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0월 9일 북한이 드디어 첫 번째 핵실험을 감행했다. 국제사회가 북한 제재에 총궐기하였고 대한민국 정부도 대북 식량 원조를 일시 중단하였다(수개월 후 재개하였지만). 필자가 대사로 주재하던 바티칸에도 기자들이 몰려들어 교황청은 대북제재에 어떻게 동참하겠느냐 물었다. 국무원장(총리) 베르토네 추기경의 답변은 간결하였다. "이런 사태에 당면하여 바티칸은 어떻게 당사국을 제재하느냐를 논의하는 곳이 아니고 이런 긴장 국면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평화와 타협을 시도하느냐를 고민하는 곳입니다."
북한에 핵광(核狂) 외에 다른 출구를 줬나?
세 해 전 2003년 7월 4일 제10대 주교황청 한국대사로 부임하던 필자에게서 신임장을 제정받는 자리에서, 지금은 성자로 시성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한반도 현안문제로 떠오르던 "핵무기가 점진적으로, 평등하게, 또 결연하게 폐기되어야 한다"고 충고하였다. '평등하게'라는 단어가 걸려 사석에서 외교부서 담당관들에게 말을 꺼냈더니만 남한이 사실상 쓰고 있는 미국의 핵우산, 걸핏하면 북한을 폭격하겠다는 한미 정치인들의 으름장을 넌지시 꼽았다.
10년이 지난 오늘날 국제사회는 남한 지도자가 북한 지도자를 '통제 불능의 정신상태'로 진단한 데에 고개를 갸우뚱한다. 휴전선 일대에서 세계최강국의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한미 연합군이 해마다 두 차례 실전 그대로 군사작전을 펴는 터에, 이란을 견제하며 미국에 충성을 다한 후세인이 그 미군에 침략당하고 체포되고 처형당함을 목격하다 '부시의 푸들'로 불리던 블레어 입에서 '다음 차례는 북한'이라는 말이 떨어진 터에, 미국인들은 걸핏 '선제타격'을 남한 당국자들은 '김정은 암살특수부대'를 자랑하는 터에, 미 국가정보국의 보고대로 북한의 재래무기는 남한과 견줄 수도 없는 터에, '핵광(核狂)' 외에 무슨 출구가 있었겠느냐는 투다.
종교인이니까 의당 '평화와 화해'를 언명하겠지만, 요한 바오로 교황은 9·11테러 후 아프간 침공을 준비하던 부시에게 "범인 확인은 필히 입증되어야 하고 형사책임은 반드시 개인적이어야 하고 그 책임을 테러리스트가 속한 어떤 국가나 민족이나 종교로 확대할 수 없다."고 직언하였고, 대량살상무기 증거도 없이 제2차 이라크전을 개시하자 "하느님 앞에, 자기 양심 앞에, 그리고 역사 앞에 중대한 책임"을 지리라고 일갈하는 용기도 보였다.
북한이 붕괴한들 우리 뜻대로 될까?
세계 유일 분단국에서 어느 대통령이 자기 임기 중에 남북통일 성사를 꿈꾸지 않을까만, 북한에 거듭된 협박, 유일한 남북 교류 통로였던 개성공단 폐쇄, 그리고 사드 배치에 이르기까지 작두 타는 남한 정부의 굿거리를 구경하면서 국제사회는 묻는다. "박근혜 대통령 말대로 북한이 저절로 붕괴한다면 누가 북한을 접수하는가?" 대한민국? '전작권'이 없어 군사행동을 못한다! 전작권 환수를 절대 사양하는 대한민국 대통령이 사실상 '국군통수권자'가 아님을 이동관 수석이 구체사례를 들어 밝히지 않았던가? 2010년 북한의 연평도 포격 직후, 연평도 상공까지 출격했던 F-15K 전폭기 두 대로 북한 진지를 공격하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명령을 "미군과 협의할 사안입니다"라며 군부는 불복종 할 수 밖에 없었다.
더구나 박 대통령이 '북한의 붕괴조짐'을 반기자, "대한민국 통치권은 휴전선에 국한된다"는 일본 군부발언에 미국방장관의 찬조발언이 나왔고, 남한 당국이 제대로 반론도 펴지 않자 국제사회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던 헌법 조항이 폐기되었나 싶었으리라. 거기다 "자위대는 한반도에 진주할 수 있다"는 투의 국무총리 발언이라니!
로마군의 진주와 예루살렘 파괴를 예고한 예수에게 어디쯤에서 대학살이 일어나겠는지 제자들이 물어오자 "주검이 있는 곳에 독수리들도 모여든다"는 대답이 나왔다. 제주도민이 강정 해군기지건설을 반대하는 것은 14만 명 섬 주민의 절반이 몰살당한 '4·3사건'의 공포가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고, 수도 서울을 포기하더라도 대구는 지키겠다는 듯이 사드 기지를 성주로 정한 정부에 성주 군민들이 저항하는 까닭은, 제2차 세계대전을 '진주만 폭격'으로 개시한 황군을 기억하는 까닭이 아니겠는가?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키케로)는 군비원리보다 "평화는 정의의 열매"(아우구스티누스)라는 사회윤리, 그리고 이태 전 한국 방문을 마치면서 "한 가정을 이루는 이 한민족의 화해를 위하여" 기도하던 종교지도자의 지혜가 절실한 한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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