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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물주 위 건물주' 공짜 커피에, 사위 동문 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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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물주 위 건물주' 공짜 커피에, 사위 동문 파티…

[기고] 서촌 '두플라워', 갑질의 역사

통인시장과 수성동 계곡 사이 커피를 파는 꽃집이 하나 있다. 서울시 종로구 옥인동 173-2번지는 8년째 '두플라워'가 자리한 곳이다. '두플라워'는 강제 집행을 앞두고 있다. 이미 법원으로부터 강제 집행 정지 판결문을 받은 상태다. 일주일 전의 일이다. 강제 집행을 막으려면 고작 일주일 안에 공탁금 3000만 원을 구해야 한다. 자진 퇴거 기한은 오늘 10월 5일까지다.

플로리스트 신창희 씨는 다 쓰러져가는 중국집 외관을 일일이 고치고 닦아 지금의 꽃집을 만들었다. 플로리스트로서 상업적인 역할이 아닌 진정성 있는 삶을 보여주고 싶었다. 기술적인 일이 아닌 문화적인 일을 해내고 싶었다. 강남에서 무료로 공간을 대여해 주겠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서촌만한 곳이 없다고 느꼈다. 2009년 1월 29일, '두플라워'가 영업을 시작했다.

건물주는 매일같이 꽃집을 드나들었다. 공간이 예쁘고 마음에 든다고 했다. 딸은 어머니가 꽃집을 차리는 게 꿈이었다고 증언했다. 어느 날은 호텔의 커피숍을 다녀와서 '두플라워'의 커피 값을 문제 삼았다. 호텔 커피 값은 이유라도 있지, 동네 커피 값이 왜 이렇게 비싸냐고 따지고 들었다. 요지는 커피 값 4000원을 1500원으로 내리라는 거였다. 매번 친구를 데려와 자기 집이라 소개하는 건 약과였다. 집주인이니 음료 값을 절반만 내겠다고 했다. 본인의 자택을 공사하는 인부에게도 "공짜로 커피를 주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신창희 씨는 모두 응했다. 계약을 연장하기 위해선 건물주에게 잘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처음 계약은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50만 원이었다. 권리금은 없었고, 영업 기간 2년을 보장했다. 월세 100만 원이던 것을 50만 원으로 낮춰주는 것이므로 특약으로 1년 뒤 월세를 70만 원으로 인상하겠다고 했다. 계약이 끝날 때쯤 건물주는 화를 내기 시작했다. '두플라워'가 들어와 가게 앞으로 주차가 어렵다며, 싹 밀어버리고 주차장을 만들 거라고 언성을 높였다. 건물주는 세입자 앞에서 "어쩔 거야"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월세를 올려달라는 뜻이었다.

▲ 두플라워 내부 모습. ⓒ두플라워

이후로도 건물주는 수시로 세입자를 찾았다. 2011년, 사위의 동문 파티를 해야 하니 공간을 쓰겠다고 했다. 일주일 전부터 꽃 장식을 했다. 파티 당일에는 점심부터 음식을 세팅했다. 파티는 오후 6시부터 1시까지였다. 그날은 종일 장사가 불가능했다. 한참이 지나고 건물주는 대뜸 20만 원을 건넸다. '두플라워'가 책정한 적도 없는, 승낙한 적도 없는 대관료인 셈이었다. 가정부와 기사 지원자의 면접 장소로 이용하는 날도 적지 않았다. 건물주는 지원자가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으니 음료를 내어달라고 했다. 물론 음료 값은 내지 않았다.

2013년 3월 23일, '두플라워'는 월세를 100만 원으로 인상하는 조건으로 1년 재계약을 맺었다. 세 번째 계약하며 월세가 두 배로 올랐다. 아직 꿈꾸던 일은 시작도 못했다는 생각에 끝끝내 버텼다. 2014년 2월, 어김없이 건물주가 찾아왔다. 구두 계약으로, 영업 기간 5년을 더 보장해줄 테니 매년 월세를 10만 원씩 인상하라고 했다. 동시에 주차장을 만들겠다며 3월 10일까지 창고를 비우라고 통보했다. 3월 3일부터 이틀간 짐을 옮겼다. 꽃집은 특성상 화구가 많을 수밖에 없다. 짐을 보관할 수 있도록 실내를 개조하느라 480만 원을 들였다.

건물주는 2009년 1월부터 2014년 3월까지 '두플라워' 앞으로 매일 두 대 이상의 차를 세워놓았다. 한 곳은 거주자 우선 주차 구역이었으나, 한 곳은 불법 주차로 꽃집을 다 가릴 정도였다. 그도 모자라 세입자를 주차 관리인인 양 취급하곤 했다. 종종 주차 위반으로 딱지가 붙으면 그거 하나 못 지켰느냐고 전화를 걸어 야단을 치기 일쑤였다. 어느 봄날은 꽃집 앞으로 벚나무를 늘어놓으니, 건물주가 이런 식으로 하면 계약할 수가 없다고 소리를 질렀다. 세입자는 또 눈물이 나는 대로 울면서 내놓은 벚나무를 모두 치웠다.

다음 날 건물주는 벚나무가 차를 긁었다고 찾아왔다. 세입자에게 '양의 탈을 쓴 늑대'라며 고래고래 고함을 치니 가득 차 있던 손님이 모두 나갔다. 무서운 나머지 나뭇가지에 차가 긁히지 않았지만 수리비를 대겠다고 했다. 머잖아 건물주는 '두플라워'에 배상 청구 대신 내용 증명을 보냈다. 계약 만료 통보였다.

신창희 씨는 통영생선구이를 운영하는 조옥선 씨 딸이다. 통영생선구이 역시 지난해 강제 집행의 위기를 겪은 가게다. '젠트리피케이션'이 도시의 재난으로 불리는 지금, 재난은 유산처럼 대를 잇는다. 서촌 바람을 불러일으킨 주역 하나가 축출의 광풍 앞에 위태롭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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