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국제 기독교 대학 서재정 교수는 '남극 궤도'로 날아오는 북한의 ICBM을 막기 위해 미국이 한반도 내 사드 배치를 서두른 것이라고 진단했다. 서 교수는 "북한의 미사일이 남극 궤도를 따라갈 경우 미국은 아무런 방어수단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있다. 필리핀이나 괌 인근에서는 ICBM의 고도가 너무 높아 이지스함에서도 요격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한국과 동중국해 사이가 최후의 마지노선"이라며 "결국 한국에 배치된 사드는 그 어떤 무기체계도 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으로 사드 배치를 비롯한 동아시아에서 미국이 벌이고 있는 군사적 행동은 일본의 보통국가화 추구와도 맞물려 있다. 일본은 미국과 미사일 방어 체계(MD)를 함께 개발하면서 '전수방위'와 '무기수출 3원칙' 등 세계 2차대전 이후 지켜왔던 정책에서 벗어나고 있다.
서 교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미사일 방어로 미군을 보호해주려면 전수방위 원칙을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본이 공격받지 않는 한 방어만 한다는 '전수방위' 원칙을 동맹과 동북아의 평화를 위해 버리고, 적극적으로 평화에 기여해야 한다는 논리다"라고 설명했다.
무기수출 3원칙도 마찬가지 논리다. 일본은 2차대전 이후 공산국가와 유엔 제재 국가 그리고 국제분쟁 당사국에 무기를 팔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과 미사일 방어망 공동 개발로 이 원칙은 깨져버렸다.
이러한 동아시아 정세 속에서 한국은 점점 미국과 일본에 종속되고 있다. 서 교수는 "미국을 중심으로 미일 동맹의 강화, 일본의 군사적 역할 확대가 나타나고 있고 일본을 중심으로 필리핀, 호주, 한국을 묶는, 소위 '아시아판 나토'라고 부를 수 있는 '아시아판 반중국 동맹'이 부상하고 있다"며 "이 상황에서 한국은 하위 파트너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상황에 놓여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한국 입장에서 신(新)냉전은 최악의 상황이다. 미국과 중국이 적대화되면 어느 쪽으로 줄을 서도 타격을 입는다. 따라서 사드가 신냉전을 가속화시키는 계기가 되는 것을 막아야 하는 것이 곧 한국의 국익"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서 교수는 미국과 중국이 경제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돼있는 현 상황에서 사드 배치는 미국과 중국 양쪽 모두의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며, 한국이 나서서 양쪽 모두에게 이러한 점을 설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행정부가 이렇게 말하기 어렵다면 정치권이나 시민사회를 동원해서라도, 또는 눈감아주는 척하면서 민주사회의 장점을 최대로 활용해야 한다"면서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6명이 가는 것도 오히려 정부에서 최대한 이들을 활용했어야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의원들보고 중국에 가지 말라고 했다는데 이건 스스로 자기 발을 묶는 편협한 정치"라고 꼬집었다.
인터뷰는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편집인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전편 보기 : 박근혜 정부, 사드랑 뭘 바꿨나?)
프레시안 : 미국이 미사일 방어망 체제를 일본과 함께 개발하고 있다는 점도 놀랍다. 사실상 공동 파트너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서재정 : 일본이 미사일 방어를 빌미로 보통국가로 가는 것이 우려스러운 부분인데, 아주 전략적이고 교묘한 결정을 내렸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일본은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전면에 내세우고, 미국과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미국 입장에서도 북한이라는 비이성적인 국가가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르는데, 일본과 협력해서 미사일 방어 체계 구축하고 동북아에서 동맹 체제를 강화하는 것은 나쁜 선택이 아니다. 또 중국이라는 잠재적 위협도 염두에 두고 일본과 군사적인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의도도 있다.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면 북한이 동해 상에서 활동하고 있는 미군을 상대로 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일본이 미군을 방어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이는 일본이 공격받지 않는 한 방어만 한다는 '전수방위' 원칙에 위배되는 행위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이를 이용, 미사일 방어로 미군을 보호해주려면 전수방위 원칙을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맹과 동북아의 평화를 위해 전수방어가 아닌, 일본이 적극적으로 평화에 기여해야 한다는 논리다.
아베 총리는 결국 지난해 안보법제를 통과시키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 결정적 고리 역할을 한 것이 미사일 방어망 구축이었다. 미국 입장에서 이를 암묵적‧공개적으로 지지하고 밀어줄 수밖에 없었던 것도 미사일 방어라는 고리에 일본과 같이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아베 정부가 이를 고리로 일단 전수방어의 족쇄를 푸는 데 성공한 셈이다.
두 번째는 일본과 미국이 미사일 방어망 구축에서 협력하고 있는데 여기에 공동 개발이 들어가 있다. 한국이 사드 배치를 통해 미국의 MD에 참가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면 국방부는 항상 한국이 MD 체계 속에 들어가 있지도 않고, 공동 개발과 생산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MD 참여가 아니라고 이야기해 왔다. 이게 바로 일본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일본과 같이 MD의 개발과 생산, 체계 운영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일본은 해상 배치형 요격 미사일 SM3 블록 2A(SM3 Block 2A)를 공동 개발하면서 또 다른 문제를 풀 수 있는 고리를 만들어냈다. 바로 무기 수출 3원칙이다. 이는 공산국가와 유엔 제재 국가 그리고 국제분쟁 당사국에 무기를 팔지 않는다는 원칙으로 그동안 일본 안보 정책의 근간으로 유지돼 왔다. 그런데 아베 총리는 이걸 푸는 고리로 미사일 방어 공동 개발 카드를 사용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미국과 미사일 방어를 공동으로 개발하고 있는데, 이걸 만들어 놓고 배치는 하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항변하고 있다. 이런 명분으로 무기 수출 3원칙을 바꿔야 한다는 논리를 전개했고 결국 성공을 거뒀다.
프레시안 : 일본 입장은 그렇다 치고, 미국이 굳이 일본과 공동 개발을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미국은 웬만한 첨단 무기는 동맹국에 수출도 하지 않는데, 이런 무기를 함께 개발한다는 것은 미국과 일본이 군사적인 측면에서는 거의 일체화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서재정 : 미사일 개발에서 첨단 전자 개발 능력이 핵심인데, 여기서 미국이 계속 어려움을 겪는 부분들이 있었다. 미국 산업계의 능력 한계에 봉착한 부분도 있었고. 이런 부분들을 타개하기 위해 일본의 능력을 빌려 보고자 하는 기대가 분명히 존재했다. 또 아베 정부에서는 정치적인 필요성 때문에 적극적으로 미국 정부에 로비해서 자국의 기술과 재정을 투여하겠다고 나왔고. 미국과 일본의 상호 필요성이 맞아 떨어지지 않았나 싶다.
프레시안 : 최고 전략무기의 성능을 좌우하는 최첨단 무기를 공동 개발하겠다는 것은, 일본이 이제 미국의 '주니어 파트너'가 아니라 거의 대등한 파트너로 격상됐다는 뜻 아닌가?
서재정 : 아베 총리와 오바마 정부 2기에 접어들면서 미일 동맹의 수준이 세계 2차대전 전후 최고의 수준까지 올라갔다고 봐야 할 것 같다. 그전에도 전투기 개발 등의 분야에서 미일 공동 협력 사례가 있긴 한데, 개발을 해서 수출하고 다른 지역에 활용할 수 있을 정도까지 협력이 강화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프레시안 : 군사동맹 파트너 수준으로 보면 미일이 미국-영국보다 더 가까워진 것 같다.
서재정 : 그렇다. 영국하고도 사실 이런 수준의 공동 개발까지 진행된 것은 없었다. 사례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굉장히 높은 수준의 동맹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과 다른 동맹국 간의 관계를 보면 일본의 지위가 더 두드러진다.
필리핀의 경우 수빅만에서 미국이 다 철수했다가 최근 들어서 다시 미군이 기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필리핀 정부의 허락을 받았다. 그러면서 양국의 군사적인 협력과 활동의 수위가 계속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두테르테 신임 필리핀 대통령 통치 하에서 양국의 군사적 협력이 어느 정도 수준까지 발전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어쨌든 양국의 군사적 협력이 1980년대 이후 최고 수준까지 올라간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와 함께 주목되는 부분이 일본과 필리핀 간 군사 협력의 확대‧강화 문제다. 그동안 양국의 군사 교류협력은 꾸준히 높아져 왔다. 이제는 자위대가 필리핀에 가서 또는 필리핀 해군이 일본에 가서 훈련하기도 한다. 일부에서는 양국이 공동 훈련을 넘어서서 소파(SOFA) 협정 같은 것도 체결할 수 있는 수준으로 진입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는 일본군이 필리핀에 주둔한다는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물론 앞서 말한 대로 두테르테 신임 대통령이 이전 대통령에 비해 중국에 좀 더 우호적이긴 하다. 그래서 일본과 관계는 이전 정부에 비해 다소 약화될 수 있으나, 군사 협력의 수준이 이전보다 높아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
프레시안 : 이렇게 되면 동아시아에서 미국 군사력의 역할을 일본이 대체할 수 있을 정도까지 갔다고 봐야 하는 것 아닌가?
서재정 : 그렇다. 그런데 최근에는 호주의 역할도 높아지고 있다. 호주-미국은 군사 동맹 관계고 특히 미국 오바마 정부가 아시아 회귀 전략을 채택하면서 가장 먼저 한 것이 호주에 군대를 증파하겠다는 것이었는데, 이 조치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처럼 미국은 호주와 군사적 관계를 강화하고 아시아에서 호주의 군사적 능력을 계속 강화하는고 있다.
그런데 이와 함께 진행되는 것이 일본-호주 간 군사 교류 협력을 강화하는 일이다. 필리핀- 일본과 비슷하게 호주-일본의 군사적인 협력 관계도 증대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들을 전체적으로 놓고 봤을 때 일본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사실상 미국의 대리 역할을 하면서 필리핀 호주, 한국이 여기의 하위 동맹 파트너로 결합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프레시안 : 2014년 말에 한일 정보보호 협정이 양해각서(MOU)형태로 체결됐고, 지난해 말에는 '위안부'합의가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이후 현재의 사드 배치까지 과정을 보면 한국의 국제 정치적 위상에 대한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거의 일본에 종속화되는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우기가 어려운데.
서재정 : 전작권 환수 연기가 치명적인 결정이었다고 본다. 일단 군사적 부분에서 전작권이 없는 한국에서 이러한 군사적 움직임이 나타나는 것은, 한국의 입지 자체가 없다고 보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 될 것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미일 동맹의 강화, 일본의 군사적 역할 확대가 나타나고 있고 일본을 중심으로 필리핀, 호주, 한국을 묶는, 소위 '아시아판 나토'라고 부를 수 있는 '아시아판 반중국 동맹'이 부상하고 있는데 이 상황에서 한국은 하위 파트너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상황에 놓여있다.
성주, '미사일 받이'로 전락하나
프레시안 : 시카고 대학 브루스 커밍스 교수는 한국전쟁이 미국을 이전과 완전히 다른 나라로 바꿨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을 군사 국가로 만들었다는 진단이다. 그런데 남한의 사드 도입은 역으로 이와 버금가는 조치인 것 같다.
1970년대 미국과 중국은 소련 견제라는 목표가 있긴 했지만 나름 손을 잡는 행태를 보였다. 그런데 남한이 남북 대립과 미사일 방어망 도입을 추진하면서 동북아에서 미국과 중국의 대립을 고착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서재정 : 중요한 지적이다. 일단 한국 전쟁이 냉전을 본격화 시킨 것임엔 틀림없다. 한국 전쟁 전까지는 냉전에 대한 구상만 있는 수준이었다. 'NSC-68'이라는, 문서 상으로만 존재했던 냉전 구상이었지만 이것이 현실로 구체화되지는 못했다. 그럴만한 정치적 동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올해 6월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는 폴란드에서 '아나콘다 작전'이라는 이름으로 3만 명 이상의 병력이 동원되는 군사 훈련을 진행했다. 또 미국을 포함, 나토가 폴란드와 동유럽 쪽에 군 5000명을 추가 배치하기로 결정했다. 나토 연합군이 동진하고 있는 셈인데, 이에 대한 러시아의 반응도 거칠어지고 있다. 유럽에서 미국과 러시아의 신냉전이 고착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아시아에서도 미국과 중국의 신냉전 전선이 깊어지고 있다.
프레시안 : 한국 정부는 사드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으로부터 한국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서 교수는 미국 본토를 방어하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미국이 북한 미사일을 실존하는 위협이라고 보고 있다는 뜻인가?
서재정 : 단기적인 위협과 중장기적인 위협을 구분해야 할 것 같다. 미국은 단기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 미국은 중국이나 러시아를 소위 '이성적인 국가'라고 판단, 핵 전력상으로 봤을 때 억지가 가능한 국가라고 생각한다. 즉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에 대해 핵공격을 가할 정도로 비이성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의 막강한 보복 능력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은 북한이 비이성적인 국가이기 때문에 억지가 안되는 국가로 보고 있다. 물론 엄청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미국은 핵전력 차원에서 보면 북한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다. 그런데 미국은 북한과 같은 비이성적인 국가는 언제든 자살골을 넣는 행위를 할 수 있다고 의심하는 것 같다. 즉 북한이 자신들이 현격히 불리한 것을 알고 있음에도 핵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 자국 방어를 위해 한반도 내 사드 배치를 서두른 것으로 보인다. 사드 배치가 미국 방어에 직접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 북한이 미국을 겨냥해 발사한 ICBM이 북극을 통과하는 경우다. 이 궤도는 중국 동북부와 극동 러시아 및 알래스카 상공을 지나서 미 본토에 다다른다. 이런 경우 사드용 레이더로 미사일을 추적해 미국 본토에 있는 미사일 방어 지휘통제전투관리통신(C2BNC)에 관련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이 정보를 이용해 알래스카나 캘리포니아에 배치된 GBI로 미사일을 요격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북한이 발사한 ICBM이 남쪽을 향하는 '남극 궤도'인데 이는 2012년 12월 은하 3호의 비행궤적과 유사하다. 서해 연안과 필리핀을 지나 남극을 돌아 미국 본토에 도달하는데 사드용 레이더를 사용해 미사일을 추적한 뒤 서해나 남해에 배치된 이지스함 내 요격 미사일로 요격을 시도할 수 있다.
어느 경우든 탐지거리가 600km인 AN/TPY-2 종말모드가 빛을 발휘할 수 있다. 북한에서 발사한 미사일 요격이 가능할 정도의 해상도가 나오기 때문이다. 일본에 배치된 레이더는 전방모드로 작동되기 때문에 제공할 수 없는 기능이다.
특히 북한 미사일이 남극 궤도를 따라갈 경우 미국은 아무런 방어수단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있다. 필리핀이나 괌 인근에서는 ICBM의 고도가 너무 높아 이지스함에서도 요격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한국과 동중국해 사이가 최후의 마지노선이다. 그 마지노선에서 한국에 배치된 사드는 그 어떤 무기체계도 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미국은 모든 외부 공격에 대한 방어 계획을 가지고 있고 싶어한다. 그래야 자국의 의지를 다른 나라에 강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국이 조금이라도 취약하다고 여겨지면 대외정책 구사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프레시안 : 일부에서는 사드가 배치되면 성주가 총알받이, 미사일받이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서재정 : 사드는 요격 미사일과 레이더, 사격 통제 시스템 이렇게 크게 세 가지로 구성돼있다. 일단 레이더는 어떤 전쟁이 일어나든 항상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대상이다. 레이더가 눈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전쟁 초기에 레이더를 마비시켜놓고 그다음에 다른 작전으로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인 전쟁의 양태다.
지금 북한이나 중국을 봐도 그렇고 미사일 방어 체계나 미국을 중심으로 해서 형성되고 있는 다자 안보 체계를 놓고 봤을 때도 한국은 사실 최전방에 위치하고 있다. 게다가 사드에 딸려있는 레이더까지 끌어안고 있다. 군사적으로 봤을 때 가장 먼저 타격 해야 할 목표물이 사드 레이더임은 분명하다. 뿐만 아니라 요격 미사일도 상대의 미사일을 무력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레이더든 요격 미사일이든 사드는 유사시 가장 먼저 공격을 받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미국보다 한국 국내 정치가 중요하다
프레시안 : 한미 양국은 정치적으로 큰 이벤트를 앞두고 있다. 올해 미국 대선과 내년 한국 대선인데, 일단 미국 대선이 사드 배치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는 고립주의적인 경향을 보이고 있다.
서재정 : 트럼프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물이긴 한데, 크게 봐서 불개입 주의자다. 미국 동맹국들의 소위 '안보 무임승차'를 더 이상 봐주지 않겠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사드 배치를 재평가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한국이 사드에 대한 비용을 부담하지 않으면 배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정도의 정치적인 반응이 나올 수는 있다.
물론 트럼프가 개인적으로 불개입 노선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이러한 노선이 그대로 갈지는 지켜봐야 할 문제다. 미국 국내 정치에서 미사일 방어망 구축은 누구도 쉽게 건드릴 수 없는 일종의 '성역'이다. 트럼프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되도 이 문제를 건드리기는 쉽지 않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외교‧안보 분야에서 굉장히 강경한 입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드를 비롯한 미국의 대외 정책 분야에서는 오바마 정부의 입장을 그대로 이어받거나 오히려 더 강경하게 나올 수도 있다. 결국 미국 대선보다는 국내 대선이 어떻게 될지가 큰 변수 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프레시안 : 그런데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한미 동맹이 무너지면 큰일 난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즉 사드 배치를 반대하는 것이 곧 한미 동맹을 저해한다는 판단인데, 실제 이렇게 판단할 만한 근거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또 하나는 언제까지 한국의 안보를 한미 동맹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인지도 의구심이 든다. 한국의 안보를 해치지 않으면서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가져올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서재정 : 일단 사드 배치와 한미 동맹은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 이 두 가지를 동일시할 필요는 없다. 사드는 한미 동맹의 하위 개념이자 하나의 무기 체계에 불과한 것이라는 인식이 중요하다.
동맹 간에는 얼마든지 의견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하다못해 박정희 대통령 때도 미국 행정부와 충돌이 굉장히 많았다. 박 대통령은 자주국방과 핵무기 독자 개발까지 이야기했다. 닉슨 독트린을 공개적으로 반대하기도 했고.
이러한 사례를 비춰봤을 때 동맹 사이에 발생하는 충돌과 이견은 당연한 것이라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 부부 사이에도 싸우는데 왜 동맹 간에는 매번 의견 일치가 돼야 하는가? 사드가 배치되지 않더라도 동맹은 그대로 유지될 수 있고, 동맹을 유지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미국과 한국의 국익이 어디에 있느냐는 측면을 살펴봐야 한다. 사드 배치가 신냉전의 등장을 불러온다는 측면에서 봤을 때 이게 정말 미국과 한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 근원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한국 입장에서 신냉전은 최악의 상황이다. 미국과 중국이 적대화되면 어느 쪽으로 줄을 서도 타격을 입는다. 따라서 한국 입장에서 신냉전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피해야 할 상황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의 국익은 사드가 신냉전을 가속화시키는 계기가 되는 것을 막아야 하는 데에 있다.
미국 국익에서 보더라도 사드 배치가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 측면이 있다. 미국이 지금은 군사적으로 중국과 갈등을 보이고 있지만, 경제적으로는 여전히 상호 의존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경제 역시 중국 없이 굴러갈 수 없고 이는 중국도 마찬가지다.
냉전 시기와 다른 부분이 이런 측면인데, 냉전 때는 미국과 소련 양국의 경제적 측면에서 상호 연계성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래서 그만큼 대립이 첨예했던 것이다. 지금 미국과 중국은 경제 구조적으로 이렇게 할 수는 없다. 무역과 통상, 직접 투자 등으로 양국 경제가 긴밀하게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만일 양국이 전쟁에 돌입한다면 두 나라 모두 경제에 치명상을 입는다. 미국 입장에서도 중국과 군사적인 대립을 심화시키는 것이 결코 이롭지 않다.
이런 부분을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설득해야 한다. 행정부가 이렇게 말하기 어렵다면 정치권이나 시민사회를 동원해서라도, 또는 눈감아주는 척하면서 민주사회의 장점을 최대로 활용해야 한다.
이번에 더불어민주당 의원 6명이 중국에 갔는데 이것은 민주사회의 장점이다.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중국에서 사드 배치를 저렇게 반대하고 있는데 야당이라도 가서 불가피하게 정부 차원에서 이런 결정 했지만 좀 이해를 해야 할 부분이 있다든지, 한국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사드 배치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중국이 너무 거칠게 나가지 말아 달라고 요청한다든지, 중국이 세게 나가면 중국에 호의적인 경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돌아설 수 있다 등등의 말을 통해 중국을 견인해야 할 필요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의원들보고 중국에 가지 말라고 했는데, 이는 스스로 자기 발을 묶는 편협한 정치다.
태도 바뀐 북한, 지금 잡아둬야
프레시안 : 사드 배치 이후 중러 관계와 북중 관계는 어떻게 될까? 일단 중러 관계와 관련, 러시아의 핵 실력과 중국의 자금력이 합해진다는 관측이 있다. 또 북중 관계에서 중국이 북한을 밀어줄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서재정 : 이미 중국과 러시아의 전략적 협력은 굉장히 높은 수준으로 발전했다. 지난달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정상 선언에서 제목이 '세계 전략적 안정을 강화할 데 대한 공동성명' 이었다. 굉장히 이례적인 선언이다. 정상 차원에서 러시아와 중국 간에 전략적인 이해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천명한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 주도의 미사일 방어망 구축이 유럽과 아시아에서 동시에 진행되고 있으며, 이는 자국의 가장 핵심적인 전략적 이해를 침해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들은 그러한 전략적 침해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한 셈이다.
이러한 정도의 정상 선언이 나왔기 때문에 향후에는 보다 구체적인 협력이 여러 수준에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도 양국은 경제 분야의 교류 협력뿐만 아니라, 군사적 협력도 여러 층위에서 진행해왔다. 러시아는 중국에 자국의 첨단 전투기와 요격 미사일 같은 것을 판매하기도 했다.
북중 관계에서도 변화가 나타날 것으로 본다. 북한이 사드 결정 이후에 탄도 미사일 시험을 두 번이나 했는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아무런 성명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이미 영향이 나타난 것이라고 본다. 사드 결정 이전에 발사한 북한의 탄도 미사일과 관련해서는 최소한 언론 성명이라도 나왔는데 이조차도 나오지 못한 것이다. 이는 중국과 러시아가 사드 배치에 대한 반대를 행동에 옮긴 것이라고 해석된다.
북한도 교활하게 이를 활용하고 있다. 사드 결정 이후 북한에서 나온 성명을 보면 러시아와 중국의 전략적 이해가 침해되고 있고, 이에 북한이 최첨단에 서겠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에 확실한 시그널을 준 셈이다. 즉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의 전략적 이익을 지키는데 자신이 최전방 역할을 할 테니, 확실하게 밀어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프레시안 : 결국 사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북핵 문제가 풀려야 하는데 앞으로 박근혜 대통령 임기 내에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북미 대화나 6자회담의 재개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서재정 : 사드 배치 이후 정국에서 최대 변수가 미국 국내 정치보다 한국의 국내 정치라고 말씀드렸는데, 또 다른 최대 변수가 북한이 아닐까 싶다. 북한은 사드 배치 결정 이전인 7월 6일 정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비핵화 협상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이게 굉장히 중요한 성명이다.
사실 북한은 지난 5월 7차 당 대회를 열기 전까지만 해도 핵 선제 공격은 미국의 것만이 아니라면서 자신들도 언제든지 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처음에는 할 수도 있다는 정도였지만 이후에는 할 능력이 있다, 할 준비가 돼 있다, 모든 수단이 대비돼 있다는 식으로 계속 발언 강도를 높여갔다.
그런데 7차 당 대회 때 갑자기 이러한 입장을 뒤집었다. 선제 공격을 하지 않겠다고 밝힌 것이다. 물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주한미군의 철수를 주장하면서, 이전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보다 대미 정책이 후퇴됐다는 평가도 나왔지만 선제 공격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는 점을 미뤄봤을 때 7차 당 대회에는 다소 상반된 흐름이 존재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그런데 이번 7월 6일 성명에서는 핵무기 선제 공격을 하지 않겠다는 것뿐만 아니라 비핵화 협상을 거론했고 5개의 조건을 내놓았다. 그리고 맨 마지막 조건에서 주한미군 철수를 언급했는데 이것도 지난 7차 당 대회와는 다르다.
당 대회 당시 김정은 위원장은 아무 조건 없이 주한미군을 철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남조선에서 핵 사용권을 쥐고 있는 미군의 철수를 선포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게 해석에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주한미군이 핵무기 사용 통제권이 없으면 주둔해도 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또 하나는 철수 '선포'를 하라고 했다. 그러니까 선포만 하면 비핵화 협상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뒀다고도 볼 수 있다. 다른 네 가지 조건들도 검증, 확약, 담보 등 선언적인 의미가 있으면 된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또 내용 역시 6자회담이나 1994년 제네바 합의, 2005년 9.19 공동성명 등에서 이미 합의가 됐던 것으로 채워져 있다.
프레시안 : 지난해 1월 북한이 핵 미사일 동결과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맞바꾸자고 제안했다. 그때 박근혜 정부는 이를 묵살했는데, 역시나 이번 6일 정부 대변인 성명도 무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으로써는 정부가 여기에 나설 리가 만무해 보이는데.
서재정 : 북한의 성명이 나왔을 때 국방부는 주한미군 철수라는 조건이 들어 있기 때문에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거절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제안이 발표된 지 6시간 뒤에 미국이 인권문제를 걸고 대북 경제 제재 조치를 발표했다는 데 있다. 그리고 이 제재 조치에서 미국은 김정은 위원장을 콕 집어서 발표했다.
경제 제재를 하면서 다른 나라의 최고 지도자를 지목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외교적으로 보기 드문 사례인데 북한 붕괴에 한미 양국이 어느 정도 의견 일치를 본 것 같다.
북한은 미국과 비핵화 협상의 가능성을 열고 대화하자고 나왔는데 오히려 미국이 펀치를 날린 셈이다. 이어 미국은 사드 배치 결과까지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프레시안 : 북한의 정부 대변인 성명을 그대로 믿어도 될까? 정세를 보고 일시적으로 전략을 발표한 것은 아닌지?
서재정 : 이 제안은 전술적‧일시적이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7차 당 대회에서 발표된 사항들은 장기적인 목표이다. 전략적인 변화의 모습들을 담고 있었다고 본다. 크게 이야기하면 경제에 중점을 두고, 김정일이 추구했던 소위 선군정치에서 '선경정치'로 옮겨야겠다는 커다란 전략적 전환이 있었다고 본다. 물론 레토릭상으로는 선군정치를 이어나가고 핵-경제 병진 노선을 계속 유지하겠다고 하지만 내용적으로는 이미 선경정치로 이동됐다. 이에 따라 인사이동도 이뤄진 것이라고 본다. 군부가 많이 탈락하고 관료의 약진, 특히 외교 관료가 대우를 받는 상황을 보면 전략적 전환에 맞춰 인사를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외교나 군사적인 문제에서도 대립이나 대결보다는 대화와 외교로 방향을 틀었다고 본다. 그 맥락에서 지난 7월 6일 정부대변인 성명이 나온 것이라고 본다. 이 제안은 내각 수준이 아니라 최고 수위에서 나왔을 것이다. 적어도 김정은의 위임을 받은 정도는 됐을 것이다.
물론 북한이 일시적으로는 미사일이나 핵 실험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대화와 외교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 같다. 이 기회를 잡으면 극적인 변화가 빨리 올 수도 있고 지금처럼 무시하고 사드 배치하고 군사 훈련을 강행하면 여러 가지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 특히 한미 군사훈련이 진행되면 북쪽은 더 강경하게 나올 가능성이 높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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