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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롱 단톡방은 '악성 보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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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롱 단톡방은 '악성 보험'이다

[작은책] 뒷담화, 연대의 품격

"2월 국민대, 6월 고려대, 7월 서울대·경희대, 8월은 서강대, 그리고 최근 연세대에서"

이런 헤드라인이 붙은 뉴스가 있다면 혹여 학부모들은 대학의 입시 정보라도 되는 줄 알고 촉각을 세우려나. 한 번쯤은 자기 욕망과 결부시켜 보았을 명문 대학들에서 연이어 일이 터졌다. 남학생들이 카카오톡 단체방을 만들어 언어 성폭력을 일삼았다. 헤드라인은 일명 '대학 내 단톡방 성희롱 사건'이 고발된 시기와 해당 대학들이다.

남학생들만으로 이루어진 단톡방에서 그들의 동료(?)들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인격을 유린당했다. 단톡방에서는 "진짜 새따(새내기 따먹기)를 해야 된다"는 글에 "형이면 한 달이면 된다"라는 글이 달렸다. 충격은 이르다.

"○○○은 이미 먹혔잖아"라고 누군가 글을 쓰면 "씹던 껌 성애자"라고. "여자 주문할게, 배달 좀"에는 "여자 좋네, 누구 배달 안 되나"가. 여학생을 몰카 촬영한 범죄 사진에 "박고 싶다"라는 문자가 오갔다. "맞선 여자 첫 만남에 강간해 버려"라는 문자에 대한 답이 "이 톡 첨 만들었을 때보다 발전했네, 자랑스럽다"다.

이런 말은 부추김이다. 실제 강간 모의에 해당할 만한 언설들이 아무렇지 않게 적혀 있다. "몸 좋은 여성들 봉씌먹(얼굴은 못생겨서 봉지 씌우고 먹는다)"이라고 보낸 문자에 "ㅋㅋㅋ먹버는(먹고 버림) 가혹해"라고 답하는 것이 하물며 사태를 제재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남학생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지 않았다. "이거 털리면 우리 뉴스에 나올 듯", "개방하면 사살"이라는 대화가 버젓이 있다. 이들이 걱정하는 바는 무엇일까? 자신들의 사적 비밀이 공개되는 것? 결코 아니다. 반대로, 그들이 함부로 소환해 내어 물고, 뜯고, 즐기고, 맛보던 것이 자신들의 것이 아닌 그녀들의 것임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들키면 안 된다. 하지만 들켰고, 그들(과 이의 옹호자들)의 변명은 뻔뻔했다. '장난삼아 한 말에 불과하다', '내부고발은 옳지 않다', '개인적인 카톡이다. 사생활침해'라고까지 주장했다.

이들이 '사적이다, 공적이다'라고 말할 때의 '사(私)'란 그저 원자화된 개인에 불과한가 보다. 물론 사적인 것은 개인과 우선 관련한다. 그러나 둘은 동일하지 않다. 우리는 어떤 사적인 언행과 시공간은 공적인 일에 관여됨을 잘 안다. '사인(私人)'이라는 말은 잘 쓰지 않아도 '공인(公人)'이라는 말은 흔하다. 모두가 애초에 개인이기에 굳이 사인이라는 말이 없어도 된다. 하지만 개인성을 채울 내용 중에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은 함께 있다.

사람들의 오해 한 가지 더. '공'이란 단어는 권력과 부를 가진 유명하고 높으신 분들만 관련한다고 여기는 것. 한 개인이 공인일 수 있다면 그것은 그들이 가진 권력의 영향력 때문이지 개인으로부터 내재하는 것이 아니다. 봉건시대라면 날 때부터 그 존재만으로 공적인 성격을 가지는 개인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지만 민주주의 시대라면, 공적인 것은 어느 개인의 천부적인 것이라기보다 축적되고 변화하는 개인의 영향력 정도로는 여겨야 하지 않을까.

"일개 남학생들이 장난삼아 내뱉은 사적인 카톡을 문제 삼는 것은 예민하다"라는 말의 행간을 다시 본다. 배치된 단어 조합과 뉘앙스가 위험하다. '사적'이라는 말이 '일개'라는 단어와 마주치면서 개인은 삭제되고 고작 형태만이 사적인 것을 채운다. 하물며 개인은 무의미하고 사소한 것처럼 상상된다. 스스로를 '일개'라고 표현했듯이 하찮은 사적 개인과 위대한 공적 개인이라도 있는 것처럼. '내가 그저 일개 무엇인데'라는 말은 결코 겸양의 표현이 아니다. 나는 힘없는 계급일 뿐, 무엇을 책임질 역량이 없다는 제스처다. 게다가 장난삼아 하는 말은 죄다 사적 대화일까? 웃긴 대화는 사적 대화고 진지한 대화는 공적 대화란 말인가. 웃음의 맥락만큼 공적인 것이 어디 있을까.

ⓒ프레시안

단톡방 대화들은 잘해봐야 뒷담화다. 뒷담화는 마치 사적 대화처럼 오해되지만 이것만 한 공적 대화가 있을까 싶다. 너와 내가 만나서 너와 나의 일들만을 얘기하면 사적 대화이다. 오늘 날씨를 탓하고, 어제 본 드라마를 욕해도 상관없다. 하지만 "미스 김, 불륜이라는 소문이 있던데?", "그 직원 게이라며?" 이런 대화가 비밀스럽게 행해진다고 해서 사적 대화라고 할 수는 없다. 내용과 주제가 발화자 이외의 사람의 것이고, 대화의 의도가 명백히 공적 영향을 줄 수 있으니 말이다. 뒷담화는 이런 대화의 전형이다.

대화의 주인공이 발화자들이 아니라 그들이 멋대로 불러낸 타인이라는 점에서 뒷담화는 결코 사적 대화일 수 없다. 의도치 않게 소환됨으로써 이미 누군가의 개인성은 침해된 채 개입된다. 하물며 소환의 이유가 악의적인 평가와 편견에 근거했다면 말이다. 막상 뒷담화의 목적은 이리저리 치이는 제3의 인물이 아니다. 뒷담화의 궁극적 목표는 발화자들의 결속에 있다. 인간관계의 보험, 혹독한 연대. 함께 누군가를 조리돌림하고 나면 서로가 약점을 잡는 셈이 된다. 연대의 손쉬운 수단. 그러니 뒷담화는 인권 침해의 소지가 농후한 공적 대화다.

뒷담화는 쉬이 사라지긴 힘들다. 필요한 것은 뒷담화에서 필요한 최소 기준이다. 이를 지키고 싶지 않아서도 뒷담화를 사적 대화 취급하는지도 모른다. 이 기준이 연대의 품격을 결정한다. 뒷담화에서 누구를, 무엇으로, 어떻게, 어느 정도 대상화할지에 따라 연대의 성격은 천양지차가 된다. 그 품격이 연대의 다른 방식도 상상하게 한다.

사회적 책무를 져야 하는 권력자 뒷담화와 사회적 배려를 받아야 하는 약자를 대상으로 하는 뒷담화는 명백히 다르다. 직접 만날 일이 없을 유명인 뒷담화와 매일같이 만나서 관계해야 하는 사람에 대한 뒷담화도 구분된다. 그 누구에게라도, 면전에서 할 수 없는 말, 글, 눈빛이라면 안 해야 한다. 우리의 결속을 위해 누군가를 수단화하고 있음을 잊으면 안 된다. 적당히 하시라. 언행을 책임져야 하는 순간이 올 때 기필코 책임져야 한다. 참고로 뒷담화는 늘 공개되기 마련이다.

일련의 사태 속 단톡방은 '악성 보험'이다. 여성을 대상화함으로써 사내들의 단결을 공고히 해 온 멍청스럽고, 위악(僞惡)적이며, 퇴폐적인 연대. 최소한 내부고발자라는 비난을 쓰면서 이를 공개한 남학생은 자기 성찰의 기회는 얻었다. 그는 악성 보험을 당장 해약하기로 결심했고, 제 열 손가락으로 직접 지어 올린 오물들에 대해 최소한의 책임을 고민했다. 지금도 수많은 악성보험이 있다. 자신이 가입한 보험, 연대를 똑바로 응시하자. 뒷담화에도 기준이 있고, 그 기준이 당신이 속한 곳의 품격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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