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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대왕 찾아가 만파식적(萬波息笛)을 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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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대왕 찾아가 만파식적(萬波息笛)을 얻다

2016년 11월 두발로학교 <경주 ‘신문왕호국행차길’>

신문왕(681~692)이 아버지가 잠든 대왕암(문무대왕릉)을 찾아갔던 <신문왕호국행차길>은 신라를 새롭게 만나는 방법이다. 그 길에는 통일신라 격동의 역사와 만파식적 신화가 담겨 있다. 궁궐을 출발한 신문왕의 행차는 토함산과 함월산 사이의 은밀한 수렛재를 넘어 천년고찰 기림사에 다다른다. 수렛재는 구렁이 담 넘듯 오르는 유순한 길로 울창한 활엽수림이 장관이다. 수렛재를 내려와 만나는 웅장한 용연폭포는 용의 전설을 품고 시원하게 흘러내린다. 행차길 걷기는 기림사에서 끝나지만, 감은사지를 거쳐 이견대와 대왕암까지 버스로 둘러본다.

▲모차골을 따라 걸으면 군데군데 이정표가 길을 알려준다. Ⓒ진우석

2016년 11월 26일(토), 제52강을 맞는 두발로학교(교장 진우석. 여행작가)는 올 가을로 꽉찬 경주 <신문왕호국행차길>을 걷습니다. <신문왕호국행차길> 걷기는 경주 토함산과 함월산 사이 추령터널 입구에서 수렛재~용연폭포~기림사까지 8㎞, 약 3시간 정도 걸은 뒤, 버스로 기림사에서부터 감은사지와 동해의 이견대∼대왕암까지 둘러봅니다. 진우석 교장선생님이 두 번째로 엄선한, 늦가을에 사색하며 걷기 참 좋은 편안한 길이면서, <왕의 길> <만파식적의 길> <삼국유사의 길>이기도 합니다.


두발로학교는 지난 51강부터 진우석 선생님을 새 교장선생님으로 모시고, 두발로학교를 새롭게 열어가고 있습니다.

진우석 교장선생님은 저명한 여행가이자 여행작가이십니다. 스스로 ‘시인이 되다만 여행작가’라 하며 ‘걷기 달인’, ‘길의 탐미주의자’로 통합니다. 히말라야, 카라코람, 알프스, 백두대간 등 국내외 굵직한 트레일을 걸었으며, <서울신문>에 <진우석의 걷기 좋은 산길> 연재를 시작으로 국내외 ‘날 것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관광공사 ‘이 달의 걷기길’ 선정위원으로 있으며, 삼성 SERICEO‧여행작가학교 등에서 여행강사로 활동합니다.

▲수렛재를 넘으면 아름다운 용연폭포를 만날 수 있다. Ⓒ진우석

진우석 교장선생님으로부터 11월의 걷는 길 <신문왕호국행차길>에 대해 들어봅니다.

토함산은 불국사를 품은 경주의 진산으로 건너편 함월산을 마주보고 있다. 두 산의 사이를 구불구불 넘어가는 고개가 추령이다. 추령은 예로부터 경주 시내와 동해를 연결하는 중요한 고개였다. <신문왕호국행차길>의 출발점은 추령터널 앞이다.

추령터널 앞의 도로안내판은 ‘감포‧울산’ 방향을 가리키고, 그 오른쪽으로 ‘왕의 길’이 적혀 있다. 왕의 길이 바로 <신문왕호국행차길>이다. 신문왕의 행차는 추령을 넘지 않고, 함월산 쪽에 숨어 있는 수렛재로 이어진다.

‘왕의 길’ 이정표를 따르면 작은 시멘트길이 이어진다. 여기가 모차골인데, 마차가 들어올 수 있는 골짜기라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인자암 앞에서 길은 호젓한 흙길로 바뀐다. 숲으로 들어서자 마치 비밀의 화원으로 들어선 느낌이다. 길섶에는 서어나무, 느릅나무, 오리나무, 까치박달 등 울창한 활엽수들이 도열하고 있다. 그 사이를 유유히 걷는 맛은 마치 왕이 된 기분이다. 조붓하고 정겨운 오솔길은 졸졸 흐르는 계곡을 끼고 구렁이 담 넘듯 슬그머니 수렛재를 넘는다.

▲기림사의 중심 건물인 대적광전. 단청 없는 맞배지붕이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진우석

신문왕은 수레에 올라 수렛제를 넘었다. 덜컹거리는 수레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681년 신문왕이 왕위에 오를 무렵의 정국은 어지러웠다. 장인 김흠돌이 난을 일으켰고, 백제와 고구려 독립을 꿈꾸는 세력은 끊임없이 활동했다. 그리고 수백 년 동안 신라를 괴롭혀온 왜구의 준동은 늘 두통거리였다. 신문왕은 이를 극복하고 백성을 통합시킬 새로운 신화가 필요했다.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아버지에게서 그 해답을 찾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682년 신문왕은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감은사를 완성한다. 그리고 다음 해인 683년, 아버지의 무덤이 있는 대왕암을 찾기 위해 행차길에 올랐다.

다시 길을 나서 완만한 길을 내려오면 시원한 계곡소리가 반갑다. 물소리가 크게 들리는 곳에는 15m쯤 높이의 바위에서 물보라를 일으키며 용연폭포가 쏟아진다. 폭포 양쪽에는 거대한 절벽 바위가 감싸고 있어 더욱 웅장해 보인다.

신문왕도 수렛재의 최고 절경인 용연폭포에서 쉬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만파식적과 옥대를 얻어서 궁궐로 돌아가던 신문왕은 계곡에서 마중 나온 태자 이공을 만난다. 태자는 옥대의 장식에 새겨진 용이 진짜임을 알아본다. 신문왕이 그것을 떼어 물에 넣자 순식간에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고 그 땅은 못이 되었다고 한다.

▲시나브로 저물 무렵의 감은사지. 노을이 질 때 아름답다. Ⓒ진우석

용연폭포를 나와 휘파람 불며 기분 좋게 내려오면 기림사가 보인다. 대적광전은 신라 선덕여왕 때 처음 지어졌으며, 현재의 건물은 인조 7년(1629) 다섯 번째 지어진 건물의 형태를 갖추고 있다. 단청이 없는 정면 5칸, 측면 3칸의 규모의 맞배지붕의 모습이 단정하며 경건하다. 그 앞의 500년 된 반송은 고풍스러움을 더한다.

기림사에서 <신문왕호국행차길> 걷기를 마무리했으면, 여기서부터는 버스로 이동한다. 바로 감은사지를 만날 차례다. 감은사는 문무왕이 왜구를 물리치기 위해 대본리 바닷가 인근에 세운 절이다. 문무왕이 절을 짓다가 세상을 떠나자 신문왕이 마무리했다. 문무왕은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는 용이 되겠다며 물결 거친 동해의 바위에 자신의 무덤을 만들라고 유언을 남겼고, 실제로 대왕암에 수중릉을 만들었다.

신문왕의 행차가 감은사를 거쳐 이견대에 도착하자, 비바람이 치고 천지가 진동했다. 이때 신문왕은 홀연히 나타난 용으로부터 대나무와 옥대를 얻는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용은 신문왕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왕께서는 이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부시면 온 천하가 화평해질 것입니다. 이제 대왕의 아버님께서는 바닷속의 큰 용이 되셨고 유신은 다시 천신이 되어 두 성인이 마음을 같이 해 이런 값으로 칠 수 없는 큰 보물을 보내시어 나로 하여금 바치게 한 것입니다.” 이 대나무로 만든 피리가 바로 만파식적(萬波息笛)이다. 피리를 불면 적병이 물러가고 병이 나으며 가뭄에는 비가 오고 장마지면 날이 개며, 바람이 멎고 물결이 가라앉았다고 한다.

이견대에서는 문무대왕릉인 대왕암이 한눈에 보인다. 거센 바다 한가운데 웅크리고 있는 대왕암의 모습은 경이롭다.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겠다며 스스로 바다로 뛰어든 문무왕의 호국정신은 참으로 감동적이다.

▲이견대에서 바라본 대왕암. 신문왕이 이곳에 행차해 결국 만파식적과 옥대를 얻었다. Ⓒ진우석

[만파식적 설화]
신라시대 전설상의 피리로 원명은 만만파파식적(萬萬波波息笛)이다. 신라의 제31대 신문왕(神文王)이 아버지 문무왕(文武王)을 위해 감은사(感恩寺)를 지은 후에 해룡이 된 문무왕과 천신(天神)이 된 김유신(金庾信)으로부터 대나무를 얻어 만든 피리라고 한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전해지는 설화는 다음과 같다.

31대 신문대왕은 문무왕을 위해 감은사를 동햇가에 세웠다. 그 이듬해 5월 동쪽 바다에서 조그마한 산이 나타나 감은사를 향해 물결을 따라 왔다 갔다 한다는 보고가 있었다. 왕은 이를 이상히 여겨 일관(천문 관측과 점성을 통하여 나라나 인간의 길흉을 점치던 관원)에게 점을 치게 했다. 일관이 말하기를 “선왕(문무왕)께서 지금 바다의 용이 되어 삼한을 지키고 계시며 또 김유신공도 33천의 한 아들로서 지금 대신이 되어, 이 두 성인이 덕을 함께 하여 이 성을 지킬 보물을 주려고 하오니 만일 폐하께서 바닷가로 가시면 반드시 값비싼 큰 보물을 얻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왕이 기뻐하며 해변으로 나가자 과연 산이 있었다. 급히 사람을 보내어 살펴보게 하였더니 산의 모양이 마치 거북이의 머리와 같고 그 위에 한 그루 대나무가 서 있었는데 낮에는 둘로 갈라졌다가 밤이면 하나로 합쳐지는 것이었다. 그때 왕은 감은사에 머물렀는데 그 다음날 5월 8일 오시(오전11시부터 오후 1시)에 대나무가 다시 합하여 하나가 되더니 천지가 진동하고 바람과 비가 심해져 8일 동안 어두웠다가 그 달 16일이 되어서야 바람도 개고 물결도 평탄해졌다. 왕이 배로 그 산에 가자, 용이 나타나 검은 옥대를 바쳤다.

왕은 “이 산이 대나무와 함께 갈라지기도 하고 합쳐지기도 하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하고 묻자 용이 대답하기를 “이것은 비유컨대 한쪽 손바닥을 치면 소리가 없고 두 손이 마주치면 소리가 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 대나무도 합쳐야만 소리가 나니 성왕께서 소리로 천하를 다스릴 징조입니다. 대왕께서 이 대나무를 가지고 피리를 만들어 불면 천하가 화평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대왕의 아버님께서 바다 속의 큰 용이 되셨고, 유신은 다시 천신이 되어 두 성인이 마음을 같이하여 이런 값비싼 보물을 보내시어 나로 하여금 바치게 한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은 매우 기뻐하며 오색 비단과 금, 옥을 주고서 사람을 시켜 대나무를 베어 가지고 나왔다. 이때 갑자기 산도 용도 모두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여기에서 받은 옥대의 여러 장식들은 진짜 용이었기 때문에 어느 한쪽을 태자가 떼어서 물에 담가본 즉, 곧 그것이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 한다. 이 대나무로 피리를 만들어 불면 적병이 물러가며 질병이 낫고 또 가뭄 때는 비가 내리며 장마 때에는 비가 그치고, 바람이 자고 파도가 가라앉게 되는 이상한 힘이 있었다. 왕은 이 피리를 천존고(신라 때 나라의 보물을 간직해 두던 곳집)에 모시고 그 이름을 ‘만파식적’이라 하여 국가의 보물로서 소중히 하였다고 한다.(출처 : 한국의 박물관)

▲거친 물살이 치는 대왕암. 죽어서도 고국을 지키려는 문무왕의 호국정신이 담겨 있다. Ⓒ진우석

두발로학교가 11월에 걷는 제52강 <신문왕호국행차길>의 구체적인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11월 26일(토요일)>

06:30 서울 출발(가을철 행락객으로 교통이 붐벼 조금 일찍 출발합니다. 6시 20분까지 서울 강남구 지하철 3호선 압구정역 6번 출구의 현대백화점 옆 공영주차장에서 <두발로학교> 버스에 탑승바랍니다. 아침식사로 김밥과 식수가 준비돼 있습니다. 답사 일정은 현지 사정에 따라 일부 조정될 수 있습니다.) 제52강 여는 모임
11:00 추령터널 앞 도착
11:00~14:30 수렛재~용연폭포~기림사 걷기
(산속의 간단한 점심식사 및 휴식시간 포함. 걷는 코스에 식당이 없으니 컵라면, 김밥 등 간단도시락 지참 바랍니다.)
14:30~16:00 감은사지, 이견대, 문무대왕릉 등(버스 이동)
16:00~17:00 저녁 겸 뒤풀이
17:00~21:00 서울 도착(예정)
*현지상황에 따라 코스가 취소, 변경될 수 있습니다.

▲경주 <신문왕호국행차길> 걷기 약도 ⓒ두발로학교

준비물은 다음과 같습니다.
걷기 편한 차림(가벼운 등산복/배낭/등산화), 모자, 선글라스, 스틱, 무릎보호대, 물통, 윈드재킷, 우비(+접이식 우산), 따뜻한 여벌옷, 간식, 자외선차단제, 헤드랜턴(또는 손전등), 필기도구 등(기본상비약은 준비됨). 그리고 산속에서 점심식사용으로 김밥, 컵라면 등 간단도시락을 준비하세요.

▷두발로학교는 생활 속의 인문학 체험공동체인 인문학습원(대표 이근성)이 지원합니다.

두발로학교를 여는 취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걷기>의 시대입니다. 여기저기 걷기 코스의 명소들이 생겨나고 <걷기 동호회>도 부쩍 늘어나고 있습니다. 각 지자체들도 고유의 <길>을 경쟁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인간이 한동안 잊었던 <걷기의 가치>를 되살리고 걷기를 통해 몸과 마음의 즐거움과 건강을 찾으려 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직립보행(直立步行) 이후 걷기를 멈춘 적은 없습니다. 최소한 집안이나 사무실에서도 걸었을 테니까요. 그럼에도 걷기가 새삼스럽게 각광을 받는 이유가 뭘까요.

성경 <요한복음>에서 예수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길을 본받는데, 길은 스스로 그러함(자연)을 본받는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길>에서 이처럼 종교적 진리나 철학적 깨달음 같은 거창하지는 않지만, 길을 걸으면서 내면의 기쁨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루소는 <고백록>에서 “나는 걸을 때만 명상에 잠길 수 있다. 걸음을 멈추면 생각도 멈춘다. 나의 마음은 언제나 나의 다리와 함께 작동한다.”고 말했습니다. 걷기의 리듬은 사유의 리듬을 낳는다고 합니다. 경치를 구경하며 생각할 수 있고, 미지(未知)의 것을 기지(旣知)의 것으로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레베카 솔닛의 저서 <걷기의 역사>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나에게는 의사가 둘 있다. 왼쪽 다리와 오른쪽 다리 말이다. 몸과 마음이 고장 날 때 나는 이 의사들을 찾아가기만 하면 되고, 그러면 다시 건강해지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가장 경제적이고 신체에 부담이 적은 운동을 택한 것이 <걷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는 속도와 능률이 지배하는 세상에, 목적에 대한 부담을 덜고 걷기를 통해 느림의 미학으로서 세상을 보고 싶은 것은 아닐까요.

사람마다 걷기를 통해 찾고자 하는 의미와 기쁨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모두 함께 찾으려는 것은 <몸과 마음의 건강> <새로운 경관> <자연을 즐기는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의 세 가지가 아닐까요.

<두발로학교>는 <아름다운 길 걷기> 전문학교입니다. <두발로학교>에서 세 마리 ‘토끼몰이’를 해 보지 않으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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