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과 포르투갈 제국주의 세력이 기독교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사상과 사회 조직을 강요하고, 경제적 이익을 좇아 원주민들을 노예로 삼거나 살해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공동체적 협동의 전통은 거의 파괴되었다. 현재 순수 원주민 공동체는 아마존 열대우림이나 접근이 쉽지 않은 지역으로 제한되었고, 주로 안데스 지역을 중심으로 협동의 전통을 보존하고 있는 원주민들을 찾아볼 수 있는 정도로 그 명맥을 겨우 유지하고 있다.
1800년대 말부터 1900년대 초 유럽의 이민자들이 협동조합 사상을 라틴아메리카에 들여오면서 '로치데일 사상'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경제 단체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단체들을 통해서 가난한 이민자들 중 성공한 기업가가 등장했고, 이들은 주로 농업 부문의 경제를 발전시켰다.
오늘날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에콰도르, 브라질 같은 나라에서는 공식 경제에 접근하지 못하고 교육이나 의료와 같은 사회복지 혜택도 받지 못했던 원주민이나 흑인 노예들의 후손, 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정책이 펼쳐지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문제를 사회적 과제로 인식하고 있는 정부를 투표의 형태로 선택했고, 이러한 정부의 지원 하에 사회·정치·경제 운동을 새롭게 조직하여 보다 높은 수입과 안정된 삶을 보장받고 있다. 이 같은 라틴아메리카의 새로운 운동 조직에 있어 소규모 협동조합이 큰 역할을 했는데, 협동조합을 통해서 그동안 소외당한 계층이 사회·정치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 글에서는 라틴아메리카 협동조합운동의 발전 과정을 네 단계로 나누어 살펴보고, 최근의 상황과 관련해서 특히 좌파 정부 집권 이후 브라질과 베네수엘라의 협동조합운동이 어떻게 변화하고 성장해왔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라틴아메리카 협동조합의 원형
남미 원주민들은 환경의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협동 조직을 만들었다. 중미와 안데스의 아스텍인(Aztec)과 잉카인(Inca)들은 이미 오래전 시간 개념과 우주에 대한 지식이 있었고, 큰 돌로 피라미드와 사원을 짓고 도시에 공공수로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 발전된 건축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그만큼 복잡한 사회를 이루고 있었다.
아스텍 공동체는 자유시민이 공공 관개시설을 만들고, 농사를 지을 때 병해충 방제를 하는 경우에도 공동으로 작업했으며, 수확하지 못하는 이웃을 위해서는 씨앗을 나눠 줄 만큼 서로 돕는 사회였다. 페루의 잉카 공동체는 노동하는 사람들의 공동 노력으로 농사를 지었고 수확물에 대해서도 그 노력과 필요에 따라 분배를 했는데, 이러한 전통은 약 1530년까지 이어졌다. 공동의 노동을 통해서 경제활동을 개선하거나 전쟁 중 공동의 노력으로 안전 보장에 기울일 만큼 공동체성을 체현하고 있었다.
아마존 우림과 동부 해안의 원주민들은 자연 채취나 수렵과 같은 원시적 활동으로 단순한 경제활동을 했지만, 집단 사냥이나 집단 수렵 그리고 농업 등에 있어서는 협동 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이들에게 집은 집단의 소유였고, 아이들의 교육도 부모와 친척뿐 아니라 모든 공동체 성원의 책임이었다.
남미에서 가장 중요한 협동조합 활동은 1600년대와 1700년대 스페인 식민지와 포르투갈 식민지 사이의 국경, 즉 지금의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경계지역에 사는 과라니 원주민과 예수회에 의해 시작되었다. 1627년 과라니 원주민들의 30개 공동체가 이 실험에 참여했으나, 1759년 스페인과 포르투갈 군대는 이들의 실험을 무참히 파괴했다. 이 실험은 근대의 로치데일 원칙과 근접한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공동체 구성원 전체에게 개방되어 있다는 것이 이들의 제1원칙이었으며, 공동체 구성원들은 두 가지 다른 조직 형태, 즉 공동 생산을 하는 공동체 토지와 개별 노동을 하는 가족 소유의 토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다.
모든 생산물은 농사일 참여도와 개인의 필요에 따라 분배되었고, 모든 회원은 민주적인 방식으로 권리를 행사하고 의무를 가지고 있었다. 모든 공동체가 연결되어 농산물과 수공업품, 서비스의 상호 교류와 교역이 이루어졌다. 또한 7세에서 12세의 모든 아이들은 반드시 학교에 나가 과라니어 수업을 듣도록 했다. 비록 실패로 끝났으나 이들의 실험은 로치데일 협동조합이 도입되기 전에도 자발적이고 열린 회원 구조, 회원들에 의한 민주적 운영, 회원들에 대한 경제 교육 참여, 협동조합 간의 협력, 자치와 독립성을 바탕으로 한 소통 구조 등을 갖추고 있어 남미의 첫 번째 협동조합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민자와 첫 번째 협동조합
농업 생산을 확대하려는 라틴아메리카 국가의 요구와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고 싶어하는 유럽 사람들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면서, 라틴아메리카 각국 정부는 유럽 이민자들이 비어 있는 땅을 취득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800년대 말부터 1900년대 초반까지 많은 이민자들이 새로운 삶을 찾아서 라틴아메리카 각국에 정착했는데, 이탈리아와 독일 사람들도 많았지만 폴란드, 러시아, 우크라이나, 일본인도 상당했다.
로치데일 원칙을 따르는 최초의 브라질 협동조합이 오루프레투(Ouro Preto)에서 설립되어, 주택 신용 서비스를 제공했다. 당시에는 협동조합에 대한 법률이 부족해서 협동조합들은 일반회사로 정부에 등록해야 했다.
1840년부터 1895년에는 푸리에2) 협동조합이 브라질에서 등장하기 시작했다. 또한 브라질 남부 지역에서 농사를 짓기 위해 이민 온 독일인들이 새로운 나라에 정착하면서, 부족한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1904년 라이파이센 신용협동조합을 만들었다. 이것이 브라질 최초의 신용협동조합이었다.
커피 대농장과 상파울루의 신생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기 위해 브라질로 이민 온 이탈리아인들도 1906년 루짜띠 신용협동조합을 설립해 협동조합들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아르헨티나에서도 이민자들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여 1887년 최초의 인민은행이 문을 열었고, 1911년에는 최초의 농업협동조합을 조직했다. 1900년대 초반 칠레를 비롯한 다른 중남미 국가들에서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는데, 대부분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려는 이민자들의 요구에 따라 로치데일 원칙을 바탕으로 협동조합을 설립했다.
여러 나라에서 협동조합에 대한 경험이 축적되고 성공 사례들이 늘어나자, 그 사회적 중요성을 인식한 각국 정부들은 세금 감면과 같은 혜택을 제공하는 협동조합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최초의 협동조합법이 칠레(1925년), 콜롬비아(1931년), 브라질(1932년)에서 제정되었다. 이때 브라질의 협동조합법은 로치데일 원칙을 따르는 특별한 법적 논리와 경제적 목적을 가진, 자본 기업이 아닌 개인 기업으로서 협동조합의 개념을 규정했다.
1960년 이후 협동조합의 발전
제1, 2차 세계대전 사이,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소득 수준은 전반적으로 상승했다. 몇몇 나라들, 특히 멕시코와 아르헨티나, 칠레, 브라질에서는 그동안 경제에서 가장 중요했던 농업을 대체하는 산업들이 발전했다.
1960년대 소득 분배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새로운 사회에 대한 열망이 높아지면서 사회운동이 강화되었다. 또한 사회주의에 대한 지평이 확장되면서 사회주의 원칙을 가진 대중운동과 칠레, 브라질과 같은 좌파 정부들이 탄생했다. 동시에 냉전과 공산주의의 위협을 빌미로 브라질, 칠레, 아르헨티나에서는 미국의 지원을 받는 군대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다. 이렇게 들어선 독재 정부에게 협동조합은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 사상을 지피는 역할을 할 수 있는 위협적 요소였다. 독재 정부들은 협동조합 조직들을 통제했고, 협동조합을 운영하려면 정부의 허가를 받도록 했다. 그 결과 브라질의 루짜띠 신용협동조합과 교육협동조합들 등 많은 협동조합들이 문을 닫았고, 살아남은 조합들은 정부의 통제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협동조합이 빈곤 지역을 개발하고 수입 분배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현 가능한 방법을 보여주자, 독재 정부들은 미국국제개발처(USAID)의 지원을 받아 협동조합을 통해 농업 지역이나 빈곤 지역을 개발하는 특별 정책을 시행했다. 그 결과 칠레는 정부의 지원으로 1900년 초 246개였던 협동조합이 1960년과 1968년 사이에 1300개, 1972년에는 3452개까지 증가했다. 그러나 1983년 시카고 경제학파의 '자유시장' 정책에 따라 경제 정책이 시장경제와 경쟁 개발에 초점을 두면서 2261개로 약간 줄어들었다.
1970년대 초반에는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브라질의 협동조합 수가 줄었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그 수가 증가했다. 그러나 협동조합 수뿐만 아니라 그 규모와 조합원 수, 경제 규모도 확대되면서 점차 시장 중심적으로 변질되었다.
1971년 브라질의 새 법률은 협동조합을 사회조직으로서 합법화하고 이윤이 아닌 민주적 거버넌스를 갖도록 하는 데 집중했다. 그러나 정부의 관계 부처를 통해서만 운영 허가를 받도록 했기 때문에, 정부 관리가 협동조합의 총회에 참석하여 협동조합의 활동과 정치 성향을 확인하도록 했다.
같은 시기, 정부의 지원으로 커피와 유제품 시장에서 중요한 농업협동조합이 등장했다. 중앙은행의 통제를 받고 정부 은행에 자금을 의존하는 신용협동조합은 조합원들만 이용할 수 있었다. 교육협동조합은 정부의 교육 정책에 집중할 때에만 허가를 받았다.
이때의 협동조합은 사회 전반을 발전시키는 사회주의적 방법으로 바라보았던 이전과 달리, 개발 정책의 영향으로 빈민 지역을 개발하는 대안적 방법으로서 협동조합을 활용하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따라서 시장 중심의 경제적 효율성에 더욱 주목하게 되었다. 또한 이 시기는 라틴아메리카 협동조합의 목적을 평등 세상을 향한 사회주의적 이상향의 모델에서 미국 국제개발처의 지원을 받은 독재정권이 발전시킨 모델로 전환시킨 시기로, 이후의 협동조합운동에까지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최근의 협동조합 운동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많은 나라들에서 민주적으로 선출된 좌파 정부들이 집권하면서 라틴아메리카 협동조합운동은 또 한 번의 큰 변화와 성장을 경험하게 된다. 특히 브라질,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에콰도르의 사례가 중요한데, 이중 볼리바리안 혁명의 사령관이었던 우고 차베스 대통령의 베네수엘라와 노동자당 정부의 루이스 이냐시오 룰라 다 실바 대통령의 브라질 사례를 특별히 주목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두 정부 모두 좌파 정부로서, 나라의 발전과 경제 상황 개선 그리고 소비 시장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방법으로 협동조합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한편, 아르헨티나는 어려운 경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아래로부터 협동조합이 빠르게 조직되어 재정적 어려움에 부닥쳐 있는 약 200여 개 공장을 노동자 자주관리 기업으로 전환하면서 노동자협동조합의 사례를 만들었다. 그 결과 정부의 지원이나 정부 부처의 승인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1만 명 이상의 조합원을 거느리게 되었다.
베네수엘라의 사례
베네수엘라 최초의 협동조합법은 1910년에 제정되었다. 그러나 미국국제개발처의 지원과 정부의 전폭적 혜택에 힘입어 협동조합운동이 다시 부흥한 1966년에 협동조합일반법이 통과되면서, 협동조합운동을 규제하고 통제하기 위한 협동조합감독위원회가 설치되었다.
1999년 대통령으로 선출된 우고 차베스는 21세기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위한 볼리바리안 혁명에 착수했다. 볼리바리안 혁명을 서막으로 하여 신헌법을 제정했는데, 신헌법에는 협동조합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국민들이 스스로 협동조합을 조직할 권리를 보장하며 이를 장려할 책임이 정부에게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그리고 2001년에는 협동조합 결성을 위한 새로운 특별법이 통과되었다.
베네수엘라의 국가경제개발계획을 보면 협동조합은 수입 분배를 개선하고 경제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기제로서, 협동조합과의 서비스 계약이나 협동조합의 물건 구입을 우선으로 권장하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베네수엘라는 2009년 기준으로 8만 3769개의 협동조합이 활동 중이며, 94만 6000명의 조합원을 보유하고 있다. 하나의 협동조합에 평균 11.29명의 조합원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베네수엘라 정부는 교육 미션을 통해 19만 5000명의 학생을 기술이나 관리에 관해 교육했고, 이들이 다시 7592개의 협동조합을 조직했다. '여성은행'이나 '인민은행'은 새롭게 설립되는 사회적 협동조합에 대한 재정적 지원뿐 아니라 기술적 지원과 물리적 공간, 신용 대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지원을 제공했다. 그 결과 2005년 기준으로 960개의 협동조합이 농업·산업·관광 분야에서 활동했다. 또한 정부의 대중경제부가 협동조합과 중소기업 간 통합의 매개자로서 공급 체인을 만들어 전통적인 시장과 구별되는 별도의 경제 구조를 만들어나갔다.
브라질의 사례
브라질은 협동조합운동의 뿌리가 대단히 깊다. 브라질의 협동조합운동 역사에는 2개의 선도적인 그룹이 있는데, 하나는 경제적 개선에 초점을 둔 오래된 '브라질협동조합기구'(OCB, Brazilian Cooperative Organization)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적 변화에 더 주목하는 '연대의 경제'의 일환으로 협동조합운동을 벌이는 사회적 협동조합 그룹으로, 노동부 소속의 특별사무관이 이 '연대의 경제' 업무를 진행한다.
'연대의 경제' 부문의 사람 중에는 브라질협동조합기구가 독재시대 때 만들어진 낡은 모델의 협동조합이기 때문에 협동조합의 대표체로 인정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 '연대의 경제'는 강력한 사회변혁과 정치적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개념으로, 국제협동조합연맹이 생각하는 정치적 중립 원칙을 때론 어기기도 한다.
브라질협동조합기구는 초기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폴란드 이민자들이 만든 오래된 협동조합들이 소속되어 있다. 100년의 역사를 가진 독일 이민자들의 신용협동조합, 네덜란드 이민자들이 설립한 전문적인 농업협동조합이 여기에 속한다. 독특하게 대표체를 가진 시스템을 요구하는 브라질의 협동조합법 때문에 브라질협동조합기구는 한동안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오늘날 브라질협동조합기구에는 7682개의 협동조합이 등록되어 있는데, 여기에 소속된 조합원 수가 780만 명으로 브라질 전체 인구의 17%에 달한다. 또한 협동조합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6%에 이르고 있다. '연대의 경제' 운동은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등장했는데, 사회 변화를 무엇보다 중요시한다.
'연대의 경제'에 소속한 협동조합이나 협회들은 브라질협동조합기구의 회원이 아니어서 그 수치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더구나 이 운동은 다양한 주제와 다양한 조직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그 규모를 예측하기는 더욱 어렵다. 브라질 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7978개의 그룹, 1만 1326개의 협회, 2115개의 협동조합을 포함하여 전체 2만1419개 연대의 경제 조직에 160만 명의 회원이 소속하여 활동하고 있다.
'연대의 경제'와 더불어, 1990년대 이후 강화·확대하면서 계속해서 조직들을 건설해나가는 단체도 있다. 예를 들어 무토지농민운동(MST)은 농업생산협동조합, 협동조합중앙회, 브라질 농업개혁협동조합연맹을 조직했다.
또한 1990년대 상파울로 주에서 600개의 일자리를 보장하는 11개 산업협동조합 네트워크를 가진 '연대의 경제 협동조합들의 조합'(UNISOL)을 결성했다. 이때 14개 대학이 '대중 협동조합 인큐베이터 네트워크'를 결성했는데, 가난한 사람들을 경제로 유입할 수 있는 협동조합의 인큐베이팅과 설립을 목적으로 '대학 간 노동연구 네트워크'(UNITRABALHO)로 다시 통합되었다. 마지막으로 브라질협동조합기구와 이들의 은행 체계와는 독립적인 '농촌연대신용협동조합'(CRESOL)이라는 이름의 연대신용 네트워크가 설립되어 브라질 중남부 지역의 소규모 농촌 생산자들에게 재정적 신용을 지원했다. 1990년대 시작된 이 운동은 브라질 중앙은행과 농업부의 협동조합부서 농업기술지원기관들과 협약을 맺었고, 1만 500명의 회원이 가입하여 활동하고 있다.
마무리
라틴아메리카의 협동조합운동은 원주민들이 오래 보존해온 협동적 전통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으나 외부 세력에 의해 뿌리 뽑히면서 그 사회 전체의 사상으로 생존해나가지 못했다. 또한 대륙의 모든 나라들에서 펼쳐지는 협동조합의 과정에도 그다지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로치데일 사상과 원칙을 경험한 이민자들이 근대 협동조합운동을 펼쳐냈으나, 이 같은 경험은 경제적으로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강력한 협동조합운동이 등장한 시기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로, 라틴아메리카의 산업화 과정이 이루어진 때와 일치한다. 냉전으로 인한 열악한 사회·경제적 조건 때문에 사회주의 정부들이 협동조합을 장려했으나 독재 정권이 들어서면서 이러한 정책도 마감하게 된다. 한편 미국국제개발처 지원으로 독재정권과 함께 등장한 협동조합은 경제적 목적을 최우선으로 하여 움직이는, 그때까지와는 다른 형태였다. 그러나 경제적·재정적 기반이 점점 더 중요해지는 자본주의사회의 요구에 의해 이러한 협동조합은 계속해서 그 존재를 유지해왔다.
1990년대 후반과 21세기 초반, 브라질,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에콰도르, 칠레에서 민주적 선거 과정을 통해 새로운 좌파 정부들이 집권했다. 이러한 정부들은 협동조합을 수입 분배의 불평등을 줄이고 극빈층을 공식 경제에 편입시키는 기제로 바라보았고, 협동조합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라틴아메리카의 협동조합은 로치데일 협동조합의 조직 형태로 시작되었다. 이후 정부 차원의 지원을 받아 적극적으로 장려되기도 했지만, 한편 그 권력을 강화하고 새로운 사회운동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또한 협동조합은 많은 사람들, 특히 그동안 소외되었던 가난한 사람들이 사회의 당당한 주체임을 자각하고, 민주적 과정을 통해서 정치·경제·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장을 제공했다.
라틴아메리카의 협동조합 사례
1. 코스타리카 에너지 협동조합(COOPESANTOS)
코스타리카는 지속가능성을 국가 정책으로 수용하여 재생에너지(주로 수력에너지)를 통해 에너지의 99%를 생산하는 나라이다. 2021년 탄소중립국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2015년 새해 첫 75일 동안 국가에서 소비되는 모든 에너지를 재생에너지로 공급하기도 하였다. 한 국가가 환경 문제를 어떻게 잘 수행했는지를 보여주는 2014년 환경성과지수에서 코스타리카는 178개국 중 54위를 차지하여 남미에서는 칠레(29위), 에콰도르(53위)에 이어 3위를 차지했고, 라틴 아메리카의 경제대국들인 멕시코(65위), 브라질(77위), 아르헨티나(93위)보다 앞섰다.
COOPESANTOS는 1965년 설립되어 1969년부터 전기 공급을 시작하였는데 당시 서비스 지역의 인구의 42%에 해당하는 2231명의 소비자에게 전력을 공급하였다. 현재는 3만 6000명의 조합원이 가입되어 있으며, 120개 농촌 마을의 전력 99.7%를 공급하고 있다. 2011년 '산투스 윈드팜'을 개관해 풍력 에너지 생산의 선두주자가 되어, 15개의 터빈으로 연간 4만 2000메가와트(㎿)를 생산하여 1만 1000 가구에 깨끗한 재생에너지를 공급하고 있다.
2. 콜롬비아 운송협동조합(COONORTE)
콜롬비아는 가장 오래되고 풍부한 운송협동조합의 전통을 가진 나라로, 운송협동조합은 콜롬비아 협동조합의 11%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콜롬비아에서 노동자협동조합, 신용협동조합에 이어 세 번째로 큰 규모이다. 20세기 중반에 첫 등장한 운송협동조합은 2009년까지 전국적으로 꾸준히 883개의 운송협동조합이 설립·운영되었으나, 콜롬비아 대도시에 통합운송시스템이 도입되면서 최근 그 수는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거리 버스에서 단거리 택시에 이르기까지 전체 311개 지방자치에서 운송협동조합이 있으며, 그 수의 73%는 택시 조합과 같은 소규모 협동조합이다. 운송협동조합은 운전기사들에게 적절한 임금을 보장하여 무리한 운행으로 인한 교통사고를 방지하고 있으며, 다른 운송협동조합들과 연대하여 통합교통체계로 인해 노동자들이 퇴출되는 것을 막고 있다.
COONORTE는 콜롬비아 서부 지역에 있는 아띠오끼아 메델린에 위치한 운송협동조합이다. 이 지역은 콜롬비아에서도 가장 많은 운송협동조합들이 설립된 곳으로 전국 883개 협동조합 중 124개가 이곳에 자리하고 있다. 1964년 16명의 버스 기사로 시작한 COONORTE는 현재 40개 지방에 지사를 두고 있으며, 장거리 버스부터 가까운 지역의 택시 서비스, 나아가 배달, 화물 서비스, 은행 이체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3. 브라질의 의료협동조합(UNIMED)
브라질에서 의료협동조합은 5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의료부문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 2014년 브라질협동조합기구의 보고서에 따르면 브라질에는 총 846개의 의료협동조합이 있으며, 6만 7156개의 직접 일자리를 창출하고, 27만 1004명의 조합원이 가입되어 있다. 브라질 의료협동조합은 1차 진료, 치과, 정신건강사회, 소비자 의료 등 네 개 분야로 운영되고 있다.
브라질 의료협동조합의 가장 대표적 사례인 UNIMED는 브라질 전역(83%)에서 운영되고 있는 최대의 의료 네트워크일 뿐 아니라 세계 최대의 의료협동조합이기도 하다. 1967년 상파울루의 주도인 산투스에서 22명의 의사들이 민간의료기업에 반대하여 설립된 UNIMED는 현재 355개의 의료협동조합, 11만 명의 의사, 3250개의 소속 병원, 112개의 종합병원, 189개의 응급병원, 90개의 실험실, 93개의 진단센터, 122개의 약국, 450대의 구급차를 보유하고 있다. 매년 600만 명이 내원하고 220만 명이 입원 치료를 받고 있으며, 약 1억 9700만 명이 검사를 받고 있다.
4. 아르헨티나의 소비자협동조합(OBRERA)
1920년 적절한 가격으로 빵을 구입할 방법을 찾던 173명의 철도노동자들이 시작한 OBRERA 협동조합은 자체 빵집 운영에서 점차 다른 소비재도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식품을 판매하는 가게를 개점하게 된다. 1922년 5월 1일 열린 빵집에서 시작한 협동조합은 상당한 성공을 거두면서, 1937년에는 지역을 확장하여 분점을 열기도 했다. 그러나 1950년 아르헨티나의 심각한 경제위기로 인해 OBRERA도 힘든 시기를 겪게 된다. 다른 협동조합과의 합병을 거치면서 1962년에는 10개의 분점을 가지게 되었고, 1970~80년대 지속적인 발전으로 2000년까지 90개의 분점을 가지게 되었다.
현재 OBRERA 협동조합은 120만 명의 조합원과 4400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으며, 연간 판매액은 6억 달러에 이른다. 4개 도, 52개 도시에서 107개의 슈퍼마켓을 운영하고 있는 아르헨티나 최대의 협동조합이다. OBRERA 협동조합은 조합원들을 위한 정기적인 포럼을 개최하여 조합원들로부터 비판과 조언을 얻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또한 조합원들에게 다양한 교육, 문화, 오락 활동에 무료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으며, 다른 협동조합들이 OBRERA 협동조합 점포를 통해 물건을 판매하는 것을 적극 지지한다. 또한 조합원들에게 신용카드 형태로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이 카드를 통해서 조합원들은 특별 할인 혜택 또는 낮은 카드 수수료로 이용이 가능하다. 한편 학생들에게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등 청년들이 먹거리 운동에 참여하는 공간을 확대하는 것은 물론 건강한 식습관에 대한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한다.
각주
1) 라틴아메리카와 남미는 흔히 동의어처럼 쓰이지만, 실제 남미는 파나마 해협을 기준으로 북미와 나눠 남아메리카만을 의미하는 반면, 라틴아메리카는 멕시코 남부의 테우안테펙 지역을 경계로 북미를 나누어 중아메리카, 카리브, 남아메리카를 포괄한다. 특히 라틴아메리카는 주로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로 언어가 나뉘지만, 공통적으로 식민지 반제국주의 투쟁을 벌이며 통합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노력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본 글에서는 역사적·문화적 동질성을 가지고 있는 라틴아메리카로 통칭한다.
2) 샤를 푸리에(Charles Fourier)는 영국의 로버트 오웬과 더불어 대표적인 프랑스의 공상적 사회주의를 대표하는 인물. 그는 경제적으로 자급자족하는 공동체 '팔랑스테르'를 주장하며 인간의 진정한 행복은 물질적 풍요가 아니라 개인의 열정을 만족시키는 데 있다고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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