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 행보가 오히려 불통을 낳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4일 새누리당 소속 대구-경북(TK) 지역 의원 11명을 만난 자리에서 경상북도 성주 성산포대에 배치되기로 한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를 성주 내 다른 곳에 배치할 수 있다는 뉘앙스로 발언해 논란을 자초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4일 새누리당 소속 대구-경북(TK) 지역 의원 11명을 만난 자리에서 경상북도 성주 성산포대에 배치되기로 한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를 성주 내 다른 곳에 배치할 수 있다는 뉘앙스로 발언해 논란을 자초했다.
대통령 말 와전되며 일대 혼란…청와대 당혹, 국방부는 '오락가락'
이날 간담회 참석자들은 국회에서 브리핑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이 "성주군민의 우려를 고려해 군에서 추천하는 지역이 있다면 성주군 내에 새로운 지역을 면밀하고 정밀하게 검토 조사하도록 하겠다"면서 "면밀하고 정밀하게 검토 조사해서 기지 적합성 결과를 성주 군민에게 소상히 알리겠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박 대통령은 또 "사드 성주 배치가 결정된 후 지역 주민들을 생각하며 밤잠을 잘 못 이루었다"면서 "그러나 북핵 공격이 계속되고 있어 나라의 안위를 위해 불가피한 선택을 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간담회에 참석한 김정재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이 전했다.
그런데 이 발언이 '성산 포대 외 다른 지역' 배치 검토로 해석되면서, 청와대와 국방부가 발칵 뒤집혔다.
청와대 측은 "검토가 아니라 지역 주민과의 소통을 강조한 것"이라고 진화에 나섰다. "면밀하고 정밀하게 검토 조사"를 해서 적합성 결과를 "소상히 알리겠다"고 한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국방부는 박 대통령의 발언이 알려진 직후 '입장문'을 통해 "국방부는 해당(경북 성주) 지방자치단체에서 성주 지역 내 다른 부지의 가용성 검토를 요청한다면 자체적으로 사드 배치 부지의 평가 기준에 따라 검토하겠다"고 밝혀 혼란을 가중시켰다. 국방부는 불과 열흘 전인 지난달 25일 염속산이나 까치산 등 성주 내 제3지역에 대해 "실무 차원에서 검토했으나 부적합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했었다.
박 대통령 발언이 사드 재배치 논란으로 번지자 국방부는 다시 '국방부 입장'을 배포했다. 그리고 "현재까지 성주 포대가 사드 체계 배치의 최적 장소라는 국방부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는 말을 삽입, 강조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박 대통령은 간담회 과정에서 경북 성주 내 성산포대를 제외한 사드 배치 지역을 검토해 보겠다는 취지로 말을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다만 "성주 군민들의 불안감을 덜어드리기 위해 성주군에서 추천하는 새로운 지역이 있다면 면밀하게 조사해서 조사 결과를 국민들에게 알려주겠다"는 수준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 '검토'라는 말이 빠져 있다.
박 대통령의 발언과 국방부의 입장과 함께 해석해보면, 박 대통령의 의도는 '왜 다른 지역이 배제됐는지, 왜 성산 포대에 배치해야 하는지 등을 더욱 자세히 알리겠다'는 수준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국방부는 대통령의 발언을 잘못 해석해 마치 재검토가 가능한 것처럼 입장문을 냈다가 사실상 철회하고 다시 입장문을 내는 등 혼란을 자초했다.
이 해프닝은 정부가 사드 배치 문제에 관한 원칙도 제대로 정립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그대로 방증한다. 대통령의 발언 한마디에 사드 배치 지역이 흔들릴 뻔 한 셈이다.
성주 내에서 성산포대가 아닌 다른 곳으로 사드 배치 지역을 옮긴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중론이다. 먼저 새로운 부지를 군이 수용해야 하고, 군 기지로 만들기 위해 길 닦기 등 공사를 진행해야 한다. 게다가 미군이 함께 주둔하는 경우여서, 법적으로도 여러 문제들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성산포대를 배제할 경우, 오히려 더 혼란이 가중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이날 '사드 부지 검토 소동'은 과거 '임을 위한 행진곡 논란'과 닮아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5월 여야 3당 지도부 회동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불허 문제와 관련해 "국론 분열이 없는 좋은 방안을 찾아보라고 보훈처에 지시하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사실상 긍정 검토로 해석됐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야당 대표 앞에서 '립서비스' 수준의 발언을 한 셈이었다.
이번 논란도 비슷한 식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
野 "졸속 배치 자인 발언"…성주 군민 "배치 철회만이 답"
야당은 '성주 내 다른 부지 검토'란 대통령 발언이야말로 곧 사드 졸속 배치를 자인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원내대변인은 "정부는 성주군 성산포대가 사드의 '최적지'라며 수차례 강조했다. 입장을 바꾸려면 그에 상응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면서 "대통령의 '입장 번복'은 사드 입지 결정이 얼마나 졸속으로 이뤄졌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행태"다. 더 큰 사회적 혼란을 대통령 스스로 야기한 셈"이라고 평했다.
'사드 배치'에 줄곧 반대해온 국민의당은 이용호 원내대변인 논평으로 "이제 와서 최적지가 아닌 곳으로 옮기겠다고 나선다면 돌아올 미군의 원성은 어떻게 잠재울 요량인지 묻고 싶다"면서 "대한민국 어디에도 사드 배치에 적합한 장소는 없다. 철회하는 것이 정답"이라고 주장했다.
성주 군민들도 '반대'다. 성주 사드 배치 철회 투쟁위원회는 이날 오후 회의를 열어 의견을 나눴으며, 회의 참석자들은 "배치 철회 외에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밝혔다. 배재만 성주군의회 의장도 "성주 군민은 사드 배치 철회를 원하지 성주 내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고 <연합뉴스>와 한 통화에서 밝혔다.
'전격' 회동, 왜?…TK 의원도 "이게 될까 의아했는데"이날 회동은 그 시점과 내용 두 가지 면 모두에서 부적절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우선 새누리당 8.9 전당 대회를 앞두고 친박계와-비박계가 격돌하고 있는 상황에서, 평소에는 좀체 없던 대통령-특정 지역 국회의원 간담회가 전격 결정된 데 따른 비판이다.경북 포항 북구를 지역구로 하는 김정재 원내대변인은 이날 회동이 김재원 청와대 정무수석과 경북 지역 초선 의원이 한 지난달 15일 모임에서 처음 제안되었다고 설명했다. 사드를 포함한 각종 현안을 둘러싸고 TK 민심이 좋지 않자 의원들이 대통령 면담을 요구했다는 설명이다.김 원내대변인은 "그 이후 저희도 이게 진행이 될까 의아했는데 이번에 일정을 조율해서 날짜가 정해졌다"면서 "뉴스를 통해 (날짜) 조율 중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제 오후에 (간담회) 시간을 정확하게 통보 받았다"고 말했다.김 원내대변인은 또 '대통령 전당 대회 개입 논란'에 대해 박 대통령이 "현안에 대한 민심을 듣는 자리가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고 전했다.앞서 비박계 후보를 지원하는 김무성 전 대표는 이날 오전 "대통령이 타이밍(시점)을 잘못 잡으신 거 아닌가 생각난다"면서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반발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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