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국정 실패의 원인이 홍보 실패에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역대 대통령들 대부분이 그런 생각으로 정권 말엔 항상 측근을 문화부 장관으로 임명해왔다. 박 대통령이 16일 내정한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그런 사례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2016년 리우 올림픽 폐막을 1주일이나 남긴 시점에 유관 부처 장관을 갈아치운 것도, 일종의 진기록이라면 진기록이다.
조윤선 내정자는 박 대통령의 최측근이다. 2008년 총선에서 비례대표를 받았을 때는 친이계로 분류됐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 임기 후반기와 18대 대선 정국이 맞물리면서 친박계로 활약한다. 서청원 의원 등 친박 '본류'와는 거리가 있지만, 그는 박근혜 캠프 대변인, 대통령 당선인 대변인을 거쳐, 박근혜 정부에서는 여성가족부 장관,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냈다. 주로 박 대통령을 직접 보좌하는 역할을 맡았다. 지난 4.13총선 과정에서 서울 서초갑에 공천을 신청했지만, '박심'을 등에 업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쟁자인 이혜훈 의원에게 경선에서 패했다. 그런 그가 박 대통령 임기 말 정부 홍보 업무를 총괄하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임명된 것이다.
위안부 문제, 사드 문제 등으로 거센 비판을 받고 있는 윤병세 외교부장관, 한민구 국방부장관은 교체 대상에서 빠졌다. 고용노동부, 교육부, 미래창조과학부 장관도 변화가 없다.
박근혜 정부의 '문화부 잔혹사'
박근혜 정권 문화부 장관들은 유독 고초를 많이 겪었다. 대부분 대통령과는 스타일이 맞지 않는 것 같다는 평가도 나왔었다. 정권 초반 국정 드라이브를 걸어야 할 중요한 시점에 임명된 장관은 유진룡 전 장관이었다. 그는 2014년 7월까지 약 1년 반 동안 문화부 장관을 맡았지만, 끝이 좋지 않았다. 당시 정부 고위직을 지냈던 관계자는 "유 장관은 회의 때마다 튀는 모습을 보였다. 간혹 사람들을 의아하게 만들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이같은 스타일이 상명하복을 중시하는 박근혜 대통령과는 맞지 않았을 것이라는 해석이 많다.
유 전 장관은 결국 '체육계 비리 수습' 부실 책임을 안고 장관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그러나 유 전 장관은 순순히 물러나지 않았다.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이 문화부 국장, 과장 인사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폭로하면서 유 전 장관과 박 대통령의 관계는 만천하에 드러나게 된다. 유 전 장관은 박 대통령이 지난 2013년 8월 자신을 청와대 집무실로 부른 뒤 수첩을 꺼내 문화체육부 국장과 과장 이름을 직접 거명하면서 "나쁜 사람이라고 하더라"는 말을 했다고 폭로했었다. 이 때문에 한때 박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한 체육계 국가대표 선수의 부친이 '비선 실세'로 국정에 간여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2014년 8월 임명된 김종덕 장관도 순탄치 않았다. 특히 지난 3월에는 김영나 전 국립박물관장 경질 파동이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관심을 표명했던 프랑스 장식 미술전 개최를 두고 김 전 관장이 '명품 전시회를 열 순 없다'고 반대했다가 청와대의 압박에 의해 물러나게 됐다는 의혹이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김 전 관장은 "지난 연말 이래로 청와대에 계속 들어가 전시 내용에 대한 (반대) 의견을 설명했으나 논의가 진척되지 않았다"며 "전시가 무산된 뒤인 지난 9일 갑자기 상부(청와대)로부터 관장이 교체됐다는 전화를 받고 바로 짐을 정리하고 박물관을 떠났다"고 말했다. 그는 "작년 연말부터 (청와대에게) 혼이 많이 났다"고도 했다.
'명품 전시회 거부' 파동 때문일까? 지난 김 전 관장이 교체되기 직전 박민권 전 문화부 제1차관이 임명 1년 만에 석연치 않은 이유로 옷을 벗기도 했다. 김 전 차관은 전시 추진 관련 감독자였다. 김 전 관장의 '항명'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차관이 경질된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난무했었다.
이는 박 대통령이 문화부 장관 자리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드러내 주는 사례다. 본인이 강조하는 국정 홍보 기획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이유를, 관료들의 '복지부동' 때문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는 '나는 잘 하고 있는데 국정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아 비판을 받는다'는 인식으로 이어진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요즘 저도 무수한 비난과 저항을 받고 있는데 지금 이 상황에서 대통령이 흔들리면 나라가 불안해진다"고 말했고, 지난 8일에는 "저는 매일 같이 거친 항의와 비난을 받고 있"다고 했다. 특히 전날 있었던 박 대통령의 8.15경축사를 보면 문화부 장관 교체 이유가 잘 드러난다.
광복절 경축사의 '국뽕' 연설, 박 대통령 임기말 '국정 홍보' 방향?
8.15경축사에서는 현 정부의 임기말 국정 홍보 방향이 읽힌다.
"언제부터인지 우리 내부에서는 대한민국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잘못된 풍조가 퍼져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위대한 현대사를 부정하고, 세계가 부러워하는 우리나라를 살기 힘든 곳으로 비하하는 신조어들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법을 불신하고 경시하는 풍조 속에 떼법 문화가 만연하면서 사회적 비용이 증가되고, 대외 경쟁력까지 실추되고 있습니다.
(…) 국민 여러분, 우리 대한민국은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까지 내던지고, 갖은 고통과 시련을 온 국민이 함께 참고 지키며 발전시켜 온 소중한 우리의 조국입니다. 자기비하와 비관, 불신과 증오는 결코 변화와 발전의 동력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 스스로를 묶어버리고, 우리 사회를 무너뜨리게 할 뿐입니다.
이제 다시 대한민국 발전의 원동력이었던 도전과 진취, 긍정의 정신을 되살려야 합니다. 모든 것은 마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자원도, 자본도, 기술도 없던 시절에도 맨주먹으로 일어섰던 우리가, 세계 최고의 기술력과 풍부한 자본까지 가지고 있는 지금 못 해 낼 것이 과연 무엇이 있겠습니까? (…) 어려운 시기에 콩 한쪽도 서로 나누며 이겨내는 건강한 공동체 문화를 만들어 간다면, 한 차원 높은 도약을 이뤄낼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박 대통령은 특히 K-POP 등 한류와 '메이드 인 코리아'과 관련된 '긍지'를 강조했다. 문화부는 그간 문화 융성 추진 계획 등을 통해 △'코리아 프리미엄' 실현 △전통문화 등의 새로운 가치 창출 △문화창조융합벨트 구축 △국민 생활 속의 문화 확산을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문화부의 국정 홍보 노력에도 "우리나라를 살기 힘든 곳으로 비하하는 신조어들이 확산"되는 현상은 막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만기친람(萬機親覽)' 형인 박 대통령은 틈이 날 때마다 각종 디테일한 정부 정책을 홍보해 왔고, 현장 행보도 꾸준히 이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수한 비난"과 "거친 항의"를 받고 있다고 인식한다. 이는 국정 홍보 실패와 연관된다. "현대사를 부정"하지 않도록 하면서, 한국을 "세계가 부러워하는 나라"로 인식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문화부의 역할은 중요성을 부여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현 정부 들어 두 차례의 문화부 인사가 실패로 돌아간 것은, 측근 정치인을 전격 발탁한 배경으로 연결된다. 조윤선 내정자는 문화 예술 애호가로 평가를 받기는 하나, 기본적으로 시티은행 부행장 출신 변호사이며 18대 국회에서도 문방위보다는 정무위 활동이 도드라졌던 인사다. 문화부 장관으로서 그의 진짜 임무가 궁금해지는 지점이다.
4.13 총선 패배는 이제 추억으로?…우병우 고려된 '친위 개각'
박 대통령 임기 말 문화부는 진용을 갖추게 됐다. 특히 지난 2014년 4월 임명된 김종 문화부 2차관은 야당이 '정권 실세'로 지목한 인사다. 여기에 청와대 수석 출신 인사가 장관에 내정된 상황이다. '친위 부처' 역할을 기대해 볼 만 하다. 앞서 여당인 새누리당 대표에는 역시 청와대 홍보수석, 정무수석을 맡았던 이정현 대표가 당선된 바 있다.
4.13총선 패배의 추억은 이제 털어내도 될 것이라 판단했을 수도 있다. 이번 차관급 인사도 청와대 비서관 출신들이 둘이나 등용됐다.
박 대통령의 '친위 체제'는 더욱 강화됐다. 게다가 외교 안보 라인은 사실상 재신임을 받았고, 야당의 '공적'이 된 박승춘 보훈처장도 유임됐다. 박 대통령의 임기말 국정 운영의 스타일은 변함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홍보 등 본류보다는 곁가지에 힘을 쏟을 전망이다. 이번 개각은 소폭의 '친위 개각'일 뿐이다.
각종 논란으로 정국의 핵으로 부상한 우병우 민정수석은 어떻게 될까? 이번 인사는 우 수석의 검증을 거친 인사다. 청문회를 거쳐야 할 장관급 인사 3명은 모두 무난한 인물로 구성됐다. 조윤선 내정자는 이미 청문회를 한번 거쳤고, 나머지 장관 내정자 둘은 나름 혹독한 검증을 이겨내고 올라왔을 차관 출신이다. 우 수석에 대한 고려가 담긴 개각이라는 평가 역시 과언이 아니다. 우 수석은 당분간 박근혜 대통령의 신임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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