 리우 올림픽에서 박태환이 메달을 땄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국가적 망신 아니었을까. 약물 사기꾼이라 불리며 다른 선수들이 인사나 악수는커녕 눈도 마주치지 않았을 것이다.

박태환의 행태에 대해 하나 더. 박태환은 자신이 맞은 주사가 무엇인지 몰랐다고 주장해왔다. 말이 되지 않는다. 그가 투약했다는 네비도는 스테로이드제 가운데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유사체이다.

운동선수들이 가장 많이 찾는 것이 스테로이드고 그 스테로이드의 중요한 성분이 테스토스테론 유사체이다. 20대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감기약 먹는 것도 아니고 주사를 맞는데 그 주사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맞았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다. 김종이 최순실을 모른다고 우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또 그는 올림픽 출전 허락을 요구하면서 올림픽에서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게 해달라고 했다. 우선 금지 약물을 복용하며 불공정 경쟁을 하고 다른 선수들을 속인 자에겐 회복할 명예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잘못을 저질러 놓고 왜 국가 대표가 돼서 국민 세금으로 올림픽에 나가 명예 회복을 하려 하는가. 지역의 어린 아이들과 청소년들에게 수영을 가르치며 묵묵히 봉사 활동을 하는 것이 진정한 명예 회복 아닐까.

명예 회복? 약물 사기꾼에겐 회복할 명예가 없다

둘째는 언론의 행태다. 박태환의 올림픽 출전 논란 당시 언론의 보도 경향은 '언론은 여론을 반영한다'가 아닌 '언론이 여론을 만든다'의 대표적 사례다. 당시 체육학자들이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박태환은 올림픽 출전을 불허해야 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박태환의 네비도 투약이 너무 충격적이고 뻔뻔했기 때문에 온라인 여론도 불허 쪽이 상당했다. 그런데 이를 뒤바꾼 것은 바로 언론이었다.

특히 열심인 곳이 어디였을까. 바로 이번에 특종을 터뜨린 SBS였다. SBS는 당시 박태환의 출전을 허락해야 한다며 대한체육회와 문체부를 맹렬하게 공격했다. 특집 기획 기사를 시리즈로 내보낼 정도였다. 총력을 기울이는 듯했다. 그렇다면 SBS는 왜 그렇게 박태환의 출전에 몸이 달았을까.

SBS는 리우 올림픽 주관 방송사였다. 2006년 7월 SBS는 1주일 간격으로 KBS와 MBC 몰래 올림픽과 월드컵 중계권을 싹쓸이한다. 물경 2억1250만 달러를 쏟아 부은 것이다. 그런데 황금알을 낳아줄 줄 알았던 이 중계권이 저조한 광고 수입으로 인해 이후 재정 압박 요인이 되어버렸다.

특히 리우 올림픽은 광고 흥행 참패를 예상할 수밖에 없었다. 개최국 브라질의 개최 준비가 불안하기만 했고 특히 낮과 밤이 뒤바뀐 곳이라 시청률은 바닥을 칠 것 같았다. 이런 난관을 타개할 방법은 우리 선수단의 승전보였지만 그것은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실제로 성적은 기대에 못 미쳤다.

그렇다면 국민을 한 밤중에도 텔레비전을 보게 만들 최고의 안전판은 역시 스타 선수였다. 그런데 아마추어 선수 중 이미 은퇴한 김연아를 빼면 누가 남겠는가. 박태환 밖에 더 있는가. SBS가 박태환의 출전에 그토록 열심이었던 이유가 다른 무엇으로 설명이 될까. 결국 그때 박태환을 열심히 도와줬던 것에 대한 고마움인가. SBS는 김종의 박태환 협박을 특종으로 터뜨린다.

몰라서 못 쓰나 알고도 안 쓰나

언론 관련해서 하나 더. 당시 언론은 대한체육회가 박태환에게 내린 '징계 종료 이후 국가 대표 3년간 금지'가 IOC가 금하는 이중 처벌에 해당하므로 그의 올림픽 출전은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그게 그렇게 '당연한 것'은 아니다. 이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리우 올림픽에서 그 많은 선수들이 금지 약물 선수들의 출전을 그토록 격렬하게 비난하고 IOC를 성토했던 것이다.

IOC는 1980년대 이후 금지 약물 문제가 점점 더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자 이를 근절하기 위해 반도핑 강화로 방향을 잡았고 그 결과가 금지 약물로 6개월 이상 징계를 받은 선수는 다음 올림픽에 출전을 불허하는 규정이었다. 그러나 이 규정은 2011년 CAS(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에 의해 첫째 이중 처벌의 이유로, 둘째 징벌의 수준이 도핑 행위의 수준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이유(예를 들어 5개월 징계 행위를 저지른 선수와 6개월 징계 행위를 저지른 선수에게 주어지는 징벌이 올림픽 출전과 불출전이라는 너무나 극단적 차이를 초래하는 문제)로 부당하다는 판정을 받았다. 그런데 CAS의 이 판결은 법리에 따라 판단을 하다 보니 나온 결과일 뿐 사실 CAS도 IOC가 금지 약물을 엄격하게 금지하는 쪽으로 가는 것은 옳다고 보았다. 그래서 이러한 문제들을 피해갈 수 있는 다른 방안을 모색할 것을 권유했던 것이다.

박태환이 CAS에 가서 결국 출전 자격을 얻을 때의 판결에 주목할 부분이 있다. 국내 언론이 무시한 것인지, 몰라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는데 언론이 보도한 판결문은 정식 판결문이 아니고 가처분("provisional measure")결정이다. 이 가처분은 박태환의 리우 올림픽 출전 자격을 확인하면서 같은 문장에 "until such time as final decision is rendered in this procedure(이 절차의 최종 결정이 도출되는 시기까지)."라고 단서를 달았다. 즉 CAS는 본안 판결에 시간이 걸리는 상황에서 박태환의 가처분 신청이 허무맹랑한 것이 아닌 한, 일단 올림픽에 출전하게 해준 것이다. 그리고 이 가처분은 본안 판결("final decision")까지만 한시적으로 유효하다고 적시했다.

일단 박태환을 올림픽에 출전시켜주고, 나중에 본안 심리 결과 박태환의 주장이 이유 없으면 박태환의 올림픽 출전 결과를 소급하여 무효 처리하면 되는 것이다. 예컨대, 박태환이 만약 메달을 땄다면 그의 메탈을 박탈하고 차순위자가 메달을 승계하게 된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언론은 마치 박태환이 올림픽 출전 권한을 최종적으로 확인받은 것처럼 기사를 써댔다.

사회가 부패한 만큼 스포츠도 부패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서 박노자 교수는 범죄자가 대통령 코스프레를 한 것이라고 했다. 최순실이 만든 재단과 정유라에게 돈을 갖다 바친 재벌들은 최순실의 협박 때문에 돈을 준 것이라고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 박태환은 권력에 의해핍박 받은 희생양 코스프레에 열심이다. 실제는 모두 사라졌다. 우리 눈앞엔 껍데기만 떠다니고 있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위해 박태환을 응원하는가. 이 혼돈과 상실의 시대, 우리는 무엇에 분노하고 상처받는가.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박태환과 김종이 펼치는 3류 드라마에 흥분하는가. 한 체육인은 이렇게 말한다. "소악과 거악의 싸움이다. 그래서 더 불편하다"고. 박태환의 욕망과 복수가 언론의 돈벌이, 특종 경쟁과 어우러지는 이 불편한 드라마. 그리고 이에 흥분하는 우리들.

김종은 고위 공직자임에도 비선 실세의 몸종 노릇을 하며 기업으로부터 돈을 뜯으러 다니는 파렴치한 행각을 벌여 악마화됐다. 그 바람에 과거 부정과 비리를 저지른 범법자들이 여기저기에서 나타나 마치 자신이 권력의 피해자인 척 돌아다니고 있다. 그러나 김종의 쇼킹한 범죄행위와는 별개로 체육계를 깨끗하게 하려는 노력은 쉴 수 없다. 스포츠도 그 사회만큼 부패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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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준

스포츠와 대중문화 뿐 아니라 세상사에 관심이 많아 정치 주제의 글도 써왔다. 인간의 욕망과 권력이 관찰의 대상이다. 연세대학교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미네소타대에서 스포츠문화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미래는 미디어가 지배할 것이라는 계시를 받아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동아대 체육학과 교수, 부산관광공사 사장을 지냈다. <미국 신보수주의와 대중문화 읽기: 람보에서 마이클 조든까지>, <스포츠코리아판타지>, <어퍼컷>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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