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은 한국을 헬조선이니 지옥불반도니 하고 부른다. 사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우면 자신의 나라를 이렇게 극단적인 이름으로 부르겠나. 또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했다는 의미에서 스스로를 3포세대라고도 자조한다. 그러나 청년층만 그런가. 대부분의 비정규직 노동자들, 아예 직장이 없는 실업자들, 일찌감치 직장에서 밀려난 중년층이나 아무 일거리나 소득 없이 장기간의 세월을 견디어야 하는 노년층들도 똑 같다. 이들에게도 하루하루는 지옥일 것이다. 세계 1위의 자살율이 바로 그것을 증명하지 않나.
한국이 이렇게 붕괴 직전의 상황에 몰린 것은 외환위기 이후 한국사회가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이며 매우 잘못된 방향으로 발전해 왔기 때문이다. 금융자유화 과정에서 과다하게 들어온 외국자본과 동맹을 맺은 재벌대기업들이 자유경쟁원리를 내세우며 독과점을 강화하고 이익률을 최상의 목표로 내세우며 중소기업들이나 자영업자, 노동자들을 마구 짓밟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공정거래를 통해 잘못된 경제질서를 바로잡을 책임이 있는 역대정부는 신자유주의에 현혹되어 그것을 막기는커녕 오히려 방조했다. 노무현대통령의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자포자기적 발언은 그 단적인 표현이라고 하겠다.
또 정부 자신도 신자유주의가 주장하는 자유무역에 지나치게 매달려 무작정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는데 앞장섰다. 그 결과 일부 수출대기업들이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하고 해외공장 건설에 열을 올리기는 했으나 이는 국내고용에는 별 도움이 안 되었다. 반면 내수산업 중심이고 전체 고용의 90% 가량을 책임지는 중소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위축되어 경제의 큰 불균형을 가져왔다.
그 결과 20년도 안 되는 사이에 한국은 소수 대기업들의 천국이 되었다. 거대한 권력을 갖게 된 대기업들은 협력회사나 하청회사들을 무자비하게 쥐어짜 높은 수준의 초과이윤을 얻고 그것으로 자사의 정규직 노동자들에게는 거의 세계적 수준의 고임금을 지불해 왔다. 그러나 그 산하에 있는 대부분의 중소기업들은 간신히 목숨을 연명하는 수준으로 떨어졌고 저임금의 비정규직노동자들을 고용할 수밖에 없었다.
기아자동차 광주공장과 그 협력사들의 임금 상황이 그것을 매우 잘 보여준다. 2015년에 기아차 정규직은 1억 원, 그 사내하청노동자는 5000만 원, 1차협력사는 4700만 원, 그 사내하청은 3000만 원, 2차협력사 2800만 원에 그 사내하청은 2200만 원을 받았다. 기아차 정규직과 2차 사내하청은 이렇게 약 5배 차이가 날 정도로 임금격차가 큰데 그것은 본사 정규직 외에는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그보다 훨씬 적은 저임금을 받는다는 이야기이다.
이렇게 신자유주의 아래서 한국의 자본주의는 노동자들의 대부분을 저임금체제 안에 가두는데 성공했고 그것도 모자라 외국인 노동자를 약 170만 명이나 수입하여 저임금체제에 확실히 못을 박았다. 그 결과 2013년의 기업소득은 국민총소득(GNI)의 25%로 OECD국가에서 1위를 차지했는데 이는 미국보다 10%나 많은 비율이다. 국민소득 가운데 과도한 부분이 기업에 빨려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반면 노동소득분배율은 미국을 제외한 선진국보다 8-10% 정도 낮은 60% 수준이다. 재벌 대기업에게 700조원의 사내유보금이 쌓여 있는 반면 가계부채가 1,200조 원에 달하는 것은 이런 상황을 잘 반영하는 것이다.
그 결과 계층별 소득격차도 크게 늘어나 사회적 불평등도 심각하게 되었다. 한국은 1980년대만 해도 개발도상국 가운데 부의 분배가 비교적 양호한 편이었으나 2000년대에 들어와 빈부격차가 급속히 늘어났다. The World Top Incomes Database에 따르면 한국의 소득 불평등은 1995-2012년 사이에 중요한 국가들 사이에서 가장 크게 벌어졌다. 상위 10%의 몫이 29.2%에서 44.9%로 약 54% 증가하여 미국의 47.8% 다음으로 OECD 2위가 되었다.
그 가운데 상위 1%의 몫은 6.48%에서 12.23%로 88.7%가 증가했으나 상위 2-10%의 몫도 22.32%에서 32.64%로 46.2%가 늘어났다. 대자본가, 대자산가들인 상위 1%의 몫이 더 크게 늘어나기는 했으나 전문직업인, 대기업·공기업의 정규직, 공무원, 교수, 교사 등을 포함한 2-10%의 몫도 근 50% 가까이 증가했으니 엄청난 증가폭이다. 그러니 그에 비례해 소득이 크게 줄어든 하위계층 사람들에게서 아우성 소리가 나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한국사회의 혁명적 변화를 갈망한다. 숨 막힐 듯한 현재의 상황을 바꾸기를 바란다.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크게 부족한 일자리를 대량으로 만들어내고 극심한 임금격차를 줄일 뿐 아니라 사회복지도 늘여 빈부차이를 줄여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현재의 정치지형에서 가능할까.
현재 한국의 정치지형은 보수와 진보의 양진영으로 갈려 있는데 보수에 속하는 사람들은 재벌을 중심으로 그 동맹세력인 대자산가, 대기업 임원, 고위관료, 군부, 보수언론, 보수지식인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 체제의 주된 수혜를 보고 있다. 최근에는 현 상태를 고수하기 위해 재벌 자신이 정치화하는 경향까지 나타나고 있다.
진보진영은 대기업, 공기업, 공무원 노조를 포함하는 조직노동, 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진보지식인, 진보언론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소득 2-10%에 속하는 사람들이 주로 이들이다. 진보진영도 대부분 높은 임금과 고용안정성, 높은 연금수준을 누리고 있고 그런 특권을 계속 유지하려 한다.
두 진영은 서로 싸우는 척하나 실제로는 서로 이익을 나누는 담합체제를 형성하고 있다. 보수진영은 물론이나 진보진영도 재벌체제가 나누어주는 떡고물을 나누어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주노총의 태도가 잘 보여주듯 진보진영은 노동하는 사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저임금노동자, 자영업자, 실업자 등의 문제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다. 단지 함께 동조하는 척만 할 뿐이다. 그러니 한때는 사회정의를 대변하였던 진보진영도 점점 국민들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이 좌우세력의 기득권 동맹을 무너뜨리지 않는 한 국민 대다수의 고통을 끝내기는 어렵다.
대선을 1년여 앞두고 벌써부터 각 정당들 사이에는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현재로는 박근혜 정부가 워낙 많은 실정을 해서 정권이 새누리당에서 야당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커 보인다. 그러나 야당이 집권하면 뭐가 달라지는 것이 있을까?
별로 없을 것이다. 민주당은 보수정당이나, 국민의 당은 더 보수적 정당으로서 기득권 체제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정의당이나 노동당 같은 진보정당들은 집권 가능성이 거의 없기도 하지만 대체로 조직노동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보수정당과 다를 바가 없다. 이들로서는 좌우의 기득권체제를 무너뜨릴 수 없다.
결국 한국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이런 협소한 계급적 이익을 추구하는 좌우의 정치세력들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서 특권적 노동자만이 아닌 비정규직, 저임금노동자, 자영업자, 실업자, 반실업자, 청년층, 노년층 등 국민대중 대부분의 이익을 지킬 수 있는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해야 한다. 그리고 재벌개혁, 일자리의 대폭확대, 과도한 임금격차의 축소, 고용불안정성의 해소, 주택난 해결, 교육의 근본적인 개혁, 사회복지의 확대 같은 광범한 사회경제적 개혁의 타당성을 국민들에게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세계경제는 공황국면으로 발전하고 있고 신자유주의를 넘어서서 보호무역주의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미국의 트럼프 열풍이나 영국의 브렉시트는 그 가시적 현상의 일부이다. 신자유주의 시대가 끝나가는 상황에서 새로운 시대에 맞지 않는 낡은 정치체제는 붕괴할 수밖에 없다. 한국에도 기존 체제를 휩쓸어버릴 거대한 정치적 혁명이 임박해 있다.
[민미연 포럼]을 시작하며
앞이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음은 눈 앞에서 펼쳐지는 상황의 복잡함 때문일 수도 있고 상황을 이해하는 나의 독해력 때문일 수도 있다. 한국사회는 현재 점점 어려운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 민생은 어려운데 경제의 전망은 안 보이고 사회는 분열되어 있고 이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할 정치는 끝없는 분란 속에 있다. [민미연 포럼]은 한국사회의 새로운 정치·사회적 돌파구를 마련해야겠다는 간절함에서 기획되었다. [민미연 포럼]연재는 우리 사회를 이해하는 대중들의 독해력을 한층 끌어 올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우리는 재벌과 조직노동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 보수와 진보의 적대적 공존관계가 과도한 임금격차, 저임금체제, 지나친 수의 비정규직, 낮은 고용률 등 한국사회 여러 난제들의 해결을 가로막는 중요한 장애물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 틀을 해체하고 원하는 모든 국민들이 적정한 임금의 일자리를 갖고 삶을 영위할 수 있는 행복한 사회로 나아가는 길을 모색해 보려 한다. 이를 위해 좌와 우, 보수와 진보라는 이분법을 넘어서는 담론을 형성하고자 한다. 나아가 이미 낡은 기존의 정치체제를 극복하고 한국을 바로 세울 수 있는 새로운 정치세력에 대한 모색도 함께 해 보려한다. 프레시안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바란다.
이 연재물의 기고자는 강철구(전 이대 교수, 민족미래연구소 고문), 김대호(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마창훈(현장노동자), 김창훈(민족미래연구소 연구실장, '낯선 것과의 조우' 저자), 김완구(환경철학 박사, 민족미래연구소 소장), 채진원(정치학 박사,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이지영(다준다청년정치연구소 소장), 김형모(청년사회활동가, '누가 내 국민연금을 죽였나' 저자) 로 한 주에 한 번씩 돌아가며 기고할 것이다.
[민미연포럼]은 이 연재를 주관하는 것이 민족미래연구소이므로 그렇게 이름 붙인 것이다. 민족미래연구소는 페이스북을 중심으로 '한국혁명네트워크'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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