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 법정 관리에 따른 혼란이 당초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한진해운이 법정 관리를 신청한 건, 딱 일주일 전이다. 그 사이 정부와 한진해운은 일종의 치킨 게임을 했다. 서로 책임을 떠넘겼고, 물류 대란은 계속 확대됐다. 화물을 실어나르던 선박이 바다 위에서 표류한다. 수출입 화물 운송 일정이 빗나간다.
한진그룹, 조양호 사재 400억 원 포함 1000억 원 공급
그리고 6일 오전, 사태는 새 국면을 맞았다. 정부와 한진해운이 한발씩 물러선 것이다. 정부와 새누리당이 1000억 원 이상의 장기저리자금을 긴급 지원하기로 했다. '한진해운이 담보를 제공할 경우'라는 단서가 달렸다.
이런 발표가 나온 직후, 한진그룹도 입장을 내놨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사재 400억 원을 내고, 한진그룹 측이 600억 원을 지원해서 총 1000억 원을 공급한다는 내용이다.
"화물 운송 책임은 한진해운 몫이다"
이런 조치는 하루 전인 지난 5일 유일호 기획재정부 장관이 한 이야기에서 예고돼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항저우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일정을 수행한 유 장관은 이날 밤 "기본적으로 선적된 화물을 목적지까지 운송하는 책임은 화주와 계약을 맺은 한진해운에 있다"면서 "한진해운과 대주주가 맡은 바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압류 금지가 발효된 항만에서 화물 하역을 위해 필요한 자금은 한진해운과 대주주가 책임을 진다는 전제 아래 일부 필요자금에 대해선 채권단과의 협의 아래 지원 방안을 마련해 법원과 협의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필요한 돈은 6000억 원 이상…정부 및 한진그룹 대책으론 한계 분명
대주주의 책임이 먼저라고 못 박았다. 하지만 한진그룹이 자체 조달한 1000억 원은 사태를 해결하기엔 부족한 액수다.
물류 대란이 벌어진 이유는 각종 연체금 때문이다. 선박을 항만에 대면, 하역 업체에게 하역비를 줘야 한다. 그래야 화물을 선박에서 내릴 수 있다. 선박이 운하를 지날 때면, 통행료를 내야 한다. 항해하는 중간에 기름도 채워야 한다. 역시 돈이 든다. 이런 비용이 모두 밀려 있다.
그 규모가 6000억 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이번 조치가 제대로 이뤄져도 한계는 분명하다.
소송 폭탄 터지기 전에 급한 불 끈다
연체금을 내지 못한 탓에 한진그룹 소속 선박은 항만 곳곳에서 압류 당하고 있다. 그걸 피하기 위해 상당수 선박이 공해 상을 떠돈다. 이런 상태로 오래 지낸 선박에선 식량과 식수가 부족해진다. 6일 기준으로, 한진해운 소속 선박 가운데 97척이 비정상 운행을 하고 있다. 한진해운 소속 선박은 141척이다.
한진해운과 정부의 대책은 당장 급한 불을 끄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정부는 우선 세계 각국 법원에 한진해운 소속 선박에 대한 압류 금지 명령 승인을 요청하기로 했다. 그렇게 되면, 한진해운 소속 선박은 더 이상 공해 상에서 표류할 필요가 없어진다.
아울러 이번에 지원되는 자금은 주로 하역비용으로 쓰기로 했다. 선박으로 운송한 화물을 제때 하역하지 않으면, 수출입 업체가 피해를 본다. 이는 소송 폭탄으로 돌아올 수 있다. 소송가액은 최대 15조6000억 원 규모로 추산된다. 폭탄이 터지기 전에 해법을 찾아야 한다.
부산 민심, 여론의 압박…초조한 정부
그러나 여전히 남아 있는 수천억 원대 연체금이 있다. 그건 어쩔 건가.
한진해운 측은 그룹 전체의 자금 사정을 핑계로 책임을 계속 피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시간을 끌면, 속이 타는 건 정부다. 수출입 현장의 혼란이 이어지면, 정부는 여론의 압박을 받는다. 실제로 지난 5일, 상당수 언론이 정부의 물류 대책을 질타하는 사설 및 칼럼을 게재했다. 한진해운 법정관리 후폭풍에 대한 대비가 없었던 정부에 대한 비판이다. 부산 민심을 외면할 수 없는 정부와 새누리당 입장에선 마음이 급했을 게다.
조양호 회장 책임이 더 크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지난 5일 "물류 대란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솔직히 인정했다. 확실히 정부가 잘못했다.
하지만 우선순위는 분명히 해야 한다. 현 사태의 가장 큰 책임은 한진해운을 망친 조양호 회장 일가에게 있다. 정부의 책임은 그 다음이다. 한진해운에 대한 지원 대책 역시 이 순서대로 이뤄져야 한다. 조 회장이 먼저 더 큰 부담을 져야 한다. 그가 마음만 먹으면,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자산이 지금도 꽤 있다. 대표적인 게 서울 경복궁 근처에 사둔 땅이다. 한진그룹 측은 그 자리에 호텔을 짓겠다고 했다. 하지만 서울시가 반대한다. 근처에 학교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진그룹 측은 계획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현대증권 매각한 현정은, 호텔 부지 못 내려놓는 조양호
비슷한 위기를 겪었던 현대상선과 대조을 이룬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역시 현대상선을 망친 책임이 있다. 그러나 현 회장은 현대상선을 살리기 위해 알짜 계열사인 현대증권을 팔았다. 반면 조 회장은 성사조차 불투명한 호텔 건설 계획을 계속 붙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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