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1일 20대 국회가 개원했다. 여소야대 국회에 거는 기대가 크다. 특히 비정규직법 관련해서 노동계에서는 여러 가지를 야당에 주문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재 환경노동위원회에서는 근로기준법, 노동조합 및 노사관계조정법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법안들이 야당 의원들에 의해 발의되어 있다. <프레시안>에서는 이들 법안이 왜 중요한지, 그리고 현재 왜 필요한지를 연속 기고로 짚어본다.
비정규직 문제가 사회적인 이슈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1996년 말 외환 위기 이후 국제통화기금(IMF)의 고용유연화 요구에 따라 비정규직이 급증하면서부터다. 기간제 근로는 대법원이 1996년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종전 입장을 변경하여 1년을 초과하는 근로 계약의 효력을 원칙적으로 인정함으로써 널리 활용되게 되었다. 파견근로는 정부가 IMF의 요구를 받아들여 1998년 2월에 '파견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을 제정함으로써 합법적인 고용 형태가 되었다. 2006년에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이 제정된 후 큰 틀을 유지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비자발적 비정규직이 양산되어 취약 계층을 형성하고 인권 침해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었다. 노동운동 진영과 사회단체는 2000년경 '비정규 공대위'를 구성하여 비정규 근로자의 권리 보장을 위한 입법안을 청원한 이래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오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는 인권의 문제이고, 정의의 문제이며, 사회 통합의 문제다. 동일한 가치의 노동을 함에도 고용 형태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제반 영역에서 심각한 차별을 받는 것은 정의에 반한다. 정의의 문제는 원칙의 문제로서 타협의 대상이 아니며, 국가가 관여해서 바로잡아야 하는, 즉 국가의 존립 근거가 되는 문제다. 또한 비정규직은 우리 사회 취약 계층의 중핵을 이루고 있으며, 사회 통합의 가장 중요한 저해 요인이 되고 있기도 하다.
비정규직 문제 해결은 다음과 같은 기본 방향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첫째, 헌법 제32조 제1항의 근로의 권리, 제3항의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기 위한 근로 조건 기준의 법정주의, 근로기준법 제1조의 목적, 제6조의 균등 처우 원칙, 제9조의 중간 착취의 배제, 제23조․제24조의 해고 제한 등의 규정에서 도출되는 상시․지속적 업무에 대한 직접․정규직 고용 원칙에 근거해야 한다.
둘째, 제도 개혁 이전에 현행법의 철저한 준수 및 근로 감독의 강화부터 시작해야 한다. 대법원까지 불법 파견으로 인정된 사업장의 정규직 전환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 대법원이 현대자동차 등의 사내 하청을 불법 파견으로 인정하고 원청의 직접 고용 근로자로 인정한 것은 대법관들이 친노동적이고 진보적이어서가 결코 아니다. 보수적인 대법관들이 보기에도 같은 사업장에서 동일한 지휘․감독을 받으며 같은 업무에 종사하는데도 극심한 차별을 받는다는 것은 너무나도 정의에 반하기 때문이다. 파견을 확대하자는 의견은 이런 부정의를 사회 전반으로 확산시켜 적법화하자는 것에 불과하다.
셋째, 현재보다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개악하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서는 안 된다. 대법원 판례 등에 의해 부족하지만 일정한 규율이 이루어지고 있는 부분에 대해 위법한 관행을 적법화 해주는 결과를 초래하는 방안이 채택되어서는 안 된다.
넷째, 개별 쟁점들에 대한 의견 분포를 살펴서 다수 의견을 얻는 방안을 병렬적으로 채택하는 방식으로 타협이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핵심적으로 중요한 사항에 대해 기본 원칙에 부합하는 내용으로 개정될 것이 전제되어야 나머지 사항에 대해서도 검토의 여지가 있다. 핵심 사항이 기본 원칙에 반하는 방향으로 개정될 경우 나머지 사항이 아무리 긍정적인 내용을 포함하더라도 이는 결국 개악으로 귀결될 것이므로 그러한 개정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
다섯째,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은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이행하는 것이 그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우리 헌법, 세계인권선언,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 규약', ILO헌장, ILO헌장의 부속서인 국제노동기구의 목적에 관한 선언, ILO의 제100호 동일 가치 근로에 대한 남녀 근로자의 동등 보수에 관한 협약, ILO의 제111호 고용 및 직업에 있어서 차별 대우에 관한 협약 등 국제인권규범을 근거로 하여 비정규직 관련 권고를 했다.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하여 국가인권위원회가 권고한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2005년 4월 11일자 '비정규직 관련 법률안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의견'은 △ 기간제 근로자의 사용을 합리적인 사유가 있는 경우에 한하여 허용, △ 기간제 근로자의 사용이 허용되는 경우라 하더라도 사용 기간을 제한, △ 기간제 근로자의 사용 사유 제한이나 사용 기간 제한을 위반한 경우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간주, △ 서면으로 작성하지 않은 기간제 근로 계약을 체결한 경우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간주, △ 파견 근로의 불법 사용 등 직접 고용 사유가 발생한 경우 사유가 발생한 때로부터 즉시 사용 사업주가 파견 근로자를 직접 고용한 것으로 간주, △ 종전 파견 근로 기간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기간이 경과해야만 다시 파견 근로자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휴지기간 도입, △ 동일 가치 노동 동일 임금 규정 명문화 등을 권고했다.
2007년 9월 17일자 '특수 형태 근로 종사자 보호 방안에 대한 의견 표명'은 △ 특수 형태 근로 종사자의 보호에 관한 법률을 조속히 제․개정, △ 개별적 관계에서 계약의 존속 보호, 보수의 지급 보호, 휴일 휴가의 보장, 성희롱의 예방․구제, 산업안전 보건, 모성 보호, 균등 처우, 노동위원회에 의한 권리 구제 분쟁 해결 및 근로감독관에 의한 감독 등에 관한 규정을 둘 것, △ 집단적 관계에서 노동 3권 보장, △ 사회 보장 제도와 관련하여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고용보험법, 국민연금법과 국민건강보험법의 직장(사업장) 가입자 규정이 적용될 수 있도록 할 것, △ 이른바 '위장 자영인'에게는 일반 근로자와 동일한 노동 법적 보호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특수 형태 근로 종사자의 개념 및 판단 기준을 법률에 명시할 것 등을 권고했다.
2009년 5월 21일자 '기간제법 개정안 및 파견법 개정안에 대한 의견'은 기간제 및 파견근로자의 사용기간을 현행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는 것에 반대 입장은 밝혔다.
2009년 9월 3일자 '사내하도급근로자 노동인권 개선을 위한 법령 및 정책 개선 권고'는 △ 현행 노동 관계법상의 사용자 정의 규정을 근로 계약 체결의 당사자가 아니라 할지라도 근로 조건 등의 결정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까지 포함하는 개념으로 개정, △ 상시적 업무의 경우 근로자를 직접 고용하도록 하는 원칙을 법률에 명시할 것, △ 사내 하도급 근로자에 대한 차별적 처우 금지 및 차별 시정 신청권을 노동 관계 법률에 명문화할 것 등을 권고했다.
2015년 5월 26일자 '정부 비정규직 종합 대책(안)에 대한 의견'은 △ 하청 업체 소속 근로자에 대한 원청의 배려를 불법 파견의 징표에서 제외하는 안은 적법 도급과 불법 파견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 수 있으므로 반대, △ 근로자 파견이 가능한 업무를 대폭 확대하고 사용기간 규제를 완화하는 안은 근로 조건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파견 근로자의 증가를 가져와 노동 시장의 양극화를 더욱 촉진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반대 의견을 밝혔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위와 같은 권고들은 인권의 관점에서 이루어진 최소한의 것이므로 양보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는 명제는 70년 전에 필라델피아 선언에서 확인된 기본 원칙이다. 고용 불안으로 내몰고 차별 대우를 조장하는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사회는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갖추지 못한 것이다. 적어도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는 이행하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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