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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정국', 투사형 지도자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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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정국', 투사형 지도자가 필요하다

[기고] 비상한 대응 없이, 야당의 대선 승리 어렵다

진보 매체들이 앞을 다투어 이른바 '레임덕론'을 내세운다. 과연 지금 이 국면이 레임덕 징후일까?

위안부 문제를 비롯하여 우병우 사건이나 최순실 사건 등 다른 정부 같았으면 이미 야단법석 정부가 뒤집어지고 크게 난리가 날 일이지만, 이 정부에서는 어찌되었든 어떠한 일도, 무슨 사건도 모조리 유야무야되고 있다. 계속 열리기는 하는 청문회는 소문난 잔치에 아무런 효과도 거두지 못하고 말의 성찬으로 끝날 뿐이며, 끊임없이 이어지는 의혹 사건들은 단 하나도 풀리지 않은 채 피로감만 증폭시킨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어느 한 사건만 폭로되면 정권이 무너질 것이라고 기대해보지만, 폭로도 되지 않을 뿐더러 설사 폭로된다고 해도 별무소용, 전혀 무너지지 않을 듯하다.

심리학도 동원된다. 북핵 공포와 성범죄 빈발 등 치안 불안과 지진 공포감을 비롯하여 심지어 미세먼지를 비롯하여 미증유의 무더위와 한파 일기예보로 사람들의 마음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불안감과 공포감은 힘 혹은 권력, 따라서 보수에의 심리적 의존 현상을 강화시키게 된다. 척박한 이 땅에서 어느덧 모든 것을 포기해야 된 N포 세대 젊은이들의 불만은 SNS, 팟캐스트 방송, 힙합 그리고 영화 등으로 '자기들끼리만' 얼마든지 해소하도록 하면 된다는 심산이다.

야당은 도무지 믿음직하지 않다. 최소한 국민들이 그렇게 본다. 도무지 불투명하기만 했던 총선 국면에서 국민 스스로 일종의 '솔로몬의 지혜'에 의하여 황금분할 여소야대 국면을 만들어주었지만, 정작 야당은 어느 한 문제에서도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항상 정부 탓만 한다. 그러나 진정 국민의 신뢰를 받으려면 상황과 관계없이, 핑계를 대지 말고 성과를 만들어 내야 한다. 그것이 곧 능력이고, 야당이 그것을 해낼 때 비로소 대중들이 야당을 신뢰하게 된다. 20대 신규 등록 국회의원 중 재산신고 순위 1위와 2위 모두 제1야당의 의원이 차지할 만큼 이미 기득권화되어 버렸다는 점도 있겠지만, 항상 능력을 키우기보다는 욕심이 앞서고 무엇보다도 의지와 패기가 없다.

야당은 그럼에도 한편으론 이대로만 가면 정부에 반감과 불만을 가진 국민들이 결국 자기를 선택할 수밖에 없으므로 권력은 내 것이라는 '야무진' 자신만의 꿈도 가지고 있다. 이런 요소들이 교묘하게 결합되어 현 국면에 대한 대응 스텝이 완전하게 꼬이고 있다.

지금, 투사형의 지도자가 필요하다

일찍이 10.26이후 80년 봄, 3김씨는 권력을 자기가 이미 '따 놓은 당상'으로 여겼다. 그러나 역사가 증명했듯, 그것은 한낱 봄날의 달콤한 꿈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 비상한 대응이 없다면 승리 가능성은 매우 낮다. 현재 보수 세력의 구상(구상이 아니라면, 최소한 '희망')은 '유사 유신체제'의 구축으로 볼 수 있고, 관료 시스템을 비롯하여 정보기관 그리고 주류 언론, 중대(中大) 자본이 일사불란하게 작동하는 보수 혼연일체의 시스템으로 운용되고 있다. 거기에 미국과 일본 역시 일체화되어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국면에서 아무리 절호의 기회가 눈앞에 펼쳐진다고 해도 지금과 같은 야당으로서는 쉽게 승리하기 어렵다.

지금, 용기 있는 투사형의 지도자가 필요하다.

작금의 상황은 단지 정치공학의 산술에만 몰두하고 낭만적으로 내일을 채색하는 그러한 국면이 아니다. 최소한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했던 YS의 우직한 용기가 필요하고, 서슬이 퍼렇던 반공법과 중앙정보부의 무지막지한 탄압이 난무하던 그 시대에서도 '무모하게도' 연방제 카드를 줄기차게 주창했던 DJ의 패기가 필요한 때다. 세상을 떠나간 故 김근태 선배가 지금 살아 있었다면, 반드시 오늘의 상황을 '고통스럽게' 탄식하고 스스로를 질타하고 먼저 자신부터 실천을 모색했으리라.

최근 손학규 선배는 정계복귀의 변으로 "죽음을 각오하고 저를 던지겠다"라고 했는데, 어떤 의미에서 죽음을 각오한다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이 시대에 지도자를 자처하고자 한다면 '목숨을 건' 그런 정신과 자세가 필요한 때다.

'전두환의 학생시위 방치론'은 우리 안의 "움직이지 말라" 논리다

최근 <프레시안>에 실린 "그해 5월, 전두환 세력은 왜 거리 진출을 방치했나"라는 글은 결국 전두환 세력이 학생들의 시위를 일부러 방치하여 대규모화시키고 그것이 전두환 집권 시나리오에 이용되었다는 논리다. 그간 계속하여 정론만을 펼쳐온 분인데, 이번 글은 상당히 유감이다. 선입견과 자기 확신에 맞춰 역사를 기술할 수는 없다. 자칫 잘못된 역사 기록으로 굳어질 수 있다. 개인적인 얘기를 하자면, 10.26 당시 감옥에 있었던 필자는 반드시 군부가 곧 전면에 나설 것이고 우리는 투쟁하겠지만 결국 패배할 것으로 예측했다. 그래서 실제 복학했을 때 학교에 거짓 주소지를 적어 내 5월 학원사태 후 그 주소지 관할 경찰서가 필자 체포 담당서로 되고 형사들이 그 주소지에 장기 잠복하기도 했다. 당시 필자를 비롯한 주전파들은 비록 투쟁에서 패배해도 반드시 투쟁을 함으로써 민주 진영이 이후 일어설 수 있는 근거지를 만들 수 있다고 상정했다.

"전두환의 방치론"과 같은 이러한 논리가 위험한 것은 현재 우리의 자세와도 불가분의 관련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 논리를 지금의 정국에 대입하면, 우리가 크게 움직이면 그것은 곧 상대방에게 확실한 명분을 주고 집권전략에 이용당한다는 것이다. 우리 안의 "움직이지 말라" 논리다.

우리는 상대(권력)에 비하여 항상 역량이 취약하고 대중 조직이 미약하기 때문에 아직은 준비가 더 필요하다는 이 논리는 결국 실천은 하지 않고 그냥 손 놓고 있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되고, 그래서 항상 권력의 의도와 부합된다. 언제나 권력을 중심으로 놓고 사고하는 관점, 그러한 시각이 위험하다. 역사란 피아간의 투쟁인데, 아(我)의 공간과 의무, 권리는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지배자의 사관으로 귀결되는 반면, 주체적으로 창조하고 쟁취해가는 관점을 부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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