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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짓 농사, 회사 생활하듯 하면?

[작은책] 세 번째 봄에야 겨우 깨달은 것

그러니까 바야흐로 농한기다. 모는 그럭저럭 뿌리를 내렸으니 당분간은 잘 살겠지 싶고, 감자는 보름 뒤면 수확할 예정이니 별일 있으려구. 사과원(園) 풀이야 뒀다 베면 다 거름이니 그럭저럭 핑계 대기 좋고, 고추가 문제인데 까짓 거 좀 덜 먹지 뭐….

그러니까 바야흐로 그럭저럭 이다. 내려오던 첫해 5000평에 고추를 심었다. 5000평 고추농사라는 게 여의도에서 잠실까지 오리걸음 하며 고추 모종을 심는 걸로 시작한다는 걸 진작 알았더라면, 귀농쯤 기꺼이 포기했으리…. 어쨌든 심었으니 돌봐야 하는데, 기획서 오탈자 체크하듯 한 포기씩 돌보다가 덜컥 무릎이 고장 났다. 명아주 한 포기쯤, 쇠비름 한 움큼쯤 보고도 모른 척해야 한다는 걸 초보는 알 턱이 없어 새벽부터 한밤까지 전전긍긍 몸만 끙끙. 기신기신 가까스로 수확을 하고 보니, 아뿔싸 태풍도 없는 풍년이로구나. 고추 한 근 팔아 우리 아들 짜장 한 그릇을 못 사 주는 시세에 별수 없이 빚만 잔뜩 수확했다.

이듬해엔 당연히 고추는 꼴도 보기 싫어 조며 수수 따위 잡곡 농사를 지었다. 지었는데, 얻은 건 '서울 사람은 믿을 게 못 된다'는 깨달음. 봄에는 당뇨에 좋다느니 고혈압에 최고라느니 하며 심기만 하면 다 사서 먹는다기에 판로 걱정은 안 했는데 가을 되니 백미만 먹더군. 팔 곳이 없어 농협수매 넣고서야 서울로 되돌아가는 귀농인의 처지를 알겠더라.

▲ 고추 농사는 한여름 햇살에 좌우된다. 붉을수록 가격이 올라간다. ⓒ연합뉴스

서울 살이 꼬박 30년. 마흔이 넘자 배터리가 자주 방전됐다. 죽자고 살고 있는데 사는 건 늘 고만고만하고, 남들은 어떻게 사나 둘러보면 또 다들 죽자고 살고 있어서 '어어' 하다가 자빠지길 여러 번. 고만고만 사는 일이나마 감지덕지 살았는데, 월급이 두어 달 밀리자 금방 생활이 불안해졌다. 얼굴 책임은커녕 밥벌이도 책임지지 못하는 마흔은 무참했다. 무참했으나 서울 살이라는 게 원래 그러려니, 오늘은 간당간당 내일은 위태위태, 달음박질치면서 견디는 거겠거니 버텨 보려 했는데, 아이가 아팠다. 아토피였다. 자고 나면 피와 진물로 옷과 베개가 얼룩졌다. 아이를 둘러싼 환경을 바꾸어야 했다. 서울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서울이라는 곳은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오늘의 희생을 연료 삼아 유지되는 공간은 아닐까. 내일의 더 넓은 아파트, 내일의 더 큰 차를 위해 오늘은 야근이 당연한 곳. 그런데 비켜서서 생각해 보니, 내일은 늘 내일이기만 하고 오늘은 늘 야근이더군. 스무 살엔 야근을 자청했고 서른엔 야근쯤 두렵지 않았으나, 마흔에도 야근이 당연하고 보니 어쩐지 쭉 속으며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싶은 의심. 성취에 대한 앞뒤 없는 몰입의 힘으로 노를 젓기는 하는데 방향은 사방팔방, 목표는 오리무중인 유원지 나룻배에 타고 있는 건 아닐까 싶은 불안.

그래서 물었다. 흔들리는 배보다는 발 디딘 땅 위에서의 삶이 더 낫지 않겠냐고, 귀농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회사 동료들은 '출퇴근 자유로운 직장'이라며 마냥 부러워했다. 용기백배해서 고향에 남아 20년째 사과 농사를 짓고 있는 동창에게도 물었다.

"농사지어 먹고살 만하냐?"
"농사짓기보다 주식이 나을걸? 농사보다야 천천히 망할 테니까."

일흔이 넘었으나, 아직도 현역 농부인 아버지께도 물었다.

"금의환향 전에는 택(턱)도 없다."

금의환향이라면 급제를 해야 하는데 아버지, 사법고시가 폐지되고 로스쿨로 바뀐다네요. 절박했으므로 아버지의 농지를 무단 점유하는 걸로 무단 귀농. 까짓 농사, 회사 생활하듯 하면 안 될까 보냐. '출근을 하듯 밭에 나가고 영업을 하듯 작물을 돌보면 되겠지!' 했으나, 회사 생활하듯 지은 고추농사는 퇴직금도 없이 서리를 맞았다. 된서리를 맞아 폭삭 내려앉은 고추밭을 보면서 정리한 농사짓는 요령.

하나, 출근하는 시간에 밭에 나가면 한여름 땡볕에 쪄 죽을 수 있다.
둘, 영업하듯 작물을 돌보면 어깨고 무릎이고 안 남아난다.
셋, 농사는 농부가 반을 짓고 하늘이 반을 짓는다. 그러니 안달복달 말 것.

농부의 몫은 때를 기다려 거름을 뿌리고 밭을 갈고 두둑을 짓고 씨를 심고 잡초를 뽑아 주는 일까지. 농부의 몫을 뺀 나머지, 바람이 불어 자두꽃이 수정되고 봄비에 감자 싹이 나는 일, 더위에 옥수수수염이 마르고, 따가운 볕에 사과가 붉어지는 건 모두 하늘의 몫. 농부는 그저 삽을 들고 물 고랑을 내거나 논두렁을 고치면서 싹이 나고 자라고 꽃피고 열매 맺는 그 곁을 가만히 지켜 주면 그뿐. '사람이 하는 일은 별 게 아니구나'를 겸손하게 알아 가는 일이 농사의 시작이라는 걸 세 번째의 봄에서야 겨우 알았다.

오로지 수확만 바라보던 농사에서 눈을 돌리니 거기 찔레꽃이 있었다. 내 발아래 망초꽃이, 내 손 닿는 곳 애기똥풀꽃이 이렇게 예뻤었나. 땅콩에도 꽃이 피는지 여태 몰랐었구나. 나는 여태껏 무슨 생각으로 농사를 지었담.

서울에는 서울 나름의, 이 골짜기에는 골짜기 나름의 질서와 리듬이 있다. 그 사람이 타는 차의 크기로 잽싸게 상대를 가늠하던 서울의 기준을 이곳으로 고스란히 가져왔으니, 당연히 몸이 고달프고 마음이 가난할밖에…. 차가 무슨 소용이람. 고개 너머 논에 뿌릴 웃비료를 싣자면 차보다야 경운기지. 트랙터는 좀 비싼가. 바퀴만 팔아도 경차값인 트랙터가 부지기수인데. 서울의 기준이 교통카드라면 이곳의 기준은 1300원짜리 스탬프가 찍힌 얇은 버스표. 경운기든 트랙터든 버스표든 모로 가도 장에만 가면 되지 굳이 교통카드일 필요야.

그렇게 감자를 심었다. 심는 것까지는 내 몫, 나머지는 하늘이 하시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사과 농사를 지었다. 적과만 끝내 놓으면, 나머지는 바람과 볕이 알아서 하시겠지. 그랬더니 참으로 오묘하게 알아서 하시더라. 봄 가뭄에 감자 싹이 날 동 말 동, 씨감자 값이나마 건질 동 말 동해서 속이 시커멓게 타는 중에 참깨는 가물어 제 세상이라고 온 밭이 환하게 깨꽃을 피우더라. 수확 날 아침 폭우에 옥수수가 몽땅 쓰러져 '이깟 농사, 개나 주지' 싶다가도 굳이 쓰러진 옥수수를 먹겠다 주문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래도 내가 여태 헛살지는 않았구나 싶더라. 하늘이 하시는 뜻을, 일개 농사꾼이 어찌 다 알까.

그러니까 이제는 잠시 허리를 펼 때. 고추 첫물 딸 때까진 설렁설렁. 아오리 딸 때까진 농한기. 때마침 장마라 비는 오고 아침부터 막걸리 추렴인데 뭐 어때 모로 가도 장에만 가면 되지. 바야흐로 농한기, 바야흐로 그럭저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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