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에서 수원 권선구청까지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었다. 버스와 지하철, 버스 그리고 다시 도보로 해서 두 시간 가까이 걸렸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진 않았지만 벌써 4회째 개최되는 '대한민국 정책 컨벤션&페스티발 : "우리가 만드는 대한민국…각자 그리고 서로"'의 둘째날 싱크탱크 토론회 세션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일주일간 1000여 개가 넘는 토론회가 조직되어 스웨덴의 현재와 미래를 함께 고민하는 알메달랜 정책 박람회는 한국에도 이미 여러 차례 소개된 바 있다. 이들처럼 보수와 진보, 시민과 전문가, 정당과 시민 단체, 그리고 개인의 경계와 구분을 넘어 함께 토론하고, 결론을 모아 내는 자리에 대한 열망은 한국 역시 작지 않다. 그래서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이 공동 정책 박람회를 국회에서 개최했고, 대한민국 정책 컨벤션&페스티발 역시 그런 취지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물론 현실은 취지에 부합할 정도가 아직 아니었다는 게 냉정한 평가일 테다).
첫날 토론회에서 '노동 개혁'을 둘러싼 보수와 진보 논객 간 논쟁이 뜨거웠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저출산·고령화 시대의 경제 정책'에 대한 토론은 과연 어떨지 신경이 쓰였다. 발표와 토론이 진행되자 '격렬한 논쟁'보다 '무거운 우려'가 회의장 분위기를 압도했다. 다른 어떤 나라보다 급격하고, 오래되고, 치명적인 한국의 저출산·고령화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이견은 없었다. 그러나 국책 연구 기관이 내놓은 대책들은 여전히 현상적, 단기적, 단편적 수준을 넘지 못했다. '인구 절벽'이 아니라 아예 '지방 소멸'에 대한 우려에 걸맞는 급진적, 혁명적 발상을 기대하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였을 지도 모른다. 그건 어쩌면 토론자들의 몫이었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나 역시 "5년, 늦어도 10년 내에 정말 획기적인 대책을 내놓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하면서도 '무릎을 탁 치는 제안'을 내놓지 못했다. 경총 소속 토론자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렵고 거대한 질문들 앞에서 '생각의 빈곤', '상상력의 부족'을 절감한 자리였다.
오후에는 지역 정책 역량 강화와 정책 지식 생태계 활성화에 관한 라운드 테이블 토론이 연이어 열렸다. 두 세션 모두 낯설면서도 익숙했다. 수원, 창원과 같이 인구 100만 명을 넘는 기초자치단체에는 수원시정연구원과 창원시정연구원이 설립되었다. 최근에는 고양시와 용인시가 각각 연구원 설립을 준비 중이다. 인구 100만 명이 되지 않는 전주시는 감사원 지적에 따라 연구 인력을 공무원으로 채용해 정책 연구소를 시청 내부에 두고 운영 중에 있다. 그동안 나는 국책 연구 기관과 광역시도연구원에 대해서는 문헌 연구와 인터뷰 등을 거쳐 비교적 깊게 다뤄볼 기회가 많았다. 하지만 기초자치단체 연구 기관 관계자들과 함께 토론하는 기회는 처음이었고, 그들 또한 마찬가지라고들 했다. 37명의 상근 인력을 두고 있어 광역시도연구원급 규모로 이미 성장한 수원시정연구원은 다른 기초자치단체 연구소들의 롤 모델이자, 맏형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마치 헤리티지재단이 '자원 은행(Resource Bank)'이라는 연례 행사를 통해 미국 내 (지역 기반) 보수 싱크탱크들의 네트워킹을 돕고, 정보를 교환케 하는 것과 유사하게 느껴졌다.
이들은 연구자로서의 정체성, 연구 기관의 독립성, 연구 결과의 독창성, 연구 기반의 현장성 등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이는 국책 연구 기관이나 광역시도연구원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직과 예산 규모를 어떻게 키우고, 공고히 할 것인가 또한 중요한 과제였다. 당연히 규모와 역사는 달랐지만, 기존 국책 연구 기관 등에서 나타나는 문제와 고민은 반복되고 있었다. 물론 일본에도 이들과 유사한 형태와 기능의 싱크탱크들이 있다. 하지만 한국처럼 법과 조례에 의해 만들어진 국책 연구 기관-광역시도연구원-기초자치단체연구원 체제를 갖추고 있지는 않다. 더욱이 전 세계 어느 나라도 중앙과 지방 정부 출연 연구 기관을 이렇게 많이 두고 있지는 않다. 그렇다고 중국 사회과학연구원과 같이 중앙과 지방의 '위계화된 구조'로 설립·운영되고 있는 것도 아니다(그래서 한국의 경우 연구 기관들 사이의 수주 경쟁도 치열하다). 3단계에 속한 수십개 연구 기관에 수천명의 박사급 인력이 포진되어 있고, 한해 예산은 수천억 원을 넘는다.
한국 정책 지식 생태계의 가장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가 국책 연구 기관의 규모와 역할이다. 기초자치단체 연구 기관들의 계속된 설립은 그러한 특징을 더욱 확고하게 한다. 물론 국책 연구 기관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정책 지식 생태계는 다른 나라에 비해 규모나 구성의 다양성 면에서 뒤처지지 않는다. 국고 보조금의 30% 정책 개발비로 운영되는 정당 연구소들이 있고(여의도연구원이나 민주정책연구원의 한해 예산만도 각각 수십억원이 넘는다), 삼성경제연구소와 현대경제연구원, 하나금융경영연구소 등 재벌과 금융 계열 싱크탱크들도 적지 않다. 기업인의 수천억 원 사재 출연으로 만들어진 여시재나 아산정책연구원과 같은 초대형 민간 싱크탱크에서부터, 규모는 작지만 의미 있는 연구 활동을 계속 해 오는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등 민간 싱크탱크들까지 다양하다. '준정당'만이 아니라 '준싱크탱크' 역할을 수행해 왔던 참여연대나 경실련 등 시민 단체도 빼놓을 수 없다(이 또한 한국 싱크탱크 생태계의 중요한 특징이다). 국회에는 예산정책처와 입법조사처까지 있고, 국회미래연구원의 설립까지 시도되었다. 그 중심에 국책 연구 기관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한 토론자는 "기초자치단체 연구 기관들까지 더해지면서 한국형 싱크탱크 체제가 완성된 게 아닌가?"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겉만 본다면 '싱크탱크의 나라' 미국이 부럽지 않을 정도다. 그러나 막상 누구도 그렇게 얘기하지 않는다. 최근 논란이 된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지진 보고서처럼 국책 연구 기관 연구 결과에 대한 왜곡, 조작, 은폐, 묵살 의혹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국책 연구 기관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경제인문사회연구회는 기획재정부의 '기관 평가'와 더불어 연구자들을 옥죄는 데 사실상 앞장서고 있다. 특히 세종시로 옮겨 간 이후 존재감을 점차 잃고, 부처들의 영향력만 더욱 강화되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국책 사업을 따내기 위한 프로젝트 업무에 매달리는 광역시도연구원에 대한 우려 또한 작지 않다. 그나마 '다른 목소리와 새로운 시각'을 내놓을 물적 기반을 갖췄던 재벌과 금융 계열 싱크탱크들의 위상도 크게 위축되었다. 한 때 정부 정책에 대한 지나친 관여를 비판받았던 삼성경제연구소는 삼성 내부 연구소로 이미 변신하였다. 현대경제연구원 또한 구조 조정의 칼날 위에 서 있다. '노동'과 '시민' 기반의 싱크탱크는 규모면에서 처음부터 비교조차 되지 않았기에 이들은 더 이상 줄어들 것도 없는 상황이다.
'국가'와 '자본' 싱크탱크와 '시민'과 '노동' 싱크탱크 사이의 불균형이 조금이나마 해소되었다면(그렇지도 않지만), 그것은 후자가 성장했기 때문이 아니라 전자가 약화되었기 때문이라 할것이다. <유라시아 견문>(서해문집 펴냄)의 저자 이병한 박사는 "중국의 젊은 지식인들이 30년 앞을 내다보며 연구하는데, 한국 지식인의 사고 단위는 1∼2년에 불과하다"며 우려를 표했다. 토론에 참가한 기초자치단체 연구 기관 소속 연구자들은, 공무원들의 당장 업무 지원에 주로 참여하면서 겪게 되는 정체성 혼란을 호소했다. 국책 연구 기관 소속의 베테랑 연구자조차 "국회와 청와대, 정부 부처 모두 단기적 관심과 부처의 자기 이해에 급급하다. 우리 역시 그것에 맞춰 일하게 된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한국형 싱크탱크 체제는 지금 '완성'이 아니라 '붕괴'되고 있는 중일 지도 모른다. "인구 절벽의 시대", "대공포와 초불안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풀어야 하는 문제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데 질문도, 대답도 단기적, 파편적, 현상적 수준에서 그저 맴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년 대선을 준비하는 정치세력 가운데 과연 누가, 어떻게 한국 싱크탱크 체제의 혁신과 전환을 기획하고 있는지 정말 궁금하다. 그것이야말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이들의 준비 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 명료한 척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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