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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개헌이 아니라 선거법 개정이 필요하다

[민미연 포럼] 문제는 정치의 생산적 경쟁과 대승적 협력 체제다

국회상임위의 갈등

노동관계법을 다루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는 항시 개혁 방향이 완전히 다른 법안이 올라온다. 하나는 기업이 질색하는 법안이고, 다른 하나는 노조가 질색하는 법안이다. 예컨대 전자는 비정규직(사내하청 포함) 사용 요건을 엄격하게 하는 등 기업에 대해 더 많은 의무, 부담을 지우는 법안이 대종이다. 후자는 선진국처럼 파업시 노조의 사업장 점거를 금하고, 대체 인력 투입을 허용하자는 법안이 대종이다.

물론 기업이나 노조가 결사반대하는 법안은 거의 통과되지 않는다. 의석의 60%를 넘어야 본회의를 통과하게 만든 국회선진화법 때문만은 아니다. 의석이 66대 34에 가깝던 18대 국회(2008~2012년)에서도 여야(보수-진보)가 첨예하게 입장이 갈리는 법안은 통과가 극히 어려웠다. 본회의장 농성과 난투극 등 '동물국회’ 상황이 벌어지곤 했다. 사실 노동관계법은 보수와 진보간 첨예하게 입장이 갈리는, 일종의 정치법으로 헌법이나 선거법만큼이나 개정하기 어렵다고 정평이 나있다.

한국의 노동법 개정의 역사가 이를 말해 준다. 1996년 12월 노동법 날치기 통과 파동으로 거대한 파업사태를 초래했고, 1997년 3월 여야 합의로 일부가 개정 되었다. 이후 기업이나 노조의 노동법 개정 요구가 들끓었지만, 2006년과 2010년에 일부 개정 되었을 뿐이다. 그나마 국회 경호권 발동 등 큰 파란 끝에 국회의장의 본회의 직권상정을 통해 처리되었다. 선진국은 잘도 하는 노사정대타협은 한국에서는 언감생심이다.

그런데 대기업(재벌)에게 더 많은 의무, 부담을 가하는 경제민주화 입법(상법과 세법 등)을 처리하는 상임위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거기서는 기업과 노조가 다투는 것이 아니라, 기업 능력(경쟁력) 저하를 우려하는 보수 측과 기업의 곳간에서 더 많은 것을 빼내고자 하는 진보 측이 다툰다. 공무원 임금·연금 개혁, 공기업 개혁(분할 혹은 민영화, 성과연봉제 등), 규제 개혁 등 공공개혁을 다루는 상임위에서도 보수와 진보는 첨예하게 부딪힌다.

이런 식의 다툼은 거의 모든 상임위에서 벌어진다. 보수와 진보 혹은 1당과 2당이 첨예하게 충돌하는 법안은 장기 계류 상태로 있다가 결국 폐기된다. 문제는 한국 국회에서는 선진국에서는 결코 첨예하게 충돌하지 않을 법안을 가지고, 피터지게 싸우는 일이 다반사라는 것이다. 법정 시한을 한참 넘겨 경쟁자들이 뛸 기회를 엄청 앗아가 버린 국회의원 선거구제 획정이나, 세계 최장기 릴레이 필리버스터 사태(2016.2.23.19:05분~3.2.19:32분)를 초래한 테러방지법이 대표적이다.

경제위기는 정치위기

이런 식의 의사결정 지연, 회피와 이념과 이권(기득권)을 둘러싼 격렬한 갈등이 거의 모든 분야에서 벌어진다. 적기에 적절한 결정을 내릴 수가 없다. 그래서 김상조 소장(경제개혁연대)은 '경제위기는 정치위기'라고 진단했다.

"문제를 모르는 것이 아니고 답을 못 찾는 것도 아닌데, 컨센서스를 모으고 실행할 수 있는 최종 의사결정을 못 하는 게 가장 큰 위기 징후다. 정부와 국회가 위기를 인식하고 해결하기 위한 정책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는 상황이 외환위기 직전과 매우 유사하다는 점에서 한국의 경제위기는 정치위기이다" (2016.1.8 한겨레신문, 반복되는 경제위기 근본적 대책 찾아야)

그런데 문제도 알고, 답도 아는 것은 불평등, 양극화, 일자리, 저성장, 저출산 같은 문제가 아니라, 조선, 철강, 해운 산업 구조조정 등 발등에 떨어진 불끄기 문제 일 것이다. 어쨌든 그런 작은 문제조차 왜 컨센서스가 모이지 않고, 최종 의사결정을 하지 못 하는 걸까?

많은 원인이 있겠지만, 그 핵심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모든 사안(위기 등)을 선별적, 당파적으로 인식하는 메커니즘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상대의 실패가 곧 나의 성공인 양강·양당 정치구도에서는, 사실 야당은 진보 든 보수 든 대통령과 집권 여당의 실패를 학수고대하지, 위기 해결을 바라지 않는다. 이게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그런데 검찰, 경찰, 국세청, 감사원, 예산, 규제, 공무원 및 공기업 인사권 등을 맘대로 주무르는 권력은 상대가 쥐면 너무나 공포스럽고, 자기 패거리가 쥐면 너무나 매력적이기때문이다. 그래서 권력 그 자체를 둘러싼 사생결단의 혈투로 인해 야당은 말할 것도 없고 여당조차도 위기에 둔감하고, 복잡한 해법은 너나 할 것 없이 부실하다.

불평등, 양극화, 일자리도 정치위기

공적 조정통제, 선택집중 장치인 정치와 행정이 작동불능 상태에 빠지면서, 한국 경제와 사회 곳곳에서 기득권 집단이 마치 암세포처럼 사회의 활력과 양분(잉여)과 기회를 잠식하고 있다.

지금 한국은 1987년 민주항쟁 승리이후, 독재권력의 손아귀에서 풀려난 힘센 이익집단들의 기득권이 터질듯이 팽창해 있다. 1인당 GDP를 기준으로 한 소득(임금)의 국제비교 통계를 보아도, 분위별 소득점유율 통계를 보아도 한국 기득권 집단의 권리, 이익 수준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은 명백하다.

2014년 국내 완성차업체 직원 평균 급여는 약 9234만 원으로 도요타(약 8351만 원=838만 엔), 폭스바겐(약 9062만 원=6만4783유로)보다 높았다. 물론 이 수치는 환율에 따라, 성과급 포함 여부에 따라(도요타는 성과급이 제외된 수치) 다소간 등락이 불가피하겠지만, 노동생산성이나 1인당GDP를 감안하면 한국이 엄청나게 높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더 큰 문제는 이것이 생산성(노동의 양과 질)과 별로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2014년 기준 기아차 광주공장의 가치생산사슬을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정규직 평균연봉 1억원, 사내하청 평균 5000만원, 1차 협력사 4700만원, 그 사내하청 3000만원, 2차 협력사는 2800만원, 그 사내하청은 2200만원 순으로 내려간다. 노동의 양과 질에 따른 격차가 아니라 소속 직장의 지불능력과 노조 교섭력에 따른 격차이다. 물론 이는 1987년 이전에는 없었던 현상이다.

서울 지하철2호선 구의역 사망 사고를 통해 드러난, 스크린도어 수리업체 '은성PSD 내의 임금 격차', 즉 서울메트로 출신이라는 이유로 월 442만원(연 5304만원)을 받고, 김군 등 청년 비정규직 및 정규직은 월140~200만원(연1680~2400만원)을 받았는데, 이는 유럽, 미국, 일본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악질적 격차다. 게다가 세금과 국가독점 업역이 주된 소득원인 공무원과 공기업이 한국만큼 선호 받는 나라도 없다. 노동조합의 대부분이 공공부문과 규제산업과 독과점(수요독점) 기업인 나라도 없다.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과 김낙년 등의 소득세 자료 연구에 힘입어 주요 선진국과 한국의 소득분배구조가 드러났다.

2010년 기준 상위 10%의 소득점유율이 세계 최악이라는 미국과 한국은 양적으로는 엇비슷해 뵈지만, 질적으로는 크나큰 차이가 있다. 미국은 상위 1%의 소득과점(19.34%)이 소득불평등의 핵심 원흉이다. 하지만 한국의 상위1%는 12.23%를, 그 아래 9%가 32.64%로 독보적으로 높다. 더 심각한 것은 미국의 상위10%는 실제 생산성이 높은 존재들이 많지만, 한국의 상위10%는 세금, 국가독점(공공기관), 규제, 민간독과점, 부동산, 연공임금체계와 현대기아차 노조처럼 단체교섭을 소득원으로 하는 존재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어느 사회나 있으며, 칭송하기까지 하는 '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빼어난 1명이나 빼어난 팀'은 소수임이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지금 한국 사회는 직장이 곧 계급인 사회요, 공공이 곧 양반인 사회다. 한마디로 지대추구 사회이자 가치전도 사회다. 따라서 미국의 소득격차는 세금과 복지로 해결할 문제지만, 한국은 그와 더불어 시장, 개방, 경쟁과 민주적 통제로서 해결할 문제이다. 그런데 한국 정치는 김상조의 말대로, 기득권을 건드리는 작은 개혁(결정)조차도 하기 어렵다.

국회 상임위에서 일어나는 갈등은 대체로 정부(대통령)여당과 야당 간의 대결로 나타난다. 그래서 이를 승자독식=패자전몰의 정치 제도 혹은 제왕적 대통령제 탓으로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는 표피만 본 것이다. 갈등의 배후에는 기업과 노조, 영남과 호남(출신 고위 공무원), 검찰과 경찰, 규제로 인해 이익을 보는 자와 손해를 보는 자 간의 깊은 균열과 갈등이 있다. 물론 다투는 쌍방은 거의 기득권자들이다. 대체로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이나 정상적 민주주의 내지 보편상식이 허용하는 것 보다 훨씬 많은 권리, 이익을 가져가는 존재들이다. 정치갈등의 뒤에는 과거 전쟁, 기아, 독재와 자본의 전횡 등에 대한 피해의식과 승리 경험을 먹고사는, 공포와 증오심 가득한 정치대중들도 있다.

사회주의 계획경제와 1987체제

6공화국이라고도 불리는 1987체제의 골조는 결선투표 없는 5년 단임 대통령제를 핵심으로 한 헌법개정, 소선거구제 상대다수득표제를 채택한 1988년의 선거법, 영호남 지역주의에 뿌리박은 정치적 대립구도 등이다. 1987년 체제를 관통하는 핵심 정신은 대통령이나 다수당이 전횡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대통령을 내 손으로 뽑아 권력을 국민 아래 두려는 것이다. 권력의 부당한 억압,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억눌린 내 자유와 권리를 되찾고, 빼앗긴(?) 내 몫을 쟁취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의 권능을 약화시키고 국회의 권능을 강화하였다. 대통령 5년 단임제, 대통령의 국회해산권 삭제, 헌법개정 요건 강화(국회 2/3 이상 동의), 대통령의 계엄선포권 견제(국회 재적 과반수의 해제 요청 시 해제), 헌법재판소 제도 신설, 주요 공직자에 대한 국회의 임명동의 조건 강화 등이 그것이다. 또한 교섭단체끼리 상임위원장도 나눠 가지는 등 국회운영도 다수당이 일방적으로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국회선진화법은 그 정수다. 그런 점에서 1987년 체제는 정치세력들이 대승적 견지에서 타협, 절충을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정치적 교착 체제이자, 정치적 무능을 구조화한 체제라고 할 수도 있다.

1987체제는 물질적, 문화적 생산력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사회적 가치자원 분배 체계, 즉 국가비전을 가진 정치집단이 주도하여 만든 체제가 아니다. 6월항쟁과 7~9월 파업투쟁을 주도한 세력들은 농업국에서 불과 30년 만에 자동차, 반도체 같은 상품을 선진국에 수출하는 신화를 창조한 한국식 자본주의 체제와 근본적으로 다른 경제사회 모델(국가비전)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단군 이래 최대의 호황기를 배경으로 탄생하였기에 경제 패러다임에 대한 변화의 목소리는 약할 수밖에 없었다.

멈춰야 할 때 멈추지 못하는 암세포들


원래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모순은 경제산업발전의 초기단계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경제와 산업이 성장하고 인민의 욕구가 천차만별로 분화되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1987체제도 마찬가지다.

1987체제는 모든 정치, 경제, 사회 주체들이 자신의 자유, 권리, 이익을 위해 각개 약진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체제다. 단적으로 1987체제의 최대의 수혜자인 노조운동은 수익성과 교섭력이 좋은 대기업노조에 의해 주도되었는데, 이들의 기본 철학과 가치는 "단결하면 힘 생기고, 투쟁하면 쟁취한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익성과 교섭력이 좋은 곳에서 선도적 투쟁을 통해 근로조건을 끌어올리면 주변 지역이나 동종 산업으로 파급되어 나머지 전체의 근로조건을 끌어올린다는, 협소한 사익과 공익 내지 노동계급의 이익을 완전히 일치시키는 허구 위에 서 있었다. 물론 1990년대 초반까지는 사익과 공익은 크게 충돌하지 않았던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후 25년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노조 간판을 달지는 않았지만, 사익과 공익을 일치시킨 존재들이 너무나 많다는 사실이다. "마피아"라고 비난 받는 전현직 관료와 업자 네트워크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정당과 공무원조차도 사익=지대추구에 몰입한다는 점에서 노조와 다를 바 없다. 이들은 경쟁자나 거래 당사자(협력업체)나 국가에 의해 통제 되지 않으면 암세포처럼 되기 마련이다. 증식을 멈춰야 할 때 멈추지 못하면 결국 생명체나 가치생태계를 파괴한다.

1987체제는 이해당사간 경쟁과 거래가 자유롭고 공정한 곳(시장)이나 국가에 의해 공적으로 잘 통제 되는 곳에서는 대단한 성취를 이룩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곳에서는 오히려 법의 이름으로, 즉 자유, 민주, 노동, 공공의 이름으로 더 몰염치한 약탈, 차별, 억압이 일어났다. 이는 소득 상위 10% 안에 드는 사람들의 소득의 원천과 이들이 사는 시장 구조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열심히 일하고도 20년 전의 소득(130~150만원) 그대로인 수백만 명이 일하는 시장구조를 살펴봐도 알 수 있다.

1987체제의 말기적 징후인지 몰라도 사회적 약자들에게 집중된 모순부조리들, 예컨대 외국인 노동자 문제, 정년연장법 문제, 담뱃값 문제, 구의역 사고로 숨진 김군이 당했던 차별 등은 거대 양당은 물론 진보 정당도 받아 안지 않았다. 그래서 정치적 쟁점으로 부상해야 마땅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 사안도 많다. 그런 점에서 정작 있어야 할 갈등은 없고, 없어도 될 갈등은 넘쳐난다.

작동할 수 없는 정치시스템이 만든 헬조선

우리가 고통스러워하는 불평등, 양극화, 일자리, 저출산, 고갈등 문제의 뿌리에는 제대로 작동하지도 않고, 작동할 수도 없는 공적 조정통제 장치, 즉 국가와 정치가 있다.

한국 정치의 중심인 대통령, 국회의원, 지자체장을 선출하는, 권력구조와 선거제도는 양강·양당 구도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그 유명한 뒤베르제의 법칙이다. 게다가 한국의 대통령, 단원제 국회 권력은 지방자치분권, 상하원제, 독립된 사법부와 언론,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며 권력 눈치 보지 않는 튼튼한 중간집단(상공인 조합과 전문가 협회)이 있는 선진국의 대통령 및 총리, 의회 권력과 차원이 다르다. 당연히 중앙당 당권파가 주무르는 공천권의 위력도 다르다. 게다가 현재의 진보, 보수 양당체제는 1940~50년대의 진보, 보수가 전쟁을 하다가 잠시 중단한 정전체제 하에 있다. 따라서 권력 투쟁이 격화되면, 어김없이 50~60년 전의 진보(좌익), 보수(우익)와 연관성이나 근친성을 찾는데 혈안이 된다. 그 결과가 조상 들추고, 과거의 언행 들추기다. 친일독재 타령이고, 친북좌익 타령이다. 물론 이 뒤에는 과거의 피해의식이나 승리 경험에 도취된 편향된 정치대중 집단과 기득권 사수에 여념이 없는 이익집단이 있다.

이 구조에서는 열성 지지층에 끌려가기 보다는 오히려 열성 지지층을 끌고 다닌 김대중, 김영삼 같은 지도자가 사라지면서, 요컨대 정당이 민주화되면서, 분노, 증오, 공포심이 넘치는 열성적이지만 편향된 지지층의 영향력이 점점 강해져왔다. 이들이 당내 선거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분노, 증오를 구현할 지도자가 당권(공천권)을 쥐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들이 정권 쟁취에 매달리는 이유도 국가의 폭력기구(검찰, 경찰, 감사원, 국세청, 인허가권 등)을 틀어쥐고, 자신들이 적이라고 생각하는 존재(친일독재 후예와 친북좌익)를 척결하기 위함이다.

청년들의 입에서 '헬조선' '망한민국' 소리가 절로 나오게 하는 정치, 경제, 사회 구조를 뜯어고치는 것이 아니다. 암세포로 변한 기득권 집단에 메스를 가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상대 역시 분노와 공포에 휩싸여 더 결사적으로 당권과 정권에 매달리는 것이다. 적대적 상호의존이 이뤄지는 것이다.

요컨대 1987체제 하에서 한국의 정당체제와 정당구조는 정당이 민주화 될수록, 점점 더 기득권 집단의 입김과 공포, 증오가 가득한 정치대중의 입김이 강해진다. 이들에게 영합해야 당권(공천권)에 다가갈 수 있기에, 정당 리더십의 질도 점점 떨어지게 되어 있다. 이들이 공천권을 행사하고, 아젠다를 설정하기에 국회의원의 질도, 정치의 질도 점점 떨어지게 되어 있다.

19대 국회도 그랬지만, 20대 국회는 점점 더 법률, 예산, 규제가 미치는 일파만파 파장을 전혀 타산하지 못하는, 한마디로 단원제 국회(의원)의 준엄한 책임을 이행할 의사도 능력도 없는 자들의 비중이 늘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이나 지자체장이 무슨 일을 하고,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 도통 이해를 못하면서도 권좌를 차지하거나 노리는 존재들이 너무 많다. 한진해운 법정관리 사태가 그 단적인 예다. 그런데 견문도 넓어지고, 학력도 높아져서 요구, 기대가 큰 국민들은 기존 정치에 환멸을 느껴, 문국현, 안철수, 반기문 등 정당 정치에 때가 덜 묻는 지도자에게 혹시나 하는 기대를 건다. 정당들도 자꾸 외부에서 수혈 하려고 한다.

1987체제가 만든 양강·양당 구도는 어떻하든 상대의 발을 걸어야 내가 이익을 보는 구조다. 정권이 실패해야 기회가 생기는 구조다. 브레이크 만 강하게 만든 구조다. 편향된 세력들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는 구조다. 그런데 국회의 운영구조는 편향된 세력들의 '법안질' 하나는 제어하는 브레이크 장치는 튼튼하다. 결과적으로 좌측으로도 우측으로도 가지 못한다. 한국 현실 문제를 풀려면 핸들을 좌로도 틀고 우로도 틀고, 때론 과속도 하고 멈추기도 해야 하는데, 이 모든 것이 안 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결국 지금 이대로가 된다. 기득권 자만 유리하다. 기업도 기득권자지만, 조직률 10% 짜리 기업별 노조도, 공무원도 기득권자다. 실은 현세대도 기득권자다.

대통령은 법률이 아니라 대통령령과 예산과 인사권과 검찰/경찰/감사원/국세청/국정원에 의해 통치를 한다. 노무현처럼 사정기관을 활용하지 못하는 대통령은 무능한 대통령이 된다. 그런데 사정기관을 잘 활용하는 대통령도 별무신통이다. 세상을 크게 바꾸는 일(법, 제도, 구조 개혁)은 거의 못하고, 사정기관 동원해서 미운 놈 혼내주고, 이쁜 놈에게 이권(자리, 예산 등) 던져 주는 일이나 좀 하다가 엄청난 지탄을 받으면서 권좌에서 내려온다. 결론은 뭐 하나 바뀌는 것이 없는 헬조선이 되는 것이다.

불평등, 양극화, 일자리, 저출산, 저신뢰와 청년의 절망은 곪을 대로 곪은 구조적 모순부조리, 한마디로 터질 듯이 팽창한 기득권을 제때 개혁을 하지 못해서다. 이를 개혁하는 정신(사상)도 없다. 이런 정신(사상)을 억압하는 강력한 장치가 있기 때문이다. 남북 분단이 남북한에서 자유로운 정신과 실사구시, 실용 정신을 억압했듯이, 지금의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거대한 휴전선 역시 제대로 된 개혁의 발목을 잡는다. 좌파적 개혁도 우파적 개혁도 필요한데, 서로 손목 발목을 잡고, 눈을 부라리니 개혁 담론의 눈치 보기나 편향성도 심하다.

한국 사회의 기득권 중의 기득권

한국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기득권 중의 기득권은 양강·양당 구도를 강제하는 선거제도다. 결선투표 없는 대통령 선거제도와 소선거구제 상대다수득표제 국회의원선거제도다. 이는 반사이익 혹은 공포와 증오에 기대어 정치품질 경쟁을 할 필요가 없는 적대적 상호의존 체제이자 양당의 정치 독과점 체제를 만든다.

그러므로 정치 혁신의 관건은 정당간의 생산적 경쟁과 대승적 협력을 가로막는 양대 빗장인 결선투표 없는 대통령제와 소선거구제 상대다수득표제를 제거하는 것이다. 대선 결선투표제와 중대선거구제 또는 정당명부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그러면 지지율 10%가 넘는 정당이 최소 4개, 많으면 5~6개가 나올 수 있다.

물론 선거제도 개혁만으로는 헬조선이 헤일(hail)조선이 되는 것이 아니다. 사실 한국에서 대화와 타협의 정치, 이른바 합의제 민주주의가 잘 안 되는 것은 제왕적 대통령제 때문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1987체제의 구조적 결함으로 인해 정치, 경제, 사회 전 분야에서 기득권이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상위 10~20%가 합법적 약탈이라고 보아야 하는 지대 거품 위에 올라타고 있기 때문이다. 나머지도 그 곳에 올라가려고 결사적으로 노력한다.

또 하나는 정치권력과 관료권력이 주무르는 사정기관, 규제, 예산, 인사, 공기업 등으로 시장(기업)과 사회와 지역과 개인의 팔자를 일거에 고쳐줄 수도 있고, 완전히 망가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은 대통령이 제왕적인 것이 아니라, 국가권력 자체가 제왕이다. 아니 알라딘의 마술램프의 거인이다.

그래서 이 거대한 권력 위에 잠깐 올라타는 존재들이 다 제왕이 된다. 대통령도, 지자체장도, 중앙부처 고위관료(검찰 총장 등)도, 공기업 수장도 제왕이다. 국회는 이들을 견제, 감시하고, 이들을 낙점하기에 제왕이 되는 것이다. 때로는 감사원, 국세청, 검찰, 법원은 이들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기에, 저승사자가 되곤 한다.

1987체제는 독재방지와 내 자유와 권리를 쫓아 (가치생태계 무시하고) 각개약진 하는 것이 정의라는 거대한 정신이 만들었다. 헌법, 선거법과 제반 법령은 그 정신의 반영이자, 경쟁자간의 절충 타협의 산물이다. 따라서 2017체제도 관통하는 정신을 먼저 물어야 한다. 그것은 권력의 분산, 분권이다. 유권자의 다양한 선호 내지 선택, 심판권이 더 잘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다. 권력에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흐르게 하는 것이다. 시장도 사회도 기여(위험)과 이익, 권리와 의무, 혜택과 부담의 균형의 원리가 흐르게 하는 것이다. 이 핵심은 하는 일(노동의 양과 질)과 받는 처우의 균형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기득권과 지대를 제거하는 것이다. 대화와 타협의 민주주의는 이 결과이다. 하부 구조나 기본 전제를 놔버리면 합의제 민주주의는 정치기득권이나 이익집단간의 담합으로 귀결된다.

7공화국의 핵심은 헌법이 아니라 선거법과 정신이다

헬조선을 혁파한 완전히 새로운 대한민국을 부르는 이름 중에 하나가 7공화국이다. 개인적으로 2년 여 전부터 부르짖어왔다. 그런데 "7공화국"을 생경하게 느끼는 사람이 많다. 당연하다. 지금을 6공화국이라 부르는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실을 바라보는 시계가 5년 단임 대통령을 따라 분절되는 현상도 심해졌기 때문이다. 본질과 구조를 보는 눈이 흐려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분명한 것은 지금 대한민국은 1987년 10월29일 국민투표로 가결되어, 1988년 2월25일자로 시행된 헌법 제10호(9차 개헌안)에 의해 규율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전 헌법에 의해 규율되는 시대가 제5공화국이 맞다면 지금은 제6공화국이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이승만, 윤보선-장면, 박정희 정권은 스스로를 1공, 2공, 3공, 4공으로 불렀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전두환 정권은 스스로를 제5(민주)공화국으로 불렀다. 헌법에도 그렇게 명시되었고, 헌법 학자들도 언론도 지식인들도 별 이견이 없었다. 나름대로 합리성이 있는 기준이고, 무엇보다도 그게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헌정사의 큰 변곡점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공화국 차수 변경의 기준을 제시한, 1980.10.27 통과된 헌법 제9호(8차 개헌안) 전문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유구한 민족사, 빛나는 문화, 그리고 평화애호의 전통을 자랑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에 입각한 제5민주공화국의 출발에 즈음하여(중략)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1960년 6월 15일, 1962년 12월 26일과 1972년 12월 27일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1988.2.25 출범한 노태우 정부 시절에는 6공화국이라는 말이 널리 사용되었다. 그런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는 거의 쓰이지 않았다. 대신에 문민정부니 국민의정부니 참여정부 같은 5년짜리 '자칭'이 많이 쓰였다. 국가를 규율하는 기본 틀이 하나도 바뀌지 않았는데, 대통령들이 자신의 집권이 역사의 큰 분수령이라도 되는 양 착각하거나, 과대광고를 했다고 보아야 한다.

하지만, 정부를 규율하는 기본 틀은 이제 30살이 된 헌법 제10호다. 헌법 개정이 된다고 해서 공화국 차수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1952년의 발췌 개헌(헌법 제2호), 1954년의 사사오입 개헌(헌법 제3호), 1960년 11월의 헌법 제5호(반민주행위자 처벌을 위한 소급입법 근거 마련), 헌법을 대체한 국가재건비상조치법(1961.6.6), 1969년의 3선 개헌(헌법 제7호)은 공화국 차수 변경의 근거로 삼지 않는다. 이유는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5공화국과 6공화국을 가르는 가장 결정적인 분수령은 대통령 선거제도다. 헌법 전문 등 수많은 헌법 조항 등은 곁가지다. 사실 5공을 종식시킨 가장 결정적인 힘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 투쟁에서 나왔다. 만약 5공의 대통령 선거제도가 헌법 사항이 아니었다면, 아마 개헌 투쟁을 하지 않고, 선거법 개정 투쟁을 했을 것이다.

5공 헌법은 대통령 간선제였고, 6공 헌법은 대통령 직선제다.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헌법 사항은 아니지만, 헌법만큼 중요한 국가의 기본 틀이다. 5공은 1구2인의 중선거구제였고, 6공은 1구 1인 소선거구제다. 권력의 중심인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헌법 또는 헌법에 준하는 위상을 갖고 있다.

대통령 결선투표제와 국회의원 중대선거구제나 독일식 정당명부제는 헌법 사항이 아닌 법률 사항이지만, 7공화국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거대한 변화를 일으키게 되어 있다. 양대 정당의 기득권(정치독과점)을 뿌리째 흔드는, 대선 결선투표제 라는 '한강'을 건넌다면, 웬만한 개헌 사항은 작은 실개천 건너기에 불과하다. 다당제를 초래하는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혁도 양재천이나 안양천 같은 좀 큰 개천에 불과하다.

대선 결선투표제로 지지율 10%가 넘는 4~6개당이 자신의 선명한 칼라를 가지고 각축하면서, 합작과 연정을 하는 구조가 된다면, 한국 정치의 만악의 근원인 부실한 정당 문제가 상당 정도 해결된다. 그렇게 되면, 불평등, 양극화, 일자리, 저출산, 남북관계 등 문제를 지금 보다는 훨씬 스마트하게 해결할 수가 있다.

정치와 정당의 문제 해결력과 견실함을 보여주면 아마도 5~10년 내에 내각제 개헌도 국민적 설득력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거듭 말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을 바꾸는 핵심은 제왕적 대통령제-승자독식=패자전몰제도 철폐가 아니다. 유권자에게 더 다양한 선택권과 더 많은 심판권을 주어, 대통령이 아니라 정당과 정치 자체를 국민의 종복으로 만드는 것이다. 정치의 생산적 경쟁체제와 대승적 협력체제 구축을 담보하는 선거법과 2017체제를 관통하는 정신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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