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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 대표가 본 댓글엔 '대통령 비판'은 없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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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이정현 대표가 본 댓글엔 '대통령 비판'은 없었나?

[기자의 눈] '정치혐오'와 '정치공학'만 난무한 여당 대표 연설문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의 이정현 대표가 국회를 준엄하게 꾸짖었다. 이 대표의 교섭단체 연설을 요약하면, 한마디로 국회의원은 나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야말로 '시중'에서 국회의원들을 욕하며 하는 말들을 수집해서 길게 늘어 놓았다.

그는 "많은 국민들은 국회야말로 나라를 해롭게 하는 국해(國害)의원이라고 힐난한다. 국회는 개혁의 주체가 아니라 개혁의 대상이라는 것이 댓글 상의 일반 국민 생각이다. 국민의 눈에 국회는 당파싸움 하는 곳이다"라고 죽비를 내렸다.

당파싸움이라면 얼마 전에 있었다. 정세균 국회의장의 개원사를 두고 맘에 들지 않는다고 뛰쳐 나간 당이 있었는데, 새누리당이었다. 대변인 논평을 통해 "우리 당의 입장은 정세균 의장의 입장과 명백히 다르다"고 비판하고 반박하면 될 일이었다. 새누리당이 협조하지 않으면 절대 현실화될 수 없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을 제안한 것을 두고 마치 국회의장이 독재를 하고 있는 것처럼 선동했다.

사드 배치 문제도 그렇다. 사드 배치의 결정권을 가진 세력은 미국, 그리고 새누리당을 기반으로 집권한 박근혜 정부밖에 없다. 구호에 불과한 국회의장의 개원사를 두고 뛰쳐나간 세력이 누구인가.

새누리당은 자신들의 '당파성'을 드러내며, 몇 마디 발언을 빌미로 실력 행사를 했다. 심지어 그들은 '11인의 결사대'를 구성해 서울 한남동 국회의장 공관을 점거하는 비밀 작전을 구상하고 있었다. 실제 김진태, 김명연, 이완영 등 11명의 의원들이 지난 2일 오후 4시 쯤 국회의장 공관에 '무혈 입성', 국회 파행을 전제로 장기전을 대비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정현 대표는 거의 비슷한 시간에 해외 순방을 떠나는 박근혜 대통령을 환송하려 서울 공항에 나가 깎듯한 인사를 하고 있었다. 11인의 결사대를 보내고 주군을 환송하는 그의 행동에서는 어떤 비장미까지 느껴진다.

이정현 대표는 연설을 통해 "이제 대선 불복의 나쁜 관행을 멈춥시다"라고 말했다. 며칠 전까지 장외 투쟁도 불사할 것처럼 포효했던, '정치 테러' 운운하며 국회의장에 대한 온갖 막말을 쏟아냈던 새누리당의 대표가, 아무일 없었다는 듯 들어와서 국회를 준엄하게 꾸짖고 있다. "박근혜 정부 들어와 정부조직법 개정 발목잡기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사실상 대선불복 형태의 국정 반대, 국가 원수에 대한 막말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특히 야당을 비난했다.

그런데 그는 정작 총선 결과로 등장한 국회의장에 대해, 총선 불복의 나쁜 관행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은 지적하지 않는다. 이 대표의 연설에 나타난 박근혜 정부는 선이다. 그리고 그 외의 세력은 나쁜 세력이다. 나라를 망치려는 세력이다. 박근혜 정부는 일을 하는 세력이고, 국회의원은 '국해의원', 그뿐이다. 과연 청와대 수석을 두 번이나 지낸 이정현 대표다운 연설이다. 임명직인 청와대 수석보다 선출직인 새누리당 대표가 좋은 점은, 야당에 대해 비판의 독설을 더욱 강하게 벼를 수 있다는 점인 듯 하다. 이 대표는 5일 당직인선을 했는데, 정세균 의장에게 "지카 바이러스"라는 막말을 쏟아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염동열 의원을 새누리당의 '입'인 수석대변인에 임명했다.

국가 원수에 대한 막말은 안되지만, 국회의장에 대한 막말은 벼슬로 보상받는 것인가 궁금하다.

이 대표는 언론 인터뷰에서 "(이번) 연설문의 최대 자문위원은 네티즌 댓글"이라고 했다. 그런데 궁금증이 생긴다. 이 대표가 봤다는 '댓글'에는 박 대통령 비판 글이 단 한 글자도 없었던 것인지, 오로지 국민들은 '국해의원'만을 그렇게 비판하고 있었는지, 박근혜 대통령의 직무 수행 지지율이 30% 턱걸이인데, 나머지 70%는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매년 새누리당 대표 연설을 꼼꼼하게 읽어보지만, 이번처럼 야당을 비난하고, 나아가 국회를 싸잡아 '자학'하는 연설을 본 기억은 없는 것 같다.

▲ 지난 2일 오전엔 국회의장실 농성을... ⓒ연합뉴스
▲ 지난 2일 오후엔 박근혜 대통령 환송을... ⓒ연합뉴스

박명림 연세대학교 교수가 새누리당 총선 패배 후 지난 5월 5일자 <중앙일보>의 칼럼란에 기고한 글을 떠올려 본다.

"먼저 보수의 금과옥조인 경제 성장률은 보수정부 평균 5.15% 대 진보정부 6.01%다(이하 김영삼·김대중 정부 모두의 책임으로 귀결될 수 있는 1998년 지표는 제외. 외환 통계는 98년 포함). 수출 증가율은 보수 10.88% 대 진보 12.06%다. 외환보유 증가액은 보수 582억 달러 대 진보 2420억 달러다. 외환보유 증가율은 보수 19.76% 대 진보 314.81%다. 주가 상승률은 보수 마이너스(-) 3.94% 대 진보 37.84%다.

국민 삶에 가장 중요한 1인당 국민총소득(GNI) 증가율은 보수 5.25% 대 진보 12.65%다. 진보가 두 배를 넘는다. 취업자 증가율은 보수 1.6% 대 진보 1.9%다. 최저임금 인상률은 보수 7.15% 대 진보 9.92%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보수 4.16% 대 진보 2.71%다. 모든 지표가 진보의 우위 내지 압도적 우위다. 공적 지출·형평·빈곤·복지·민생 지수도 물론이다. ‘보수 유능-진보 무능’ 신화는 완전 허구인 것이다."

'경제는 보수'라는 말도 객관적 지표 앞에서는 힘을 못 얻는 모양이다. 그런데도 이정현 대표는 "봉급 생활자들의 월급은 오르지 않고 오히려 깎이고 경제 성장률은 떨어지고 국가 부채는 느는데 국회의원 세비는 매년 꼬박꼬박 인상하는 것이 정상이냐고 따져 묻는다"고 지적한다. 월급을 올리고, 경제 성장율을 올리고, 국가 부채를 줄이는 것은 누구의 몫인가. 야당의 몫이 아니고 집권 여당의 몫이다. 왜 보수 정치인들의 무능을 모든 정치인의 무능으로 치환하는가. 그것도 공신력이 떨어지는 '시중'의 언어를, 특정 정당 지지자의 언어를 사용해 유권자를 기만하고 있는가.

이정현 대표의 이번 연설은 실망 그 자체다. 2008년부터 의정활동을 시작했던 이 대표를 봐 왔지만, 이 정도로 '콘텐츠'가 없는 인물인 줄은 정말 몰랐다. '비전'은 없고 '자학'만 있다. '호남 연정론'과 같은 지역 중심의 낡은 정치 공학만 난무한다. '따뜻한 보수'를 역설했다가 밀려난 전직 원내대표가 그리울 정도다.

이 대표는 대표에 당선된 후 "지금도 많은 이들이 등 뒤에서 비웃고 있는 것을 느끼고 있다. 최고 중진회의를 해도 참석률이 저조하다"는 푸념을 늘어놓은 적이 있다. "뒤에서 비웃고 있는" 많은 이들이 왜 비웃고 있는지, 정작 이 대표는 모르는 것 같다. 본인이 비주류, 비엘리트, 흙수저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비웃는 것 같은가? 틀렸다. 사람들은 이 대표가 17계단을 뛰어 오른 흙수저 악바리여서 비웃는 것이 아니다. 그가 '박근혜 정치'의 부수적 인물이라는 점 때문에 수군거리는 것이다. 집권 여당을 이끌기에 대통령의 그림자가 너무 짙기 때문에 수군거리는 것이다. '흙수저 출신'임을 이용해 '비웃는' 상황을 정당화하는 것은 심각한 오해다. 그리고 위험한 오해다.

그는 어찌됐든 집권 여당의 대표다. 사람들이 국회의원을 '국해의원'이라고 표현할 때 스스로 반성하고, 더 나은 비전을 보여야 할 자리에 선 사람이다. 그런데 그의 연설문은 '정치 혐오'로 가득 차 있다. '정치 혐오'를 통해 무슨 이득을 보려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유권자들이 정치 지도자에게 듣고 싶은 것은 '비전'이다. 스스로 정치 지도자임을 부인하는 지도자는, 유권자들에게 필요 없는 존재다. '국해의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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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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