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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라·지카·결핵…못 막는 진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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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콜레라·지카·결핵…못 막는 진짜 이유는?

[서리풀 논평] '나라 꼴'이 이런 이유

어느 언론이 표현한 대로 "공중 보건의 위기"라고 해도 반박할 말이 없다.

15년 만에 발생한 2명의 콜레라 환자의 콜레라균 유전형이 같은 것으로 확인됐다. 질병관리본부는 수산물을 먹은 두 환자의 콜레라균 유전형이 동일하므로 해수 오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역학 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 질본은 동일 오염원으로 2명의 환자가 발생했다고 보고 해수 오염에 가장 큰 가능성을 두고 역학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관련 기사 : 콜레라 환자 2명 '같은 오염원'…해수 오염에 '무게')

서울에서 C형간염 집단 감염 사태가 또 다시 발생했다. 지난해 서울 양천구 다나의원과 올해 초 강원도 원주시 한양정형외과의원에 이어 세 번째다...2006년 3월부터 올해 3월 진료 받은 환자 3만4327명의 진료 기록을 확인한 결과 5713명이 다른 병원에서 C형간염 검사를 받은 사실을 확인했다. 이 중 508명이 항체 양성을 보였다. (☞관련 기사 : 병원서 또 C형 간염 집단 감염…주사기 재사용 한듯)

어디 이 뿐인가.

지난 5월 광주시 A 어린이집에서 근무하던 보육 교사 B씨가 결핵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후 보건 당국이 원아 80명을 대상으로 1차로 흉부 X선 검사와 피부 반응 검사를 한 결과 6명의 원아가 잠복 결핵 판정을 받은 데 이어 지난달 26일 2차에서 14명의 원아가 추가로 잠복 결핵 판정을 받았다. (☞관련 기사 : 경기 광주 어린이집 원아 20명 잠복 결핵 감염)

베트남을 방문한 60대 한국인 남성이 국내 11번째 지카 바이러스 환자로 확진 판정을 받았다. 질병관리본부(KCDC)와 전라남도는 지난 15~20일 베트남 호치민을 방문한 L씨(64)에 대해 지카 바이러스 검사를 실시한 결과 혈액과 소변에서 양성으로 나와 확진 판정을 내렸다고 27일 밝혔다. (☞관련 기사 : 국내 11번째 지카 환자 발생…베트남 방문 60대 男)

콜레라가 발생하자 바로 '후진국형' 질병이란 말이 붙었다. 이런 '명명'은 마땅치 않다.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 해도 '후진(後進)'국은 잘못된 용어다. 정확하지도 않다. 도대체 무엇이 후진적이란 말인가? 어떤 나라나 사람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과 차별부터 드러낼까 걱정스럽다.

어느 나라에서든 콜레라가 생길 수 있다. C형 간염, 결핵, 지카 바이러스 감염도 마찬가지다. 소득이 높다고 해서, 또는 공중 보건 체계가 잘 갖추어져 있다고 해서, 아예 모든 감염병이 사라질 수는 없다. 공항과 항구에서 외래 전염병을 모두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후진국임을 나타내는 징후는 오히려 질병 발생 이후다. 공중 보건 문제가 생겼을 때, 당장 어떻게 대응하고 그 후에 무엇을 고쳐 새로 준비하는가를 보면 선진과 후진의 실마리가 나타난다. 한마디로 말해,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가가 핵심이다.

현재의 시스템은 어떤 모양인가. 손닿는 대로 몇 가지를 추려도 이렇다.

"정말 기가 막힙니다. 이게 나랍니까. 가습기(살균제 사태)하고 다른 게 뭡니까!"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26일 교육부, 보건복지부 관계자들을 불러 이렇게 질책했다. (…) 이 대표를 비롯한 참석 의원들은 일제히 이 같은 사건과 관련한 '일벌백계'를 주문했다. 어떤 일이 터졌을 때 해당 사안에 대해서만 조사를 하고 일시적 대책을 내는 데 급급해 유사한 일이 반복, 정부에 대한 신뢰까지 떨어뜨린다는 지적이다. (☞관련 기사 : 이정현 "이게 나라입니까" 질책…콜레라·식중독 긴급 당정)

질본은 추가 환자 발생에 대비해 '콜레라 대책반'을 편성하는 한편 거제시와 함께 거제시보건소에 현장 대응반을 설치하고 시도‧시군구 담당자와 24시간 연락 체계를 유지하고 있는 상태다. (☞관련 기사 : 콜레라 '비상'…질본, 집단 감염 대비해 '대응반' 가동)

C형 간염 집단 감염 사태가 연이어 발생하자 보건 당국이 국고나 지방비를 활용해 감염 피해자의 치료비를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보건복지부는 C형 간염 무더기 감염을 일으킨 가해 의료인이 사망 등으로 피해자에게 배상할 수 없을 경우에 한 해 피해 환자들을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하기로 하고 지난 26일 열린 긴급 당정 협의회에서 논의했다고 27일 밝혔다. (☞관련 기사 : C형 간염 집단 감염 치료비 국가 지원 추진)

질타와 일벌백계, 대책반, 현장 점검, 24시간 비상 대기, "만전을 기하다" 예상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은, 참으로 익숙한 전통적 대응 방식이다. 언론 보도의 뒤안길을 생각하라. 대부분은 보이기 위한 것(이른바 '전시 행정')일 뿐, 무슨 효과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차라리 이런 것을 '후진국형'이라 불러야 한다.

작년(2015년) 이후 공중 보건은 끊임없이 우리 사회의 실력을 시험했다. 메르스만도 아니다. 지카 바이러스, 어느 대학의 실험실 폐렴, 가습기 살균제 사건, C형 간염, 결핵, 폭염으로 인한 온열 질환 등이 이어졌다(모두 공중 보건 또는 그와 관련된 문제다).

더하고 덜한 것은 있지만, 어느 사회에서든 생길 수 있고 나타날 수 있는 사건이자 사고, 질병이다. 종류와 특성, 강도만 다르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것이 더 중요하다. 문제는 여기에 대한 반응 시스템. 하나가 아니라 종합으로,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그러니, 다르면서도 같고, 같으면서도 다르다.

우리는 작년 이후 공중 보건 시스템이 나아진 바가 크지 않다고 생각한다. 진전이 없다고 말하는 하나의 상징. 공중 보건 위기의 컨트롤 타워조차 정비되지 않았다. 우연처럼 보이지만,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부 대표로 질병관리본부의 감염병관리센터장이 콜레라 발생과 대책을 브리핑했는데, 그는 행정고시 출신의 행정 공무원이다. 공무원 경험으로도 복지 자원, 장애인 정책, 한의약 정책을 다룬 경력이 대부분인 데다, 현직에 온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런 사람이 대국민 브리핑에 당정 협의에 참석하고 정책을 설명해야 한다. 이것이 한국 공중 보건 체계의 실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범위를 넓히면 더하다. 메르스 이후 국가 방역 체계를 새로 만든다고 했지만, 정말 '국가 체계인지, 아니면 메르스 대응 체계 또는 신종 감염병 체계인지 의심스럽다. 다음과 같은 언론 보도를 보면, 그마저 용두사미로 끝날 공산도 크다.

"보건복지부는 응급실 감염 예방 관리 강화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12월 감염 의심 환자 선별 절차를 마련했다. 응급의료센터에 음압 격리 195병상, 일반 339병상 확보를 추진하고 있다. 현재 시설 공사가 진행 중이다. 올해 안에 대부분 마무리될 것으로 전망된다.

감염병 전문 병원 치료 체계도 구축된다. 중앙 감염 병병원은 국립중앙의료원에 설치하고 3~5개의 권역 감염병 병원은 국공립병원을 우선해 지정할 예정이다. 역학조사관 확충도 이뤄지고 있다. 중앙 역학조사관 30명 중 현재 25명이 채용됐다. 나머지 5명도 5월 중 마무리될 예정이다." (☞관련 기사 : [메르스 1년] "우리는 달라졌나요?")

이 정도라도 제대로 되면 이번에 문제가 된 콜레라와 C형 간염을 막는 데에 도움이 될까? 아니다, 과녁은 곳곳을 옮겨 다닌다. 그뿐만 아니라 새로 떠오른다('신종' 감염병!). 그 어떤 국가 대책도 메르스용, 지카 바이러스용, 또는 결핵용에 그쳐서는 콜레라에는 무용지물이다. 폭염 피해,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다시, 국가 시스템을 강조한다. 심장으로부터 모세 혈관에 이르기까지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하면 비슷한 일이 다시 생길 것이 틀림없다. 시스템이 없으면, 또는 그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으면, 우리는 또 다시 질타와 일벌백계, 비상 대비 태세, 24시간 근무, 대책반, 연막 소독을 다시 봐야 한다. 그리고 그래 봐야 소용이 없다.

유감스럽게도, 작년(2015년) 11월 '서리풀 논평'에서 주장한 바를 그대로 되풀이해야 하겠다. (☞관련 기사 : 동물 실험실 폐렴과 메르스의 교훈)

우리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은 사실 이번 일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종합적이다. 한두 가지 원인에 대한 사안별 대처가 아니라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시스템에 대한 생각 자체가 없고 단편적인 미봉책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

관료주의적 미봉이 아니라 시스템을 만드는 것은 앞으로도 잘 될 것 같지 않다. 여론 때문에 예산 몇 푼이 늘어나거나 역학조사관 항목이 되살아난다고 달라질 일이 아니다. 말장난 같지만, "시스템을 만드는 시스템"이 멈춘 상태에서 무슨 시스템이 만들어지겠는가. 망가진 시스템이란 한 마디로 국가 수준의 우선순위와 지향을 제시하는 정치적 리더십의 시스템을 말한다.

감염병이든 공중 보건 위기든, 또는 방역 체계든, 국가 수준의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리더십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 일을 맡은 담당 분야 관료나 부처가 가진 권한 밖의 일을 누가 할 수 있을까. 예산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정책과의 조화나 협력, 다른 부처와의 조정은 장관이나 차관, 질병관리본부장이 할 수 없는 일이다.

(…)

지금 정부가 내놓은 건강과 보건에 대한 메시지는 명확하고 메르스 이후에 더 분명해졌다. 공중 보건 위기나 신종 감염병은 말썽을 부리지 않는 수준, 초점은 "돈이 되는 의료"에 모인다. 장관은 원격 의료 전문가에 차관은 경제 부처 출신이다. 그것으로 충분치 않았는지 보건복지부의 보건산업정책국장 자리에 산업통산자원부 출신을 앉혔다(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럴 힘이 없다!). 이 마당에 누가 무슨 영화를 보자고 '국가 방역 체계'에 돈과 에너지를 쓰자고 목소리를 높일 것인가.

그 사이 상황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아니 더 나빠졌는지도 모른다. 답답하고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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