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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해 보니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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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해 보니 이렇습니다

[작은책] 대안적 삶, 사실상 농사만으로 어렵다

우선, 나 자신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농사를 짓겠다고 전남 강진으로 내려온 4년 차 귀농인이다. 전업농은 아니다. 많은 일을 내려놓고 왔으나 배출권거래제 검증심사원, 대학교 외래교수, 환경 컨설턴트 등 다양한 직함을 버리고 오지는 않았다. 다시 이전에 살던 도시로 돌아갈 수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 때문은 아니다. 바로 아이 셋과 부부, 도합 다섯 식구의 생계유지의 무거움 때문이다. 우리 부부는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도시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 도시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도시로부터 떠나 해방감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를 밝히고자 지금 현재 농촌지역에서 살아가는 나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내가 생각하는 농촌에서 살아가기의 가장 큰 장점은 욕구 감소에 따른 상대적인 박탈감의 줄어듦이다. 가난이라고 하는 개념은 원시시대 소유라고 하는 것이 거의 없을 때는 존재조차 하지 않았지만, 경제적으로 풍요해진 이후 시대에 극명하게 존재감을 드러낸다. 즉, 가난이라고 하는 것은 문명의 산물인 것이다.

우리 가족은 서울 마포구 서교동, 흔히들 말하는 홍대 앞에 살았다. 걸어서 10분 정도면 홍대의 번화가에 다다를 수 있었다. 새로운 음식점에 대한 호기심, 화려한 상점에서 보이는 패션, 새로운 트렌드처럼 보이는 카페와 바, 멀티플렉스 영화관, 그리고 무엇보다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소유물은 내면의 욕구를 끌어올렸다. 그리고 필요를 가장한 소비가 뒤이었다.

반면, 강진군은 만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이 30퍼센트대이지만, 면 단위는 70퍼센트에 육박한다. 소비자가 노인들인 이상 읍내에서 가장 많은 것은 병원과 약국이요, 거리를 걸어 보면 소비에 대한 욕구를 일으키는 새로운 것은 거의 없다. 5일장 이른 아침이면 갓 잡은 생선, 조개와 같은 싱싱하고 풍성한 해산물이 거의 유일한 필요를 넘어선 욕구의 대상이다. 필요보다 많이 구매해 저장해 놓거나 나누어 먹는다. 지역 환경에 적응이라고 할까? 때론 싱싱한 생선을 요리만 해서 먹기가 아까워 회칼 세트를 구매해 자연산 생선회와 초밥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저렴한 비용으로 고급 식문화를 향유하고 있으니, 필요 이상의 욕구가 나쁜 것만은 아니다.

필요 이상의 소비 유혹이 없는데다가, 농사짓고 있는 고추·마늘·깨·고구마·땅콩·미니 단호박 그리고 텃밭에서 나는 채소류와 콩·옥수수·토마토 등 자급하는 농산물 역시 지출 감소의 한 축이다. 욕구가 자연스럽게 감소하고 자급하는 것들이 늘어나면서 돈 씀씀이와 상대적인 박탈감은 자연스럽게 줄었다. 나아가 어린아이들을 양육하는 입장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마당과 집, 탐험과 발견이 가능한 뒷산과 들녘은 우리가 도시의 화려함을 부러워하지 않는 가장 중요한 이유다. 시간 날 때마다 아이들과 계절별로 다른 숲의 모습을 관찰하거나 주변의 자연과 함께 느릿느릿 길을 걸으면, 도시에서 주말이면 쉴 곳을 찾아서 여행을 떠나거나 그마저도 안 되면 외식이라도 하고자 했던 욕구가 줄어들었다.

ⓒ한국임업진흥원

개인별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농촌 생활의 또 다른 즐거움은 '생산'하는 것이다. 농사는 사무직 노동에 비해 위험하거나 혹은 지겨운 노동의 연속이라서 가끔 품앗이라도 할라 치면 '모닝 맥주'나 거나한 낮술을 제외하고는 나에게 즐거움은 별로 없었다. 반면, 농촌 생활에서는 누구나 스스로 만드는 DIY의 달인이 되어야 한다. 인건비가 비싸고 인력을 구하기 어려운 현실에 적응해서 직접 많은 것들을 짓기도 하고 만들어야 한다. 나도 처음에는 개집과 같은 간단한 것들부터 시작해서 닭장·창고·생태화장실 등 난이도 높은 건축물을 지었고, 적정기술을 활용한 난로와 화덕 만들기, 더 나아가 시골집을 고치고 소규모 신축까지 시도하게 되었다. 무엇이든 자기가 직접 배우고 하는 것이 재미있는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잘할 수 없기 때문에 배우는 과정이 필요하다. 주변에 일을 도우며 배우기도 하고, 유튜브와 인터넷 정보로 배우기도 한다. 나도 귀농 준비 과정의 일환으로 서울에서 목공을 배웠고, 나무 다루기를 하다 보니 집안의 의자·테이블·책장·화장대 등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이렇듯 스스로 무언가를 만드는 생산 활동을 통한 보람 역시 농촌 생활을 향유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요소라 생각한다.

그러나, 언급한 농촌 생활의 장점은 하나 마나 한 이야기다. 다들 알고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많은 이들이 농촌에서 삶을 꿈꾸는 것도 대부분 비슷한 이유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점이다. 귀농이든, 혹은 귀촌이든 농촌 지역에서 삶을 꿈꾸지만 이것을 가로막고 있는 현실이다. 농사로 생계유지가 가능할지 불확실하다는 점, 전혀 새로운 환경에 적응 가능 여부, 귀농을 하고 싶지만 원하는 장소를 찾지 못하는 것 등이다. 그런 면에서 나와 주변의 귀농인들의 경험에 대한 이야기가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귀농 교육에서 '소규모 농가 평균소득 800만 원' 통계를 접했다. 처음에는 통계 결과에 의심을 했다. 원재료비를 제외한 순소득이 아니라 총소득이라서 더더욱 믿기 어려웠다. 작년에 심었던 400여 평 마늘 농사 300만 원, 동일 면적에 고추와 깨, 땅콩으로 200여만 원 소득이 우리 집 농사소득의 전부이다. 미니 밤호박 농사의 경우 200평에 유기농을 시도해 보겠다고 했다가 식구들 먹을 것조차 생산하지 못하고 폭삭 망했다. 그나마 마늘은 올해 작황과 가격이 괜찮아서 그 정도다. 600평 작은 면적에 기계라고는 경운기가 전부이고, 초보에 전업농이 아니라서 분명 어폐가 있다. 그러나 마늘·고추·깨·땅콩은 평생 농사지어 오신 전업농 장모님의 '관리'와 '참여'가 이뤄진 결과이다. 그나마 주변 친지들에게 인심 쓰고 자급으로 지출이 줄어든 부분을 감안한다면, 실제 소득은 더 늘어날 수 있겠지만 일상적인 농사 소득은 분명한 한계가 있다.

▲ 2009년(위)에도, 2013년(아래)에도, 심지어 지난해에도 농민들은 '개 사료만도 못한 쌀값'이라며, 정부에 쌀값 보장 대책을 촉구했다. ⓒ프레시안

작년 뉴스를 찾아보니, 쌀값이 이전 해보다 1만 원 이상 폭락했다는 기사와 '쌀값이 개 사료보다 싸다니'라고 쓰인 플래카드 사진이 함께 실렸다. 올해 쌀값은 절망적이다. 강진 농민회장 말씀을 빌리자면 "거짓말 조금 보태 작년 반값이다". 그나마 낫다는 과수 농부는 귀농인들이 늘어나면서 해마다 약 5퍼센트 정도 경작 면적이 늘어나고 있는 까닭에 가격이 점차 하락하고 있다고 전했다. 동네 어르신 표현으로 '땅에서 나는 건 다 싸다'는 말씀을 실제 체감하고 있다. 농사로 생계유지가 어렵다는 표현은 한국의 농촌을 가장 잘 설명해 주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혼자나 부부만 있는 경우 그나마 농사로 먹고사는 주변 사람들이 있지만, 아이들이 있는 주변 귀농인들 대부분이 건축 공사장, 축사와 양식장, 산림 간벌 현장 등의 일용직 노동자로서 일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농사만으로 안정적인 수입을 유지하는 경우는 2만 평 이상 대규모 농사를 짓거나, 일정 규모 이상의 소·돼지·오리 등 축산 농가, 혹은 대규모 비닐하우스 등 시설 농가의 경우에 한한다.

부부 중 한 명이 지역 공무원 혹은 안정적인 일자리의 노동자로서 수입이 있으면 전업농이라고 해도 크게 부담이 없다. 최근 귀농한 지인의 경우 도시 사무직 엄마가 생계를 책임지고 농촌에서 아버지와 10대 아들들이 함께 농사를 짓는 주말 부부이다. 안타깝지만 작금의 농촌 체제에서는 농사 외에 생계유지 수단 보유가 귀농의 가장 첫 번째 요건이 되어 버렸다. 혹은 대규모 시설을 갖출 수 있는 자금을 보유하던지. 놀랍지 않은가? 뭔가 대안적인 삶을 살고 싶어서 한적한 시골에서 삶을 생각하고 있는데, 안정적인 수입 또는 대규모 통장 잔고 없이는 '귀농 불가능'의 시대라는 점이.

소비를 최소화하고 검소하게 살면, 농사 말고 따로 생계수단이 필요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강진 옆에 위치한 장흥군 어느 마을에는 수도와 전기도 없이 살아가는 가족이 있다. 그런 존재는 현실에서 천금처럼 소중하다. 다만,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동시대에 어느 정도 존재하는 상대적 박탈감을 인지하고, 본인이 육체적 불편함을 이겨 낼 수 있는 지적 유희 단계의 심오한 정신력을 보유하고 있는지에 대해 자문해 볼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옆 동네 청년농사공동체 구성원은 대부분 싱글이면서 생협에 납품하는 등 재미와 노동을 함께해 왔지만 최근에는 농사를 줄이고 가공 등 돈벌이에 대해 고민 중이라고 한다. 생계유지 부담이 적은 싱글조차 농사의 지속 가능성에 의구심을 갖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제 이야기를 정리해야겠다. 오늘날 농촌에서 삶이 주는 유무형의 혜택은 만족감이 꽤나 크다. 하지만, 그러한 대안적인 삶은 사실상 농사만으로 유지되기 어려운 현실을 직시해야 할 것 같다. 그러한 사유는 위에서 언급하지 못한 세계 곡물 시장, 국가정책 등 이면의 거대하고 복잡한 세계로부터 기인한 것이다. 농촌을 황폐화시킨 그 세계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이 자리에서 온전하게 서 있을 수 있어야 한다. 써 놓고 보니 정말 하나 마나 한 이야기를 한 것 같다. 아직 나도 그 황폐한 곳 위에 있으면서 방향을 못 잡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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