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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요금 누진제, 잘못된 과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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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요금 누진제, 잘못된 과녁

[살림이야기] 가정용 누진제 폐지보다 먼저 산업용 개혁해야

올여름은 유독 더웠다. 가정에서는 전기요금 누진제에 따른 요금폭탄이 두려워 에어컨도 제대로 틀지 못한다고 불만이 높았고 정부에서는 성난 여론에 밀려 실효성이 의문스러운 일시적인 누진제 완화 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그런데 한국의 전기요금 체제의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불볕더위에 허덕인다

1994년 이후 가장 심각한 폭염과 무더위가 지속되었다. 기상청은 강하게 발달한 북태평양고기압에 의한 대기 흐름의 정체와 중국에서 유입되는 뜨거운 공기 등을 원인으로 꼽는다. 그러나 한국만 더운 게 아니다. 전 지구적으로 올해는 역사상 가장 더운 여름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이 폭염과 무더위의 근본 원인으로 전 지구적 위기인 기후변화를 꼽지 않을 수 없다.

폭염 때문에 특히 실외 노동자와 노약자 가운데 온열병 환자가 늘고 있는 상황에서, '엉뚱한' 쟁점이 불거졌다. "에어컨 좀 틀었다가 요금 폭탄을 맞았다"는 이들의 전기요금 누진제에 대한 원망으로부터 시작된 논란이다. 더운 여름에 에어컨도 못 튼다고 하니, 에어컨 없는 이들마저 함께 열이 뻗친다. 게다가 가정용 전기요금은 산업용보다 더 비싸다고 하고 심지어는 20대 대기업들은 연간 수조 원의 전기요금 할인을 받아 왔다고 하니, 속된 말로 '뚜껑이 열릴' 지경이다.

▲ 서울 시내 상업시설의 고지서로 전월 대비 전력 사용량이 약 34% 증가하며 77만 9520원의 납부요금이 청구됐다. ⓒ연합뉴스

더위도 더위지만, 이런 불공평한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뭐라도 해야 한다. 언론들은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를 완화하자는 주장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누진제가 위법이라며 진행 중인 집단소송이 새삼 주목받고, 국회의원들은 앞다투어 누진제를 완화하는 법안을 발의하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차분히 생각해 볼 일이다. 가정용 누진제가 정말 문제이고, 폐지하거나 완화하는 것만이 해결책일까?

여름철 전기요금 10만 원 이상은 전체 가구의 5.3%뿐


질문 하나. 전기를 더 사용하면 요금이 더 나오는 것은 문제인가? 그렇다고 이야기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다만 전기 사용량에 비례해서 일정하게 요금이 올라가지 않고, 누진제에 따라 특정 구간부터 전기요금 단가가 크게 뛰어오른다는 점을 문제 삼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에어컨 좀 틀다가" 십 수만 원 이상의 전기요금 폭탄을 맞게 되었다는 이들의 불만이다.

그러나 여름철 전기요금만 따져 보아 400킬로와트(kWh) 이상의 전기를 써서 10만 원 이상의 전기요금 폭탄을 맞았다고 주장할 가구의 수는 많지 않다. 넓게 잡아서 전체 가구의 5.3%이다. 참고로 전체 가구의 70%는 여름철 전기요금 4만5000원 미만이다(2014년 7~9월 평균 기준). 일부 중산층 이상 가구들이 에어컨 등의 이용으로 요금폭탄을 맞는다. 이번 여름 폭염으로 전체적으로 전기를 더 썼을 수 있지만, 대략적인 그림은 크게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요금폭탄을 맞는 가구가 소수이지만 상대적으로 고소득 계층에 사회 여론 주도층일 가능성이 높다. 누진제를 완화하자는 일부 계층에게만 유리한 주장만 언론에서 반복되고 국회에서 법률 개정안까지 나오는 반면에, 누진제를 완화할 경우에 대다수 가정에서 오히려 전기요금이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나 저소득층에 대한 냉방 에너지 지원이 전무하다는 지적은 주변부에 머무는 이유가 뭘까?

그런데 잠깐, 누진제를 완화하면 전기요금이 내려가는 게 아닌가? 절반만 맞는 말이다. 전기를 더 많이 내 온 일부 가구들은 요금이 인하되겠지만, 대부분의 가구는 인상될 가능성이 크다. 누진제 개편을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여러 분석 시나리오들이 보여 주는 바가 그렇다. 왜 그럴까? 현행 누진제는 저소비 가정에 고소비 가정이 전기요금을 지원해 주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굳이 말하자면 '전기요금 연대주의'라고나 할까. 따라서 고소득-고소비 가정의 전기요금을 낮추면 저소득-저소비 가정이 전기요금을 더 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누군가 대신 내줘야 하는데, 누가? 그동안 특혜를 받아온 기업은 어떨까?

ⓒ살림이야기

지금껏 가정에서 산업용 전기요금 일부를 대신 내준 셈

산업용 전력 사용량은 전체의 53%이며, 최근 들어 회복되었지만 수십 년간 원가 이하로 사용했다. 가정용을 비롯해 다른 사용자들이 기업들의 전기요금 일부를 대신 내주고 있었다. 예를 들어 2004년에 가정은 6000억 원 이상을 산업용 등의 사용자에게 보조해 주었다. 계약 종별 원가 공개를 하지 않는 탓에 상황 파악이 힘들어서 오래된 자료지만 주목해 본다. 국제적으로 보아도 한국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싸다. 한국을 100으로 놓을 때, 일본은 208, 영국은 186, 독일은 176이다. 이 탓에 최근 한국의 철강 제품이 미국에서 덤핑 판정을 받기도 했다.

기업의 전기요금을 현행 원가를 충분히 반영하여 정상화하고도, 발전소의 온실가스와 미세먼지 배출, 사용후폐기물 처리 비용 그리고 송전탑 갈등 비용 등을 점차 반영하여 조금씩 인상할 필요가 있다. 사실 한국의 전기요금제도는 너무나 오랫동안 불합리하게 방치되어 왔다. 물가 안정과 경제 발전이라는 명목으로 원가 이하로 공급됐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형평성을 무너뜨리는 교차 보조를 통해 기업들을 지원해 왔다. 이 덕에 전기 소비가 급증해 왔다. 시급히 바로잡아야 할 일이다.

이번 여름철 폭염 사태는 내년에도 반복될 것이다. 화석에너지 사용에 따른 기후변화 때문이다. 폭염 때문에 에어컨을 켜고 그래서 전기요금이 많이 나오니 누진제를 완화하자는 주장은 근시안적이면서도 사회적 형평성을 약화한다. 기후변화를 완화하면서도 에너지 형평성을 높일 수 있는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최우선 과제는 가정용 전기요금 누진제가 아니라, 산업용 전기요금을 개혁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정말 덥다. 특히 도시가 더 그렇다. 이유가 있다. 녹지가 부족해서다. 또 더울 때 일한다고 에어컨 틀고 공장 가동하면 전력 위기가 온다. 여름휴가 그리고 방학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기후변화 대응, 전기 쓰는 에어컨이 아니라 사회적 대안을 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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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우리나라 대표 생협 한살림과 함께 '생명 존중, 인간 중심'의 정신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한살림은 1986년 서울 제기동에 쌀가게 '한살림농산'을 열면서 싹을 틔워, 1988년 협동조합을 설립하였습니다. 1989년 '한살림모임'을 결성하고 <한살림선언>을 발표하면서 생명의 세계관을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살림은 계간지 <모심과 살림>과 월간지 <살림이야기>를 통해 생명과 인간의 소중함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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