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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게이트가 아니라 박근혜 게이트다"

[사회 책임 혁명] 누가 박근혜를 끌어내릴 것인가

그 최순실이 그야말로 전격적으로 귀국했다. 라디오 아침 방송을 진행하는 어느 아나운서가 "전 국민에게서 가을을 빼앗아갔다"고 말한 그 최순실 씨. 2016년의 계절을 봄 여름 최순실 겨울(어쩌면 겨울 대신 또 최순실, 혹은 박근혜?)로 바꿔버린 그 최 씨가 갑작스럽게 입국하는가 하면, '최순실 게이트'의 관련자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고, 그렇게 미적지근하던 검찰은 청와대를 압수 수색한다고 난리를 피우고 있다.

그 즈음 국민들은 청계광장에서, 전국에서 촛불을 들었다. 국정을 농단한 최순실 씨와 그 관련자들을 처벌하고 박근혜 대통령은 물러나라고 요구했다. 정치권에서는 진정성 있는 사과와 청와대·내각의 인적 쇄신, 책임총리 임명, 하야 수준의 2선 후퇴, 탈당 후 거국 중립 내각 구성 등 이런저런 수습책과 해법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 정권은 (절차를 빼곤) 사실상 탄핵 당했고 결정적으로 좌초한 상태이기에 어떤 수습책을 내어놓든 백약이 무효일 수밖에 없다. 촛불 집회와 시국 선언에서 요구하듯 박근혜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나는 것 외에 다른 수습책은 진정한 수습책이 될 수 없다.

잠깐 둘러가자면, '최순실의 계절'과 함께 네티즌들에 의해 다음 대통령으로까지 거론되는 JTBC 손석희 앵커가 성가를 높이는 등 '최순실 게이트'의 이런저런 부수 현상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여옥 전 의원처럼 과거 발언 때문에 얼떨결에 칭찬을 받는가 하면 MBN 김주하 앵커는 '최순실에게 보내는 편지'로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김주하 앵커가 왜 그런 편지를 썼는지는 쉽사리 짐작할 수 있다. 손석희 앵커와 경쟁하는 구도에 처한 그 시간대 TV 뉴스 앵커들의 공통적인 고민에서 김주하 앵커는 한 발짝 더 나갔고, 의도치 않게 과욕이 부른 참사를 부르게 되었으리라. 김주하 앵커 혼자 욕먹고 있지만, 사건의 책임은 사실 MBN의 보도국장 등 방송국 전체에 있다. 아이디어의 출처가 어디이고, 걸러내는 과정을 거쳤든 안 거쳤든, 국민적 공분을 살만한 그런 편지를 무심한 듯 폼 잡으려 읽었다는 건 그쪽 보도역량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판단하기에 김주하 앵커의 편지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대목은 "국민을 대신해 김주하가 전합니다"는 표현이었다. 물론 언론은 국민을 대신해 취재하여 공공의 이익이 훼손되고 있지는 않은지를 감시하고 추궁한다. 언론인은 선출직 공직자와 비슷하게 대리인 기능을 수행하지만 선출직과 달리 언론인은 자격이 아니라 행위를 통해 대리인 기능의 정당성을 검증 받는다. 대리인 기능에 충실한, 정당한 취재 행위는 JTBC에서 보듯 용인되고 권장되지만 김주하 앵커가 한 것과 같은 어쭙잖은 대리인 행세는 욕먹기 딱 좋다. 누가 김주하에게 국민을 대신하라고 했는가.

'최순실 게이트'에서 국민이 최순실 씨에게 분노한 이유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상적으로 대리인 자격을 부여받지 않은 사람이, 법적으로 대리인 자격을 받은 사람과의 친분을 이용해 부당하게 대리인 행세를 한 데 있다. 국민을 대신하라고 한 적이 없다고 김주하 앵커에게 그렇게 큰 비난이 쏟아질 정도면 최 씨를 향한 국민의 분노는 오죽하겠는가. 왕조 시대였다면 최 씨의 변호인의 말마따나 "단두대에 올랐어야 할 죄"를 저지른 것이다.

부당하게 국민의 대리인 행세를 하였다는 데에서 김주하 앵커와 최순실 씨의 공통점이 존재한다. 김주하 앵커는 자신의 '충정'이 왜곡돼 당혹스럽고 슬프겠다. 또한 자신의 실수에 비해 너무 과도한 비난이 쏟아진다고 억울해 할 만하고 어느 정도 그런 측면이 있기는 하다. 기실 김주하 앵커는 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여러 분야 엘리트들의 본심을 단지 적나라하게 끄집어냈을 뿐이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는데, 우리의 대의제 민주주의는 이미 오래전에 파산했다. '최순실 게이트'에 직면한 여의도의 움직임에서 유일하게 목격되는 건 박근혜 이후 권력의 향배에 관한 이른 바 정치 공학이다. 이들은 우리의 민주주의 체제에서 국민을 대신하도록 위임된 '진짜' 대리인이다. 그러나 이 정치 엘리트들은 '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폭발한 국민의 분노와 좌절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 사건을 '국민을 대신해서' 자신들만의 권력 게임으로 변용시키려고 한다.

예컨대 그동안 박근혜 대통령에게 구차하게 납작 엎드려 국회의원으로서 존재감이라곤 느껴지지 않던 새누리당이 최 씨 귀국에 맞춰 여야가 동의하는 거국 중립 내각을 구성하라고 요구한 것만 봐도 그렇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국민적 분노와 저항에 밀려 박 대통령이 하야하는 사태만은 막고 싶다.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면서 권력 지분을 공유하고 다가올 대통령 선거에서 최소한 그들 외에 다른 세력이 권력 판도를 흔드는 상황을 피하고 싶은 속내이다. 여야는 다른 세력이 '국민을 대신하는' 꼴만을 용납할 수 없다는 데 이심전심으로 합의한 상태다.

재삼 강조하자면, 국민은 합당하게 대리인 자격을 부여받지 않은 사람이 불법적이고 은밀하게 대리인 행세를 한 것에 격노하고 있다. 그러나 그 저변에는 대리인들 또한 그간 국민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았고, 부도덕하게도 그들만의 이익을 추구하였다는 엄중한 판단이 깔려 있다. 국민을 대변하라고 선출된 여의도의 여와 야가 말 그대로 온전히 국민을 대신해버린 적폐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와 절망은 이번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것보다 뿌리가 깊고 훨씬 더 심각하다. 같은 맥락에서 국민들은 국민의 최고위 대리인인 박근혜가 국민으로부터 아무런 권한을 위임받은 적이 없는 최순실에게 대리인 자격을 넘긴 데에 더 격분한다.

요는 '가짜 대리인'이 '진짜 대리인'을 조종해 사적 이익을 취한 것보다, 국민을 대변해야 할 '진짜 대리인'이 대리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게 훨씬 더 큰 문제이다. 따라서 이번 가을을 실종시킨 참담한 사태는 '최순실 게이트'가 아니라 정확하게 '박근혜 게이트'로 규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면, 앞서 지적하였듯 '문제 대리인'은 박근혜 하나가 아니다. 단적으로 '포스트 박근혜 구상'에서, 국민을 대변하여 우리 사회와 정치를 바로잡을 생각 대신 자신들의 파당적 이익을 보존하고 확대할 궁리만 하는, 우리 정치의 대리 시스템 안에 뿌리내린 부패하고 무능하며 탐욕스런 정치 엘리트들이 있다. 그러므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해결하는 과정은 헌법에 명시된 대로 국민이 주체로 거듭나는 계기로 구축되어야 한다. 우리 민주주의의 대리인 문제에 관해 차제에 심도 있는 토론과 숙고가 이루어져야 함은 물론이다.

내가 보기에 그 첫 걸음은, 국민의 힘으로 박근혜 대통령을 하야시키는 것이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 같은 탄핵 전문가가 포진한 국회 등 다양한 유형의 '국민 대신자'들에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해결을 맡겨서는 안 된다. 국회와 헌법재판소가 결정하는 탄핵을 거부하고 국민은 박 대통령의 하야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모든 관련자의 엄중한 처벌을 요구하고 관철시켜야 한다. 나아가 썩어가는 대의 민주주의를 보완할 여러 방식의 직접 민주주의를 요구하고 발안하여 제도로서 안착시킬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이 모든 일의 시작은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이다.

나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한다.

(안치용 씨는 한국사회책임네트워크 집행위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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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책임네트워크(KSRN)는 국내 '사회책임' 관련 시민사회단체들 및 전문가들의 모임이다. ISO26000 등 전 세계적인 흐름에 조응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사회책임 공시, 사회책임투자 등 '사회책임' 의제에 관하여 폭넓은 토론의 장을 열고 공론화를 통해 정책 및 제도화를 꾀하고 있다.(www.ksr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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