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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정치의 도시, 여기저기 성매매 업소!

[민교협의 정치시평] 진보 운동의 금기, 과감한 논의가 필요하다

최근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서는 올림픽이 한창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국과 우파들의 좌파 정권에 대한 공격, 그리고 정권의 교체 등이 일어난 중남미 국가들 중에서도 가장 좌파 정권의 사회 정책 실험이 성공했었던 브라질. 그러나 아직은 갈 길이 먼 브라질의 빈곤과 불평등이 올림픽으로 인해 다시 전 세계적으로 화제의 중심이 되었다. 브라질의 유명한 도심 내 빈민가인 파벨라. 리우데자네이루에만 무려 720여 개 이상의 파벨라가 있는데, 약 700만 명의 인구 중 약 30%가 거주하는 이 곳에서는 한 해에만 수천 명이 사망하는 등 범죄가 난무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대대적인 소탕과 정비, 가림막 설치 등의 과정 속에서 많은 이들이 죽거나 다치고 거주지를 잃어버리기도 하여 다시 한 번 세계의 주목을 끌었던 게 브라질의 빈민가다. 사실 브라질 뿐 아니라, 세계 자본주의의 중심부인 미국을 비롯, 전 세계 곳곳에 이렇게 위험한 빈민가들이 즐비하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어찌 되었든, 진보 좌파적 관점에서 이러한 빈민에 대한 브라질 정부의 억압과 통제에 대해 비판하고 전 세계 빈곤의 축소에 관심을 가져야 함은 두 말 할 나위가 없다. 브라질에서의 참여 예산제 추진 과정에서도 그랬지만, 특히 빈곤의 정도가 훨씬 더 심한 베네수엘라 등 좌파 정권이 등장한 국가들에서는 각종 미션을 통해 빈민들에게 권력을 줌으로써 빈곤 축소는 물론 그 외에도 직접 민주주의의 실험 등 많은 것을 해결하려 했던 일이 있었다.

문제는 많은 논자들은 바로 이 점에만 집중했다는 데에 있다. 그들은 이러한 실험의 위대한 주체이지만, 동시에 일반인은 쉽게 접근조차 할 수 없는 범죄가 난무하는 수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는 빈민이라는 점을 경시했다. 결국 문제의 한 측면만이 강조됨으로써 많은 이들은 이러한 현실을 목도하고 혼란을 일으키게 된다. 따라서 이제 최소한 사회 변혁을 추구하는 사회과학자들이나 활동가들의 경우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하여 문제를 다각도로 종합적으로 접근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과감하게 문제를 드러내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우리는 그 동안 가난한 사람들이 왜 보수 정권을 지지하는지와 같은 정치, 특히 선거 정치에만 관심을 집중해 왔다. 물론 이는 최근의 문제만은 아니며 한국만의 문제도 아니다. 과거 나치즘이나 파시즘을 지지한 이들이 노동대중이었다는 사실은 이제는 새로운 것이 아니며, 지난 그리스에서의 극우파 대두에서부터 최근 브랙시트, 미국의 트럼프 현상, 그리고 유럽 곳곳에서의 극우파 약진 등에서 우리는 고통받는 하층 계급, 그리고 남성들이 이를 지지하는 하층 계급의 극우화를 목도하고 있다. 그런데 이제는 국가를 막론하고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그러나 아주 생소한 것만은 아닌) 정치적 우경화의 문제 이전에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는 사회 계급과 집단,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 내는 사회 현상에 관심을 갖고 냉철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다.

한국 사회에서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대구-경북(TK) 지역에서의 총파업 출정식에서 박근혜 정권을 비판한 일부 간부나 활동가에게 강한 반발을 하는 일부 노동자들에 놀란 한 교수가 쓴 기사가 기억이 난다. 나는 그런 현상에 놀라는 것 자체가 놀랍다. 어찌 그 일뿐이겠는가? 파업이나 임금 인상 투쟁에는 열심이지만 이 지역 선거에서 노동 정당에 투표하는 비율은 그 수에 턱없이 모자라며 반대로 지배 정당에 압도적인 투표를 해 온 것이 사실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보수 정당에 투표하는 것을 넘어 조직 노동자조차 이러한 현상을 보이는 데에는 당연히 다양한 이유들이 있다. 어찌 되었든 이것이 현실인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단순히 정치적 보수화나 보수 정당으로의 투표와 같은 정치 영역만으로 문제를 한정시킬 경우 우리들은 많은 것을 놓치게 된다. 가령 '일베'로 상징되는 극우적이고 반동적일 뿐 아니라 각종 혐오의 감정을 무차별적으로 배설하는 범죄적 수준의 언행을 자행하는 자들의 상당수는 우리 사회의 하층 남성 계급이다. 노동자 정치를 가능하게 한다는 울산이나 창원, 그리고 공단이 있는 곳이라면 성매매가 가능한 다양한 수준의 주점들이 그 어느 곳보다 즐비하다. 학교 폭력이나 왕따 등 다양한 학원 문제 역시 안타깝지만 부유층 거주 지역보다 빈곤층 하층 계급 거주 지역에서 훨씬 많이 발생하는 것이 사실이다. 군대 내 폭력의 가해자들 역시 유사한 경향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최근의 사회 현상을 집약적으로 보여 주는 '개저씨'들이나 한층 더 심각해지고 있는 '성폭행 범죄', '여성 혐오 범죄', '아동 학대 범죄' 등의 주요 가해자들 역시 대부분은 빈곤한 하층 계급 출신이 많다.

우리 사회의 피지배 계급과 집단들이 더 문제가 있다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규모와 범위 등에 있어서 우리 사회의 지배 집단들이 그 동안 자행한 학살과 착취와 억압 등은 일베 등으로 상징되는 우리 사회 내 룸펜들이 내뱉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막대하다. 이건희의 성매매 동영상이 보여 주듯 우리 사회의 지배 집단, 부유층의 성매매 규모 역시 노동자들의 그것과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하다. 무엇보다 수백억 수천억 단위로 범법 행위를 저지르면서도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는데 반해 서민들의 정당한 최저 임금과 복지 요구에 대해서조차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는 지배 계급의 더러운 행위는 그 어떤 범죄 행위보다도 반인간적이라는 것은 두 말 할 나위가 없다. 또 위에서 언급한 학원과 군대와 사회 내 각종 범죄를 자행한 자들 역시 한 편으로는 그들 자체가 분명 국가가 방치하여 발생하는 가정 폭력이나 빈곤과 사회적 차별의 피해자이거나 혹독한 노동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의 피해자이기도 하다는 것도 분명히 강조해야 한다.

이렇듯 분명 불공정하고 불평등하며 부정의한 사회, 그리고 그것을 유지함으로써 막대한 이익을 얻고 있는 사회 지배 계급에게 일차적으로 책임이 있다는 것은 두 말 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구조만을 강조하다가 많은 부분에서 사회의 변혁을 스스로 가로막는 일을 되풀이해 왔다. 그러다 보니 젠더 문제는 단순히 여성의 문제라고 생각해 왔고 무지한 남성들 다수는 마치 남녀의 대결 구도인 양 착각하기에 이르렀다. 이 문제의 해결이랍시고 나서는 자들은 고작 자본주의 자체의 문제라는 말을 되풀이하거나 남녀의 문제가 아니라 계급의 문제라는 원칙을 확인하는 것 외에는 할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사회 불평등과 빈곤 문제에 관심있는 자들조차 그 구조가 사회에 불만을 갖고 소수자에게 혐오감을 갖는 범법자들을 만들어 내고 사회에서 주변화된 이들이 스스로 조직 범죄 집단화하도록 만드는 구조에 관심을 갖지 못 한 채 각각의 순수한 학문 혹은 운동의 영역으로 굳어 가고 있다.

이러한 모든 문제가 복합적이고 상호 연결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런 문제가 중층적으로 나타날 때 제대로 된 해석도 못 한 채, 다소 더 큰 비중이 무엇인지에 집착하거나 혹은 스스로 본질이라고 규정한 측면에만 집중해 오다 보니 그러한 부분이 아닌 매우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 하고 있다. 가령, 소수자와 빈곤 계층과 연대하던 이들이 결혼 이주 여성들에 대한 인권에 집중하다 보니 이들 여성과 결혼하는 남성들에 대해 '정상적이라면 결혼하기 힘든' 지적 장애인 혹은 빈곤한 농촌 지역 남성이라는 식으로 우리 사회의 하층 계급이나 소수자들을 비하하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표현을 쓰는 아주 모순적인 경우를 본 적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잘못된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실을 반영한 우리의 모순적 인식이기도 하다. 이는 결혼 이주 여성에 대한 살인과 폭행 같은 구체적 범죄를 저지른 개개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제는 결혼 이주 여성이나 한국 농촌 지역 남성 모두 두 국가에서 모두 고단한 삶을 사는 빈곤한 하층 계급 간의 연대라는 관점이 필요하다는 말은 그 자체로는 너무 아름답지만, 현실적 해결책은 되지 못 한다.

과거 대학생 농활 과정에서 급진적인 양성 평등론이 가난한 농촌 지역 중년 남성들의 봉건적 성의식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제 유사한 문제는 전 사회로 확산되고 있다. 현재 한창 화두가 되고 있는 메갈리아의 문제 중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일부이긴 하지만 그들이 가장 비판받는 빈곤 남성에 대한 적대적 표현이나 인식 역시 크게 잘못된 것이긴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일정 부분 사실이라는 안타까운 현실에 대한 인정이 이제 필요하다는 점이다. 양성 평등 의식은커녕 성매매를 자랑스럽게 말하는 자들은 지배 계급만이 아니다. 장애인과 소수자들,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 배제와 혐오 감정은 저학력 육체 노동자들, 실업자들, 주변화된 집단들에게서 더 크게 나타난다.

극단적 경쟁 사회로 몰아넣고 승자만을 인정하게 만들어 사회적 공감 능력이나 사회적 연대를 파괴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 지배 계급의 책임이 일차적이지만, 오직 거대 변혁을 위한 선진 노동자 조직화에만 매달리다가 갑자기 파편화되어 종합적 사고를 하지 못 한 채, 각자의 길만 가고 있는 우리 사회의 진보적 운동의 책임도 적지 않다. 물론 극소수의 '금수저' 외 절대 다수의 노동 대중들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심각한 박탈감 속에 큰 고통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최소한의 사회적 권리조차 누리지 못 하는 사회적 현실 속에서는 결단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하층 계급에 대한 논의도 과감하게 드러낼 것은 드러내야 할 시점이 왔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계급 문제로만 국한되지 않는다. 성주 사드 반대 투쟁과 이화여대 투쟁에 대해서도 냉철하게 볼 필요가 있다. 물론 투쟁을 통해 많은 이들이 사태의 본질에 대해 깨닫는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는 것은 너무나 벅찬 감동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어느 지역에서도 장애인 시설이나 교화 시설 등 소위 '혐오 시설'이 들어설 때에도 땅값이나 집값 등의 이유로 유사한 반대 운동이 펼쳐졌을 것이며, 반대로 개발이 더딘 지역에 토건 개발 사업이 유치되는 문제에 있어서도 대대적 찬성 운동이 펼쳐졌을 것이다.

새로운 운동 주체나 느린 민주적 운동 방식은 흥미롭지만, 과연 소위 '주요 대학'이 아닌 지역 대학에서의 유사한 시도가 유사한 저항을 불러일으켰을지에 대해서도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또한 독재 시대에도 없었던 수천 명에 달하는 졸업생들이 실제 행동으로 나선 진정한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서도 우리는 과감하게 말 할 수 있어야 한다. 보도는 벅찬 감동으로 할 수 있지만, 전문가들은 '외부 세력'을 배제하지 않을 수 없는 '순수한' 운동에 대한 안타까움 등의 논의를 넘어 조금 더 근본적인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 동안 금기시되어 왔던 영역에 대한 과감한 논의들이 필요하다는 걸 강조하고자 한다. 이제는 사회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저항이 일어나는 현장들과 그 주체들 하나하나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그러한 힘과 에너지가 사회의 진보적 발전을 위한 근본적인 토대로 구축될 수 있도록 하는 매우 세밀한 대응들이 필요하다. 제국주의와 억압적 지배 계급에 대한 저항 운동이 제대로 된 저항 이데올로기를 찾지 못 하고, 사실상 종교와도 상관없는 각국의 범법자들과 주변화된 하층 계급 남성들을 중심으로 하는 반인륜적 반여성적 범죄 집단으로 전락하게 된 IS(이슬람국가)의 사례는 극단적이긴 하지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우리 사회에서도 점점 더 기존의 계급과 노동, 빈곤과 불평등 문제 자체가 격화됨과 동시에 양태가 다양해지고 있는데, 여기에 더해 젠더 문제, 소수자 문제, 이주 문제 등도 매우 다양하면서도 서로 얽히고 혐오의 감정까지 겹쳐 매우 복잡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제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사고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며, 이를 위해 과감하게 금기되어 온 지점들을 드러낼 필요가 있다. 국가와 자본에 대한 요구와 투쟁도 필요하지만, 사회 스스로 바뀌어 갈 수 있도록 이제는 진보 운동의 금기에 대한 과감한 논의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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