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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호남 민주당 표, 얼마면 됩니까? 90%?

[2017, 호남의 선텍] 장은주 교수에게 답한다

미국에서 흑인과 유태인의 민주당 투표율은 70%에 가까운 것으로 알고 있다. 아마 이 두 집단이 미국 사회에서 대표적인 차별과 배제의 대상이라는 사실에 기인할 것이다.

신자유주의 이념과 강자 영합적 가치관을 내세우는 공화당에 이들이 투표한다는 것은 어려울 일임에 틀림없다. 소수 인종에 대한 혐오 발언을 거리낌 없이 해대는 도널드 트럼프 같은 이들이 공화당 후보로 계속 선출되는 한 앞으로 30년 내에 흑인과 유태인이 공화당에게 표를 주는 일은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한 번 상상해보자. 어떤 미국 정치인이 "흑인으로부터 70%라는 '몰표'를 받는 민주당은 '흑인당'이다. 그래서 전 인종을 아우르는 '포괄 정당'으로서 경쟁력이 떨어진다. 흑인을 혐오하는 백인들이 표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민주당은 '탈흑인'을 해야 한다"라고 발언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 일주일도 못 되 정계를 비롯한 미국 사회의 전 영역으로부터 무수한 융단 폭격을 받고 즉시 모든 공식적/비공식적 지위를 박탈당한 뒤 야인이 되거나 극단주의 진영에 합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 반대로 상상해보자. 이번에는 어떤 정치인이 "흑인은 무조건 이번 선거에서 힐러리에게 투표해야 한다. 평소와 같이 70%에 달하는 몰표를 던져야 한다. 만약 흑인이 힐러리에게 몰표를 주지 않아 트럼프가 당선된다면 그로 인한 흑인의 차별 심화에 대해서는 흑인 스스로가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해보자. 이 정도면 정계 은퇴를 떠나 신변이 위험해 질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백인 우월주의자 말고는 누구도 그를 지지하거나 옹호해주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상상해보자. 이 두 발언을 시차를 두고 같은 정치인이 했다면? 아마 비난을 넘어서 정신 질환자 취급을 받거나 연방 정부 차원에서 심리학적 연구 대상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는 이런 연구 대상 인물이 넘쳐난다. 호남이 민주당에 표를 줄 때는 '몰표 지역주의'라면서 비난하더니 표를 안 줄 때는 '새누리당이 되면 너희들만 큰 코 다쳐. 그러니 몰표 내놔'라고 협박하는, 다시 말해 표를 줘도 욕하고 안 줘도 욕하는 이들 말이다. 놀라운 점은 이런 패륜적인 이중 잣대를 펼치는 자들이 대부분 진보 좌파 이름표를 달고 행세하는 사람이란 사실이다. 그들이 누구인지는 지난 글들에서 계속 언급했으니 더는 밝히지 않겠다.

이 이중 잣대의 정치 사회적 기전에 대한 설명 역시 반복하지 않으려 한다. 사실 이런 되먹지 못한 정신 상태를 굳이 정치적으로 분석할 필요성을 더 이상 느끼지 않는다. 그냥 못된 혐오 감정, 차별 의식에 불과하다.

이를테면 서구권에서는 공산주의도 유태인 빨갱이들이 획책한 선동, 자본주의도 탐욕스러운 유태인들이 만든 착취 체제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이런 주장에 무슨 대단한 논리나 거창한 정치 사회적 배경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냥 유태인에 대한 혐오 감정이 어떤 경우에도 무조건 유태인을 욕하는 구실을 만들어내는 구질구질한 상상력으로 발전한 결과일 뿐이다.

요새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여성 혐오' 정서도 유사하다. 여자가 애 낳고 집에서 살림하면 왜 맞벌이 안 하고 남편이 벌어다 준 돈으로 놀고먹느냐고 욕하면서, 막상 여자가 일터에 나가 일하면 여자들은 수다 떨고 편이나 가르니 업무 능력이 떨어진다고 비난하고, 여자가 묵묵히 자기 일만 하면 '독한 년' 혹은 '일만 하다가 노처녀 된다'며 수근거린다.

여성성을 드러내면 감정적이고 보편성이 떨어진다고 깔아뭉개고, 남성성을 드러내면 남자 흉내 낸다고 눈을 흘긴다. 여기에 무슨 거창한 가족과 일터에 대한 보수 우파적 성별관이 투영되어 있겠는가? 그저 못난 남자의 여성에 대한 혐오 감정이 빚은 논리 파탄일 뿐이지.

혐오와 차별 의식은 어디까지나 '감정'과 '의지'에서 출발하기에 필연적으로 논리적 자가당착을 빚기 마련이고, 이것이 호남에 대한 차별 의식을 무의식적으로 소지한 상당수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호남이 민주당에 몰표 줄 때는 '홍어 냄새 풍기며 민주당 이미지 떨어트리는 지역주의 몰표 군단', 몰표를 안 줄 때는 '민주당 말고는 갈 데 없는 왕따면서 감히 다른 정당에게 표를 주고는 밥 달라고 생떼 부리는 어리석은 신민들'이라는 상호 모순의 '호남관'을 필요와 상황에 따라 왕복하는 근본 이유인 것이다.

논리적 일관성이 중요한 게 아니라, 호남을 어떻게든 미워하고 깎아내리고 타자화하고 폄하해야 하는 굳건한 감정과 의도가 먼저이기에, 표 줄 때는 표를 주는 것이 커다란 죄악이자 잘못이 되는 논리가 등장하고, 표 안 줄 때는 표 안주는 것이 커다란 죄악이 되는 논리가 등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물론 첫머리에서 예시를 든 흑인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둘 다 지독한 차별주의적 관점인 것은 당연하다.

총선 전과 다름없이 여전히 '호남이 정권 교체의 선봉에 서야한다'고 주장하는 장은주 교수의 글을 보자. 구구절절 심경을 토로했지만 결국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관련 기사 : 다시 호남이 '단일 후보'를 만들어야 한다!)

- 호남이 박근혜 정부 심판과 정권 교체의 선봉에 서야한다.
- 호남의 세속화는 나쁘다. 5.18의 신성 광주로 남아 달라.

반새누리 투쟁의 선봉에 서되 그 열매(?)는 탐하지 말라는 얘기다. 호남은 어떤 신성하고 절대화된 공간으로 남아서 대한민국 민주 진보 진영에 끝없이 자원을 공급해주는 마르지 않는 수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광주 항쟁이 피해 보상과 아픔의 치유를 요구할 권리의 근거가 아닌, 한 지역 전체가 영구히 '민주 투사'의 논리를 짊어지고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굴레의 기원이 되고 있다. 좋게 보면 참신한, 나쁘게 보면 기이한 사고방식이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호남은 '민주화'와 '산업화' 같이 하면 안 되나? 호남에만 광주 항쟁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4.19와 6.10이라는 항거를 거쳐 민주국가로 거듭났다. 그럼 대한민국 전체에 '신성 한국'의 굴레와 의무를 씌우면 되지 않겠나? 5000만 명이 그 가시면류관을 쓰면 지금이라도 당장 박근혜 정부를 무너뜨릴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대한민국은 민주화도 하고 산업화도 하지만, 호남은 굶어죽을 때까지 민주화만 하란 것인가?

뭐 하지만, 장 교수가 호남에 대한 개인적 동경으로 민주 투사의 이미지를 투영하여 흠모와 실망 사이를 왕복하는 것이라면 굳이 폄하하거나 조롱할 생각은 없다. 영남의 척박한 진보 정치의 현실을 고려한다면 호남 의병-광주 학생 운동-빨치산-5.18-민주당 지지로 이어지는 호남의 장구한 민족적 진보 정치의 맥에 복잡한 경외의 심경을 느낄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호남에게 일신의 영달과 이해관계에 좌우됨이 없이 민족적 과제를 양 어깨에 짊어지고 새누리당이라는 흉적과 맞서 싸우는 신화적 투사(혹은 희생양)의 역할을 주문하는 것 자체는 그럭저럭 이해할 만한, 극히 한국적인 '토속 정치관' 이라고 생각한다. 얼떨결에 신화 속의 주인공이 되어버리는 본인을 비롯한 호남의 필부들에게는 좀 난감한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장 교수의 '호남이 정권 교체의 주역이 되어야 한다(혹은 단일 후보를 내세워야 한다)'는 주문은 쉽게 말해 민주당 대선 후보에게 몰표를 주라는 얘기로 해석된다. 다시 말해 호남과 민주당이 일체화한 기존 관계를 복원하여, 호남이 민주당에게 90% 몰표를 던지고, 호남 정치인은 곧 민주당 정치인이라는 등식이 성립했던 2, 3년 전으로 돌아가자는 얘기다.

(그게 아니라면 호남에게 구체적으로 요구하는 몰표의 정도 혹은 의석수가 정확히 얼마인지 숫자로 밝혀주길 바란다. 눈 가리고 아웅 해서는 안 된다. 누가 봐도 호남에게 몰표 주라는–혹은 주지 말라는-얘기로 해석될 수밖에 없는 얘기를 구구절절 늘어놓고는 '그래서 몰표 내놓으란–혹은 내놓지 말란–말이지?'라고 구체적으로 물어보면 딴청을 피우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하는 말이다. 장은주 교수는 그러지 않으리라 믿는다.)

그런데 어쩌나? 장 교수 말대로 몰표를 주면 또 진 아무개 씨 같은 이들이 '몰표 던지는 전라인민공화국'이라고 조롱하지 않겠나? 그러면서 호남 몰표를 받는 민주당은 호남당이라 전국적 지지를 못 받는다며 '탈호남'을 외치지 않겠나? 그게 호남 몰표에 대한 불과 얼마 전까지의 민주당과 진보 진영의 입장 아니었나? 당장에 민주당의 양향자 의원이 한 발언을 보라.

"국민의당은 호남당이라 집권 못 한다."

호남의 지지를 받는 국민의당은 호남당이고, 그래서 집권 못한다는 얘기다. 이 논리대로라면 장은주 교수의 소원대로 호남이 민주당에게 다시 몰표를 주면 민주당이 '호남당'이 되어 집권을 못하는 것 아닌가?

내가 바라는 것은 간단하다. 일관성이다. 호남의 몰표를 지역주의라고 폄하하면서 '탈호남'을 외칠 거라면, 호남이 민주당 외의 정당(국민의당 같은)에 표를 나눠 주는 것을 환영하라. 그래야 논리에 맞다. 반대로 새누리당 집권을 막기 위해 호남이 나서야 하며 따라서 민주당을 적극 지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면 호남이 민주당에게 몰표 줄 때 이를 적극 환영하며 감사하라. 그게 이치에 맞다.

최소한 공산주의도 유태인의 음모, 자본주의도 유태인이 꾸민 흉계라는 반유태주의자, 여자가 집에서 주부로 있으면 맞벌이 안 한다고, 나가서 일하면 여자들은 편 가르고 수다나 떤다고 욕하는 '여혐 종자'보다는 한국의 진보 지식인들의 더 수준이 나아져야 하는 것 아닐까? 표 줘도 욕하고, 안 줘도 욕하는 논리 파탄의 이중 잣대는 버려야 지식인으로서의 기본이 서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호남이 정권교체의 선봉장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장 교수에게 묻는다. 진 아무개 씨의 "전라인민공화국" 발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유 아무개 씨의 "호남의 노무현 지지는 지역주의 암 환자의 모르핀 투여"에 대한 생각은? 내가 봤을 때는 너무나 명백하게 '몰표 망국론'의 관점에서 호남의 투표 행태를 겨냥하여 비수 같은 조롱과 혐오를 퍼부은 발언이다. 즉, 장 교수의 의견과는 정면으로 반대되는 주장들이다. 여기에 대해 의견이 듣고 싶다.

그리고 장 교수는 호남에게 몰표를 요구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다음 대선에서 호남은 민주당 후보에게 몇 퍼센트의 표를 줘야 하는가? 또 다음 총선에서 호남은 민주당에게 어느 정도 의석을 줘야 하는가? 장 교수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진보 지식인들과 정치인 전체가 정확히 호남에게 요구하는 득표율/의석수가 얼마인지 공개하길 개인적으로 바란다.

호남의 선거 결과를 놓고 잘잘못을 따질 거면, 애초에 그 기준을 알려줘야 할 것이 아닌가? 매 맞더라도 이유를 알고 맞자. 90점 맞으면 성적에 집착하여 전인성을 상실했다고 혼나고, 50점 맞으면 왜 점수가 이 모양이냐며 혼나는 게 지금 호남이 처한 상황이다. 어머니, 도대체 몇 점을 맞으란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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