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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사태 제대로 보기

[민교협의 정치시평] 불통 문화 속에 대학의 미래는 없다

이화여자대학교의 투쟁이 장기화되고 있다. 자칫 총장은 말할 것도 없고, 학생을 포함한 대학 구성원 모두 상처만 안게 될까 우려스럽기까지 하다. 문제의 발단은 고졸 직업여성의 학업을 위한 단과대학 신설 건이었으나 증폭이 된 근본 원인은 오늘날 한국대학을 포함한 한국사회의 곳곳에 만연되어 있는 소통의 부재 문제에 있다.

잠시 미래라이프대학을 둘러싼 문제부터 보자. 교육부가 시행하는 평생교육 단과대학 사업(평단사업)은 대학 부설 평생 교육원이 부실하게 이뤄졌던 평생교육의 질을 높여 선 취업 후 진학을 장려하겠다는 취지로 고졸 취업자와 30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평단사업에 선정된 대학은 연간 30억 원을 교육부로부터 교부받고 교육과정 개발이나 교수 충원을 할 수 있다. 교육부의 차원에서 평단사업과 유사한 사업으로는 평생학습사업, 재직자 특별전형사업 등 중복되는 유사한 사업이 적지 않다. 또한 일각에서는 평단사업이 가부장적 성별분업을 고착화시킬 가능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대학 교육은 성별 분업을 허물고 개인의 적성과 능력, 다양한 사회적 소통능력과 협동심 함양이나 미래세대들에게 미래 사회에 요구되는 다양한 능력을 계발하고 준비하도록 진작하는 하는 데 중요한 의의가 있다. 그러나 미래라이프대학의 사업 내용을 보면 오히려 교육적 방향을 역행하고 있는 내용이 적지 않다.

교육부의 대학을 둘러싼 각종 교육 및 연구사업에 대한 검토는 반드시 정확하고 심각하게 짚어봐야 한다. 교육 당국은 입만 열면 대학과의 소통을 얘기한다. 지난 8월 18일의 전국사립대학교수회의 "제20대 국회에 제안하는 희망의 대학정책" 대회에서 교육부 고위공무원의 대학 교수들과의 소통의 강조는 이화여자대학생들의 용기 있는 행위와 여론의 대학정책에 대한 관심 덕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세간에서는 교육부가 해체되어야 교육이 산다는 유머가 돌 만큼 교육 당국이나 정부는 세계적 추세의 교육적 당면 과제나 교육 현실, 정책적 방향에 대해 모르쇠를 일관하고 있다. 심지어 대학구조개혁이라는 명분으로 대학과 교육을 흔들어 학문의 자유, 창의성을 죽이고 있다는 말마저 들린다. 정부와 국민, 교육 당국과 교육 현장과의 불통이 최악이다.
▲ 이화여대 학생들이 총장 사퇴를 내걸고 저녁 시위에 참석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강의실에서 사라진 소통

이화여자대학교 사건을 계기로 한국 대학과 우리 사회의 불통의 문제, 즉 소통 부재의 문제부터 살펴볼 작정이다. 우선 대학 구성원들의 불통문제를 살펴보자. 대학의 주인은 학생·교수·직원이라고 총장들은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대학생은 주인은커녕, 손님 대접도 못 받는 나그네 실정이다. 그러한 양상은 강의시간만 봐도 여실히 나타난다.

현재 한국처럼 사립대학의 학생 수가 전체 대학생의 75%(대학교 중 사립대학의 수는 82% 남짓)를 차지하는 구조에서는 학생이 없으면 대학은 상상할 수도 없다.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피눈물 나는 노력의 결과, 교수와 교직원들은 밥을 먹고 품위를 유지하며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1년 대학생들의 대대적인 반값등록금 투쟁으로 인해 대학교육에 대한 각종 지원사업이 늘어났다고 하지만, 아직도 대학교육에 대한 정부의 대학 지원예산은 OECD 평균인 GDP 대비 1.1%의 절반 정도라고 할까.

그렇다면 대학 교육의 질은 몇 년 사이에 얼마나 높아졌을까? 수많은 대학교육의 양과 질을 나타내는 지표들 중 하나인 교수 1인당 학생 수는 평균 26.4명으로 OECD 국가의 교수 1인당 평균 학생 수 15명보다 11.4명이 많다. 최근 고등학교 교사 1인당 평균 학생수가 15.1명임을 감안하면 대학의 교육 환경은 후진국형에 가깝다.

교육부는 저출산·소자녀의 영향으로 대학 정원 감축의 필요성을 대대적으로 역설하며 현재 대학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명분을 삼고 있다. 그런데 정부의 대학 구조조정의 칼바람 때문에 전임교원은 늘어나기는커녕 줄어들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할까. 늘어나는 교수는 다양한 종류의 비정년 트랙의 교수들이 대다수이다.

이러한 교육 현실에서 정부의 지원이 집중되어 있는 학교와 비켜서 있는 학교 간에는 교육적 환경이 양극화되어 있다. 서울 시내의 A대학은 교수 1인당 학생수가 32명이 넘는다. 그러한 강의실에서 학생들은 교수와 어떤 의사소통이 가능하겠는가? 학문적 토론은 말할 것도 없고, 진로 및 적성, 대학과 인생의 낭만과 고민 등을 얘기할 수 있겠는가?

졸업생들에게 묻는다. 졸업할 때, 네 이름을 기억해 주는 교수가 몇 명인지, 네 적성이나 진로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는 교수가 몇 명인지? 이 질문에 흔쾌히 대답하는 학생들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취업이나 대학원 진학 과정에서 추천서가 필요할 때 난감하다고 하는 학생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교수의 개개인적 게으름이나 프로젝트나 각종 회의 준비, 잡무 등에 따른 업무의 과중도 있고, 학교 제도의 불비도 있다.

근본적인 문제는 교육 당국의 백년대계는커녕 한 발자국 앞도 못 내다보는 교육정책과 그에 기초한 재정 사업에 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관계자는 "전임교원 30%를 줄이지 않을 때 소요되는 예산은 1조2844억 원으로 2016년 한해 정부가 프라임사업, CK사업 등 대학재정지원사업으로 사용한 1조5000억 원에 비해 적은 금액"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단순한 교수의 수와 지위만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의 주인이자 한국의 미래 인재인 대학생들의 교육의 질의 문제이자, 교육적 소통의 문제이다.

디지털 시대, 새로운 정보는 말할 것도 없고, 윤리적 문제, 새로운 인식방법론 문제를 각 방면에서 연구하고 교육적으로 소통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교수들은 연구하느라고 보내는 시간보다는 정부 사업 지원보고서를 쓰고 관리하느라고 보내는 시간이 더 많은 실정이다. 이러한 형국에 열린 강의실이 되기는커녕, 학생과 교수들이 다양한 채널로 소통하며 합리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아이디어를 교류하고 실현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대학을 현재 한국 사회에서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어떤 대학에서는 교수가 학생을 면담하는 것을 의무화할 만큼 자연스러운 교류가 일어나지 못한지 오래다.

대학의 불통은 취업과 정부 발주 프로젝트 중심으로 서열화 된 대학과 과밀한 강의실, 그에 따른 주입식 강의와 상대평가에 기반한 학점제도와 요식행위와 같은 졸업장으로 표현되고 있다.

대학 총장의 제왕적 리더십

다음으로 이번 이화여자대학교 사태의 본질은 총장의 불통하는 리더십이다. 최근 김혜숙 이화여대 교수협의회 공동회장(비상대책위원회 위원)이 지적했듯이 그간 계속되었던 총장의 일방적인 소통, 즉 불통의 모습으로 인해 최근 총장의 대화 시도는 이미 대다수의 학생들이나 교수들의 신뢰를 잃어버린 듯하다.

솔직히 이러한 한국 대학의 불통의 모습이 어디 이화여자대학교만의 문제이겠는가? 상지대는 말할 것도 없고, 최근의 한신대의 총장과 학생, 교수들의 대치 문제 등을 보면, 해방 이후 70여 년간 쌓여온 한국 대학의 고질 병폐인 불통의 문제를 발견하게 된다. 과거 대학의 설립자나 이사장, 총장은 대학에서 제왕적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사립대학은 법제도적으로 엄밀히 말하면, 공교육기관이자 재단이기 때문에, 대학에는 개인소유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은 오랫동안 사립대학의 설립자, 또는 이사장을 주인으로 불렀다. 그 주인은 학생들의 등록금, 교비 등을 개인 쌈짓돈으로 여기며 독단과 전횡을 행하는 일은 비일비재했고, 자질이 부족한 자신의 자녀들을 교수나 행정 요직에 앉히는 것도 다반사였다. 교수나 직원들을 개인비서처럼 부리는 일도 대동소이하게 수많은 대학들에서 발생했다. 과거 J대학에서는 아침마다 일정한 시간이면 교수들이나 직원들이 운동장으로 끌려 나가 구호에 맞춰 달려야 했고, B대학에서는 교수들이 대학경비직원에게 출석체크를 받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물론 이는 설립자 또는 이사장의 명령에 의해서다.

1987년 정치적 민주화 이래로 수많은 대학들이 학내 민주화 투쟁으로 몸살을 앓았다. 그런 과정에서 떠난 학생들이나 교수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1998년 전후로 차츰 제왕적 대통령 이미지가 약해지듯이, 대학의 설립자 이미지 역시 그랬다. 2000년대 중반까지 잠시 대학의 민주화가 이루어지는 듯했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한국 사회에 다시 정의는 약화되고, 이익 연대가 강화되어 가고 있다. 급기야 사립대학들 중에서 분쟁을 겪어서 퇴출되었던 독단적 설립자들이 2005년 개정 사립학교법에 의해 개방형 이사, 이사장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런 과정에서 수많은 대학들에서 설립자에게 미운 털이 박힌 교수들이 해직되거나 박해를 받는 일이 대학에 재현되고 있다. 또한 중앙대에서 보듯이 교육적 이념보다는 기업적 이윤을 앞세운 재벌이 교육을 위기로 몰아넣기도 했다. 설령 제2, 3의 사학분쟁까지 치닫지는 않더라도 총장이나 이사장이 전횡하는 구조는 2005년 개정 사립학교법이 시행되면서 다시금 확대일로로 가고 있다.

▲ 이화여대 학생들이 총장 사퇴를 내걸고 저녁 시위에 참석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총장이기 전에 교육자가 되라

사립대학교들의 수십년 된 제왕적 권력 구조에 더하여 최근의 급변하는 대학 교육 환경도 제왕적 권력을 강화시키고 있다. 최근의 대학구조개혁이니, 대학재정제한조치니 하는 정부 주도의 대학구조조정 정책과 정부의 교육교부금에 대학들은 목을 매고 있다. 재정 지원 사업을 획득하기 위해 그것을 추진할 수 있는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이사장이나 총장이 연일 부각되면서, 수십 년간 대학 민주화 과정에서 어렵게 획득했던 일부 대학들의 민주적 총장제도가 교육부에 의해 거부당하고 있다. 그 결과 2015년 부산대 고현철 교수는 대학 민주화와 총장 직선제의 폐지에 반발하여 투신 사망하는 가슴 아픈 일까지 있었다.

이화여대의 최경희 총장은 평단사업이라는 30억 원 프로젝트와 학생·교수와의 민주적 소통을 바꾸려 했다. 최 총장은 평가와 실적, 결과를 위해서라면 어떤 절차도 무시해도 좋음을 몸소 실천했다. 이러한 한국의 대학 현실에 교육과 윤리는 깡그리 무너져가고 있는 게 아닌가. 이화여대 총장은 물론 우수한 여자대학의 최고 리더이다. 뿐만 아니라 이화여대가 한국 여성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과 헌신을 해왔다는 점에서 이화여대 총장은 한 대학의 총장을 넘어서서 한국 여성계의 리더이자, 사회적 리더이다. 최 총장은 안타깝게도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게다가 최 총장은 평단사업을 진행하는 과정뿐만 아니라, 학생들이나 교수들과의 소통의 기본을 잊어버렸다. 평단사업의 부당성을 항의하는 학생들에게 이해시키고 설득하려 하기 보다는 외부 경찰을 교내로 먼저 불려 들였다. 과장해서 역사적 비유를 하면, 제 백성의 항의를 진압하기 위해 외국군을 국내로 불러 드린 것이라고나 할까. 그것도 한 번도 아니고, 이미 지난해 10월에도 박근혜 대통령의 이대 방문을 반대하는 200여 명의 학생들의 시위에 수백명의 사복경찰을 불러들인 바 있다. 대화보다는 폭력을 앞세웠다. 한국의 노동자들의 주장을 폭력으로 진압하려는 CEO들의 모습과도 흡사하다. 이미 신뢰에 기초한 대화를 하기에는 강을 건넜다. 대화의 진정성을 말하려면, 우선 책임 있는 사과 자세를 보여야 한다.

교육은 공공재이다. 교육부는 좋은 교육제도를 통하여 공적으로 미래인재가 육성되도록 뒷받침을 하는 지원부서이지, 교육을 흔들어 대는 기관이 아니다. 미래인재가 잘 키워져야 그들이 사회에서 제 역할을 다하며 행복하게 살 수 있고, 또한 그들이 공정하게 납부하는 세금에 의해 국가 재원도 원만하게 조성되고, 국가 경영도 건전해질 수 있다. 대학교육은 학생들의 능력과 희망을 최대한 살리면서 사회경제적 수요와 미래 대안적 인재를 양성하는 역할을 해야하지만, 특정 기업의 맞춤형 인재만을 키워내서는 안된다. 미래인재들은 단순한 기계 부품이거나 정보나 기술로 환원되는 존재가 아니라,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진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귀중한 인재들에게 사회 협력적 가치를 가르쳐 주어야 하고, 협력과 공생을 통한 헌신의 소중함을 깨닫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수와 선배는 학생과 제자, 후배들에게 사회적 소통의 의미와 방식을 실천하도록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이들 또한 교수와 선배들을 욕하면서 배우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소통은 민주주의의 기초이자, 우리가 살아나가는 방식 그 자체이다. 최 총장이 교육자로서 학생들이자 제자들과의 진정한 대화를 원하고 사태 수습의 책임을 지려한다면, 권력을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 그는 총장이기 전에 교육자이다. 그것이 진정한 소통의 리더십이자, 교육자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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