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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동 카페가 원망스럽습니다!"

[프레시안 뷰] 2016년 부흥연립 사람들

서울 마포구 망원동은 서울 서북권에서 최근 떠오르는 신흥 상권으로 유명해지고 있다. 홍익대학교와 합정동 지역 임대료가 상승하며 밀려난 사람들이 차린 다양한 카페와 문화 창작 작업자들의 이주를 바탕으로 생긴 현상이다.

아마도 1970~1980년대 망원동에서 살았던 사람들에겐 꽤나 신기한 풍경일 것이다. 망원동은 1960년대 중반 서울의 급속한 인구 증가에서 나오는 다양한 폐기물 및 오물들을 받아주는 역할을 했다. 하늘공원과 노을공원으로 변신한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 성산대교 북단에 있었던 노천 분뇨 처리장 등이 그것이다.

지역에서 오래 살았던 분들의 증언에 따르면 "서쪽에서 바람이라도 불어오면 문을 닫았다. 난지도의 냄새와 분뇨처리장의 파리 거기에 수색 석탄 야적장에서 얹혀오는 석탄 가루"까지 밀려오던 곳이 망원동이었다고 한다. 온종일 큰길을 줄이어 달리던 쓰레기차와 분뇨차 풍경을 말씀하시던 분도 있다.

1984년 9월, 빗물 유수지 펌프 오작동으로 인한 큰 물난리가 있었던 곳도 망원동이다. 나이가 조금이라도 있는 분들이 기억하는 망원동의 대표적 기억일 것이다. 북한에선 남한 수재민을 돕겠다고 쌀과 천을 포함한 위문품을 보내오기도 했다.

<전태일 평전>을 쓴 고(故) 조정래 변호사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했던 것도 이때의 일이다. 여담으로 대법원에서 주민들의 손을 들어준 대법관이 이회창 씨다.


▲ 1984년 9월 망원동 수재 사건을 보도한 <경향신문> 기사. ⓒ경향신문

망원동 유수지 체육공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부흥연립이라는 오래된 집합 주택이 있다. 1970년대 중반, 망원동이 허허벌판이었을 때, 밭과 모래터뿐이었을 때, 처음 세워진 건물이다. 5평이 넘지 않는 방 100여 개가 4개의 단지 안에 모여져 있다. 40여 년 전에 지어진 건물인데다, 집주인들이 다양한 목적으로 관리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본디 제 나이보다 훨씬 늙어보이는 외양을 하고 있다. 비슷한 시기에 앞서 건축된, 서초동 진흥아파트가 여전히 제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안쓰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1980년대 중반부터 부흥연립을 대상으로 재건축을 하겠다는 많은 시도들이 있었다. 수익이라는 하나의 이유로 시도되고 여러 이유로 실패했다. 소유주들은 점점 더 집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낡으면 낡을 수록 유리한 상황이 된다는 판단을 했던 것이다. 집을 관리하고 돌본 사람들은 정작 소유와는 별개였던 세입자들이다.

2000년대 들어 부흥연립에 기거했던 분들은 대개 경제적으로 어렵고, 건강하지 못한 분들이 많았다. 잦은 누수와 난방의 어려움들을 집주인에게 요구하지 못했다. 수리해주는 대신 집을 빼라는 답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인들의 돈으로 공사를 하며 살 수 밖에 없었다. 이분들은 망원동에서 가장 낮은 집세와 지역의 익숙함을 바꿀 수 없어 이곳을 떠날 수 없었다.

2014년 언저리부터 망원동 곳곳에 카페가 들어서면서부터, 그나마 있던 싼 집들이 없어지는 것도 이곳에 거주하는 분들에겐 걱정이다. 편하게 가던 작은 잡화점이 커피숍으로 바뀌고, 본인들하곤 아무런 소용 닿지 않는 음식점으로 변해가는게 좋을 수만 없다. 오랜 시간 이웃해 살던 사람들이 연락 한 번 닿기 어려운 곳으로 이사가며 생기는 고립감은 더 견딜 수 없는 아픔을 준다.

부흥연립의 100여 개가 넘는 방 가운데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은 20개가 안된다. 그마저도 올해 안에 다 방을 비우고 나가야 한다. 임대주택 순번을 기다리고, 요양원의 순번을 기다리는 분들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말 그대로 자기 한 몸 누일 곳을 찾아 서울을 떠나야 할 사람은 올 여름 더위가 무겁고 힘겹다.

서울에서 자기 집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한 지역에서 4년 이상을 살기는 어렵다. 그러다보니 지역 안에서 맺어지는 관계라는 것이 형성될 수 없다. 집은 그저 잠을 자고, 내 소유의 물건을 놓기 위한 장소일 뿐이다. 청년과 노인이 그 폐해를 온몸으로 감수하며 살고 있다. 1970년대 서울의 모든 쓰레기와 오물들이 낮은 위치로 흘러 들어갔던 것 처럼, 낮은 임대료로 살 수 있는 곳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

상황이 이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시가 내놓고 있는 정책들은 너무 추상적이고 이상향을 꿈꾸고 있다. 당장 청년들과 노인들은 '마을 공동체'의 주체가 될 수 없다. 젠트리피케이션(도심에 가까운 낙후 지역에 고급 상업 지역이 새로 형성되면서 원주민들은 쫓겨나는 현상)을 막기 위해서라는, '시민 자산화'의 주체로 나설 자격도 능력도 갖추고 있지 못하다. '도시 재생' 사업을 하면 할 수록 밀려나는 대상이 될 확률이 높다.

주민이 될 수도 없고, 시민이 될 수도 없는 이들을 뭐라고 호명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태도일지 나는 모른다. 이명박 전 시장의 뉴타운이 아니어도 사람들은 살 곳과 이웃을 잃어가고 있고, 오세훈의 보편적 복지 반대가 아니어도, 청년들은 자기 가난의 입증을 해야만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단순히 시장 한 명이 바뀐다고 해서 우리 사회의 관성적인 태도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제 몇 개월 후면 그동안 인사를 주고받던 부흥연립 주민들과 안녕을 고해야 한다. 어디 이런 일이 망원동만의 풍경일까 싶다. 옥바라지 골목, 창신동, 아현동에서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제라도 서울시는 소유하지 않은 자들도 시민으로 살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을 제시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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