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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트럼프보다 끔찍한 양극화가 더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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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트럼프보다 끔찍한 양극화가 더 싫었다

들끓는 분노, 미국을 집어삼키다…정치 혼란 불가피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의 새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세계가 '불확실성의 충격'에 빠졌다. "브렉시트의 5배가 넘는 충격"을 보여주겠다던 그의 말은 현실이 됐다.

왜 미국인들은 전세계가 혐오하는 탐욕스런 부동산 재벌, 최소 12명 이상의 여성을 성추행한 파렴치한을 대통령으로 뽑았을까?

트럼프의 승리는 극심한 양극화와 기득권 정치에 신물을 낸 미국 유권자들의 반란이자, 신자유주의 30년의 지축을 흔든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전세계가 농담 취급했던, 혹은 악몽이라고 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이제 현실이다. 미국은 물론 세계가 당면한 이 부조리극이 몰고올 파장은 예측불허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 ⓒAP=연합뉴스

분노의 민심, 전세계가 격랑에 휘말렸다

트럼프는 급속하게 변화하는 세계의 징표가 됐다. 이미 미국과 세계의 지각 변동은 대서양 건너 영국에서 전조를 보였다. 지난 6월 브렉시트 찬반 투표에서 영국인들은 유럽연합을 떠나기로 결정했다. 미국과 영국이 30년을 이끌어 온 신자유주의 체제의 근간이 무너진 사건이었다.

노동과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이 번영을 가져다 준다는 믿음이 진작 깨져있었다. 경제적 성장이 골고루 분배되기는커녕 '떡고물 효과'도 내지 못한다는 걸 절실히 체감하고 있었다.

전세계가 영국의 '비상식적인' 결정을 비난했지만, 영국인들은 자기 삶의 위기를 반영한 상식적인 투표를 한 것이다. 영국과 유럽을 휩쓸고 있는 극우 포퓰리즘의 창궐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미국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2008년 금융위기 때 수백만의 중산층 백인이 몰락했다. 바닥을 찍은 경제가 외형적으로 살아나는 듯 보였지만 성장의 과실은 다시 부유층에 독점됐다. 미국의 빈부 격차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증가했지만, 미국 정규직 남성들의 소득은 40년 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소득 최하위 구간 계층의 실질임금은 60년 전 수준으로 떨어졌다. 2012년 월가 점령 시위로 미국인들의 분노는 이미 일단을 드러낸 바 있다.

트럼프가 불황의 피해를 고스란히 입은 백인 저소득층, 제조업 노동자들의 경제적 박탈감에 불을 지르고 인종 문제를 뒤섞었다. "이민자들이 미국인들의 일자리를 빼앗는다"면서 이민자 제한, FTA 반대를 선언했다. 자유무역에 대한 미국 주류의 신념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그는 "1100만 명에 달하는 불법 이민자들을 추방해야 한다"고도 했다. 백인 우월주의를 자극해 그들의 분노를 부추기는 전략을 구사했다.

민주당에선 버니 샌더스가 불평등에 대한 분노를 배경으로 아웃사이더 돌풍을 일으켰다. 그는 "무너진 중산층을 살리자"고 했다. 현실의 벽 앞에 좌절한 젊은층, 몰락한 중산층이 샌더스에 열광했다. 트럼프 현상과 샌더스 현상은 동일한 토양에 뿌리를 두었던 셈이다.

하지만 트럼프와 샌더스는 달랐다. 샌더스가 월가 규제, 최저임금 2배 인상, 공립대학 등록금 무상화, 국민 건강보험 도입 등 해법을 모색했다면, 트럼프는 기득권에 대한 분노를 부추기는 데 집중했다.

트럼프의 공약은 지지층의 이익을 배신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게 감세다. 상속세 폐지, 법인세 감축, 소득세 간소화 등이 골자다. 한마디로 '부자 감세'다. 트럼프는 이를 "레이건 정부 이후 최대 규모가 될 세제 혁명"이라고 했다. 대기업을 위한 규제 완화도 내놓았다.

이런 트럼프의 모순된 정책에도 불구하고 자유무역에 대한 불신, 극심한 양극화가 몰고 온 삶의 질 저하에 미국인들은 결국 트럼프의 손을 들었다.

힐러리 클린턴은 '부자 증세' 등 일부 진보적 의제로 맞불을 놓았지만, 주류 중의 주류인 그는 결국 미국인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양극화에 신음하는 미국 중하층의 반란. 이 분노의 경제학이 미국과 전세계를 격변의 시대로 몰아넣었다.

경제의 몰락 방관한 엘리트 정치의 붕괴

어느나라나 경제적 양극화는 정치의 붕괴를 동반한다. 미국인들은 워싱턴 엘리트 정치와 월가의 '큰손' 등 기득권 집단에 치를 떨었다.

분노에 차오른 민심을 간파한 트럼프에게 온실에서 자란 공화당의 '도련님'들은 적수가 되지 못했다. 부시 가문의 잽 부시를 비롯해 마르코 루비오, 테드 크루즈, 크리스 크리스티, 존 케이식 등 16명의 공화당 대선후보들이 맥없이 나가떨어졌다.

이 관성화된 엘리트 정치인들, 우경화된 미국 정치의 산물들은 리얼리티 쇼에서 갈고닦은 트럼프의 입담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트럼프는 이들을 "무기력하다", "바보같다"는 식의 변방 언어로 일거에 제압했다.

이념적으로도 오히려 트럼프가 공화당 주자들 가운데 가장 중도적인 후보로 분류됐다. 이는 2000년대 이후 티파티 운동으로 우경화의 한 길을 걸어온 공화당 주류가 미국 중하류층의 정서와 얼마나 괴리되어 있는지를 드러냈다.

결국 지난해 6월 트럼프의 대선 출마 선언을 농담 취급했던 공화당은 유서깊은 '에이브러험 링컨의 당'의 대선 후보로 트럼프가 선출되자 패닉에 빠졌다. 그러나 공화당을 쑥대밭으로 만든 트럼프는 대선후보라는 날개를 달고 워싱턴 정치의 중심부에 도전했다.

사실 샌더스에 비하면 클린턴은 시대흐름과 동떨어진 약체였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대로, 그는 월가의 장학생이자 엘리트 정치를 상징했다. 여기에 비밀주의, 측근 정치 스타일로 트럼프 못지 않은 비호감도와 낮은 신뢰도를 보였다.

그럼에도 미국 주류는 일찌감치 클린턴 대통령 만들기에 올인했다. 공화당에서도 트럼프를 버리고 클린턴을 지지하는 선언이 이어졌다. 워싱턴포스트, 뉴욕타임스, CNN 등 주류 언론들은 '트럼프 당선은 곧 미국의 몰락'이란 메시지를 반복해서 주입했다.

선거전은 '주류 동맹 대 개인 트럼프'의 대결로 진행됐다. 정책 대결 대신, 트럼프는 장끼인 막말로 혼탁한 선거전을 이끌었다. 10월 들어선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주류 언론들이 트럼프가 과거 성추행 혐의를 집중 보도했다.

클린턴은 차분하고 냉정한 이미지로 차별화를 꾀했지만, 선거 막판 FBI가 '이메일 사건 재수사' 방침을 밝혀 그에게 폭탄을 떨어뜨렸다.

결국 미국인들은 '사악하고 믿을 수 없는' 클린턴보다 '도덕적 만신창이'인 트럼프를 선택했다. 그릇된 방향일지언정, 미국인들의 진짜 불만에 다가간 트럼프의 승리다.

이 아웃사이더의 반란에 워싱턴 정치는 '그라운드 제로'에 섰다. 전세계적으로도 일대 정치적 혼란과 격변이 불가피해졌다.

그러나 트럼프가 올라탄 미국과 세계의 정치, 경제적 균열은 트럼프에게도 부메랑이 될 수 있다. 그는 부자 감세는 물론 '오바마 케어' 등 국민의료보험 정책에도 비판적이다. 과연 0.1% 재벌 출신인 트럼프가 99.9% 평범한 미국인들의 이해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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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구

2001년에 입사한 첫 직장 프레시안에 뼈를 묻는 중입니다. 국회와 청와대를 전전하며 정치팀을 주로 담당했습니다. 잠시 편집국장도 했습니다. 2015년 협동조합팀에서 일했고 현재 국제한반도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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