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탄도 미사일 발사와 관련,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긴급 회의를 열었으나 15개 이사국이 만장일치로 채택해야 하는 성명은 도출하지 못했다. 남한 내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배치에 대한 중국의 반발이 유엔 안보리에서도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미국, 일본, 한국 요청에 따라 3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린 안보리 긴급 회의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고 알려졌다. 그러나 안보리는 이번 회의에서 북한을 규탄하는 성명은 채택하지 않았다.
안보리는 지난 2012년 12월 북한이 장거리 로켓인 광명성 3-2호를 발사한 이후 채택한 대북 제재 결의안 2087호에서 탄도 미사일 기술을 이용하는 어떠한 행위도 하지 못하도록 규정했다. 이에 올해 6월 24일(현지 시각) 안보리는 북한이 같은 달 22일에 중거리 탄도 미사일을 발사한 것은 안보리 결의 위반이라며, 이를 규탄하는 언론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런데 한미 양국의 사드 배치가 발표된 이후부터 안보리는 북한의 미사일과 관련, 어떤 성명도 내지 못하고 있다. 사드 배치 결정이 발표된 다음날인 지난 7월 9일 북한이 잠수함 탄도 미사일(SLBM)을 발사한 것과 같은 달 19일 스커드와 노동으로 추정되는 미사일 3발을 발사한 것에 대해서는 가장 낮은 수준의 규탄 성명인 언론 성명도 채택하지 못했다.
특히 이번에 북한이 발사한 탄도 미사일은 사거리 1000킬로미터가 넘어가는 중거리 미사일이다. 일반적으로 안보리가 중거리 미사일을 제재 논의 대상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으로 비춰봤을 때 이번 발사는 성명을 논의할 수 있는 사안이다.
또 두 발의 미사일 중 한 발이 일본의 배타적 경제 수역(EEZ) 안에 떨어지면서 안보리는 발사 하루 만에 긴급 회의를 소집하는 등 분주한 움직임을 보기이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도 긴급 회의 이후 별다른 성명이 나오지 못한 것은 결국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남한 내 사드 배치 발표 이후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에 비협조적으로 나왔던 것이 주요한 요인이 아니겠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미국은 조만간 북한을 규탄하는 안보리 성명 초안을 회원국들에게 회람시킬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류제이(劉結一) 유엔 주재 중국 대사가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은 어떠한 것도 안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어 의장 성명이나 언론 성명이 채택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인민일보>, 박근혜 대통령 정면으로 비난
사드 배치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는 중국이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을 정면으로 비난하는 등 비판 수위를 한껏 끌어올리기도 했다.
신문은 3일 "한국의 지도자가 미국의 전략적 의도를 모를 리가 없다"면서 "'서울의 정책 결정자'는 다른 의견은 듣지 않고 고집스럽게 자국의 안위를 사드 체계와 묶어 놓고 주변 대국의 안보 이익을 훼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신문은 "사드 배치는 한국을 미국과 중국·러시아 간 군사 대치에 끌어들일 가능성이 높다. 만약 충돌이 일어난다면 한국이 가장 먼저 공격받을 대상이 될 수 있다. 신중에 신중을 기해 문제를 처리해야 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동안 중국이 관영 언론들을 통해 사드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긴 했지만 박 대통령을 직접 거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중국의 반발이 임계점을 넘은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말을 아낀 채 공을 외교부로 넘겼다. 다만 정부 당국자는 "<인민일보>가 사드 배치는 이 지역의 전략적 균형과 중국의 안보 이익을 해친다는 일방적인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은 유감"이라면서 "중국의 <인민일보>가 사드 배치에 대한 불합리한 문제 제기를 할 것이 아니라, 한국 및 중국을 포함, 국제 사회의 뜻을 외면한 채 핵 및 미사일 개발을 고집하고 있는 북한에 대한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중국은 외교적 대응과 언론을 통한 공세 뿐만 아니라 한국인을 상대로 상용 복수 비자를 발급해오던 대행 업체의 자격을 취소하는 등 실질적인 보복으로 해석될 만한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상용 복수 비자는 사업과 교류 등의 목적으로 중국을 방문할 때 필요한 서류로, 이 비자를 발급받으면 특정 기간 안에 횟수에 상관없이 중국을 오갈 수 있다. 비자 발급을 위해서는 중국 외교부로부터 권한을 받은 기관의 초청장이나 초청 확인서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인의 경우에는 그동안 주한 중국 대사관이 운영하는 비자 발급 센터 등을 통해 대행사에 초청장이 형식적으로 발급됐고, 이를 통해 한국인은 상용 복수 비자 발급을 비교적 쉽게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조치로 이제는 대행사가 아닌, 직접 중국 현지로부터 초청장을 받아야 한다. 이전보다 복수 비자 발급 조건이 까다로워진 셈이다.
외교부는 이와 관련 "주한 중국 대사관 측에 따르면 상용 비자의 경우, 그간 초청장을 발급하던 대행 업체의 자격이 오늘 자(3일)로 취소되어 향후 동 대행 업체를 통해 초청장을 발급받을 수는 없으나, 우리 기업이 현지 협력 업체를 통해 정상적으로 초청장을 받으면 상용 비자가 발급될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외교부는 "중국 측이 복수 비자 발급을 중단하거나 신청 접수를 거부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며 당장 한국인의 입국에 큰 제약을 받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지만, 중국을 수시로 드나드는 한국인의 경우에는 불편을 감수해야 할 상황에 놓였다.
특히 중국 외교부가 왜 이런 조치를 취했는지에 대한 정확한 배경이 알려지지 않으면서, 일각에서는 한국 정부의 사드 배치 결정과 관련해 중국이 광범위한 분야에서 제재를 시행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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