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사회의 격동은 우리 역사에서 또 한번의 시민혁명이 진행되고 있다는 실감을 전해준다. 지난 토요일 서울 도심에 백만명의 시민들이 광장에 운집하여 촛불 파도로 장관을 연출했으며, 대통령 퇴진을 외치는 함성이 광화문 광장을 넘어 북악산에 메아리쳤다. 거리 곳곳에서 행진하는 시민들은 서로 마주보며 환호하고 자유 발언이 속출하는 토론회가 여기저기서 열렸다. 이 대규모의 촛불집회의 목적은 헌정을 유린한 위정자들을 규탄하고 위기에 빠진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지만 시민문화 속에 응축된 에너지가 분출하는 축제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같은 혁명적 사태를 촉발한 일차 원인은 박근혜대통령과 그 측근들이 저지른 권력의 사유화다. 최순실을 비롯한 비선 측근들이 연설문 수정만이 아니라 중요한 국정을 농단해왔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들의 범법행위가 단죄되고 대통령 자신도 퇴진 요구에 직면해 있다. 국민들이 분노하고 허탈해하는 것은 실정도 실정이거니와 자신의 손으로 선출한 대통령이 터무니없을 정도의 국기문란을 일상적으로 저질러 왔다는 사실 때문이다. 정권 퇴진 운동은 과거 독재 정권 하에서도 빈발했다. 그러나 이번 경우처럼 대통령의 행태가 대다수 국민들의 감정 구조까지 뒤흔든 적은 없었다.
검찰 수사와 앞으로 있을 특검 및 국정조사를 통해서 그 위법 행위가 낱낱이 밝혀져야 할 것이고 대통령은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대통령으로서의 권위를 상실하고 판단력에 심각한 불신을 받는 사람에게 군통수를 비롯한 국가의 안위를 맡길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광장에 모인 백만의 함성에도 불구하고, 야당과 시민사회 그리고 일부 여당까지 포함한 정치권의 퇴진 요구에도 불구하고, 현재로서는 대통령은 스스로 물러날 뜻이 없어 보인다. 따라서 정치권에서 구상하고 있는 '질서 있는 퇴진'은 대통령의 하야선언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당장의 해법이 될 수 없다. 현재의 정치 여건에서 당장 강제로 끌어내릴 방도가 없다면 가능한 방법은 탄핵밖에 없다.
그럼에도 야당은 탄핵을 추진하는 경우 시간적 지연, 헌재에서 부결될 가능성, 현 각료진의 유지, 여론의 역풍에 대한 우려 등을 들어 유보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이같은 미온적인 태도는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탄핵할 테면 해보라는 식의 여당 일부와 청와대의 버티기와 병립한다. 그러나 어떤 정치공학적인 고려도 통치자격을 상실한 대통령의 직무는 정지시켜야 한다는 원칙을 넘어설 수는 없다. 대통령이 저지른 일은 우리 헌법의 정신에 따라 탄핵의 대상이 되어야 마땅하다. 자진 퇴진을 거부하는 이상 정치권은 즉각 탄핵소추에 돌입해야 할 것이다.
더 본질적인 것은 시민혁명의 모습으로 대두하고 있는 이 사회적인 힘이 어떻게 출구를 찾고 민주주의에 대한 민중의 열망을 현실정치에서 구현해낼 수 있는가의 문제다. 당장에는 진상을 규명하고 이 국정 혼란을 수습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 우선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동시에 눈감아서는 안 되는 사실은 그간의 보수 집권세력의 실정과 오만, 민주주의 퇴행, 부패와 기득권구조의 공고화로 인해 민중들의 고통이 극에 달한 현실이 촛불집회의 밑바탕에 깔려 있다는 것이다. 변화를 요구하는 흐름의 징후는 지난 총선 당시 무력하고 분열된 야당에게 뜻밖의 승리를 안겨준 민의로 드러났다. 이번 사태에 대한 언론의 폭로가 대중의 정서에 불을 지른 저변에도 바로 이 변화의 흐름이 깔려 있다. 시민들의 이번 대규모 촛불시위는 '헬조선'으로 상징되는 경제적 불평등과 노동탄압 등 민중의 생활상의 요구와 결합되어 있는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자격없는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리는 것이 시급한 과제이고, 최순실 무리의 행태 자체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오늘의 시민혁명 흐름이 대통령이 하야하거나 탄핵소추되거나 혹은 2선으로 물러나는 것으로 종식되어서도 안되고 그러지도 않을 것이다. 어떤 점에서 이번의 시민혁명은 한국 역사에서 삼세번의 기회로 다가오고 있다. 즉 현대사에서 시민의 직접참여는 1960년의 4월 혁명을 낳았고 1987년의 6월 혁명을 거치면서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에 획을 그었다. 역사상 시민혁명을 야기한 민중적 요구는 동일하다.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의 바탕 위에 경제적 평등과 정의를 실현하고, 민주주의를 근본에서 위협하고 있는 분단체제를 극복하는 것이다.
4월 혁명은 학생들의 주도로 이승만 독재정권을 무너뜨리는 데는 성공했으나, 그 혁명을 실천하는 데 미온적인 보수정권을 낳았고 곧이어 군부쿠데타로 그 이념자체가 부정당하였다. 6월 혁명은 군부독재를 종식시키고 문민정부 탄생의 기틀을 세웠으며 형식적 민주주의의 일정한 진전을 이루었다. 그러나 소위 '87년 체제'는 애초 군부 기득권세력과의 타협을 통해 구축되었던만큼 늘 불안요소를 안고 있었다. 결국 분단체제에 기생하는 세력이 연속 집권하기에 이르면서 민주주의는 퇴행을 겪고 기득권 구조는 더욱 공고해지는 결과를 빚은 것이다.
2016년 11월 우리 사회는 세 번째의 시민혁명이 움트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유신독재의 시기에 영부인 역할을 했던 박근혜 대통령의 추락은 지금도 남아 있는 유신체제의 잔재와 적폐를 청산할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아울러 박정희 이래로 부추겨지고 왜곡되어온 영호남 대립구도를 통한 패권주의도 변화의 전기를 맞이할 수도 있다. 앞으로 시민들의 변화욕구가 어떻게 분출될지 아직은 미지수이지만, 이제 우리 사회는 지금까지의 미완의 시민혁명을 한단계 진전시킬 수 있는 중요한 변곡점에 서 있는 것이다.
60년대 시인 김수영은 4월 혁명이 일어난 한 달 후 쓴 시 <기도>에서, 뱀이나 쐐기나 쥐나 살쾡이가 득세하는 정글과 같은 사회 속에서 "이번에는 우리가 배암이 되고 쐐기가 되더라도/ 이번에는 우리가 쥐가 되고 살쾡이가 되고 진드기가 되더라도" "시를 쓰는 마음으로/ 꽃을 꺾는 마음으로" "우리가 찾은 혁명을 마지막까지 이룩하자"고 기원하였다. 현실 속에서 혁명은 그만큼 난관을 겪게 마련이지만, 시민으로서의 순수한 마음으로 스스로를 대면하면서 나아가자는 것이다. 김수영은 이후 혁명의 배신을 목격하면서 소시민이 되어가는 스스로를 자성하는 빼어난 시들을 썼다. 이제 50여년의 세월을 넘어서 우리는 다시 시민으로서의 위엄과 지혜에 바탕을 두고 우리 사회의 미래를 열어나가야 할 순간에 직면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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