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혁명은 정치협상 하지 않는다
지난 5일 서울의 광화문을 가득 채운 국민이 요구한 것은 단 하나, '박근혜는 물러나라'였습니다. '뒷감당을 어떻게 하느냐?'는 것은 더 이상 질문이 되지 않았습니다. '탄핵이요, 2선 후퇴요, 책임총리요, 분권제 대통령이요, 중립내각이요' 따위는 국민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그게 어떤 방식이든 '박근혜'가 대통령의 자리에 있는 한, 나라는 계속 망가질 뿐이라는 것을 천하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명백한 것은 '박근혜 이후'를 준비하는 일입니다. 박근혜는 국민의 마음속에서 이미 퇴출되었습니다. 남은 것은 사퇴 발표와 이를 이행하는 절차뿐입니다. 들 사람 야인(野人)으로 돌아간다는 '하야(下野)'라는 품격 있고 우아한 말도 그에게는 분에 넘치게 되었습니다. 국정 유린의 중죄로 당장 체포당하지 않으면, 그야말로 다행인 처지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도 아직 수를 쓰면, 자리를 보존할 수 있다고 믿는 모양인지 이런저런 궁리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이런 판국에 국민은 야당과 야당 지도자가 미덥지 못해 다른 한편에서 박근혜에게 갖는 것과는 다른 우려와 분노를 키우고 있습니다. 정당은 국민을 대신하는 수권 조직입니다. 그런데 대통령 퇴진 이후를 어떻게 감당할지 몰라 쩔쩔매고 좌고우면하고, 이런저런 조건을 내걸어 정치 협상을 시도하고, 정세 변화 눈치만 보고 있습니다. 국민이 '박근혜 퇴진' 이후에 생길 수도 있는 복잡한 상황을 몰라서 이러는 것은 결코 아닌데 말입니다.
책임 있는 정당과 신중한 지도자는 민심이 '박근혜 퇴진'을 요구한다고, 그대로 주장할 수 없다는 가당치 않은 논리를 세웁니다. 그 말은 국민을 멸시하는 말입니다. '박근혜 퇴진'을 노도(怒濤)와 같이 요구하는 국민들이 그렇다면 책임감도 없고 신중하지도 못하다는 말인가요? 지난 역사를 통해 국민들은 지금 확고한 결심을 했습니다. "이런 식의 국정문란과 민주주의 파괴는 더는 용납할 수 없다. 그다음에 올 일을 우리는 능히 감당해나가겠다. 우리에게는 그럴만한 역량이 충분히 있다. 이건 시민 혁명이다"라고 말입니다.
시민 혁명은 역사적으로 해체해야 할 상대와 정치 협상을 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들을 지배할 뿐입니다. 이것이 민주 공화국의 질서입니다.
야당과 문재인에게 던지는 질문 하나
박근혜 퇴진을 당론으로 세우지 못한 제1야당 민주당과 국민의당에게 질문 하나를 던져봅니다. 민심의 현장과 결합을 아직도 주저하고 있는 대선후보 선두 주자인 문재인 민주당 전 대표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박근혜가 저 자리에 단 하루라도 더 있어야 할 이유가 한 개라도 있다면, 즉시 답해주길 바랍니다. 있나요? 아니죠? 퇴진까지는 아니니까 '국정에서 손 떼라느니, 2선 후퇴요, 책임총리요, 거국중립내각이요, 영수회담이요' 하는 기만책을 주장하거나 용납하는 순간, 역사의 죄인은 따로 없다는 것을 분명히 말해둡니다. 이런 주장은 모두 국정 유린 중범죄자에게 '조건이 맞으면 일정하게 힘을 빼겠지만, 자리 보존 쪽으로 봐주겠다'는 논리 아닌가요? 그래서 무엇을 기대하고 있나요?
국민 알기를 우습게 아는 건 아니겠죠? 더 보고 말고 할 게 아직 남아 있나요? 게다가 이 시국에 '책임총리법안'을 낸 정신 나간 자들은 대체 누구며, 또 뭔가요? 지금 뭣이 중헌데?
'박근혜 파면'이 시작입니다. 뒷일을 감당하는 건 '박근혜 퇴진' 즉시 폭포수처럼 터져 나올 국민적 지혜이니,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국민의 힘을 가볍게 보거나, 자신들보다 식견이 부족하다거나, 신중하지 못하다고 보거나 또는 위태롭다고 생각하지 않을 거죠?
국민의 힘을 믿고 가는 지도자
"존경하고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이라고 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목소리는 6.10 민주항쟁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부디 망각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그 어떤 독재와 반민주적 현실에 굴복한 적이 없는 국민입니다. 한없이 쏟아져 나오는 거리의 시민을 보면서 3.1 독립운동의 기세를 떠올렸습니다. 모두가 떨쳐 일어선 것입니다. 그 힘이 우리의 역사를 버텨왔고, 헌법을 만들었으며, 민주주의의 성장을 일궜습니다. 정치가 정치인만의 전유물이라는 착각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국민의 힘을 믿고 가는 지도자와 국민을 믿지 못하고 정치적 이해를 계산하는 지도자, 이 두 유형의 차이는 중대합니다. 국민의 힘을 믿고 가는 지도자는 새로운 정세 창출에 기여합니다. 국민을 믿지 못하는 지도자는 전리품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기회주의입니다.
국민은 위기의 시대에 참 지도자가 누구인지 주목합니다. 지도자만이 아니라 세력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것은 바로 이 뜻입니다. 혁명의 시대는 쭉정이와 진짜를 가려냅니다.
민심을 하늘처럼 여기고, 그 민심과 하나 되어 앞으로 가는 이가 미래를 이끌 것입니다. '민심은 알겠다'고 하면서 전적으로 그와 함께하지 않은 이는 민심의 요구를 '사실은 위험하다'고 여기는 자들입니다. 우리 내부에 정작 위험한 자들이 바로 이들입니다. 새로운 시대로 가는 격랑을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적당한 거래로 민주주의의 적을 기사회생시켜 민심의 배를 좌초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느끼는 또 다른 우려와 분노는 바로 이것입니다. 그런 일을 벌인 자는 공공의 적이 되고 말 겁니다.
우리가 헌법이다
결국 더 거센 파도가 몰아쳐야 합니다. 그 압도적인 힘 앞에서 다른 마음을 먹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이와 함께 새누리당은 침몰해야 합니다. 본질적으로 다음 대선에 참여할 권리가 없습니다. 그간의 죄를 어떻게 씻을 수 있나요? 남은 것은 정권을 야당에게 이양하는 일에 협조하는 정도입니다. 과도정부로, 거국내각에 대한 발언권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거국중립내각의 '중립'이라는 글자는 지워져야 합니다.
제정신을 차린 국민과 싸워 이길 자는 없습니다. 민심을 적당히 이용하려는 자들도 망해야 합니다. 정세 변화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다가 뒤늦게 슬쩍 올라타 큰 소리를 내려는 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박근혜 퇴진'으로 새로운 역사를 선포한 이 시대는 정치와 경제, 교육과 문화, 남북관계와 외교 전반에 걸쳐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틀을 짜나갈 겁니다. 정당만이 아니라, 시민사회 전체가 함께 힘을 모아 진정한 민주 정부를 세우는 일에 진력하는 가슴 뜨거운 시절을 만나게 될 겁니다.
11월 12일까지 민심은 더 강렬하게 타올라 '박근혜 퇴진을' 앞당겨 확정해야 합니다. 11월 12일은 그걸 확인하는 거대한 축제의 소용돌이가 되기를 뜨겁게 갈망합니다. 새로운 민주 정부 수립, 우리는 '박근혜 퇴진' 후 60일 안에 그걸 충분히 해낼 능력 있는 국민입니다.
시간이 조금은 더 필요하다고요? 그럼 100일 정도로 해볼까요? 우리가 정하면, 그게 헌법입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 나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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