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서점 창업 붐이라고 칭할 만합니다. 지난 1년여 사이 10여 곳이던 독립 서점이 6배로 늘어났습니다. 방송인 노홍철 씨도, 최인아 전 제일기획 부사장도, 가수 요조 씨도 서점 주인이 됐습니다.
얼핏 생각하면 조금 의외의 선택으로 보입니다. 책이 안 팔리는 시대라고 모두가 말하는데, 독립 서점이라뇨. 더구나, 우리는 휴대폰을 몇 번 터치하기만 하면 집으로 당일 배송해주는 온라인 서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동네 서점이 망한다는 위기감이 큰 시대에 독립 서점 창업을 선택하는 이유를 잘 알기 어렵습니다.
물론 요즘 들어서 독립 서점은 예전 동네 책방과는 조금 느낌이 다릅니다. 직접 찾아보진 않았더라도, 뉴스를 통해 술 파는 서점, 여행 책 전문 서점, 숙박을 제공하는 서점 등이 요즘 불리는 독립 서점이라는 점은 대충 아실 겁니다. 이런 서점이 젊은이가 밀집하는 상권에 주로 자리했다는 점도 상징적입니다. 문화 자본을 지닌 젊은 엘리트를 대상으로 하는, 조금 트렌디한 느낌의 장소라는 생각도 들 법합니다.
'표지 너머 책 세상'은 두 번째 이야기 주제로 독립 서점을 꼽았습니다. 우리는 우선 독립 서점의 정의부터 내려 본 후, 독립 서점이 지향해야 할 방향은 어디인지, 독립 서점 창업에 유의해야 할 점은 무엇인지 이야기했습니다. 다음은 지난 18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더난출판사 회의실에서 진행된 내용입니다.
독립 서점은 사람을 연결하는 곳
- 우리는 지난 시간에 독립 서점 창업 붐의 이유로 도서정가제 개정안 도입에 따른 소규모 서점의 가격 경쟁력 회복을 꼽았습니다. (☞관련 기사 : 도서 정가제의 진실, "다시 한 번 바꿉시다!") 지난 1년 사이에 독립 서점 창업 붐이 일어난 다른 원인이 있는지요? 아울러 독립 서점 창업 붐이 어떤 사회적 가능성을 보여주는가도 설명해주세요.
장은수 : 아무래도 직접적인 이유는 도서 정가제 개정안 도입에 따라 사업 환경이 좋아졌다는 점에서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독립 서점 창업이 지난해부터 무척 활발해졌다는 점이 이를 증명합니다.
이 자리에서는 독립 서점 창업자에게서 두드러지는 주된 특징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두 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독립 서점 창업자 대부분이 30대의 젊은 층입니다. 취업난으로 인해 젊은이가 창업에 나서는 게 희한한 일은 아닙니다. 다만 예전에는 젊은이 사이에 카페 창업 붐이 일었다면, 지금은 책을 좋아하는 일부가 독립 서점 창업을 고민한다는 점이 조금 다를 뿐이죠. 기왕이면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아이템으로 해서 창업하고자 하는 생각이라고 봅니다.
둘째, 퇴직자 혹은 투잡족이 독립 서점 창업에 주로 뛰어들고 있습니다. 언젠가 상암동 북바이북에 갔는데, 중년의 부부 두 분이 서점을 둘러보시더군요. 지방에서 서점을 할 생각이라 견학 왔다 하시더군요. 퇴직 후 치킨집보다 늘 읽어 왔던 책과 관련한 일을 하자는 생각이죠. 출판사 퇴직자나 전문 번역가, 카피라이터 등 책을 좋아하거나 책과 관련 있는 일을 한 사람이 독립 서점을 차리는 경우도 적잖습니다. 예전에는 출판사 퇴직자가 1인 출판사를 창업했다면, 이제 독립 서점이 새로운 대안으로 떠올랐습니다. 귀촌의 한 형태로 지역 서점을 창업한 사례도 있습니다.
이홍 : 지난해만 해도 7~8개 정도에 불과했던 독립 서점이 단 1년 사이에 서울에만 40여 개, 전국적으로는 60여 개 정도로 늘어났습니다. 독립 서점이 밀집한 곳을 잘 살펴보면 소위 문화 해방구라 불리는 특정 지역이 아무래도 많습니다. 상수동부터 연남동에 이르는 홍대 인근, 해방촌, 서촌과 북촌 등이 그렇습니다. 문화 콘셉트가 특화된 곳이고 가족 단위는 물론 젊은이들이 주로 몰리는 지역입니다.
-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정의를 명확히 하고 넘어갈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대형·온라인 서점과 달리 독자와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는 모든 지역 서점은 동네 서점입니다. 이들은 대자본으로부터 독립했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독립 서점입니다.
그러나 요즘 출판가에서 이야기하는, 그리고 언론이 보도하는 '독립 서점'의 정의는 이와는 조금 다른 듯합니다. 독립 출판물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서점을 뜻하지도 않고요. 산업적 의미라기보다는 문화적 의미를 내포하는 듯한데요?
장은수 : 산업적으로 보면 지역 서점은 전부 독립 서점이어야 하죠. 하지만 단순히 지역 서점을 독립 서점으로 이야기하진 않습니다. 지역 서점이 지역에 위치해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서점이라고 정의한다면, 그 대립항은 전국 단위의 대형 체인 서점으로 놓을 수 있습니다. 교보문고나 영풍문고 같은 곳이죠.
독립 서점은 지역 서점 중에서 점장의 개성이 묻어나는 독특한 책 선별(큐레이션), 즉 독자에게 독립적 가치를 제안하는 서점으로 잠정적으로 정의해야 할 듯합니다. 지역이라는 위치가 아니라, 서점이 지향하는 독립적인 문화적 가치에 중점을 두고 정의해야 합니다.
이홍 : 독립 서점을 이렇게 정의한다면, 독립 서점과 지역 서점은 수행하는 역할도 다르게 볼 수 있습니다. 지역 서점은 탄력적으로 보편적인 책을 제공합니다. 지역 도시의 백화점이라고 해서 지역 산물만 팔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어느 정도 대중화되었다고 판단 가능한 출판물을 지역 독자에게 공급하는 곳을 지역 서점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반면 독립 서점은 책을 매개로 자기만의 문화적 가치를 파는 서점입니다. 예컨대 디자인 관련 서적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서점, 매주 독서 모임을 여는 문학 전문 서점, 미스터리 서적을 술과 함께 제공하는 서점 등의 포맷을 생각할 수 있죠. 꼭 지역 독자만을 고객으로 상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독립 서점은 지역 서점과 구별됩니다.
장은수 : 저는 독립 서점을 '사람이 보이는 서점'으로 정의합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 사이의 '네트워크'가 그 중심에 있습니다.
대형 서점에는 독자가 많이 있지만 사람과 사람의 친밀한 관계는 없죠. 책을 매개로 해서 누구와 어떻게 만나느냐가 결여되어 있습니다. 자본의 효율이 다른 모든 걸 삼켜 버립니다.
하지만 서점의 중심에 사람이 존재하면 사람과 책을 어떻게 만나게 하느냐에 관한 나름의 철학이 서점 운영에 반영됩니다. 서점 주인은 내가 어떤 독자와 만날 것이냐, 내가 어떤 출판사와 독자를 연결할 것이냐를 고민하게 되지요. 독립 서점이 상대적으로 적은 수량의, 자기가 팔고자 하는 분야의 책만 선별해 진열하고 판매하는 이유입니다. 만나고 싶은 사람이 정해져 있으니까요.
이런 점에서 독립 서점은 유기농 협동조합, 생활협동조합과 비슷합니다. 유기농 협동조합은 특별한 가치관을 갖고 작물을 재배하는 농민과 그 가치에 동의하는 소비자를 연결합니다. 표면적으로 독립 서점의 특징은 책의 선별로 드러나지만, 이는 결국 그 책의 가치에 동의하는 다양한 사람의 네트워크로 궁극화합니다.
- 의문이 있습니다. 사실 웬만한 책은 온라인 서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굳이 사람들이 독립 서점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홍 : 맞습니다. 우리는 온라인 서점이나 대형 서점에서 대부분의 책을 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굳이 불편함을 감수하고 소문난 맛집을 찾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굳이 독립 서점을 찾아가는 이들이 있지요. '원 오브 뎀' 식의 휩쓸려가는 소비가 아니라, 소비에서 내 가치를 찾으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이처럼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소비 형태가 홍대 등으로 대표되는 문화 소비 공간에서 두드러집니다. 독립 서점도 이와 같은 문화 소비 형태에 기댔습니다. 책을 한 권 사더라도 특별한 공간에서 나만의 책을 사려는 수요가 있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책을 사려고 독립 서점에 가지 않습니다. 독립 서점으로 간다는 사실 자체를 구매합니다. 이들에게는 무엇을 누리면서, 어떤 느낌으로 어떤 책을 사느냐가 중요하죠. 우리가 시계를 하나 사더라도 빈티지 숍에서 발견한 시계와 온라인 매장에서 산 시계에 부여하는 가치가 달라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장은수 : 따라서 다른 서점에는 없는 고유한 가치 설계가 독립 서점의 정체성을 만듭니다.
온라인 서점은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높은 효율성을 추구합니다. 모든 온라인 서점이 비슷한 책을 진열하고, 비슷한 책을 추천하죠. 대형 서점 역시 전 지점의 표준화라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개성적인 곳은 없죠. 일괄 구매, 대량 판매를 통해 규모의 효율을 추구하려고 합니다.
자금이나 시스템에서 이들과 상대할 수 없는 독립 서점이 같은 방식으로 경쟁이 될 리 없습니다. 독립 서점에 자기만의 가치 철학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그 철학을 책으로 어떻게 드러내느냐, 어떻게 독자가 서점을 자기 공간으로 받아들이도록 해 같이 호흡하는 구조를 만드느냐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도시는 독립 서점을 필요로 한다
이홍 : 이를 '표준성을 향한 반격'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듯합니다. 사람들의 소득이 일정 정도 오르고 소비 수준이 발달할수록 그 사회에 필요한 건 도시의 전면적 재 디자인입니다. 이때는 생산적인 설비 디자인이 아니라, 문화 디자인이 중요합니다.
독립 서점은 가장 저비용으로 가능한 문화 디자인 설계의 하나입니다. 거리 곳곳에 자리한 독립 서점은 도시에 핵심적이고 정서적인 가치 체계를 제공합니다. 유럽에 가보면 알 수 있습니다. 작은 책방이 도시 곳곳에 박혀 있습니다.
- 독립 서점이 우리 사회에서 특히 문화적으로 일정 정도 공적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시는 듯합니다. 독립 서점이 슬럼화한 공간이나 문화 자본이 부족한 공간에 대안적 가능성을 제시한다는 것 외에, 다른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장은수 : 1인 가구가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난해 한국의 일인 가구는 약 506만 가구로 전체의 27%에 달합니다. 이중 적잖은 이가 젊은 층입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지난해 기준 1인 가구 중 20세 미만~39세 비중은 전체의 36.4%다.) 이들이 퇴근 후 찬찬히 시간을 보낼 곳이 딱히 없습니다. 매일 같이 영화만 볼 수도 없고, 혼자 술만 마시기도 뭣합니다. 취미를 공유하는 이들과 부담 없이 만나서 사회적으로 교감할 공간이 없죠. 직장 동료랑 부어라 마셔라도, 때도 없이 여행가는 것도 하루 이틀이죠.
독립 서점은 읽기를 기반으로 한 인적 네트워킹의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책은 모든 주제를 다루고, 주변에는 그 주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달리 말해, 독립 서점의 핵심 가치는 결국 책을 중심에 놓고 이들에게 어떤 네트워킹을 제공하느냐 입니다.
- 독립 서점이 작지만 의미 있는 역할을 할 수 있군요. 독립 서점 지원을 위한 정부 차원의 제도는 없나요?
장은수 : 지난 6월 28일, 서울시가 지방자치단체 중 처음으로 지역 서점 지원을 위한 지역 서점 조례를 제정했습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서울시장이 3년마다 지역 서점 지원 계획을 수립해서 시행합니다. 경기도에서도 조례를 제정할 예정이고요. 부산, 울산 등 전국 곳곳에서도 비슷한 내용의 조례 제정을 추진 중입니다. 지자체가 직접 서점 지원에 나서 도시 문화를 살리겠다는 겁니다. 서점을 지자체 공공 자산의 일부로 인식하게 된 거죠.
한국의 도시에는 문화 공간이 태부족합니다. 시민이 지친 몸과 마음을 잠시 쉴 영혼의 안식처가 거의 없습니다. 서점은 피로 사회에 시달리는 이들이 책을 통해서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강력한 대안적 공간으로서 어느 정도 공공적 성격이 있습니다. 지자체가 대안적 문화 공간으로 서점을 인식하기 시작한 건 긍정적입니다.
이홍 : 독립 서점 창업 붐에 문화적·정서적 요인이 강력하게 작용한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독립 서점을 찾아줄 소비자가 유입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독립 서점 창업이 가능함을 알 수 있죠.
이를 간파한 지자체가 독립 서점 창업 붐을 문화 공간 사업과 연계하려는 시도도 눈에 띕니다. 독립 서점은 미술관, 클럽 등과 비슷하게 거리와 문화 매개체로서 관계를 맺습니다.
이런 문화 공간 창업이 집중되는 곳에 문화 자본을 유입하려는 시도를 지자체에서 추진하죠. 특히 서울을 중심으로 지역 공간 사업에 독립 서점의 필요성이 얽히는 듯합니다. 마포구청은 연남동 인근 개통 예정인 홍대역사 사업 부지 일대를 경의선 책거리로 만들었습니다. 이런 시도가 젠트리피케이션을 가속화하리라는 우려가 있습니다만, 지자체가 지역 개발 일환으로 책 문화에 관심을 가진다는 건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장은수 : 서점이 도시 재개발을 촉발한다는 건 미국에서 증명됐습니다. 옛 브루클린처럼 슬럼화한 지역이 서점과 스타벅스가 들어가면 젊은이의 거리로 변한다는 얘기가 나오곤 했죠. 이런 장소는 보보스(bobos, 경제적으로 윤택하면서 문화적 가치를 추구하는 엘리트 계급)가 자주 이용하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문화적 공간과 그에 연결된 문화 집단, 예술가 집단은 서로 이끌립니다. 이런 이들에 의한 공간 재활용의 한 형태로 독립 서점 창업을 꼽을 수 있습니다. 한국의 독립 서점 창업도 대체로 이런 구도를 따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현상이 지역 소도시, 중소 도시의 구도심을 활성화하는 데도 좋은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지역 도시를 보면, 대체로 신도시가 도시 외곽에 들어서는 순간 핵심부에 위치한 구도심 상권이 힘을 잃습니다. 이런 지역에 문화적 동력을 제공하는 매개의 하나로 독립 서점이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구도심 활성화를 위해 지자체 예산을 활용해 서점 창업을 유도하고, 지역 출판을 활성화할 수 있는 협업 공간 등 인프라를 제공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내년(2017년)에 새로 시행되는 출판 문화 산업 발전 5개년 계획에도 정부와 지자체가 예산을 함께 투여해 협업할 수 있는 지역 출판 활성화 아이디어를 일부 반영해 두기는 했습니다.
뒤에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나오겠습니다만, 이런 도심 재개발이 성공하면 그에 따른 부작용이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이때야말로 지자체의 역할이 중요해지는 순간이죠.
독립 서점은 독립 출판을 다뤄야 한다
- 외부의 지원이나 트렌드에 민감한 소비자의 관심만으로 독립 서점이 우리 사회에 뿌리내릴 수는 없을 겁니다. 무엇보다 독립 서점 자신의 노력이 중요할 텐데요.
이홍 : 독립 서점은 기본적으로 독립 출판과 결합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책이지만 독립 출판사에서 찍었기에 보편적인 유통망으로 독자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책이 있습니다. 상업성이 결여되었거나 경쟁에 밀려 온라인 서점 메인 화면에 노출되진 않지만,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책도 있습니다.
이런 책이 독립 서점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당위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이와 같은 연결이 독립 서점만의 가치를 높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동네의 오래된 서점과 인테리어를 달리 한다고, 술과 책을 함께 판다고 해서 독립 서점의 가치가 생기지 않습니다.
장은수 : 왜 독립 서점은 독립 출판과 결합해야 하느냐. 사람이 보이는 서점이기 때문입니다. 책을 상품으로만 보면 상품의 이윤 가치를 중심으로 모든 게 돌아갑니다. 당연히 자본 효율성이 우선시되죠. 효율성을 높이려면 아무래도 팔리는 책 위주, 대량 구매가 가능한 책 위주로 서점이 운영됩니다.
저를 포함해 출판계 많은 사람이 책의 발견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못잖게 '서점의 발견'도 중요합니다.
과거에는 정류장 곁에 서점이 있어서, 시내 중심가에 서점이 있어서 저절로 발견성을 확보했습니다. 버스에서 내린 이가, 중심가를 거닐던 이가 지나가다 서점이 보이면 책을 보러 들렀죠. 이제는 아닙니다. 독자가 그 서점만이 가진 특별함을 알고 일부러 찾아오도록 해야만 발견됩니다. 이 서점에서 이런 행사 한다는데 가볼까, 이 서점에 독특한 사람이 많이 몰린다는데 가볼까, 이런 호기심을 품게 해야만 서점이 발견 가치를 지닙니다.
경험적 발견, 체험적 발견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작은 서점의 무기는 자기만이 제안할 수 있는 가치를 친구 추천 등으로 전파함으로써 만들어집니다. 독립출판물을 다룬다는 건 분명 차별점의 하나입니다.
- 책에 관심 있는 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독립 서점 창업을 꿈꿔볼 만하겠군요. 독립 서점이 어느 정도로, 언제까지 성장할 수 있을까요?
이홍 : 아직 독립 서점의 가능성을 단언하기는 어렵습니다. 지금은 생성 단계입니다. 이제 막 일부 서점이 독립적 가치를 표방하기 시작했을 뿐이죠.
앞으로 정체기가 올 겁니다. 이때 독립 서점이 어떻게 생존하느냐를 봐야 독립 서점이 우리 사회에 제대로 자리 잡느냐 마느냐를 알 수 있을 겁니다.
독립 서점에 과도한 기대를 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한국 출판 시장 규모가 약 4조 원 정도 되는데, 독립 서점이 중요한 버팀목 정도의 역할을 하리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미처 제대로 홍보되지 않은 다양한 책을 독자에게 알리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을 모아 새로운 대안의 가능성을 시험하는 정도의 역할을 잘 하리라 기대하면 될 듯합니다.
장은수 : 새로운 사업이 일시적 유행인지, 장기적으로 자리 잡을지를 판단하려면 최소 5년은 지켜봐야 합니다. 독립 서점 붐이 지난해부터였다고 본다면, 올해는 2년차입니다. 앞으로 3년에서 5년은 지켜봐야 성패를 알 수 있겠죠. 독립 서점의 노력도 필요하고, 독립 서점 열풍이 스러지지 않도록 돕는 각종 지원책도 필요합니다.
이홍 : 문화 산업에도 대체재, 경쟁재가 존재합니다. 뮤지컬에도, 영화에도 경쟁자가 있습니다. 당연히 독립 서점의 경쟁자도 있을 겁니다.
경쟁자가 확연해질 때, 독립 서점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느냐를 판가름할 수 있을 겁니다. 앞으로 독립 서점은 점차 문화자본이 유입되어 존립 비용이 커지는 공간에서 어떻게 수익을 낼 것이냐, 그리고 새로운 대체재를 만났을 때 어떻게 가치를 지켜갈 것이냐는 질문에 답해야 할 겁니다.
아직 적잖은 독립 서점이 의미 있는 수익을 내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낭송회로 사람을 모으는 것, 주점과 같은 특별한 콘셉트를 잡는 것을 긍정적으로 보면 공간 가치 극대화로 이해할 수 있지만, 자칫하면 주객전도로 볼 수도 있습니다. 노홍철 씨는 독립 서점에서 돈 벌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다른 독립 서점은 그렇지 못합니다. 독립 서점만의 단단한 존립 모델이 제시되어야 할 때입니다.
독립 출판이 독립 서점에 중요하다고 강조한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독립 서점이 아니라면 구할 수 없는 책이 존재해야 합니다. 보편적으로 팔리는 책만 들여놓은 독립 서점이 개성을 갖기 쉬울 리 없습니다. 독립 서점이 독립출판과 단단한 네트워킹을 형성함으로써 우리 사회 지식 유통에 유의미한 역할을 하는 건 매우 중요한 기본입니다.
독립 서점이 젠트리피케이션 견딜 수 있을까
- 언론이 주목하는 독특한 콘셉트의 독립 서점을 비판적으로 보시는 것 같네요.
장은수 : 제 생각은 다릅니다. 독립 서점의 이벤트적 요인은 일단 긍정적으로 봐야 합니다.
독립 서점은 결국 책과 공간을 어떻게 연결하느냐, 책과 사람을 어떻게 연결하느냐를 고민하는 사업입니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독자의 습관적 방문을 이끌어내면 매출이 발생합니다. 지금 제시되는 다양한 독립 서점 형태는 책을 다른 문화 가치와 사람을 연결하는 중심에 놓는다는 점에서 그간 우리가 몰랐던 책의 잠재력을 끌어내고 있습니다. 일단 그 자체를 긍정적으로 봐야 합니다.
스몰 비즈니스는 꾸준히 변화합니다. 편의점만 봐도 이를 알 수 있습니다. 편의점은 과거 슈퍼마켓을 대체했습니다. 요즘은 어묵 노점을 대체하고, 도시락 가게와 경쟁합니다.
독립 서점도 책을 매개로 다양한 변화를 꾀할 수 있습니다. 책을 읽을 수 있는 술집 콘셉트의 독립 서점은 전혀 문제될 게 없습니다. 책이 중심이냐 아니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욕망을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책 위주의 사업만으로는 온라인 서점과 절대로 경쟁할 수 없습니다. 아마 완전 도서 정가제가 실시되어도 똑같을 겁니다. 프랑스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핵심 가치에 과도하게 매몰된 문화 부문의 작은 비즈니스가 다른 분야에서 다 실패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요즘 작은 극장이 있습니까. 전부 멀티플렉스로 재편됐습니다. 온라인 음원 서비스와 대등하게 경쟁하는 작은 음반점을 찾을 수 있습니까. 강남의 클래식 전문 음반점인 풍월당 역시 아카데미, 연주회 등을 함께 사업화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작은 규모이지만 북클럽도 시작했다더군요.
책은 가치 체계를 문화 다방면으로 넓힐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작은 사업으로써 경쟁력을 갖고 있습니다. 책이 있다면 문구도, 영화도, 음반도 함께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비록 서점 크기는 작아도, 추구하는 가치 체계 안에서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설계하는 게 가능합니다. 음악 서적을 전문적으로 파는 서점에 음반과 음악 관련 상품, 악기가 따라붙고 작은 공연을 이어가는 독립 서점 형태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이런 내적으로 완결 가능한 문화 공간의 가능성이야말로 우리가 독립 서점을 주목해야 하는 진짜 이유일지도 모릅니다.
이홍 : 그 가능성에는 동의하지만, 우려를 버리기 힘듭니다. '책 중심 복합 문화 공간' 개념에는 함정이 있습니다.
복합 문화 공간에도 중심은 있어야 합니다. 독립 서점이 술과 결합할 수 있고, 공연과 결합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심은 책이라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합니다. 복합 공간에 집착하다간 책이 배경으로 밀려나버릴 수 있습니다. 그럴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독립 서점이 밀집한 홍대, 해방촌 지역은 임대료가 비싼 곳입니다. 앞으로도 임대료는 계속 오를 겁니다. 그렇다고 함부로 이 지역을 떠나기를 선택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잠재적 고객이 밀집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서점의 가치를 지켜가는 게 얼마나 가능할까요. 적응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다 보면, 책이 뒷전으로 밀려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다 제 가치를 잃는다면, 그때도 독립 서점으로서 유의미한 공적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 홍대 앞 클럽 현실이 떠오르는 대목이네요. 홍대가 대안 문화 중심지로 떠오르던 1990년대 초반에 클럽은 새로운 음악을 찾는 이들이 모이는 장소였지만, 대형 자본이 몰리자 임대료 경쟁에서 밀려나고 있습니다. 독립 서점도 이와 같은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신 걸로 이해됩니다.
이홍 : 정말 그렇게 되리라고 제가 단언할 순 없죠. 하지만, 일종의 변질이 일어날 가능성은 분명 있다고 봅니다. 그런 상황이 오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장은수 : 지나친 우려라고 봅니다. 독립 서점이 아무리 다양한 가치를 제시한들, 책이 아닌 다른 것으로는 사람을 유인하지 못합니다. 독립 서점이 학교 앞 문방구와 다른 점은 그 대상이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이 전제가 사라질 가능성은 없습니다. 만약 이 전제를 잃는다면, 독립 서점의 매력은 급격히 떨어질 겁니다. 다른 인구 집단으로 옮겨가는 게 그리 쉬운 건 아닙니다.
- 그럼에도 독립 서점을 찾을 이는 결국 한정되었기에, 독립 서점의 생존이 결코 쉽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떨치기 어렵습니다. 책을 보는 이가 줄어든다는 전제가 있는데다, 독립 서점은 그 중에서도 더 적은 독자를 대상으로 존립을 고민해야 합니다. 독립 서점이 결국 상권 경쟁력을 확보하기 쉽지 않으리라는 건 어느 정도 당연한 전제가 아닐까요?
장은수 : 이는 독립 서점을 자꾸만 공간 사업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독립 서점이 단순히 대안 공간일 뿐이라면 당연히 젠트리피케이션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지적하신 대로 책 사업은 승률이 높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독립 서점은 연결 비즈니스입니다.
모든 공간은 일시적입니다. 상권 경쟁에서 밀리면 자연히 임대료가 싼 곳으로 이동해야죠. 이때 독자가 따라올 수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사람과 사람을 잘 연결할 때만 이게 가능합니다. 어떤 서점에서만 기대하는 네트워킹이 이뤄진다면, 독자는 서점을 따라오죠. 맛집을 찾아 사람들이 변두리에 있는 허름한 식당 앞에 줄서는 것과 같습니다.
홍대 인근에만 수십 군데 독립 서점이 있습니다. 저도 정확히 어느 서점이 어디 있는지 파악하지 못합니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독립 서점의 본질적 특징은 사람들이 불편을 감수하고라도 일부러 찾아가는 곳이라는 점입니다. 이게 가능하려면 독자와 깊은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관계를 어떻게 수익으로 연결할지를 모델화해야 합니다.
책은 물질성을 지닌 문화 상품 가운데 가장 적은 비용으로 사람을 모을 수 있습니다. 음반은 디지털에 취약했습니다. 공연은 사람을 모으는 데 드는 비용이 상대적으로 큽니다. 책은 단 1만 원에 어디에 있든지 사람을 모을 수 있습니다. 당분간 다른 대안을 발견하긴 어려울 겁니다.
그렇다면, 남은 문제는 단 하나입니다. 책으로 강력한 인적 네트워크를 실제 만들 수 있느냐는 겁니다. 독립 서점이 커피를 함께 팔 수 있습니다. 제가 커피를 파는 독립 서점도 관계없다고 한 건, 단순히 커피에 가치를 두라는 뜻이 아닙니다. 커피를 전면에 내세운 독립 서점이 이를 통해 고유의 인적 네트워크를 만들면 된다는 겁니다.
이홍 : 그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특히 독립 서점 창업을 생각하시는 분들에게 신중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지난 한해 이어진 독립 서점의 급성장세에 의구심을 버리지 못합니다. 이 모든 결정과 책임을 서점주 홀로 져야 하는데, 서점가에서 '붐'이라고 칭할 정도의 이 속도에 얼마만큼의 진지한 성찰이 선행되었는가 의구심이 듭니다. 단순히 트렌드를 따라, 나도 하고 싶던 일이라는 이유만으로 창업한 순진한 독립 서점이 적잖으리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독립 서점도 사업
- 지금의 독립 서점 붐에 거품이 있으니, 현실을 냉정히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말씀이군요.
장은수 : 어느 정도 동의하는 대목입니다. 서점주는 출판 환경을 알아야 합니다. 단순히 독자로서 책을 좋아했다고 서점 운영을 잘할 수는 없습니다. 사업적으로 책을 다루는 사람과 교류 없이, 관련 산업에 관한 이해 없이 무턱대고 서점을 여는 건 모든 개인 사업이 그렇듯 위험합니다. 독립 서점주를 위한 관련 교육이 이뤄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독립 서점 창업 시 책과 관련한 노동 여건을 충분히 인지해야 합니다. 창의적 아이디어를 뒷받침할 고된 육체적, 정신적 노동이 날마다 계속됩니다. 매일 신간 목록을 챙겨야 합니다. 신간 내용을 빠른 속도로 재해석해 독자에게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어야 하고, 이 정보를 재가공해 새로운 가치 상품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독립 서점만의 정체성을 만들 수 있으니까요. 들여오는 책에 따라 진열을 매일 매만지고, 팔리지 않는 책은 도매상에 반품하거나 다른 처분 계획을 짜야 합니다. 독자의 반품을 받으면 이를 신속히 처리해야 하고, 책과 관련한 다른 분야의 정보도 꼼꼼히 체크해야 합니다. 서점에서 일어나는 기본 업무를 지탱하는 격한 노동마저 사랑하지 않는다면 금방 한계에 부닥칩니다.
독자는 민감합니다. 특히 독립 서점 소비자라면 업주만큼 책을 잘 압니다. 음악 애호가가 엘피(LP)바에 가면 사장이 음악을 잘 알고 차린 곳인지, 단순히 엘피를 배경으로 놓은 곳인지 금방 알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독립 서점의 핵심 가치가 흔들린다면, 책 좋아하는 사람의 발길을 잡을 수 없습니다. 애서가가 모이지 않는 독립 서점에 사람이 모일 리 없습니다.
독자는 민감합니다. 특히 독립 서점 소비자라면 업주만큼 책을 잘 압니다. 음악 애호가가 엘피(LP)바에 가면 사장이 음악을 잘 알고 차린 곳인지, 단순히 엘피를 배경으로 놓은 곳인지 금방 알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독립 서점의 핵심 가치가 흔들린다면, 책 좋아하는 사람의 발길을 잡을 수 없습니다. 애서가가 모이지 않는 독립 서점에 사람이 모일 리 없습니다.
파리의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라는 서점 예를 들고 싶습니다. 영화 <비포선셋>의 배경으로 나오기도 한 유서 깊은 곳이죠. 오직 문학만 다루는 서점입니다. 프랑스 문학가들의 단골 서점인데, 정기 낭송회도 하고, 자체 페스티벌도 엽니다. 폴 오스터 등도 여기서 낭송회를 했지요. 이 서점을 통해 자연스럽게 독자는 작가와 심리적 네트워크를 구축합니다.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 수밖에요. 독립 서점의 길이 네트워크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곳입니다.
이홍 : 쉽게 생각하고 창업한 독립 서점일수록 어려운 순간을 지나며 본래 가치를 잃기 쉽습니다. 이런 현상이 만연하다면 본래 의도를 지켜가는 독립 서점도 유탄을 맞을 수 있죠. 현대 소비자는 쉽게 변심합니다. 빈티지숍, 카페 등 다양한 새로운 문화소비 공간이 급격히 부침을 겪는 걸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빌딩 1층엔 왜 커피숍뿐일까
- 이미 소셜 미디어를 타고 유명세를 탄 독립 서점이 꽤 있습니다. 60년간 건재한 속초 동아서점, 풍자적 문구로 책을 소개한 진주문고, 강남에서 20년 만에 오픈한 서점이라는 점과 심야 서점 행사로 유명세를 탄 북티크, 작은 공연을 주최하는 소심한 책방 등이 떠오르네요. 그밖에 술과 함께 하는 서점, 여행서 전문 서점, 디자인 서점 등의 다양한 콘셉트 서점도 관심을 모읍니다.
외국에는 일찌감치 바람직한 독립 서점 모델이 뿌리내렸죠. 당장 뉴욕의 스트랜드 서점이 떠오릅니다. 지난 시간에 이야기한 독일 소매상의 연합체 '바이 로컬'에 참여하는 서점도 좋은 모델인 듯합니다. 더 다양한, 바람직한 독립 서점 모델을 이야기해주실 수 있나요?
이홍 : 단순히 언론에 소개되는 독립 서점의 문화적 가치에만 지자체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작지만 의미 있는 전문 서점 공간으로 활용 가능한 곳을 우리 삶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죠. 대기업이 몰린 빌딩가를 지나다 보면, 빌딩 1층 대부분이 커피숍입니다. 왜 꼭 그래야 하나요? 그 공간을 북 센터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비즈니스 관련 서적을 갖춘 독립 서점이 그 공간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지자체 1층은 왜 꼭 비워두나요? 전주의 출판문화산업진흥원 1층에도 서점이 없습니다. 대구의 출판산업지원센터 1층에는 평소에는 텅 비워두는 공연 홀이 있습니다. 이 공간 일부라도 출판 관련 책을 모은 서점이 존재한다면 왜 안 됩니까. 이런 형태의 서점은 제도 개선 없이, 사회적 지원 없이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장은수 : 그런 공간을 '3평 서점'으로 명명해 보죠. 특정 공간에 특화한 3평 서점은 어느 곳에나 가능합니다. 왜 병원 대기실에는 주로 여성 잡지만 있습니까. 약간의 공간만 내주면 병원, 의학, 건강 관련 서적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조그마한 서점을 운영할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병원 대기실 등과 같은 다양한 공간에 서점을 숍인숍 형태로 낸 경우가 많습니다. 가령, 병원 기둥에 작은 키오스크를 들여와서 책을 팔 공간을 마련했죠.
독립 서점 개점을 위해 꼭 자기 공간을 마련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사람이 있는 곳에 어떻게 서점이 존재하게 할 것이냐, 내 공간에 사람이 오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고민이 더 중요합니다.
- 아무래도 외국이 독립 서점 문화 뿌리가 탄탄한 만큼, 긍정적 사례가 있겠군요. 소개해주신다면요?
장은수 : 펭귄랜덤하우스 캐나다 사례를 보죠. 1층에 서너 평 정도 공간을 떼어내 서점으로 운영합니다. 본래 구둣방이 있던 곳입니다. 자신들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디자인 특별판 등을 소량으로 찍어 판매해 보고, 반응이 좋으면 전국적으로 판매하는 실험도 하는 장소입니다. 가방, 컵 등 다양한 문화상품도 개발해서 팝니다. 일종의 아이디어 숍이죠. 아주 매력적입니다.
캐나다 플라잉북스의 실험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호텔이나 대형 슈퍼마켓 같은 곳의 한 공간을 일주일에 하루 빌려 팝업 서점을 운영합니다. 매주 콘셉트를 바꿔 관련 책을 전시하고, 작가 낭송회도 엽니다. 한국에서도 이런 실험은 얼마든지 가능할 걸로 보입니다. 이마트에 일일 서점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구청 청사에서도 가능합니다.
독일의 부흐복스(북박스)는 지역 지향성과 친환경성을 내세운 서점입니다. 대형 서점에서 일하던 두 젊은이가 창업한 이곳은 망한 공장을 재활용해 운영됩니다. 매장에선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기로도 유명합니다. 수익은 지역 결손아동이나 소수자 지원에 활용합니다. 지역의 사회적 약자 지원을 위한 정기 기부행사도 실시합니다. 단순히 우아해 보이기만 하는 소비문화와 결합하지 않고도, 참신한 형태의 독립 서점이 얼마든 나올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레드북스가 이와 같은 포맷에 가깝죠. 사회단체와 결합한 곳이라 노동자·활동가가 서대문의 레드북스에 모입니다. 이런 모델이 전교조에도, 민주노총 사무실 공간에도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대안 모델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네트워킹 센터라는 점입니다. 이 서점만을 찾는 사람을 조직하고, 우리 삶 가까이의 문제를 이슈화하는 장소입니다.
이홍 : 동의합니다. 무분별하게 트렌디한 서점의 난립은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는 더 다양한 독립 서점이 필요합니다. 우리 삶 가까이에 책을 접할 장소가 존재한다면, 그 사회가 곧 ‘책 읽는 사회’일 것입니다.
장은수 : 지금의 독립 서점 붐이 환영할만하다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 겁니다. 꼿꼿한 자기 철학을 가진 많은 분이 좋은 가치를 전파하고 사람들을 묶는 서점을 만들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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