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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항' 조양호, ‘부산행' 김의성보다 사악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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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부산항' 조양호, ‘부산행' 김의성보다 사악한 이유

[사회 책임 혁명] 조양호, '부산항' 최종 생존자가 될 것인가

(이 글은 영화 <부산행>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조선업에 이어 해운업에 이른 바 구조조정의 불똥이 튀면서 온 나라가 난리다. 지난 추석이 추석 같지 않았을 많은 사람들이 떠오른다. 물류대란을 일으킨 한진해운 사태는 한 산업이 아닌 국가 경쟁력과 결부되면서 정부의 단견과 무능, 기업의 무책임과 탐욕을 부각시켰다.

정부는 책임 회피에 급급하다. 박근혜 대통령까지 나서서 면피에 연연하고 모든 책임을 기업에 돌린 모습은 정말 볼썽사납다. 박 대통령은 지난 13일 국무회의에서 한진해운 사태와 관련하여 "한진해운의 경우 경영정상화를 위한 자구 노력이 매우 미흡했다"며 "해운이 마비되면 정부가 어쩔 수 없이 도와줄 수밖에 없다는 안일한 생각이 이번에 국내 수출입 기업들에 큰 손실을 줬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정부 방침은 기업이 회생 절차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서 정부가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라는 식의 기업 운영 방식은 결코 묵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한진해운 직원들과 항만 업무 종사자들, 그리고 바다 한가운데 있는 선원분들의 어려움을 생각하면 마음이 매우 무겁다"라면서도 "당장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산업구조 개편을 미루거나 포기한다면 결국 그 피해는 국민 모두에게 돌아가게 된다"고 덧붙였다.

현 '물류대란' 사태의 책임이 한진해운과 한진그룹에 있다고 못 박고 (한진 쪽의) 자구 노력이 미흡하다면 정부가 세금을 투입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셈이다. 물론 한진 쪽에 근본적인 책임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사태가 이 지경으로 악화한 데는 정부의 정책기능의 실종이 크게 한몫했다. 주변에 불이 번지고 있는데 불 낸 사람 책임이니 그 사람이 불 끄라고 팔짱이나 끼고 있는 존재를 우리는 정부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더구나 한진해운이 이미 법정관리에 들어간 만큼 박 대통령이나 정부의 압박대로 대주주가 추가적인 책임을 지는 게 타당한 지에 대해 반론이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특히 재계나 친 재벌 논조의 매체들에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겸 대한항공 대표이사 회장의 400억 사재출연과 별도로 대한항공이 600억 원을 지원키로 한 것에 대해 '배임'이란 논리를 펴고 있다. 예컨대 "(한진그룹 책임론은) 법적 근거도 없는 주주의 무한책임을 강요하고 있어 회사법상 주식회사 제도를 흔드는 것"이며 "한진해운 회생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한진그룹의 출연을 요청하는 것은 임원에게 배임을 강요하는 셈"이라는 논리다.

개인적으로 배임이 맞는다고 본다. 회수 가능성이 불분명한 이 상황에서 600억 원이란 회사 돈의 사용을 승인한다면 분명 이사로서 배임을 모면키 힘들다. 이 때문에 정부나 재계에서는 조건부 제공이란 승인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600억 원이 들어오기 힘들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이 대목에서 '도의적 책임'이니 '사회적 책임'이니 하는 용어를 거론하며 추가적인 지원을 정당화하곤 하는데 단언컨대 현행 법을 어기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은 존재하지 않는다.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한진해운 사태는 이제부터 정책적 책임의 대상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전에 명백하게 짚고 넘어갈 사항이 있다. 대한항공 이사회에서 정당하게도 배임을 운위한다면 그 이전에 이루어진, 정실적 판단에 의해 회사에 천문학적 손해를 입힌 조양호 대표이사 회장의 배임에 대해서도 추궁해야 한다. 대한항공은 2014년 6월 10일 이사회를 열어 한진해운에 대한 4000억 원의 유상증자를 결의했다. 이에 따라 대한항공의 한진해운 지분은 33%로 상승해, 조 회장의 동생인 고(故) 조수호 회장을 거쳐 제수인 최은영 전 회장에게 넘어간 한진해운이 한진그룹으로 편입되었다.


대한항공의 한진해운이란 부실기업 인수는 조 회장의 결심에 따른 것으로, 당시 회사 내부에서 반대가 극심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한진가 상속자로서 조 회장의 '책임감'과 '자부심'이 기업의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내리게 하였고, 이후 한진그룹은 최근까지 한진해운에 2조1000억 원의 유동성을 공급했다. 보도에 따르면 특히 대한항공이 직접 지원한 자금이 8000억 원이 넘는데,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로 넘어가면서 그중 대부분을 날렸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아버지가 물려준 두 개의 기업이 있는데, 동생이 맡은 한 기업이 망하게 되자 형이 맡은 나머지 기업에서 동생 기업을 살리겠다고 회사 돈을 쏟아 부었다. 대표이사로서, 주주의 대리인으로서 명백한 배임이 아닌가.

10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불러 모은 영화 <부산행>에서 김의성이란 배우는 욕먹는 배역을 잘 소화해 호평을 받았다. 극중 초반부에서 공유 일행이 기차의 안전지역으로 넘어오려고 하자 김의성이 기를 쓰고 막아서는 장면이 있다. 한눈에도 김의성이 밉상이긴 하였으나, 현실이라면 무작정 나무랄 선택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공유 일행이 안전칸에 들어오자 김의성이 "감염 안 된 거 확실하냐"고 따지고 결국 연결부로 격리시킨다. 극중 김의성이야 개인적 안위 때문에 그렇게 물었겠지만 만약 전체 주주의 대리인자 기업 운영을 총책임지는 대표이사라는 비유를 그 자기에 적용한다면, 응당 물었어야 할 질문이며 했어야 할 조치이다. 영화 <부산행>의 김의성과 달리 현실의 조양호는 동생에 대한 의리와 '가문의 영광'을 위해 '감염'을 불사하며 '부산항'으로 달려갔다. 혹은 물론 단순하게 탐욕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김의성과 조양호가 비유의 차원에서 동일한 행태를 보인 곳은, 영화를 기준으로 김의성이 화장실에 갇혀 있다가 거짓말로 역무원을 먼저 문밖으로 나가게 한 뒤 그를 좀비들에게 던져 버리고 자신만 달아나는 장면이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로 넘어가는 협상과정에서 여러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조양호의 행태는 대체로 김의성의 화장실 탈출 장면과 일치한다.

▲ 영화 <부산행>의 한 장면

배임에 관한 대한항공 이사회의 판단은 올바르지만, 여기서 더 큰 배임에 관한 준엄한 판단이 병행되어야 하지 않을까. 동생네 회사를 살리겠다고 회사에 1조 원에 육박하는 피해를 끼친 대표이사를 그대로 놔두고 600억 원 지원에 대해 배임을 운운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한 기업을 말아먹은 최은영 전 한진회장보다 사적 허영심으로 두 개의 기업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 조양호 회장이 더 사악하다. 조 회장이 참회하는 길은 회사 돈 말고 개인 돈을 털어서 한진해운 사태를 해결하는 데 출연하는 것이다. 이미 대대손손 호의호식할 만큼 부를 쌓아놓았으니, 최대로 출연해도 무방하다. 이사들과 주주들은 배임으로 기업에 천문학적 손해를 입힌 조양호 대표이사의 책임을 물어 그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는 것은 물론 손해를 배상받기 위한 소송을 제기하여야 한다.

그리고 한진해운은 법원에서, '한진해운 사태'는 정부에서 해결하면 된다. 의사결정의 주체가 바뀐 만큼 결정의 기준이 사익이 아니라 공익이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사적인 영역에서는 사적인 책임, 공적인 영역에선 공적인 책임이 이행되어야 한다. 두 영역에서 모두 배임이 없어야 한다.

이상이 내가 기대하는 한진해운 사태의 상식에 준한 건전한 해법이다. 영화 <부산행>은 작위적이긴 하여도 나름 '해피엔딩'과 희망의 전언을 남긴다. '부산항'에도 희망이 있을까. 불행히도 우리 사회엔 공적·사적 영역에 배임이 만연한데다 배임이 단죄받지 않는 구조가 자리잡고 있어 상식과 희망의 전망이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 영화 <부산행>에서 마지막에 기차에서 내리는 이는 김의성이 되지 않았다. 내 기대와 달리 '영화' '부산항'에서는 마지막 생존자로 기차에서 하차하는 이가 조양호 회장일 것이다. 장신에 거구라서 내리기는 편하겠다.

(안치용 교수는 한국사회책임네트워크 집햅위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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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책임네트워크(KSRN)는 국내 '사회책임' 관련 시민사회단체들 및 전문가들의 모임이다. ISO26000 등 전 세계적인 흐름에 조응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사회책임 공시, 사회책임투자 등 '사회책임' 의제에 관하여 폭넓은 토론의 장을 열고 공론화를 통해 정책 및 제도화를 꾀하고 있다.(www.ksr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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