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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스코의 탄광 노동자 "일하다 미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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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글로벌 포스코의 탄광 노동자 "일하다 미칩니다"

[민미연 포럼] 르포- 한국의 밑바닥 노동과 이중노동시장 ①

노동현장은 나에게 낯설은 곳이 아니다. 이번의 노가다 행은 나에게 있어 네번째 노동현장 투신이다. 내가 밑바닥 막장인 건설현장과 공장에서 일하는 것은 체험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삶의 벼랑 끝에 서서 먹고살기 위해서이다.

한국에서 모든 사람들이 제일 하기 싫은 일이 노가다 일이고, 세상에서 제일 고통스러운 일 가운데 하나가 한국 노가다 일이다. 일용직 자유노동자 노가다는 잦은 산업재해와 인명 사고에서 보듯, 우리 사회에서 노동강도가 가장 높고 가장 위험한 직종이다.

노가다의 겨울은 혹독하다. 노가다를 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잠든, 별이 반짝이는 컴컴한 새벽에 집을 나선다. 겨울의 새벽은 춥다. 아이고 추워라 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오전 7시부터 시작하는 야외 노동현장에는 차가운 겨울바람이 온몸을 휘감는다.

내가 일용직 자유노동자를 하면서 만나 본 사람들은 20대 고졸 청년들, 20대 대졸 청년들, 20대 대학 자퇴 청년들에서부터 30대, 40대 중소기업 노동자 출신자들, 40대, 50대 몰락 자영업자들, 50대초 탈락 자본가들, 60대 평생 노동만 한 일용직노동자들에 이르기까지 계층과 연령이 다양했다.

우리 사회에는 벼랑 끝에 선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갈 곳이 없어 막장인 하층노동현장으로 몰려오고 있다. 극즉반(極卽反)이라는 말이 있다. 극에서는 반전(反轉)이 불가피하다는 뜻이다. 생활 처지가 극에 다다른 사람들은 더 이상 인생 역전이 불가능하므로 반전(反轉)이 불가피하다.

밑바닥 노동을 하고 있는 한국의 건설 일용직 숙련노동자, 비숙련 노동자와 대기업 사내 비정규직보다 더 열악한 대기업 사내하청 용역회사 노동자는 인도의 최하층 수드라나 불가촉 천민과 같다. 비정규직 중의 비정규직이며 프롤레타리아인 한계 계층 하층노동자에게는 로마 시대 노예나 인도 최하층 수드라, 불가촉 천민처럼 삶이란 가혹하고 의미없는 생존 이상일 수 없다. 노가다를 비롯한 하층노동자는 한국 사회에서 그들의 필요와 복지는 배제된 채, 사회 유지와 생산에 필요한 인간 에너지를 소모하는 인간기계나 말, 소 이상이 아니다. 물론 그들은 자유로운 신분이고, 기아 임금 이상의 임금을 받기는 한다. 그들이 노가다 현장을 떠나는 것은 자유이나, 그들은 배운 게 노가다 일이고, 배운 게 없고, 기술이 없고, 떠나도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쉽게 지옥같은 노가다 현장을 떠날 수가 없다.

노동자들의 생산현장에서 가장 많이 죽고 부상당하는 노동자들은 대개 건설노동자나 하청노동자이다. 상대적으로 편한 일을 하는 대기업 정규직은 죽는 경우가 거의 없다.

노동자 도시 포항을 비롯한 전국의 도시에서는 인력업체들이 성업중이다. 거기에는 새벽에 일당 7~9만 원을 벌기 위해 날마다 일자리를 구하려는 불안정 일용직 노동자들로 붐빈다. 내가 일하러 다니는 인력시장인 인력업체 사무소에서는 새벽 6시부터 한 사람, 두 사람씩 일이 배정되기 시작하여, 포스코, 동국제강 등 대공장, 아파트 공사장, 건설현장, 도로공사장, 소규모 건축현장, 항만으로 오전 7시까지 하루 노예로 팔려나간다. 노가다들에게 그날 힘든 일을 하느냐, 수월한 일을 하느냐는 순전히 운이다. 운이 좋으면 그날은 다행히 수월한 일을 하고 운이 없으면 그날은 무지하게 힘든 일을 한다. 대부분 힘든 일에 걸린다.

전국의 수십만명의 막장 노가다 인력시장은 일일 노예시장이다. '오늘은 어디로 팔려나갈까', '오늘은 팔려나갈 수 있을까', '오늘은 운이 좋아 수월한 일을 해야 할 텐데'를 초초하게 생각하며 대기하다 팔려나간다. 하루 노예들은 인력업체 사장이 가라는 데로 가서 일을 해야 한다. '어떤 일인데요?'를 물어서는 안 된다. 노가다에게는 일에 대한 선택권과 질문권이 없다.


나와 청년 3명 및 중년 아저씨 한 명은 포스코에 일자리를 배정받았다.

우리는 글로벌 기업 포스코 '탄광(炭鑛) 광부'였다

우리는 봉고버스를 타고 포스코 공장 내 1차 하청(협력)기업보다 훨씬 열악한 외주 하청용역업체 G사에 도착했다. 20대, 30대, 40대, 50대, 60대 일용직 용역 노동자 80명이 하루 일당 8만원을 벌기 위해 이 곳에 모여 있었다. 우리는 안전모, 방진복, 방진 마스크, 장화, 작업 안경을 지급받고 일을 배정받았다. 우리는 소음이 진동하는 공장 내 좁고 밀폐된 미로(迷路)를 따라 탄광같은 곳에서 하청 용역업체 G사 노동자와 함께 일을 했다.

하청 노동자도 힘든 일을 했지만, 가장 힘든 일은 일용직 용역 노동자들이 했다. 우리는 허리를 펼 수 없는 좁은 곳, 바닥에는 기름물이 흐르는 곳에서 탄광의 광부처럼 뿌레카, 호미, 곡괭이, 삽, 호퍼를 갖고 석탄처럼 검은 철강 찌거기 슬러그(쇳가루 덩어리)를 앉아서 혹은 허리를 굽혀서 퍼내어 마대에 담아 옮겼다. 이 곳은 장비나 도구도 제대로 없어 어떤 일용직 노동자는 손으로 기름 찌거기나 철강 찌거기를 팠다. 작업 공간은 매우 답답했다. 우리는 제대로 서서 일을 하지 못하고 허리를 굽혀서 혹은 불편하게 쪼그리고 앉아서 삽질을 계속하니까 허리가 너무 아팠다. 기계와 바닥에 눌러붙은 철강 찌거기는 기름기가 있어 잘 파지지 않았다. 우리는 점심시간 때까지 탄광 갱도의 막다른 곳인 막장같은 곳에서 쉬지 않고 삽질, 호미질, 곡괭이질을 했다. 오전에는 공식적인 휴식시간이 없었다. 삽질을 수십 번하고 허리를 한번 펴는 것이 휴식이었다.

우리는 글로벌 기업 포스코 '탄광(炭鑛) 광부'였다. 월 180만 원을 받고 일하는 포스코 '탄광' 하청 청년노동자는 "여기서 계속 일하면 미칩니다!"라고 우리에게 말했다. 다른 포스코 하청용역업체 H사에 월 200만 원을 받고 일하는 청년노동자에게 "한 달에 며칠 쉬느냐"고 내가 물으니까, 그는 "한달간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다"며 "하루라도 좀 쉬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는 포스코에 일하러 갈 때마다 공장 구석구석을 살펴보곤 한다. 포스코 정규직이 일하는 사무실(상황실)에도 들러 그들이 일하는 모습을 주의 깊게 관찰했다. 내가 본 포스코 노동현장에서는 온갖 힘든 일은 하청 용역업체 노동자와 일용직 용역 노동자들이 도맡아 하고, 반면 정규직은 쾌적한 사무실에서 계기판과 모니터를 보며 편하게 일하거나, 별로 하는 일 없이 공장을 왔다갔다 하며 하청 및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지시를 하며 직접 노동은 하지 않았다. 포스코 정규직의 노동은 노동지옥의 노동과는 거리가 한참 먼 특권적 노동자(privileged worker)의 노동이었다. 연봉 7~8000만 원의 고임금을 받고 대학 학자금 전액 지원 등 풍부한 직장복지를 누리는 포스코 정규직은 착취받는 노동자라기보다는 혜택받는 노동자이며, 서민과 하청 노동자 및 일용직 노동자들이 너무나 부러워하는 특권적 노동자임을 현장체험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러나 이와 대조적으로 포스코의 말단 하청용역업체 노동자들과 일용직 노동자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며, 하는 일에 비해 너무나 적은 임금을 받으며 직장복지는 전무한 착취받는 노동자였다. 포스코와 대형건설회사의 현장에 가서 일해 보면서, 노동계급의 양극화를 처절하게 실감했다.

한국의 열악한 건설현장


한국의 하층노동현장에 가보거나 직접 체험해보면 오래된 관행으로 속도전 운동이 맹렬히 전개되고 있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의 건설현장을 보노라면 다른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구나 하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장시간 저임금 중노동의 노동착취의 지옥이 한국의 건설현장이다.

한국의 일부 건설현장에서는 점심 시간이 30분인 경우도 많이 있고, 단 5분의 공식 휴식 시간이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내가 일한 SK건설의 하청건설회사 (주)B사와 그 외주 소규모 하청업체는 하수관 공사장에서 점심시간이 1시간인 경우도 있었지만 거의 대부분 점심시간이 30분이었고, 오전 7시부터 오후 6시간까지, 어떤 때는 오후 6시 30분, 7시간까지 지독하게 일을 시켰다.

한국의 중소건설회사, 대기업 공장 하청용역회사 노가다 일용직 숙련공, 반숙련공, 비숙련 노동자는 인간 말이나 인간 소처럼 일하지 않으면 퇴출되거나 지적받는다. 보통 정도로 일하면 노가다 바닥에서 살아남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한국 하층노동(건설/건축/공장 하청 용역 노동) 세계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빨리 일을 해야 한다. 한국 노가다는 속도전이다. 속도전은 부실 공사로 이어질 수 있다. 쉬어가면서, 놀아가면서, 이야기하면서 일하는 것은 일체 용납되지 않는다. 일하면서 일 이외의 대화는 허용되지 않고, 함께 일하면서 이야기하는 경우가 없다. 모두 일에만 집중해서 아무 말없이 개미처럼 일한다. 반장, 과장, 건설/건축업자는 노동자가 일하면서 잠시라도 쉬는 것을 더러운 꼴을 본 것처럼 여기며 용납하지 않는다.

둘째, 많이 일을 해야 한다. 한사람에게 주어지는 노동의 양이 엄청 많다. 두 사람이나 한 사람 반이 일을 해야 할 몫이 한 사람에게 주어진다. 그것은 한 사람의 노동자에게 장시간 노동, 과중한 노동으로 부담지워진다. 노동착취의 강화는 건설회사, 대기업 하청용역회사와 소규모 건설업체 또는 업자의 높은 이윤율로 연결된다. 이것이 이른바 '인건비 따먹기'다.

셋째,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다. 개미처럼, 소처럼 일을 해야 한다. 일하는 기계가 되어 미친 듯이 일하지 않으면 노가다 세계에서는 인정 받지 못한다. 불만과 항의 및 개선 건의는 일체 용납되지 않는다. 무자비하게 열심히 일하는 사람만이 노가다 세계에서는 살아남고 인정받는다. 적당하게, 혹은 적절하게 일하는 사람은 퇴출된다. 그러나 중소건설회사에서 일하는 노가다가 소련의 노력영웅 스타하노프처럼 되면 반장, 팀장, 과장으로 승진되고 경제적 보상이 어느 정도 주어진다. 하지만 대기업 하청용역회사에서는 노동자가 열심히 일해도 경제적 보상이 주어지지 않고 일만 죽도록 혹사당하는 경우도 많다.

비정규직 가운데 가장 열악한 한계 노동자인 일용직 건설노동자들의 대다수는 노동조합과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정치권과 사회와 자칭 진보세력의 무관심과 냉대 속에서 방치되고 있다. 사회경제적으로 약한 집단인 밑바닥 일용직 노동자들은 노동법의 사각지대에서 저주받은 노동을 하며 고통받고 있다. 전국에 백만 명이 넘는 이들은 무권리 상태에 있다. 건설노동현장에서는 노동법은 사문화된 휴지이다. 나는 하층노동현장에서 일하면서 약자, 노동자를 대변하는 진보정당, 진보세력의 부재를 실감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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