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시대이다. 과거의 권력은 죽었다. 하지만 새로운 권력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20일이 넘게 청와대와 정부는 아무 일도 못 했다. 대통령의 거짓 사과로 민심의 분노는 더욱 커졌다.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5%로 곤두박질쳤다. 광화문 광장에서 100만 명이 '대통령 하야'를 외쳤다. 사퇴와 탄핵을 요구하는 여론이 60%를 넘는다. 성난 파도가 세상을 삼킬 기세이다.
혼란의 시대에 시간이 불연속적이다. 민심은 불길처럼 타오른다. 이제 거국중립내각도 2선 후퇴도 모두 부질없는 옛 이야기가 되었다. 연일 드러나는 진실이 역사의 방향을 바꾸었다. 박근혜 게이트가 드러나면서 대통령 퇴진의 정당성이 커지고 있다. 국가 기밀 누설죄, 군사 기밀 누설죄, 뇌물죄가 분명해졌다. 대통령 구속 수사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최순실의 꼭두각시가 된 박근혜 대통령에게서 국민의 마음이 떠났다. 도덕적, 정치적 권위를 잃어버린 대통령은 사실상 국민의 탄핵을 받았다.
11월 항쟁, 왜 시민들이 일어났는가?
4.19 혁명은 고등학생이 터트렸고, 6월 민주화 운동은 대학생이 이끌었다. 2016년 11월 항쟁은 남녀노소 온 국민이 참여하는 거국적 시민 혁명이다. TV조선과 JTBC의 특종 폭로가 방아쇠를 당겼지만 국민의 참여가 없다면 혁명적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 수많은 국민이 항쟁에 나선 것은 단순히 권력형 비리만 아니라 계속되는 분노와 고통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다. 국정원의 선거 개입, 국정 교과서, 한일 위안부 합의로 민주주의가 위기에 직면했다. 세월호 참사, 사드 배치, 개성 공단 폐쇄로 국민의 안전이 무너졌다. 경제 민주화와 복지 공약 파기, 대학의 기업화, 노동 개악, 농업 파탄, 사회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로 국민의 생존권이 벼랑 끝에 섰다.
박근혜 게이트의 가장 큰 원인은 대통령 자신이다. 대통령이 퇴진해야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 대통령의 행동이 정치학의 대상이 아니라 정신의학의 대상이 되는 현실을 방치할 수 없다. 최순실의 국정 농단은 대통령이 얼마나 한심한 바보인지 그대로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는 바보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대통령의 무능과 비리를 덮어두고 국민을 속인 새누리당과 보수 언론, 정경유착의 공범인 재벌, 부정입학을 허용한 대학, 비리를 은폐하고 축소한 관료와 검찰도 함께 문책해야 한다. 지금 99%의 국민은 한국을 지배하는 최상위 1%의 뻔뻔한 비리에 분노하고 있다.
대통령 퇴진과 과도 정부 구성
그러나 현재 박 대통령은 끝까지 물러나지 않을 태세다. 자신이 하야한 후 구속 수사가 두렵기 때문이다. 이렇게 대통령이 버틴다면 한국은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질 수 있다. 안타깝게도 국정 위기를 해결해야 할 정치권조차 합의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여당인 새누리당의 자중지란은 극에 달하고 있다. 야당의 목소리도 제각각이다. 시민사회의 목소리도 하나로 모이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정치적 혼란을 해결한 주체는 국회 다수세력인 야당이다. 야당은 대통령에게 즉각 국회로 권력을 이양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야3당은 공동으로 과도정부를 구성해야 한다. 과도 정부는 대통령의 법률적 퇴진과 대선에 관한 정치 일정을 확정해야 한다. 다른 한편 국회에서 특검을 임명하고 대통령의 권력형 비리를 철저하게 수사해야 한다.
대통령의 퇴진이 헌정 중단을 일으킬 것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이미 헌정 중단 상황이다. 대통령 퇴진과 과도정부 구성이야말로 헌정 중단을 막을 수 있다. 4.19 혁명 직후 허정 과도 정부는 이승만 하야와 제2공화국 출범의 이행기에 국정을 이끌었다. 1987년 6월 민주화 운동 이후 국회에 개헌 특위가 구성되어 새로운 정부가 출범되었다. 만약 대통령이 권력을 놓지 않았다면 더 큰 유혈 참극이 일어났을 것이다. 지금 국민의 뜻을 받들어 대통령은 가능한 한 빨리 퇴진해야 한다. 철저한 수사를 받은 후 대통령이 국민의 용서를 구한다면 새로운 정부가 사면을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 혁명의 성공을 위해
한국의 11월 항쟁은 역사의 길 위에 있다. 고대 중국의 무왕은 은나라 폭군 주왕을 죽이고 주나라를 세웠다. 맹자는 자격이 없는 폭군을 쫓아내는 '역성 혁명'을 역설했다. 영국의 찰스 1세를 처형한 크롬웰의 의회군은 공화국을 세웠다. 존 로크는 부당한 권력에 반대하는 '저항권’을 주장했다. 미국 혁명을 주도한 토머스 제퍼슨은 "불의가 법이 될때 저항은 의무가 된다"고 말했다. 프랑스의 루이 16세를 단두대(기요틴)에 보낸 프랑스 혁명가들은 민주주의의 물꼬를 트고 세계사를 바꾸었다. 로베스피에르는 "주권은 민중에게 있다...민중이 원한다면 정부를 바꿀 수 있고 대리인을 해산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시민 혁명을 주도하는 세력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이라도 야당은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해야 한다. 야당과 시민사회는 '비상 시국 회의'를 결성하고 무혈 명예혁명이 성공하도록 정치적 지혜를 모아야 한다. 대선을 넘어 헌법 개혁, 선거법 개혁, 사회 개혁, 국가 개혁의 새로운 길을 열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4.19 혁명, 6월 민주화 운동의 뒤를 이어 민주 공화국을 완성할 시기이다. 11월 12일 세종로에 등장한 단두대가 왕의 목을 치는 대신 과거와 단절하는 정치 혁명의 상징이 되기 바라는 사람은 나 혼자만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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