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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가 재판 중 망언…"女 술마시고 성관계, 도덕적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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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가 재판 중 망언…"女 술마시고 성관계, 도덕적 문제"

피해자 신상 공개, 신뢰관계자 퇴장 명령 '무개념 판사'까지

성폭력범죄 사건을 다루는 재판 중, 법관인 판사가 언어 폭력을 일삼거나 신상 정보를 공개하는 등 피해자들을 두 번 죽이는 사건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노회찬 의원(정의당)이 26일 공개한 한국민우회 작성의 '성폭력 재판 과정에서의 피해자 권리에 대한 모니터링 보고서'를 보면, 가해자 입장을 대리하는 피고인 측 변호사는 물론 판·검사 등 법관들조차 피해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2차 가해를 저지른 경우가 많았다.

노 의원은 "성폭력전담재판부 소속 판사 중 일부는 오히려 성폭력 피해자에게 언어 폭력을 일삼으며 2차 피해를 입히고 있다"며 "특히 올해 8월 18일 서울서부지방법원 성폭력전담재판부 이모 부장판사가 법정에서 내뱉은 발언들은 현재 성폭력전담재판부의 문제점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노 의원에 따르면, 이 부장판사는 재판 도중 "(피해 당시) 성 경험이 있었는지 여부가 성폭력 (사건 성립 여부) 판단에 영향을 준다"며 "성 경험이 있는 여성과 없는 여성은 성폭력 대응 방식에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부장판사는 또 "여성이 술을 마시고 성관계를 맺는 것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고, "사람 많은 상황에서 노골적으로 성추행한다는 것은 상상이 안 간다"고도 했다.

피해자의 동의 없이 성적 접촉이 이뤄졌다는 게 성폭력 사건의 핵심인데, 가해자인 피고인에게 "군 복무 중에 여자랑 자면 안 된다고 얘기 안 들었어요? 교육 제대로 안 받았구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노 의원은 "합의에 의한 성관계와 성폭력을 혼동했다"고 비판했다.

이 부장판사 외에 다른 법관들의 사례도 나왔다. 노 의원에 따르면, 한 판사는 재판에서 가해자가 '피해자가 성관계에 동의했다'고 일방적으로 주장한 데 대해 "피해자와 혼인신고를 하는 것이 의도를 확실히 보여 줄 수 있다. 의사가 있다면 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다른 판사는 피고인에게 "유부남인데 고객과 잠을 자면, 부적절한 관계를 맺으면 어떡하느냐"고 했다. 이 부장판사의 "군 복무 중 여자랑 자면" 발언과 유사한 사례다.

또 다른 사건 재판에서는 검사가 피해자를 신문하면서 "피해자 외에 피해가 있다고 한 다른 친구들은 외모가 예뻤나요? 주로 외모가 예쁜 학생들만 만졌나요?"라고 묻기도 했다. 판사는 이를 제지하지 않았다고 한다.

노 의원은 "성폭력 피해자, 나아가 여성에 대한 편견과 왜곡된 성 의식이 그대로 드러난 '망언'"이라며 이 부장판사를 겨냥해 "이렇게 낮은 수준의 성 의식을 가진 부장판사가 성폭력 피해자의 증언 청취를 전담해 왔다는 사실에 참담함마저 느낀다"고 비판했다.

피해자 신상정보 공개하고, 신뢰관계인 퇴장 명령한 '무개념 판사'도

가해자 변호사가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공개하는데 이를 제지하지 않거나. 심지어 판사 스스로 피해자 실명 등 정보를 노출시키는 일마저 있었다.

노 의원은 "'성폭력특례법 및 성폭력범죄 등 사건의 심리·재판 및 피해자 보호에 관한 규칙'은 법관이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비공개하도록 정하고 있다"며 "그러나 모니터링 대상 재판에서는 11건 중 1건 꼴로 재판 진행 중 피해자의 개인정보가 여과없이 노출됐다"고 지적했다.

노 의원에 따르면, 지난해 3월 서울고법에서는 판사가 피해자를 증인으로 요청하고 참석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의 실명을 노출한 사건이 있었다. 같은해 6월에는 판사와 피고인 변호사가 피해자 이름을 노출시켰다.

가해자 측인 피고인 변호사가 사실상 피해자에게 합의를 종용하기 위해 거듭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등 재판 진행을 부담스럽게 만드는 사례는 성폭력사건 재판에서 매우 빈번하게 일어난다. 재판이고 뭐고 다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 들도록 피해자를 정신적으로 몰아붙이는 것이다. 심지어 노 의원에 따르면, 올해 7월 광주지법에서는 국민참여재판으로 지역사회 구성원들이 참여한 가운데 피해자의 근무지와 실명을 공개한 가해자 측 변호사도 있었다. 가해자 측이야 그렇다 치고, 판사가 이를 제지하기는커녕 스스로 피해자의 신상을 공개했다는 노 의원과 민우회의 고발이 큰 충격을 주는 이유다. (☞관련 기사 : 병원에서 당한 간호사, "저항했느냐?" 질문에…)

또 법률로 보장된 '증인 지원 제도'를 숙지하지 못해, 피해자인 증인의 심신 안정을 위해 동석한 신뢰관계인을 퇴장시킨 판사도 있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34조는 "법원은 성폭력범죄의 피해자를 증인으로 신문하는 경우, 검사·피해자 또는 법정 대리인이 신청할 때에는 재판에 지장을 줄 우려가 있는 등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면 피해자와 신뢰관계에 있는 사람을 동석하게 해야 한다"고 정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2014년 5월 서울북부지법에서 한 판사는 "성인인데 왜 신뢰관계인이 필요하나?"라며 사전에 동석을 신청한 신뢰관계인을 퇴장시켜 버렸다. 올해 4월 서울고법에서는 심지어 '피고인(가해자) 가족과의 형평'을 이유로 피해자의 신뢰관계인을 퇴장시킨 어처구니없는 사례마저 나왔다.

노 의원은 "성폭력전담재판부조차 제도를 제대로 숙지하지 못해 피해자가 정해진 지원을 받지 못한 것은 법원의 직무유기"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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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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