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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약탈적 포획 국가'"

[이병천 칼럼] 개발 국가에서 포획 국가로 ①

나라 안팎으로 우리 삶의 지축을 뒤흔드는 초대형 미스터리가 터졌다. 세계와 대한민국 모두 더 이상 구체제의 모순을 참을 수 없다는 분노의 대항 운동(counter-movement)이 일어나 새로운 변화의 분기점에 들어섰다. 다시 시대정신이 변했다. 그러나 새롭다고 해서 곧 민주, 진보적인 것은 아니다. 일찍이 칼 폴라니가 자본주의 시장 사회와 사회 보호적 대항 운동 간의 이중 운동에 대해 말한 바와 같이, 오늘의 새로운 변화는 매우 다기한 방향으로 열려져 있다. 우리는 지금의 변화가 혼돈, 불확실성 심지어 어지러움을 내포하고 있음을 알아야 하며 거역할 수 없는 변화의 격류를 삐뚤어진 방향이 아니라 슬기롭게 순조(順調)로운 방향으로 이끌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트럼프의 승리와 세계화의 균열, 한국에 주는 함의

패권국으로서 위상 때문에 미국의 문제는 곧 세계의 문제가 된다. 일찍이 '변화'라는 말의 저작권자이기도 했던 버락 오바마가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하고 도널드 트럼프의 새 시대가 열렸다. 어떤 이들이 미국 대선에서 인종주의와 신고립주의 깃발을 높이 치켜든 막말 '저질' 트럼프가 승리할 줄 알았을까. 전체 득표수로 힐러리가 200 만 표나 앞선 것은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긴 하다. 그러나 그것으로 트럼프 승리의 의미를 덮을 수는 없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며 미국의 대표적인 진보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이 쓴 "우리가 모르는 우리나라(our unknown country)"라는 글이 화제가 되었다. 그렇지만 그는 힐러리가 왜 패배했는지, 왜 트럼프가 승리했는지 잘 모르는 듯하다. 인종주의자 트럼프에 대한 그의 비판은 분명히 적절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친민주당 계열의 진보 지식인과 미국식 '진보적 자유주의(경제학으로는 네오케인지언)'의 한계도 동시에 드러내고 있으며 세계화와 과잉 시장화, 월가 중심의 금융 주도 축적 체제가 미국에-전세계는 별개로 하고- 어떤 심각한 화(禍)와 불화(不和)를 불러 왔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

러스트 벨트(Rust belt,중서부 공업 쇠락 지역)에서 분노한 저학력 백인 노동자들의 지지가 트럼프 승리의 결정적 요인이 되었다는 소식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힐러리의 마지막 보루였던 미시간 주마저 무너졌다. 1990년대 '신경제' 호황이 끝나면서 무리하게 재구축된 2000년 이후 규제 완화 정책과 금융-부동산 거품 축적 체제가 심화되는 동안, 무려 500만 개 이상의 일자리가 격감했을 정도로 미국 제조업이 붕괴되었다고 한다. 이른바 '제2차 탈산업화' 현상이다. 트럼프는 '메이킹 인 아메리카' 정책으로 이 위기 상황을 반전시키겠다는 약속을 했다.

미국의 이런 변화와 세계화의 균열상은 결코 강 건너 남의 이야기가 아니며 한국에 주는 함의도 매우 크다. 1997년 외환 위기를 전후한 세계화 및 신자유주의 '미국 표준'의 길에 적극적으로 편승했던 지난 정부(개혁, 보수를 통틀어)는 물론, 다시 대권을 도모하고 있는 여러 정치 세력들, 장차 들어설 한국의 신정부도 트럼프의 승리와 지난 번 영국의 브렉시트가 말해주는 심대한 변화의 의미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그저 '국민 성장'이나 '공정 성장' 등과 같은 안이한 말로 답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거꾸로 돌아간 한국 민주주의 시계

목하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새로운 변화는 모양새가 미국과는 크게 다르다. 트럼프가 미국의 새 변화- 뒤틀린 변화-를 이끌 떠오르는 주인공이 됐다면 박근혜는 내려와야 할 주인공, 치욕스런 게이트의 주인공이다. 더 정확히 말해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주권, 민주적 책임 국가의 공공성을 비선(秘線)의 사인(私人)이 사유화하도록, 그 사익 추구를 위해 넘겨 주며 헌정을 유린한 꼭두각시 역할, 그리고 삼성을 비롯해 거대 재벌의 하수인 역할을 하며 서로 뒤얽힌 공모 결탁 관계의 주인공이다.

유신 독재자 아버지 박정희의 명예 회복을 하겠다고 정치에 뛰어든 이래 그의 후광에 절대적으로 힘입고 보수 수구 세력의 등에 업혀 최고 권력자 자리를 '상속' 받다시피한 대한민국 18대 대통령 박근혜, 그는 이미 수차에 걸쳐 국정을 농단했고 국민을 배신한 바 있다. 그러던 그가 오늘처럼 헌정을 유린하고 국가 공공성을 공동화(空洞化)시킨 꼭두각시 권력으로 몰락할 줄이야. 알 만한 자들은 많은 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정도일줄이야. 1987년 체제가 여러 대목에서 심각한 '결손 민주주의'로서 한계를 내장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미 많은 반성적 지적들이 있어 왔다. 그렇다고는 해도 나라가 이렇게 국가 사유화와 정경 유착으로, 박근혜-최순실-재벌 '삼각 동맹'으로 얼룩진 저질 불량 국가로 굴러 떨어질 줄이야. 우리는 언제, 어디서부터 왜, 어떻게 길을 잘못 든 것일까.

대한민국의 박근혜 미스터리는 미국의 트럼프 미스터리에 비해서는 훨씬 알기 쉽다. 우리는 폴 크루그먼처럼 "우리가 모르는 우리나라"라는 글을 쓸 필요는 없겠다. 박근혜 정부 집권 초기였던 것 같다. 누리꾼들 사이에 대한민국의 3대 미스터리에 대한 이야기가 널리 퍼졌다. 박근혜의 창조 경제, 안철수의 새 정치, 그리고 북한 김정은의 속마음이 바로 그것이다. 한 동안 박, 안, 김 세 사람은 모호함 뒤에 숨어 덕을 좀 본 것 같다. 그러나 이제는 그 정체가 거의 다 밝혀졌다. 창조 경제든, 새 정치든, 속마음이든 그것들은 더 이상 미스터리가 아니다. 진짜 풀어야 할 미스터러는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의 7시간이다. 그때 대통령이 청와대 집무실에 출근도 하지 않고 관저에 틀어박혀 뭘 했는지, 어떤 중한 일이 있었길래 막중한 책임을 방기하고 사고를 참사로 번지게 만들었는지, 배가 완전 침몰한 후 7시간만에야 중대본에 나타나 "학생들은 구명조끼를 다 입었다고 하던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라고 생뚱한 말을 했는지 궁금해 한다.

세월호 7시간 미스터리뿐만 아니라 박근혜-최순실이 나라를 어떻게 '창조적으로' 망쳐 놓았는지, 이들에 의한 국가 사유화와 권력 재벌간 정경유착의 실상 및 그 성격에 대해 여전히 풀리지 않은 부분, 논란되고 토론도 해야 할 부분이 많다.

법률적 시각에서 볼 때 검찰이 박근혜를 피의자-피해자가 아니라-로 명시한 것은 일보 진전이다. 하지만 직권 남용 및 강요 죄(53개 대기업 상대로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 설립 출연금 강제 모금 등 6가지 혐의)와 공무상 비밀 누설 죄(정호성과 공범 혐의)만 적용했다. 뇌물 죄는 빠져 있다. 그리고 재벌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공범인 데도, 즉 박근혜가 그간 재벌 하수인 역할을 해왔을 뿐더러 두 재단 설립 및 중요 사건들, 친재벌 정책들에서 재벌이 뇌물을 제공하고 그들의 숙원 사업을 처리해주는 특혜적 정경 유착 공생 관계였음에도 뇌물 공여 죄를 빼놓았음은 물론 모금을 강요당한 '피해자'로 만들어 놓았다.

민변,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에 따르면 박근혜의 피의 사실은 모두 7가지인데, ① 군사 기밀 누설 죄, ② 외교상 기밀 누설 죄, ③ 공무상 비밀 누설 죄, ④ 대통령 기록물 무단 유출 죄, ⑤ 수뢰 죄 또는 (제3자) 뇌물 제공 죄(미르재단, K스포츠재단 설립 행위 등 관련), ⑥ 직권 남용 죄, 강요 죄, 위력에 의한 업무 방해 죄, ⑦ 뇌물 공여 죄 또는 제3자 뇌물 공여 죄, 특별 경제 범죄 가중 처벌 등에 관한 법률(업무상 배임) 위반, 뇌물 수수 죄(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사건 관련) 등을 포함한다.

현행법상 직권 남용과 공무상 비밀 누설 죄는 상식 밖으로 형량이 가볍기 때문에 이후 검찰 수사에서는 뇌물 죄의 적용 여부가 핵심 쟁점이다. 시민 단체들은 이미 박근혜 대통령과 재벌 총수들을 뇌물 죄, 제3자 뇌물 공여 죄로 형사 고발한 상태다. 그리고 국회에서 그간 미루고 있던 대통령 탄핵 절차에 들어 갔는데 탄핵 소추안에는 검찰 공소장과 달리 비선 실세에 의존한 위헌 행위를 우선적으로 명시하고, 직권 남용 및 공무상 기밀 유출뿐만 아니라 제3자 뇌물 죄도 포함시킨다고 알려졌다.

박근혜 정권-강한 국가 혹은 약한 국가?

여기서 나는 국가 사유화의 정치경제(학)이 법률, 법학적 시각을 넘어서야 함을 말하고자 한다. 법률적으로는 뇌물 죄의 죄질을 가장 무겁게 보고 있다. 물론 그것은 그것대로 매우 중요하지만, 비판 사회과학의 관점에서는 공공의 국가가 실질적으로 '비선 국가'가 된 것이 더 중요하다. 즉 위임받은 민주적 책임 권력의 공공성과 공적 시스템이 비선 사인에 의해 실질적으로 사유화된 것, 국민이 위임한 대통령의 헌법적 통치 권한, 내외 주권이 중요 부분 그에게 실질적으로 '이양'되고 그의 사익 도모 수단으로 전락한 것이 중요하다.

박근혜가 최순실의 꼭두각시 역할을 한 것은 법률적으로만 따지면 그가 면책될 수 있는 논리로 이용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에서 실질적으로 국가 자율성과 국가 능력은 유례없이 약화되고 무력화되었다.

재벌들의 약점을 잡아 돈을 뜯어내는 것을 보니 과연 힘이 센가? 하지만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은 비선 실세가 마구잡이로 사익을 챙기는 창구에 불과하다. 또 재벌들이 돈을 뜯긴 것처럼 보이지만 권력은 훨씬 더 큰 특혜로 보답했다(예컨대 박근혜-최순실이 얻은 것과 삼성물산 합병 등 3대 세습에 성공한 삼성이 얻은 것을 비교해 보라). 이 검은 거래는 기업이 입금하면 대통령이 친재벌 담화와 정책들로 응답하는 식이었다. 사실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간 이래 진작에 국가권력은 재벌의 하수인 위치로 전락했다고 봐야 한다.

미래창조과학부를 만들고 민관 합동 창조 경제 추진단을 구성하고 창조경제혁신센터를 굴리고 하는 걸 보면 뭔가 거창하게 '창조적' 산업 정책을 구사하고 있는 것처럼 착각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나 포장만 화려할 뿐이다. 그같은 껍데기 코스프레에 현혹될 일이 아니다. 정작 우리가 시선을 집중해야 할 것은 조선, 해운업 부실 사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정부 산업 정책 및 금융 감독, 국책 은행의 거대한 실패, 정부의 경제 운영 체계 및 기업 지배 구조에서 책임 규율의 총체적 붕괴다. 이것야말로 통탄해야 할 사태가 아닐 수 없다.

약탈적 포획 국가

실제 8.15 해방 이후 현대 한국에서 박근혜 정부만큼 시대 과제에 맞춰 경제 사회 발전 목표를 수립하고 실행하는 능력이 형편없이 취약한, 자율적 능력이 낙제 점수이며 자기 규율이 바닥인 국가가 있었던가. 이 대목에 주목한다면 우리는 박근혜 정부에서 국가는 비선 사인에 의해 사유화된 이른바 '포획 국가(captured state)'로 전락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국가 포획과 그에 따른 국가 실패, 공공적 국가다움의 타락은 매우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그렇지만 한국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 보는 바와 같이 주술적 비선 사인에 의해 무력화된 포획 국가는 희귀한 사례이며, 강력한 자율성을 가진 '약탈 국가(predatory state)'와도 크게 다른 모양새다.

미국의 비판사회학자 피터 에번스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그는 국가의 자율적 능력과 사회 연계성(착근성 (embeddedness)이라고 불린다)을 기준으로 개발 국가와 약탈 국가의 두 유형을 구분한 바 있다. 그의 경우 국가 자율성이란 국가가 사회 내 특수 그룹의 사익에 포획되지 않고 자율적으로 발전을 위한 공적 이익과 목표를 구성하고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이다.

또 착근성이란 국가가 경제 발전의 공동 프로젝트를 공유하는 사회의 특정 집단과 맺는 협력관계다. 에번스는 자율성과 착근성을 모두 가진 '착근된 자율성(embedded autonomy)'의 국가를 개발 국가라 부른다. 반면 약탈 국가는 거의 절대적이라 할 만큼 강력한 자율성을 가지면서 독재자를 중심으로 소수 패거리 집단이 사회와 국민 대중을 약탈적 사익 추구 대상으로 삼고 국가 구조에 내적 일관성도 결여되어 있다. 에번스는 약탈 국가의 전형을 자이르(모부투 지배 시기 콩고)로 들면서 사회 위에 서서 강력한 지배 자율성을 발휘하는 약탈 국가를 달리 '도둑-가산제 국가(klepto-patrimonial state)'라고 부르기도 한다.

에번스가 말하는 '도둑-가산제 국가'는 일견 박근혜 정권 하 한국의 국가와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그의 국가 유형론에는 결함이 있다. 에번스는 개발 국가와 약탈 국가를 너무 이분법적으로 다룬다. 개발 국가 자체 내에 약탈 국가적 요소, 정경 유착의 종양이 존재하고 있음을 간과한다. 이는 그가 개발 국가의 전형으로 파악한 한국에 대한 설명에서 잘 드러난다. 나아가 에번스의 국가론에는 사적 개인이나 대기업을 포함한 이익 집단, 기관들, 세력들에 의한 '국가 포획(state capture)'의 문제 영역이 빠져 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박근혜-게이트'에서 보여주는 한국의 국가는 에번스가 말하는 약탈 국가 모습과도 퍽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 문제의 본질은 강력한 지배 자율성을 가진 자이르식의 약탈 국가 현상은 아니고 오히려 비선 실세의 꼭두각시로 전락할 정도로 약한 국가 자율성에서 빚어진 독특한 국가 포획과 국가 사유화로 보인다. 최순실에 의한 대통령 박근혜와 국가 공공성의 포획은 어떤 말로 분식한다 해도 본질적으로는 최순실의 사익 추구를 위한 포획이다. 그러니까 일종의 '약탈적 포획(predatory capture)'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대한민국에서 우리가 대면하고 있는 국가는 '약탈적 포획 국가'라고 부름직하다.

그렇지만 동아시아의 한국이 아프리카 저개발국 자이르와 갈라지는 또 다른 대목들을 생각해야 한다. 첫째 한국은 민주화 이행 성공, 나아가 절차적 민주주의 공고화 진전 속에서 이런 현상이 일어났으므로 타락한(degenerate) 약탈적 포획 국가라 할 수 있다. 둘째, 한국의 국가 권력은 자이르와 달리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재벌의 성장 성과에 종속되어 있는 가운데 그들과 담합, 결탁 관계에 있다. 우리는 포획 국가의 약탈적 행위만 볼 것이 아니라 재벌의 '지대 추구(rent-seeking)' 행위, 더 나아가 사회 경제에서 재벌 내부 경제와 외부 경제로의 분단 및 전자에 의한 후자의 지배, 수탈을 함께 보아야 한다. 따라서 만약 우리가 박근혜-게이트로 드러난 한국의 국가를 약탈적 포획 국가라고 부른다 해도 이는 이런 내용들을 포괄하는 보다 넓은 의미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왜 법률적 차원을 넘어서는 이런 논의가 중요한 걸까. 이는 오늘 우리들이 마주하고 있는 과제가 범법자의 법적 처벌, 그리고 대통령 선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민주화 이후 거꾸로 간 민주주의의 실제적인 총체적 재구축작업, 모두를 위한 새 민주적 책임 국가로의 개조 작업이기 때문이다. 이는 앞으로 많은 난관들을 통과해야 하는 난제가 아닐 수 없다.

결론 : 투트랙 시민 혁명의 길,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미국에서 떠오르는 주인공이 대통령 트럼프라면 우리의 경우 타오르는 진정한 주인공은 광장의 촛불 시민이다. 미국의 시민 불복종은 곧 사그라질 것같이 보이는 반면(미국 동료 시민들께는 매우 미안한 말인데), 대한민국 광장 시민의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지기는커녕-한층 뜨겁게 타올라 1960년 4월 혁명, 1987년 6월 항쟁에 이어 새로운 시민 혁명으로 나아가고 있는 중이다.

우리는 이제 암덩어리(!), '과거 적폐'(!) 그리고 '나쁜 사람'(!)이라는 말을 권력에 되돌려 주어야 한다. 낡은 권력은 정당성에서는 이미 죽었다. 거짓말과 배신을 식은 죽먹듯이 해온 죽은 권력이 검찰 조사에도 불응하고 버티기 '불법 농성'에 돌입했지만 사방 포위된 이 고립무원 상황이 얼마나 오래갈까. 그러나 죽은 박근혜를 확실히 끌어 내려야 할 뿐더러 박근혜 이후, 박근혜를 떠받쳐 온 뿌리깊은 구체제 기반과 세력들을 갈아 치우고 새로운 나라, 모두를 위한 민주적 책임 공화국과 평화 복지 국가로 가는 길을 준비해야 한다. 보수 기득권 동맹 세력들은 박근혜 이후 그들의 질서를 다시 재구축하기 위해 플랜 B를 추구하고 있다.

광장의 촛불 시민 앞에는 어떤 내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이제 국회에서도 대통령 탄핵 절차에 착수했다. 탄핵 정치와 촛불 집회는 어떻게 상호 작용하게 될까. 촛불 시민은 박근혜 하야는 물론 박근혜 이후 구체제를 발본적으로 갈아엎는 새 나라를 염원하고 있다, 내일의 민주주의, 민주적 평화 복지 국가를 원하는 거리의 광장 정치와 계산기 두드리는 제도 정치의 두 바퀴로 가는, 불안정을 내포한 '투트랙 시민 혁명'의 길은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 올까.

우리는 지난 시기 이미 야권 분열과 제도 정치에 끌려간 시민 사회 운동의 방향 감각 상실로 엄청난 대가를 지불한 바 있다. 또 다시 그 과오를 반복할 것인가. 결코 제도 정치로 해소돼서는 안되는 거리의 광장 정치, 참여-숙의 민주주의의 깃발 아래 국가와 구분되는 자율적 참여 사회의 창조를 지향하는 시민적 진보 정치는 자신의 중심을 확고히 움켜 쥐어야 한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민주공화국이여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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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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